나를 불러주는 소리
감문주 / 글
누가 나를 어떤 방법으로 불러주는냐에 따라 내 존재에 대한 의식을 하나 보다. 요즘더러 마을 분들이나 생활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러야 될까? 하는 호칭에 대하여 고민스럽다. 칠순이 한참 지났다는 할머니께서 언니라고 부르라는 말씀이다. 애교로 받아드리기에는 너무나 단호하여, 왕언니라고 존칭했다. 그러나 왕언니라는 호칭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보통 습관화 된 호칭은 때와 장소에 따라 구별 없이 나도 모르게 왕언니라고 튀어 나오는 날이면 서로 더 큰 품위손실을 당 할 것 같은 생각으로 불안하다.
나 역시 대문 밖에서 듣는 호칭이 여러 가지다. 호칭이란 사회생활 중에 상대편에게 예의 갖추어 듣기 좋게 불러주는 이름이라고 해야겠다. 절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꼭 존칭을 해서 불러주어야 할 자리가 있다. 더욱 절친하여 허물없는 친구 같으면서 가족 같은 사이라면, 자네라 하면서 ‘이 사람아, 이 친구야, 등등 정겨운 단어들이 많았다. 우선 나를 여자이기에 결혼 전에는 처녀라는 조건으로 어른들은 아가씨라고 불러주었다. 갓 결혼하여 색시라고도 부르고, 애기를 낳고 보니 애기 엄마로 불러지더니, 나중에는 아줌마라는 대명사가 내 청춘시절 절정으로 불러진 정겨운 호칭이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라는 존칭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은 독립된 방이 몇 칸 있다. 세입자들이 들어오면서 젊은 애기 엄마들은 나 더러 아줌마라고 불렀다. 아이들에게는 할머니라고 존칭을 하도록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십 초반에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젊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큰 애 고등학교 동기생 가족이 세입자로 들어오게 되었다. 호칭과 존칭 때문에 세입자 끼리 말다툼 이 벌어졌다. 자기 들 끼리 시비가 붙은 이유를 들은 본 결과 나는 어이없이 웃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주인 댁, 을 “안 집 아줌마라고 불러라” 아이들이 “할머니, 할머니 가 뭐야?” 늙지도 않았는데 기분 나쁘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동기생 어머니가 젊은 애기 엄마들에게 주의를 주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젊은 엄마들은 그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하면서 엄마 아빠가 주인어른 을 보고 아주머니 아저씨라고 부르면, 아이들은 할머니할아버지라고 존칭을 해야 하는 법인데 기분 헤아려 어미에비도 아줌마, 새끼도 아줌마, 세상에 이런 몰상식한 법이 어디 있느냐? 우리들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젊은이들 의견도 맞는 말, 저 아주머니 말 도 맞는 말, 그러니 ‘여보게, 모두 봉당으로 주르르 앉아보게, 해 놓고서 주인 된 도리로 집안에 평화를 위하여, 그들을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 주인행세 아닌 행세를 해야만 했다.
내 집 울타리 안에서 세입자끼리 다투는 일이 생기면, 우선 자네들을 내가 얕보게 되는 법이고, 다투는 소리가 담장 밖으로 나가면, 마을에서 소문나기로 가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으니, 다투지 말고 오순도순 잘 지내면서 살아라. 열심히 저축하여 좋은 집이나 전셋집으로 이사 가기 바란다. 이런 오막살이 단칸방에 살면서 부부지간에 싸움질이나 자식들 앞에 좋지 못한 입버릇이 있으면 오는 복도 달아난다고 했다. 자네들 속에 우리가족도 함께 세입자가 되어 엄청 조심스럽게 살아가노라고 우리 아저씨랑 사실 싸움도 하고 싶지만 참고 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주인댁이 싸움질이나 하면 세입자들이 얼마나 불안 할까? 하여 조심중이다. 면서 아이들은 할머니라고 부르고 어른들은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말이다. 안 집 아줌마보다 그냥 아주머니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내 마음을 내 보이면서 세입자들 사이에 묘한 불씨를 조용히 삭혀 주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사십 중반을 넘어 서면서 집 밖으로 아예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아이어른 구별 없이 막 부르는 대명사로 발전했다. 나의기분은 아무도 헤아려 주지 않았다. 옛날 큰아이 동기생 어머니나 내 청춘 내 마음을 알아주었지. 누구하나 인간적인 내 청춘을 헤아려 주려하겠는가? 늙어가는 할머니 이름이 십년 가까이 숨 가쁘게 치솟았다, 요즘 와서 느긋하게 어르신으로 존칭대접? 을 자주 받는다. 그렇게 기분 좋은 대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아직은 청춘이고 싶은 욕심이다. 내 나이 칠십 정도 더 쌓아놓고 난 뒤에 어르신이라는 존칭을 듣고 싶다. 그러나 내 나이 육십에 몸이 칠십 연령을 넘어섰다는 증명을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문화 동아리 모임에서 사무적으로 상대편 상호간에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직업에 익숙한 학교선생님이 아니기에, 집안 살림만 하던 아낙이 선생님 단어가 부르기도 참 어색하고 듣기에는 더 더욱 어색했다. 요즘 보통 명예회장에게는 회장님으로 존칭하고, 명예봉사자들에게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마음 편하게 받아 담았다. 마을노부인들 사이에서 드물기는 해도 여사님이라고 발전해가고 있다. 시골 마을에서도 환갑이 넘어선 어른들에게 서로가 연세 드신 분끼리는 누구의 엄마보다 여사님으로, 아줌마보다 아주머니라 존칭하고 아무개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아저씨라는 호칭과 어르신이라는 존칭으로 서로 존경스럽게 불려주는 것도 품위 있는 문화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