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절과 마찬가지로 법당의 한가운데에는
본존 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왼쪽에는 좀 특이한 제단이 하나 차려져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가 볼까요.
▲오른쪽에 모셔진 분은 안중근 의사, 왼쪽에 모셔진 분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씨 부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안중근 의사의 위패가 왜 일본의 절에 모셔진 것 일까요?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 갇혔을 때, 일본군 헌병이었던
지바 도시치라는 분이 그곳에 근무했다고 합니다.
그도 처음 에는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안중근 의사가 동양 평화를 갈구하는 굳은 의지와 높은
인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두 분은,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형수와 감옥 간수, 가톨릭 신자와
불교도라는 장벽을 넘어 서로 존경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결국 교수형으로 짧은 생애를 마칩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으로 지바 도시치 씨에게 "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 위해서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고 쓴 필묵을 선물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었습니다.
독립군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면서도, 항상 포로들은 인도적으로
살려보내곤 했습니다.
그 때문에 때로는 일본군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받아 피해를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맞서 싸운다 하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마구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그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긴 정치가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침략자 였으며, 나아가서는 동양의 평화를 해치는
그를 안중근은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지바 도시치씨는 군대에서 제대한 뒤,
고향 센다이에서 철도원으로 일하면서도,
평생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시며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고 합니다.
▲타국의 사형대에서 숨져 간 젊은 영혼을 위로하려는 것일까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민요 "아리랑"이 걸려 있었습니다.
▲절 마당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필을 새긴 소박한 추모비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안중근 의사의 추도식이 열린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지바 도시치씨도 세상을 떠나고, 이렇게 절 뒷편에
모셔졌습니다. 지금은 두 분이 저 하늘에서 다시 만나 동양의 평화를
기원하고 계시겠죠.
불행한 역사는 불과 백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높은 신념, 그 한국인 청년 사형수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우정을 나누었던 지바 도시치씨, 그리고
그 인연을 지금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유족과 대림사 관계자 여러분들.
몇몇 정치인들의 옳지 않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한일 우호는 이러한
분들의 노력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괜히 폐를 끼치는것 같아 사양하려 했으나 "멀리 한국에서 왔으니
식사라도 하고 가라"는, 절에 계시는 공양주(?) 보살님의 상냥한 권유를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윽고 내 오신 맛있는 냉중화비빔면(冷やし中華, 히야시추카). 시골 절의
푸근한 인심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입로에 있는 표지판입니다.
절 바로 옆에는 도호쿠 신칸센이 놓여 있습디다.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신칸센 고속열차가 시간마저
멈춘듯한 조용한 시골 마을의 정적을 깨뜨립니다.^^
옮겨 온 글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새삼 가슴 한자락이 저립니다... 그리고 초장, 계란부친것, 오이, 토마토, 햄(?).. 섞이면 무슨맛일까...
국가와 종교를 초월하여 상통하는 두 분의 마음과 마음에 따듯합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두분의 사상과 뜻이 너무 고귀합니다 ...좋은자료 감사하게 잘 보았습니다.
제가 다니는과에서 전라도 사람과 2%부족한 경상도 아가씨가 싸웠습니다. 그 병원은 여자 원장선생님도 목포 분이신데 개업식 첫날에 저하고 인연이 되어서 다닌지 15년은 넉넉히 됩니다. 독실한 불자라는 것도 한몫합니다. 지독한 목포 사투리를 쓰는데 저도 가면 같이 비슷하게 쓰기도 하지만 출신때문에 의사선생님을 불신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원장선생님 말씀처럼 제발 출신을 논하지 말고 성품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자()는 말이 ...글 속의 두 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