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밀양 송전탑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들 10명이 공간초록에 모였습니다. 개중에는 공간초록에 1년 만에 오신 분도 있었고 친구 소개로 오게 된 분들도 있었지만, 이 공간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영상물 <밀양 송전탑, 그 7년의 전쟁>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렇게 향한 밀양에서 한나절 동안 또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분께서 '해방구'라 하셨던 부북면 평밭마을에서 적은 인원으로 한전과 공사 용역들로부터 24시간 부지를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셨고 힘든 싸움에 울분을 토하시기도,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깊은 가르침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공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셨던 이남우 위원장님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선합니다. 주민들은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게 핵발전소 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고, 송전탑과 핵발전을 막는 일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후손만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역설하셨습니다.
밀양 시내로 내려와 식사를 하고, 밀양시청 앞과 한국전력 지사 앞에 있는 두 곳의 농성장을 방문했습니다. 밀양시청 앞의 농성장에서는 릴레이 단식을 하고 계신 너른마당 조합원분들을 만나, 공부방, 생협, 대안교육 등 너른마당에서 4년여 이상 지역 공동체 활동을 해 오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동안, 너른마당 조합원이 되기 위해 밀양으로 이주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설렜습니다.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의 농성장에서는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더운 날씨 속에서 부북면 평밭마을 어르신 세 분이 저희를 맞아주셨습니다. 칠순,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매일 아침밥만 먹고나면 공사 부지의 컨테이너나 농성장으로 '출근'하신다는 세 할머님께서는, 그동안 숱하게 겪은 가슴아픈 사연들을 들려주시면서도 미소를 조금도 잃지 않은 모습이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와중에 저희 일행 중의 한 분(박조건형님)이 할머니 세 분의 크로키를 즉석에서 그려서 전달해드리자 정말 즐거워하셨습니다. "이런 재주(그림그리는)로 송전탑 말리주소" 하시는 할머니 말씀이 기억납니다. 한전 건물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쏴~~'하는 소리와 함께 한국전력 측에 대한 제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한 후, 어르신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저희는 밀양댐 쪽으로 향했습니다.
밀양댐 인근의 헬기장에 또다른 농성장이 있다고 해서 약 40여분을 달려 향한 그곳에서 또 주민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농성장에 이르기까지 30분 이상 길을 헤맸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양산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가까스로 찾은 농성장이 어찌나 반갑던지. 쫄딱 비를 맞고 농성장까지 오르는 질퍽질퍽한 흙길에 푹푹 빠지면서 나무숲 속에 위치한 농성장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 빗속에서 꿋꿋이 천막을 지키시는 네 분의 주민들의 모습은 어쩐지 초연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네 분께서는 약 일주일 전, 헬기를 통해 송전탑 건설 자재를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해 맨몸으로 농성장에 드러누우면서 농성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모기를 비롯한 온갖 벌레와, 길 잃은 멧돼지와 조우하면서 그리고 매시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드나드는 한전 직원들의 차 소리에 긴장하면서 어찌어찌 천막까지 세워 매일 밤낮을 그곳을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그 열악한 와중에서도 저희 열 사람 모두에게 보리빵과 커피, 사탕 등 계속해서 먹을 거리를 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매일 수백만원의 벌금, 수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따위는 무섭지도 않다는 강한 결의를 보이시면서도, 저희들의 방문에 고마워하시며 도움을 간절히 호소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경찰과 공무원들이 국민들이 아니라 힘 있고 돈 있는 자본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라고, 반드시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이곳의 주민분들이야 말로, 십수년 동안 학교 교육을 받고 대학에서 학위를 땄다는 그 누구보다 더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이야말로 이 시대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신 이후 밀양 송전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이 분들의 싸움은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렇게 싸우는 분들 만큼이나 다양한 연대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따로 또 같이 힘을 모으면서 계속해서 손을 내밀고 잡는 일을 그치지 않을 때 세상은 어떻게든 변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르신들과 헤어지면서 이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열심히 싸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첫댓글 제가 할수 있는 방법이 뭐있나 생각해 봅니다....다음에 다시 가실때 연락주셔요. 시간되면 또 가도록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건형씨랑 중현샘이 만든 계단 덕분에 신발을 지킬 수 있어 좋았습니다. ㅎㅎ(농담) 다음에 또 함께 가요
와.. 후기도 짠하고.. 건형씨 그림이 어떤 기쁨을 줬을지도 상상이 가고... 곧 다시 간다니~~^^ 저도 따라갈 수 있겠다 싶어 즐겁고... 암튼암튼 짱짱짱!!!
다시 읽어보니 오타가 왜 이리 많은지.. ㅋㅋ 무서운 더위라고 썼었네요
ㅋㅋ 무의식의 반영? 무섭긴 했어요~ 이번 더위! 그래도 의미있는 일 추진력있게 알리고 다녀오신 주영씨~ 멋져! 이제 주영씨 팬클럽만들까보다 ㅋㅋㅋ
수고 많았어요... 강의하느라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자꾸 이런 일에 사람들이 마음을 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헛헛하고.. 이런 상황에서 약자들의 연대가 좀더 단단해졌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의 방문이 그곳으로 가는 조그만 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흐뭇합니다. 애쓰셨어요... 다들....^^
건형씨 글도 잘 쓰시더니 그림도 멋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습에서 배울것을 많이 얻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