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력’을 아는가? 신력은 현대의 슬랩 등반에서 중요한 기술이다. 자세가 좀 안 좋아도 등반 실력이 부족해도 신력으로 올라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신력은 신발의 힘이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암벽화의 뛰어난 마찰력 덕택에 현대의 등반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수월해졌으며 고난이도 등반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초보자라 할지라도 신력을 믿고 과감하게 상체를 세우고 다리를 뻗어 바른 자세로 올라야 한다. 그러나 신력은 등반실력이 부족할 때 쉬운 슬랩에서는 통하지만 어려운 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초보자들은 슬랩에서 4지점과 3지점을 이루어야 한다. 정지했을 때는 양손과 양발이 네 개의 꼭지점, 즉 4지점을 이루어 자세가 안정되어야 하며 이동할 때는 발을 벽에서 떼어 움직이므로 3지점이 된다. 이때의 3지점은 역삼각형이 될 수 있다. 양발과 양손은 너무 넓지 않게 어깨 넓이 정도가 적당하다.
상체를 세워 중력을 마찰력으로 바꾸자
슬랩등반의 중요한 요령은 상체를 세워서 발에 체중이 실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중을 당기는 중력의 힘을 최대한 이용해 마찰력으로 바꿔줘야 한다. 상체를 바위 쪽으로 숙이면 발끝에 실린 마찰력이 줄어들게 되므로 미끄러지고 만다.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더 나은 슬랩등반을 할 수 있다.
▲ 1. 4지점을 이룬 슬랩에서의 바른 자세. 2. 슬랩등반 할 때의 바른 자세. 발을 떼고 이동할 때 3지점이 된다. 3. 슬랩에서 팔과 다리를 구부린 잘못된 자세. 4. 발바닥이 11자가 되도록 뻗어 발끝으로 서야 한다. 5. 발바닥 옆면으로 디디면 무릎이 구부러지며 전체적인 자세가 흐트러진다.
모든 등반이 그렇지만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완력이 아닌 균형 감각으로 올라야 한다. 리듬 있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한 피치를 올라갈 경우 몇 동작을 연속으로 하고 잠깐 쉬는 식으로 일정한 자기 리듬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리 루트를 살펴보고 머릿속에 동작을 그려보는 게 좋다.
슬랩에서는 과감하게 발을 쭉쭉 펴야 한다. 한 발 내디디면 그 발에 완전히 체중을 싣고 과감히 일어나야 전진할 수 있다. 초보자들은 미끄러지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해서 과감한 동작을 취하지 못하는데, 이때의 작은 용기가 등반 실력 향상을 좌우한다.
▲ 1.슬랩의 돌기를 잡을 때의 바른 손동작. 손 끝을 모아 눌러야 한다. 2. 슬랩에서의 잘못된 손동작. 3. 페이스 등반의 바른 자세. 발은 11자로 딛고 상체를 바위에서 떼어야 한다. 4. 잘못된 페이스 등반 자세. 발바닥을 옆으로 디뎌 밸런스가 깨져 상체가 바위에 붙었다.
초보자들은 슬랩에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을 찾는데 그렇게 하면 팔에 힘이 들어가고, 상체에 힘이 들어가고, 팔에 펌핑이 나고, 당황해서 자세가 완전히 흐트러지게 된다. 손으로 붙잡을 곳이 아닌 발 디딜 데를 봐야 한다. 이때의 보폭은 어깨 넓이 이상이면 안 된다. 아무리 쉬운 슬랩이라도 보폭을 크게 하면 균형이 깨진다.
슬랩도 자세히 보면 길이 있다. 멀리에서 보면 그냥 반질반질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돌도돌한 홈이 있다. 그런 홈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충분히 바위면을 살피며 서두르지 말고 올라야 한다.
완만한 슬랩에서는 발로 오르고 손은 균형만 잡지만 가파른 슬랩에서는 미세한 돌기를 홀드로 사용해서 오른다.
슬랩등반은 어제의 등반과 오늘의 등반이 다르다. 등반을 오래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바위 상태가 중요하다. 비교적 건조한 날이 등반에 좋고, 이른 아침은 이슬이 내려 불리할 수 있다. 한여름 땡볕에는 바위가 무척 뜨거워져 암벽화의 창이 바위의 열 때문에 말랑말랑해지기도 한다. 이때 마찰력은 더 좋아지지만 창이 빨리 닳는다. 그러나 창이 너무 부드러워지면 마찰력이 떨어져 밀린다.
60~70도의 벽은 초보자들에겐 직벽처럼 느껴진다. 등반을 하면 벽이라는 높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밑을 안 보고 위만 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체가 바위에 붙고 엉덩이는 허공으로 향하게 되어 자세가 불안해진다. 엉덩이를 집어넣고 상체를 벽에서 떼는 게 중요하다.
과감하고 빠른 재밍이 아픔을 줄이는 비결
▲ 1. 손재밍 자세. 2. 엄지손가락을 응용한 손재밍.
크랙에서는 재밍기술을 많이 쓴다. 크랙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었느냐에 따라 등반 동작이 달라진다. 손 재밍은 아플 때가 많지만 그걸 참고 버텨야 등반이 가능하다. 재밍 장갑을 끼면 손은 보호할 수 있지만 촉감이 둔해져 등반감이 떨어진다. 다만 클라이밍 테이프는 추천할 만하다. 오히려 힘을 더 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초보자는 베테랑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감아야 한다.
크랙에 발을 너무 깊숙이 넣으면 발을 빼는 게 힘들어져 체력 소모가 커진다. 살짝 비틀어서 넣었다가 다시 비틀어서 빼야 쉽게 빠진다. 계속 등반해야 하므로 발을 깊게 넣지 말고 발끝으로 재밍하며 가야 한다. 발 재밍이 마찰력은 크지만 아프다는 게 단점인데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과감하고 빠른 재밍을 통해 빨리 일어나서 재밍 구간을 돌파하는 것이다.
초보자는 크랙에서 고도감 때문에 안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밖으로 나오는 게 체력소모가 덜하고 등반 스피드도 빠르다.
▲ 1. 발재밍 동작. 2. 잘못된 발재밍 동작. 발이 너무 깊숙이 들어가 빼기가 쉽지 않다. 3. 정확한 발재밍 동작. 살짝 넣어 비틀어야 뺄 때도 쉽게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