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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0.10.10)
말씀/ 창 2:8-19, 신명기 33:29
행복한 삶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몇 일 전 '행복 전도사' 최윤희(63·방송인)가 남편과 함께 동반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씨는 지병을 비관하였고 남편은 자살을 도와주고 함께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유서에는 이렇게 적혔습니다.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최근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며 많이 지쳤다. 건강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얼마 전에도 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 마을에 가서 수면제를 먹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최씨의 인생 역정은 아주 '긍정적'이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써 38살에 133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현대그룹 주부 공채에 합격했습니다. 이화여대 교지 편집장 출신의 글재주와 대한민국 아줌마의 입심으로 방송은 물론 대학, 기업, 군, 경찰 등에서 많은 강연을 하였습니다. 강연중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복을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하였습니다. 예쁘지 않은 외모 를 갖고 있었지만 "못생긴 거, 가난한 거, 무식한 거는 죄가 아니다. 죄는 딱 한 가지다. 열심히 안 사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KBS의 <즐거운 세상 ><행복만들기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 주부로서의 경험담을 웃음으로 풀어내 '행복 전도사'로 알려져 왔습니다. 희망과 행복을 주제로 한 20여 권의 저서도 남겼습니다. 그 중에 눈에 톡 들어오는 책 제목이 있는데 ..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마라'는 것입니다. 주부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낸 에세이집 '행복, 그거 얼마예요'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행복을 말하고 실제는 불행을 선택하였으니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시민들은 병마에 진 '행복 바이러스'라고 하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저 역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분이 다른 분이 아니고 행복을 전하는 행복 전도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왜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는가 말을 하기어렵습니다.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유서에는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해주시라 생각합니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고통을 막상 겪게 되면 끝까지 웃으면서 행복을 노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지병을 극복할 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이어도 부서지기 쉬운 흙과 같이 나약한 존재입니다.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죽는데 따라가겠다고 하였던 베드로도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인간 스스로 극한의 상황을 넘어서 행복을 지키고 아름다운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나를 도우시는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입으며 살아야 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의지하나이다’(시18:1) 절망의 상황에서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돕는 자로 계시며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롬 10: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나중에 주님이 왜 아팠느냐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왜 손을 잡지 않았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지 않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손발 이 없는 닉 부이치치라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닉부이치치는 1982년 호주에서 세르비아계 목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해표지증으로 양팔과 양다리 없이 발가락 두 개가 달린 작은 왼발 하나만 있지만 이 분 역시 희망전도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런 몸에 절망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사람도 초등학교 때 3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무덤 앞에서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이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멈췄고, 부모님에게 상처를 드리고 싶지 않아 멈췄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절망을 딪고 일어나서 “나는 사랑과 기쁨, 평화가 마음 속에 가득한 부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직 사랑 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내가 팔다리 없는 인생에서 한계 없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은 오직 사랑 덕분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내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희망을 찾기 시작했던 것은 13살 때였다고 합니다. 자신 외에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고통을 지닌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5살 때 모든 궁금증이 풀리는 계기를 찾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내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 소경에 대해서 예수님이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함이라는 말씀을 보고 모든 고민이 풀렸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와 화해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면서 내면에 평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부이치치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과 사랑 속에 정상인이 다니는 중고교에 다니면서 학생회장을 지내고 호주 로건 그리피스대학에서 회계와 경영을 복수전공 했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서핑을 하고 드럼을 연주합니다. 그런 그의 사진과 영상에 전 세계에 소개되었습니다. 이제는 도리어 건강한 사람들 세상 모두에게 희망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강한 의지가 아니라 그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4: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시 54:4).
행복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영원히, 날마다 ,순간마다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때론 다른 사람을 짓밟고 일어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잡힐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것이 행복입니다. 매일 매일 쫓아는 가지만 행복을 잡았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돈도 많이 벌고 이루고 싶은 꿈도 다 이룬 것 같아도 몸이 아프면 그것도 물거품이 됩니다. 육체가 고통스러우면 마음도 병들고 힘이 듭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삶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행복을 전하던 전도사 최윤히 부부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건강이 무너지면서 모든 삶이 무너진 것입니다. 건강은 행복을 위한 가장 큰 조건입니다. 건강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다 행복하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마음과 영혼입니다. 잠언 18:14절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하였습니다. 심령이 강하면 얼마든지 병을 이길 수 있지만 심령이 상하면 일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마음의 절망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 하였습니다. 자살은 아픈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자살 하는 5명 중에 1사람이 지병 때문이고 나머지는 다른 이유 마음이 병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건강한 삶을 잘 관리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심령을 관리해야 합니다. 잠언서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하였습니다. 이에서 생명이 남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몸과 마음을 잘 지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행복에 대해서 근본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행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근본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그 사람을 위해서 에덴 동산을 만들어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동산이 바로 행복의 동산 낙원입니다. 이 에덴 동산을 보면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이 다 있었습니다. 첫째, 보기에 좋고 먹기 좋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삶의 기본인 경제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지금은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약 8억1천5백만 명 정도로 여덟 명에 한 명 꼴로 굶고 있고, 7초에 1 명 꼴로 어린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루 세끼 잘 먹고만 살아도 행복입니다. 둘째,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여도 죽음으로 끝난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이 땅에 살아가면서 영생을 얻은 사람은 아주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에덴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즉 하나님의 계명으로써 법이 있었습니다. 그 법이 하나님과 인간의 영적 질서를 이루며 행복을 지켜주었습니다. 또 넷째, 네 개의 강과 보석들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지하자원 역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복하며 다스리도록 사명도 주셔서 살아가야 할 이유도 있게 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모형으로 행복한 가정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행복의 조건들을 만들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에덴의 환경은 정말 인간의 행복을 위해 부족함이 없이 없는 곳입니다. 경제문제가 해결되었고, 죽음의 문제가 없고,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계명의 말씀이 있고, 사명이 있으며, 이 외에도 행복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여러분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믿으십니까? 나중에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장막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미 이 모든 행복을 얻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잃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밖에 있는 행복은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 밖에 부도 부가 아닙니다. 하나님 밖에 있는 성공도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 밖에 있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반면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행복입니다. 살아도 하나님 안에서 죽어도 하나님 안에 죽으면 행복입니다. 계시록 14:13을 보십시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 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대역 되인이라도 하나님 안에 있으면 행복입니다. 세상이 힘들어도 주 안에서는 행고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롬 4: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병들고 아파도 주 안에 있는 자는 행복입니다.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오셨고 병든자를 치료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난해도 주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잠 22:4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그러므로 신명기 33:29은 주 안에 있는 자의 행복을 이렇게 말합니다.
“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
너는 행복자라고 하십니다. “나는 행복자다.” 살아도 행복 죽어도 행복...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행복의 원천이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가난해서도 아니고, 질병 때문도 아니고, 약해서도 아니고 죽음 때문도 아닙니다. 주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아무리 화려하게 살고 부하게 살아도 주님이 없다면 그 결말은 불행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이 심판인데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이 힘들고, 고난의 길이었고, 질병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할지라도 마지막 주님을 만난 인생이라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만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만난 당신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둘째,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과 간계가 파괴 되자 가시방석과 같았습니다. 더 이상 행복은 없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내면은 두려움과 불안 수치심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바위 뒤에 숨었습니다. 죄를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고 악한 마음에는 행복이 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소유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선해야 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하고, 사랑으로 가득하고, 나눠주기 좋아하고. 동정하고... 행복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소유에 관심을 둡니다.
프랑스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치스럽고 부요했습니다. 그는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졌으며, 누리고 싶은 것은 다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백방으로 약을 써도 낫지 않았습니다. 용한 의사를 데려다 진찰해봐도 그 병명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의사가 왕의 병의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의사는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의 병은 보통 심각한 병이 아닙니다. 약으로는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입고 있는 속옷을 빌려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신하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아름다운 별장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도 행복이 없었습니다. 돈 많은 부자를 찾았습니다. 거기에도 행복이 없었습니다. 지식이 있는 학자를 찾아 봐도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길을 가는데 나무 밑에서 목동이 하프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너무나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목동, 그대는 행복한가?" 하고 물었습니다. "예, 행복합니다." "내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려나." "말씀하시죠." "자네 속옷이 있으면 빌려주게나" "그러시죠." 그러면서 목동이 겉옷을 벗었는데 맨살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목동은 너무 가난해서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행복한 사람은 있어도, 행복한 사람의 속옷은 없구나!' 하고 탄식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물질에서 찾으려합니다.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속옷은 스스로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목동은 가진 것은 없으나 스스로 자족한 삶을 살았고, 그 결과 행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옷은 아무리 끼어 입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돈의 겉옷, 명예와 권력의 겉옷, 세상의 그 어떤 겉옷도 입으면 입을수록 불편할 뿐이지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복이 무엇인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셋째,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행복할 수 있는 모든 비밀을 알았어도 그 행복을 누리며 살려면 하나님 나라 행복의 곳간을 열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장차 천국에 들어가지만 이 땅에서 행복을 누리는 열쇠는 사랑입니다. 사랑 받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행복합니다. 인간은 죄라는 높은 담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악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그 모든 조건을 넘어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실 수 있었던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아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아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관계를 사랑으로 허무셨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말씀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깨달아지고 꿀송이처럼 단맛이 납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의 섬세한 은총의 손길이 깨달아지고 너무 너무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을 부정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없습니다. 온천하를 얻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행복해집니다. 사람관계에도 미워하면 상대방뿐 아니라 나도 불행해집니다. 사랑하면 상대방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해집니다.
닉부이치치가 희망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사랑이었습니다. 사랑만이 치유이며 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행복하기기를 기도합니다. 행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녀인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야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삶이 힘들어도 불평하지 말고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힘든 삶을 살아가는 데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를 짓고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면 어려운 문제가운데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신명기 8:15-16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시고 또 그들을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시고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지 않습니까?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십니다. 예레미야 애가 33:3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저녀로 힘들게 살게 하는 것은 본심이 아닙니다. 모든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행복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세상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미 그리스도 께서는 세상을 이기셨고 승리하셨습니다. 하늘에 먼저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시고 다시 내려 오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주 안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서 고난도 잠시 잠깐, 기쁨도 잠시 잠깐. 이렇게 구원을 얻고 은총을 입은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습니까? 믿음이 사람들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손을 굳게 잡고 계속 사랑으로 행복을 열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 바이러스를 세상에 퍼지는 저와 여러분 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해영 목사
첫댓글 참으로 훌률한 메시지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네요^^
많은 은사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말씀의 은사까지...
윈드서퍼 닉맘 봐도 얼굴을 본듯 반갑습니다
11일 부터 압해도 분재공원 분재 전시회...16 17일 낙지 축제
가까우면 함께 가보련만....
잘 지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