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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알프스, 내 마음의 큰 산(山)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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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알프스샤모니-몽블랑·꾸르마이어·체르마트 원정트레킹 ☆ (9)-끝
2015년 8월 16일~27일(11박 12일)의 여정
[제11일]▶ 2015년 8월 26일 (수요일) : 태국 파타야→ 방콕공항(귀국 항로)
*[태국 파탸야(Pattaya)]→한식 <한우리> 삼겹살 점심→<태국 맛사지>→(전세차량)→[방콕] 일식부페<오이시(Oish)>→[방콕 스와나품공항]→[서울/부산행] <인천/김해공항 향발>
♣ [태국 파타야 ▶ 방콕공항] — 파타야에서 점심식사, 방콕에서의 저녁식사
☆… 태국의 해양관광도시 파타야(Pattaya)에서 아침을 맞았다. 오랜 만에 편한 잠자리에서 숙면을 했다. 정말 깊은 잠을 달게 잤다. 그 동안의 피로가 가신 듯하다. 오늘은 자정을 기하여 방콕(Bangkok)공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낮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우선 파타야(Pattaya)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그곳에서 맛사지를 받은 후, 방콕(Bangkok) 시내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공항(空港)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 낮 12시, 여장을 챙겨서 호텔을 나왔다. 그리고 우선 한국인 여성이 운영하는 한식당(韓食堂) <한우리>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한식이다. 식탁엔 김치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나물과 두부 등 한식 반찬이 차려졌다. 돼지고기 생삼겹살을 구워 한국의 ‘소주’로 반주를 했다. 그리고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로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식이 입맛을 돋우었다.
☆… 파타야(Pattaya)에서의 오후의 시간은 태국의 맛사지를 받으며 피로를 풀었다. 태국의 정통맛사지학교 출신의 맛사지사들은 능숙하면서도 힘 있게 봉사를 했다. 덕분에 여행의 피로와 그 동안 경직된 몸을 유연하게 풀어 주었다. 이 대장의 원만한 교섭으로 한 사람 당 20달러(한화 25,000원) 정도를 부담하였으니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 두 시간 이상 소요되는 맛사지를 받고 난 후, 일행은 전세 전세미니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방콕(Bangkok) 시내로 들어왔다. 때 마침 퇴근 시간이라,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많아 부분적으로 정체가 되기도 했다. 도심에 들어와서는 그 정체가 더욱 심했다. 방콕은 고가도로의 도시이다. 시내 곳곳에 수많은 고가도로가 종횡무진 연결되어 있는데 그 도로마다 차량이 넘쳐흘렀다. 방콕도 교통문제가 아주 심각해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태국의 도로에는 일본산 차량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대한민국의 ‘현대차’나 ‘KIA차’를 보면 아주 반가웠다. 이곳은 특히 도요타 자동차의 천국이었다. 일찍이 일본은 태국의 고속도로와 고가도로를 건설하는데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한다.
☆… 우리는 도심의 대형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곳의 일식(日式) 부페식당인 <오이시(Oish)>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했다. 각가지 신선한 해산물이 정결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맛깔스런 스시가 일품이었다. 일식 특유의 깔끔한 식단이 산뜻해서 좋았다. 그리고 즉석에서 끓이는 우동의 맛이 깊고 구수했다. 태국을 떠나기 전, 방콕에서의 만찬이었다.
☆… 같은 건물인 쇼핑센타에 올라가 판매장을 둘러보았다. 고급 백화점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이마트 같은 대형매장이었다. 매장의 분위기나 진열된 상품이 우리나라 백화점처럼 그렇게 고급스럽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전기전자제품 코너에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의 가전·전자제품의 판매장과 LG매장이 경쟁하듯이 큰 규모로 나란히 입점해 있었다. 반가웠다. 스마트폰이나 최신 TV제품, 그리고 세탁기, 냉장고, 전기밥솥, 청소기 등 한국의 가전제품의 위세가 대단해 보였다.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도 있고 중국의 하이얼 등의 매장이 있으나 우리나라 상품이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한국의 상품을 보며 은근한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 자정(子正)이 가까운 시각, 필자를 포함한 서울로 가는 일행을 태운 타이항공여객기(TG656)가 방콕(Bangkok)국제공항을 이륙했다. 한국시간 밤 2시였다. 방콕의 자정은 우리나라의 2시에 해당한다. 이상배 대장을 비롯한 나머지 부산팀은 우리보다 한 시간 늦게 출발한다고 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旅路)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비행체는 12,000m의 고도에서 시속 900km속도로 방콕-남중국해-동중국해를 경유하는 심야의 비행을 계속해 나갔다. 좌석 앞의 모니터에 실시간 비행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밤을 도와 밤새 캄캄한 밤하늘을 날았다. 좌석은 만석이었다. 대부분의 탑승객들은 이코노미석 좁은 공간에서 적당히 몸을 기대고 잠에 빠져 들었다. 우리나라 남해 상공에 들면서 동쪽 하늘에 희부윰한 여명(黎明)이 시작되더니, 얼마 되지 않아 창밖에는 붉게 물들어 오는 운평선(雲平線)이 일출(日出)의 장관을 보여주었다. 장장 5시간에 걸친 비행이었다.
[제12일]▶ 2015년 8월 27일 (목요일) : 대한민국 안착 —<에필로그>
♣ [이른 아침, 인천/김해공항 안착]→ 무사 귀국→ 귀가
☆… 오전 6시 50분, 인천공항에 안착(安着)을 했다. 대한민국은 초가을, 햇살이 맑은 아침이었다. 그러나 몸은 천근(千斤)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시간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피로가 엄습했다. 집으로 오는 공항버스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고 '스위스'라는 나라가 말갛게 떠올랐다.
♣ [아, 스위스] — 작지만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 공존과 화합의 미덕이 아름답다!
☆… 스위스(Swiss)는 참 매력적인 나라이다. 물론 버스나 열차를 타고 지나오거나 명승 알프스를 중심으로 며칠밤 머물면서 주마간산격으로 스쳐온 감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 오랜동안 관심을 기울여 온 그 <스위스>를 눈으로 확인한 느낌이 분명 그랬다. 스위스는 늘 궁금했던 나라였고, 꼭 가 보고 싶은 동경의 땅이었다. 생각해 보면 스위스는 국토의 면적이 우리나라 남한의 절반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나라이다. 거기에다 그 대부분이 알프스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산지(山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거기 사람들은 산(山)과 호수(湖水)와 초원(草原)을 아름답게 가꾸어 생명의 땅으로 만들어 놓았다. 어디를 가나 고즈넉한 평화가 흐르고 초록의 생명이 넘치고 있었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조화된 풍경은 있는 그대로 한 폭 한 폭 그림이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천혜의 자연을 생생한 삶의 터전으로 만든 그들의 눈물겨운 역사가 거기 있었다. 크고 작은 산록의 초원에 자리 잡은 집들, 거기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꽃바구니를 들고 뛰어다니는 언덕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나라를 찾아와 아주 살거나, 마음의 평화를 얻고 돌아간다.
☆… 그리하여 필자의 이번 여정(旅程)의 제1의 주제는 물론 알프스(Alps)이지만 그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주제가 스위스(Swiss)였다. 왜냐 하면, 경제적으로 고도성장한 우리나라의 삶의 질을 생각하면 스위스는 분명 눈여겨 볼 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차제에 그 동안 필자가 탐구한 <스위스>에 대하여 정리해 본다.
[현황] — 스위스(Swiss)는 서쪽으로 프랑스, 북쪽으로 독일, 동쪽으로 오스트리아와 리히텐슈타인 공국, 남쪽으로 이탈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북길이는 약 225km이며, 동서 최대폭은 약 336km으로, 총면적(41,285㎢)은 남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족한 나라로 꼽힌다. 인구는 7,739,000명(2009 통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선진 강소국이다. 사실 유럽 대륙 한 복판에 끼어있어 지정학적으로 크고 작은 전쟁의 피해를 입었고, 역사적으로는 늘 열강 틈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종이 유입되어 그에 따른 언어와 종교도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이질적인 문화를 잘 조화하여 공존하며 평화를 누리고 있다. 과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위스가 국내 정치문제로 분열하거나 분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역적으로 언어가 같은 종족이 칸톤[주(州)]를 이루고 연방제를 통하여 평화롭게 함께 살고 있다. 아, 그 공존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다.
[역사] — 원래 이곳에 살던 거주민들은 ‘헬베티아인’이었는데, 기원전 1세기에 로마가 이들을 정복했다. 게르만족들이 3~6세기에 이 지역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10세기에 이슬람교도와 마자르족 침략자들이 이 지역에 쳐들어왔다. 스위스는 9세기에 프랑크족의 지배를 받았고, 11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1291년 우리·슈비츠·니트발덴주(州)가 반(反)합스부르그 연맹을 맺어 스위스 연방의 기초가 되었다. 16세기 스위스는 종교개혁의 중심 지역으로, 그로 인해 연방이 분열되어 정치적·종교적 갈등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1798년 프랑스는 스위스에 헬베티아 공화국을 수립했다. 1815년 빈 회의에서는 스위스의 독립을 인정하고 중립성을 보장했다. 1848년 베른(Bern)을 수도로 하는 새로운 연방국가가 구성되었다. 스위스는 제1·2차 세계대전 중에 중립을 유지했으며, 이후로도 중립성을 계속 고수해왔다. 1960년 유럽자유무역협회(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에 가입했으나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것은 거부했다. 2002년 국제연합(UN)에 가입했다. 참 당당하다!
[인종·언어·종교] — 스위스는 수천 년의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인종(人種)은 주로 독일인·프랑스인·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용어(公用語)는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망슈어이나, 로망슈어는 일부 지역에서만 쓰인다. 주요 종교(宗敎)는 로마 가톨릭교와 개신교를 포함한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교이다. 오늘날의 스위스 연방(Confederation)은 그렇게 다양한 종족· 종교·언어를 극복하여 관습의 통일을 이루었고, 약 7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왔다. 스위스에서 자기 민족어 외에 필수적으로 다른 언어를 익히도록 교육시킨다. — 열린 마음, 다양성의 조화가 이 나라의 힘이다!
[정치] — 스위스는 양원제를 채택한 연방정부로서, 국가와 정부의 수장은 연방의회의 의장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조화와 균형의 원리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직접적인 민주정치는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함에도 정치적으로 통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 개정시 의회의 찬성, 국민 투표에서 반수 이상의 찬성, 칸톤[州]에서 반수 이상의 찬성의 3박자가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 사항도 100일 이내 5만 명 이상의 국민반대서명이 이루어질 경우 국민투표에 상정된다. 이처럼 입법부와 행정부가 항상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있다. 아, 화합의 민주주의가 빛나는 나라!
[지리와 산업] — 스위스의 국토의 4분의 1이 높은 알프스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력 이외의 다른 천연자원은 거의 없는 나라이다. 스위스는 3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쥐라 산맥은 스위스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초원지대이다. 미텔란트는 도시화된 부유한 농업지역이다. 알프스 산맥은 높이 솟은 바위산, 깊은 골짜기, 거대한 빙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 주요금융 중심부 중 하나인 스위스의 경제는, 경공업 및 중공업뿐 아니라 국제무역과 은행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산업으로는 시계·정밀기계·기계·화학 산업 등이 발달했다. 관광업과 농업 또한 중요산업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곡류·사탕무·과일·야채·유제품·초콜릿·포도주 등이 있다. —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 치밀하고 근면함이 스위스의 저력이다.
♣ [아, 대한민국] — 이제 우리도 따뜻한 마음으로 다함께 행복해야 한다!
☆… 아, 우리나라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생각한다. 20세기 전반기는 일제의 무도한 강압통치에 처절하게 신음했고, 겨우 나라를 되찾는가 했더니, 1950년 동족상잔의 처참한 전쟁을 겪으면서 세계 최빈국의 하나가 되었으며, 거기에다 장장 60년 이상을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상황으로, 지금까지 국가 안위가 불안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한 세기는, 그야말로 실로 말할 수 없이 춥고 배가 고팠다. 그런데 그 궁핍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루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구호물자의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제는 개발도상국가에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세계인들은 놀라고 경악했다. 한국 상품이 미국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뉴욕타임즈>가 '한국인이 몰려온다!'고 표현했듯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들을 괄목상대하기 시작하였으며, 요즈음은 경쟁 대상으로 날선 눈빛을 세우는 상황이 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지난날의 이러한 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 그런데 요즈음의 우리나라 삶의 실정은 어떠한가.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계승하여 온 한 민족이 세운 이 나라가 이토록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상생(相生)의 라이벌이어야 할 정당이 서로 타협할 줄을 모르고 조금도 상대방을 배려하려 하지 않는다. 끝내는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을 서로 적대감(敵對感)으로 대하는 이 현실은 도대체 무엇인가. 적대(敵對)란 상대방을 '전쟁터의 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자전에 보면, 적(敵)은 원수(怨讐)이니 죽여야 할 대상이다. 이 얼마나 전율(戰慄)스러운 일인가. 특히 지역간에, 계층간에, 특히 이념간에 그 대립의 양상은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다.
그 중에 정치판의 극단적인 대결 양상은, 이제 많은 국민들이 진절머리를 친지 오래다. 세계사에서 보라.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침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내부의 분열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조선의 임진왜란이 그러했고, 조선(구한말)이 패망한 것도 그것이었다. 실로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양상의 근본 원인은 이념적으로는 분단이라는 상황에 있고, 그리고 잘못된 정치(政治)에 있다. 지나친 욕심(慾心) 때문이다.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이 사람들을 편 가르고, 무엇보다 이념적 편향이 심각한 지경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가진 자[갑(甲)]와 가지지 못한 자[을(乙)]의 지나친 욕심이 충돌하면서 끊임없는 분규(紛糾)가 이어지고 있다. 모두 자기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만 잘 살겠다는 탐욕(貪慾)의 결과이다.
그러다 보니 온 나라가 편할 날이 없다. 세계 10권의 경제대국이, OECD 국가 중에서 그 행복지수가 세계 최하위이고, 자살율은 세계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으로 살 만한데, '불행해서 못살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힐 일인가!
☆… 이제 스위스의 정치·문화를 비롯한 국가의 체제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눈 여겨 보지 않을 수 없다. 언어, 종교,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것[多樣性]을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 공존(共存)과 화합이 다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 적대가 아니라 화합(和合)의 민주주의가 행복한 나라를 만든다는 정치의식, 그러한 안정된 사회 속에서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치밀(緻密)하고 근면(勤勉)한 국민성이 일구어낸 경제적인 풍요 …
☆… 지금이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자연과 사람들의 삶이 아름다운 저 스위스처럼! 이제 우리도 더 이상 지나친 극단으로 나아가지 말고, 망국적인 막장의 분열을 청산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도 나라의 대의(大義)를 위하여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고, 국익(國益)을 위하여 서로 중지를 모아 화합(和合)하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한다. 너와 내가 다같이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 [에필로그] — 장엄한 알프스, 내 마음의 큰 山이 되다
☆… 인생은 ‘만남과 떠남의 변주곡’이다. 사람의 일생(一生)은 연속되는 만남과 떠남의 과정이 아닌가. ‘만남과 떠남’이라는 틀[主題]은 늘 한결 같이 반복되지만, 그 대상과 시간과 장소와 상황은 하나도 같은 경우가 없다. 그래서 변주곡(變奏曲)이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사랑하고 아파하고 성장하며 또한 삶의 보람을 느낀다. 떠남을 통해서 사랑하고 슬퍼하며 성숙하고 삶의 본질을 깨닫는다. 좋은 만남은 행복하고 그렇지 않는 만남은 불행하다. 아름다운 이별이 있고, 말할 수 없는 비애를 안겨 주는 결별도 있다. 결국 사람은 어떤 사람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성패와 행·불행이 결정되고, 또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떠나느냐에 따라 생애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래서 만남은 늘 설렘이고 경이로움이다.
여행은 ‘만남’의 여정(旅程)이다. 새로운 자연을 만나고 색다른 풍물을 만나고 미지의 사람을 만난다. 내재된 호기심이 미지의 자연과 풍광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활력이 샘솟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을 통하여 서로에게 충만한 기쁨이 된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이후에도 그 만남이 은은한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이번 알프스트레킹은 알프스를 중심으로 한 스위스-프랑스-이태리의 풍광을 만나면서 신선한 감동을 받았고, 10여 일 동안 고락을 같이한, 우리 알프스트레킹 대원들을 통하여 따뜻한 마음을 만났다. 참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 동경(憧憬)의 알프스가 이제는 그리움이 되었다. 지난 열흘 동안 ‘유럽의 지붕’ 알프스(Alps)를 중심으로 한 스위스-프랑스-이태리-스위스 국경을 넘나들면서 이국의 정취에 젖어들었다. 아련히 떠오르는 거대한 산(山)과 그 여정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내 안의 잠자던 호기심(好奇心)의 눈을 밝히고 경이로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알프스는 이제 내 마음 속에 솟아있는 아름다운 산(山)이 되었다. 그 장엄한 모습이 한 폭 한 폭 감동의 파노라마가 되어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 이제 장엄한 알프스(Alps), 내 마음의 큰 산(山)이다. 최고봉인 몽블랑(Mont-Blanc)은 이름 그대로 ‘하얀 산’이다. 산은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을 늘 백색의 순결한 침묵으로 말했다. 간간히 눈부신 태양에 조응하여 빛을 발하기도 하지만, 운무 속에 얼굴을 가리고 있거나 몰아치는 산정의 바람에 하얀 설풍으로 몸짓할 뿐이다. 그리고 푸른 하늘이 얼굴을 씻듯 그 조화가 무궁무진이다. 일찍이 파카르(Pacard)와 발마(Barmat)에게 초등(初登)을 허락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 순백색의 침묵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그저 각자의 마음속에 자기 나름의 알프스를 담아가곤 했다. 산(山)은 다만 인간에게 잠시 머무는 시간을 허용할 뿐이었다. 그래서 늘 신비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우리에게 마터호른(Mattehorn)은 더욱 인색했다. 우리가 전망대 고지에 올라있는 동안, 끝내 그 진면목을 보여 주지 않았다. 거대한 산곡을 타고 내려오는 빙하가 서늘하게 가슴을 채웠다. 나는 구름 속에 잠긴 그 산을 등에 지고 내려왔다. 그래서 지금 산(山)이 나의 몸에 실려 있다.
☆… 귀국 길, 야심(夜深)한 하늘 속에서 지난 여정(旅程)을 반추해 보았다. 그것은 감동과 아쉬움 그것이었다. 몸으로 마음껏 부딪히지 못해서 일까, 아직도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유별난 나의 호기심 때문일까. 내 정신이 이르고자 하는 산(山)의 높이가 너무 커서일까. 많은 아쉬움이 내 안에 스멀거린다. 사실 단 10일 정도의 시간으로 그 거대한 알프스를 ‘마음껏’ 누린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인생처럼 미완(未完)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긴긴 밤하늘을 날아오면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쉬 잠을 이루지 못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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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호산아(好山兒)] ☆ 백파(柏坡) 오상수(吳尙洙) (010)-6203-0885 ksbpo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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