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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봉래산(蓬萊山.395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9월29일(화요일) 추석연휴의 마지막날이다. 9월 ‘정기산행날’이 추석이라 그대신 ‘번개산행’을 하기로 하여 7시20분 까지 대구역에서 모두들 만나니(22명) 반갑기 그지 없슴니다.
5년 여만에 통일호에 몸을 싣고 달리니~ 창밖에는 초가을의 풍광들이 눈앞에 다가온다. 경산을 지나 청도 부근에 이르니 연변(沿邊)의 언덕 아래는 누런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보기만 하여도 배가 부르다!
넓은 들녘에는 고개숙인 벼들이 황금물결로 일렁거리고 만물은 더는 성장을 멈추고 황엽(黃葉)의 기운이 제법이다. 밀양, 삼랑진, 물금역을 지나 부산역에 도착하니 9시 30여 분을 조금지나고 있다.
다시 여러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신선초등학교’ 입구에서 내려 경사가 심한 언덕길을 올라 복천사(福泉寺) 입구에 이르니 저만큼 서북쪽 방향으로 영도구 남양동, 대평동, 대교동 일대와 바다건너 남포동 일대와 영도대교, 부산대교 부근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의 명물 ‘영도다리’는 낮 12시에 든다고 하나 아직은 본 일이 없으며, 오늘은 볼 수 있을런지 기대를 해 보면서~ 몇 걸음을 더 오르니 높고 낮은 산기슭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아침 햇쌀에 금빛 찬란하여 눈이 다 부시고 일시에 가슴이 확 열리며 마음까지 시원합니다 그려!
몇걸음을 더 올라 천왕문 아래 우측 산비탈에는 “월공당도해대선사복천사중창사적비(月空堂道海大禪師福泉寺重創事蹟碑)”와 그 옆으로 “도해선사부도(道海禪師浮屠)”가 영겁(永劫)의 침묵속에 잠들어있다.
선채로 예를 드리고 천왕문 앞에 오르니 2층은 종각(鐘閣)을 겸하고 있으며, “봉래산복천사(蓬萊山福泉寺)”라는 현판이 금빛으로 찬란하다. 언덕 아래는 3층의 감로당(甘露堂)이 세워져 있어 높은 축대와 그 높이가 나란하다.
맞은편 산 기슭에는 대웅전이 정면5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양식으로 진좌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 우측 석벽에는 ‘福泉寺’의 이름에 걸맞게 샘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 또 좌측 언덕위로는 명부전, 칠성각, 약사전이 모셔져 있고, 감로당과 연하여 무설전(無說殿)이 무언(無言)의 장광설(長廣舌)을 하고 계신다.
아울러 마당 가운데는 근세에 세운 3층석탑이 한기가 있는데, 고색어린 멋은 없으나 상승비례감이 있고 비교적 안정적이며, 맨 위쪽에는 보륜(寶輪)과 복발(覆鉢)까지 잘 갖추어져 있어 텅빈 공간의 미(美)를 창출하고 있슴니다.
경내(境內) 제일 높은 곳에는 “산령각(山靈閣)”이 사방 한칸으로 지어져 있어 앙증스럽고, 도량(道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전망도 좋슴니다. 간단히 참배를 드리고 나오니 벽송님과 김해진님이 뒤이어 오르신다.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돌계단을 나려오니 대웅전에서는 스님의 독경(讀經)소리가 고요의 정적(靜寂)을 깨뜨리며 잔잔히 울려 퍼진다. 안내문에 복천사는 고려 말 나옹선사께서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해운암(海運庵)’이라 불렀다 한다.
임진란을 전후하여 불타 없어진 사찰이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1921년 영남지역의 대표 조각가인 “양원호” 화상이 “복천사”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고, 전통불교를 계승 발전시키는 “불화소(佛畵所)”를 운영하면서 대웅전이 중창되었다.
문화재로는 복천사 아미타 극락회상도(시도 유형문화재 제62호)를 비롯하여 부산시 유형문화재 4점과 복천사 현왕도 및 복장유물 일괄(문화재 자료 제39호)를 비롯한 문화재 자료 3점이 있다고 한다. 이어서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조선후기 불교미술 계보를 이으며 한국불교미술 3대 불화소로 지정 받으며 전통사찰(제31호)로 지정 받았다.
아울러 복천사는 영도에서 제일 규모가 크며 가장 오래된 절이라 한다. 봉래산 정상에서 뻗어내린 한 줄기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으며 청룡은 튼실하나 백호는 허(虛)하여 비보림(裨補林)과 전각들을 배치하여 보완하였다.
도량을 한바퀴 휘~ 돌아 나오니 왼쪽으로 거대한 암벽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돋을 새김으로 새겨져 있는데, 우측머리 부분과 우측발목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으며 퉁방울 눈에 왼손에는 아령 모양의 금강보주를 쥐고 있다.
북서안에 주위는 숲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서 천연의 푸른이끼가 겹겹이 쌓여있어 얼른 식별하기도 쉽지 않으며, 발 아래는 기도객들이 버리고 간 촛농이 덕지덕지 녹아있어 문화재의 관리가 허술합니다.
다시 봉래산 안내도를 참고하여 등산하니 산세가 험하고 등산로 주위에는 이름모를 무덤들이 즐비(櫛比)합니다. 대부분 봉분 주위에는 돌들을 쌓아 놓았으며 묘(墓)의 크기도 너무 작아서 풍우(風雨)를 제대로 막을 수나 있을는지~ 가고 나면 한 줌의 흙인데... 우째 그리 사는기 힘드는고...?
20여 분을 올랐을까? 산비탈에 간단한 운동기구들을 시설 해 놓아서 오 가는 등산객들의 체력단련장으로 또는 쉼터로 활용되고 있으며, 연하여 10여 미터 윗쪽에는 돌 틈사이로 약수터가 있어 말 그대로 “옹달샘”이다.
모두들 잠시 휴식하면서 가져온 과일들을 나눠 드시니 칼칼하던 입안에 침이 감돌고, 한바가지 약수를 마시니 가슴까지 후련합니다 그려! 얼마를 쉬다 다시 오르면서 여울목(배용문)님은 그가 나고 자란 곳이 영도(影島)라고 하면서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담을 들려 주심니다.
태어나서 여섯 살 까지 살았으며 어머니 등에 업혀 봉래산 정상까지 올라간 기억, 수용소 판자촌만 빽빽하던 곳에 오늘날에 변화된 시가지 모습, 구멍가게 콩나물 대가리 뜯어먹고 물어줬던 얘기며, 초등학교 뒷쪽 약수터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 저녁에야 물 한 동이를 받아 오셨던 어머니 얘기를 들려 주신다.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추억담을 들려 주시니... 아름다운 영도(影島)가 “봉래산(蓬萊山:신선이 사는 곳)”이 됀 이유를 알겠슴니다. 바다 가운데 섬이라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서 가슴이 후련하고 맴이 시원하여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일시에 확 풀림니다!
길섶에 나무들은 주로 해송(海松)이 많고 근래에는 측백나무를 많이도 식재 해 놓았으며, 이 밖에도 동백나무, 토종상수리나무, 망개나무, 오류목, 싸리나무, 철쭉나무, 억새풀 등 이름모를 수목들이 끝이 없슴니다.
그럭 저럭 정상부근에 당도하니 안내문에 봉래산 유래가 적혀 있는데, 봉래산(蓬萊山.395m)은 봉황이 날아드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예로부터 신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태종대를 포함한 주변의 경치가 참으로 빼어나며 정상에서 부산 전역의 약 70%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정상에는 원추형의 작은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으며, 영도섬의 지형과도 많이 닮은 듯 합니다.
그 뒤로 할매바위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이 신성시 하여 함부로 올라가지도 않으며 그 주변에서 합장 기도를 한다. 또 봉래산 삼신 할매는 산삼과 불로초를 기르고 있으며, 영도 사람의 안위를 지켜주고 국가적 위난이 닥쳐올 때 부산사람을 지켜줄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전해진다.
정상표석을 배경으로 여러 회원님들에게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사방을 조망합니다. 이 곳 영도(影島)는 부산항 앞바다에 떠 있는 섬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형국이며, 낙동정맥의 엄광산(504m. 부산 주례동)부근에서 남쪽으로 구봉산, 용두산을 거쳐 그 맥이 바다 밑으로 이어져서 영도를 지나 태종산에서 그 맥을 남해바다에 떨구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거북이가 바다를 향해 기어들어가는 지세이며, 서 동 북 방향에는 육지와 연하여 많은 시민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연하여 할매봉(정상) 자봉(子峰) 손봉(孫峰)이 차례 차례 이어져 있으니, 동양의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늘(할배), 땅(할매), 사람(子 孫)이 어우러져서 인류세계를 창조하시니 어찌 신성하지 않으리오!
인하여 이 작은섬에 복천사를 비롯하여 백련사, 백련암, 영선암, 선암사, 관음정사, 법륭사, 정해사, 법화사, 대법사 등 많은 사찰이 있어 “영도(影島:靈島)”가 얼마나 신성하고 고절한 땅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 외에도 조망도(眺望圖)에는 수정산, 백양산, 금정산, 제5부두, 황령산, 장산, 감만부두, 광안대교, 영도구청, 해운대해수욕장, 이기대공원, 신선대유원지, 오륙도, 국제크루즈터미널, 조도(朝島)의 해양대학교, 또 서북쪽에는 낙동정맥의 끝자락인 몰운대 까지 볼 수 있으니 천하의 으뜸 조망대(眺望臺)로다!
광활한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오륙도의 암봉들이여
억겁의 세월속에서 누구를 기다리시는가
영도다리는 슬픈 이별의 역사를 간직하고
할매는 고기잡이 나가신 할배를 기다리다 지쳐서
영도의 망부석이 되어 오늘도 망망대해를 바라보누나!
아직도 12시 까지는 한참 멀었다. 모두들 자봉으로 내려가다 ‘바람재’ 정자에서 중식을 맛나게 드심니다. 정기산행 때와는 식구도 단촐하여 모두들 둘러앉아 점심을 드시는데 개 중에는 도시락 지참을 못한분도 있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저마다 한술씩 보태시니 되려 한 그릇이 넘쳐남니다.
이래 저래 山 인심은 언제나 푸근하여서 밥은 한 그릇에 반찬은 20가지도 넘는다. 그 중에서도 이경숙님의 “동그랑땡”이 단연 인기다. 새벽에 일어나 만들었다 면서 요리솜씨도 훌륭하고 맛 또한 기똥차다!
점심후 디저트(dessert)로 사과 배 포도 등 여러가지 과일들을 나눠드시면서 충분한 휴식을 한 후에 다시 자봉(子峰. 387m)에 오르니, 이층의 8각정자 옆에 할매봉(정상봉)과 비슷한 크기의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다.
서둘러 몇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20여 분을 걸어서 마지막 손봉(孫峰. 361m)에 도착하니 작은 돌무더기 옆에 역시 크기가 비슷한 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남해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이 훨씬 더 넓고 광활하다.
부둣가에는 ‘수출입(輸出入) 컨테이너’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대구 촌놈으로서는 기가 질릴 정도이며, 황색의 대형 크레인들이 공룡의 등뼈처럼 버티고 있어 이 또한 볼거리다. 연하여 지근한 거리에 우측 깊은 바다에는 무역 화물선들이 점점이 떠 있어 부산의 명물이요, 대한민국의 부(富)의 상징이다.
1960년대 만 하드래도 ‘춘궁기(春窮期)와 보릿고개’란 말처럼 얼마나 배고프고 어려웠던가? 불과 40여 년 만에 오늘날의 부를 축적하는데는 전 국민의 피나는 노력과 수출이 제일 효자산업이라.
마치 마차가 자갈밭을 굴러 가듯이~ 찌지고 뽂으며 시끌벅쩍 싸워가며~ 그러면서도 우리는 쉼 없이 발전을 해 온 민족이라,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고 화합 발전하여 세계에서 1등가는 지도국으로 발돋움 할 것을 기원 기원합니다!
목장원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도 심하고 험한 바위들이 많아 하산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간 간이 사진촬영도 해 가면서 목장원(공사중)에서 약간 우측으로 비켜난 해안가에 도착하여 대중교통(Bus)을 이용하여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달림니다.
20여 분을 달려서 자갈치시장에 도착하니 오래전(1985)에 와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지만, 당시의 옛 건물들은 사라지고 거대한 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 서 있어 모든 것이 생소하고 변화됀 모습에 입이 딱 벌어진다.
아직도 추석연휴인데 시장 내에는 인파로 넘쳐나고 닫혀있는 가게는 한 두집 보인다. 시장통로를 한참 걸어서 한 식당에 들어 ‘가을 전어와 회’를 들며 오늘의 피로를 풀어 봅니다. 필자에게 능선님의 건배 제의가 있어~ “오늘 영도 봉래산 산행에 동참하신 모든님들의 건강과 남산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단기 4348년(서기2015년) 9월 29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산(蓬萊山. 395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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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도구 "봉래산" 산행당일 진행에 수고하신 벽송대장님을 비롯하여
윤총무님, 능선님 등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번개산행에 동참하신 모든분들(22명)에게도 감사를 드림니다.
산행후기를 쓰지 않으면 또 허전할 것 같아서~
늦게나마 졸문(拙文)의 후기를 올려 봅니다.
널리 이해를 바라면서, 모든님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봉래산에서거운 시간이 영상으로 보이고 역사와 지리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멋있는 추억을 만들지 못하니....
항상 수고하시는 고문님 감사 합니다.
황까페지기님 그간 강녕하신지요?
번개산행에 함께 못해 아쉬움이 큼니다.
변변찮은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고문님 산행후기를 올리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네요 ~항상 존경하옵고 감사합니다 저의 칭찬까지해주시니 부끄럽기그지없네요~항상건강하시고 봘때까지 안녕히계세요^^
경숙님! 고맙슴니다.
서투런 글이지만 산행후기를 올려 봤어요~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동기분들의 협조를 당부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고문님 긴장문쓰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후일 남산역사에 좋은 밑걸음이 될것같습니다.
보잘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산행당일 수고 많으셨슴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