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제 도부(趙待制 道夫)에게 보낸 답장 1-4
決欲今生에 打敎徹인댄 不疑佛不疑祖하며 不疑生不疑死하고 須有決定信하며 具決定志하야 念念에 如救頭燃이니 如此做將去하야 打未徹時라사 方始可說根鈍爾이니라 若當下에 便自謂호대 我는 根鈍하야 不能今生에 打得徹이라 且種佛種結緣이라하면 乃是不行欲到라 無有是處니라
결단코 금생에 쳐서 사무치게 하려면 부처도 의심하지 말고 조사도 의심하지 말며, 삶도 의심하지 말고 죽음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결정적인 믿음과 결정적인 뜻을 갖추어서 순간순간마다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일과 같이 하십시오. 이와 같이만 공부를 지어가서 쳐서 사무치지 못할 때라야 바야흐로 근기가 둔함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당장에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근기가 우둔해서 금생에 쳐서 사무치지 못한다. 우선 부처의 종자나 심어서 인연을 맺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가보지도 아니하고 이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대로 옳지 않습니다.
강설 : 선불교에서 말하는 화두를 들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뒤에 깨달음을 성취하는 일은 수많은 불교공부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공부다. 화두를 드는 순간에는 부처도 의심하지 말고 조사도 의심하지 말고 생사도 의심하지 말고 오직 결정적인 믿음과 결정적인 뜻이 갖추어 져야 한다. 자신이 우둔하다든지 영리하다든지 하는 생각도 있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조용한 환경에서 시작하여 익숙해지면[靜中一如] 다음에는 조용하고 시끄러움에 아무런 차별이 없이 화두일념[動靜一如]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꿈을 꿀 때도 화두가 일념[夢中一如]이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심한 병고를 앓을 때, 즉 마취 없이 수술을 하거나 심지어 팔을 자르고 배를 갈라도 화두가 일념[病中一如]이 되어야 한다. 최후로는 깊이 잠이 들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도 일념[寤寐一如]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의식할 수 없는 경지[生死一如]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화두를 제대로 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 십 년을 공부해도 하루에 10분이나 20분 정도 화두를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통 세속적인 번뇌 망상과 졸음으로 세월을 보낸다면 이것은 공부가 아니다. 반드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리라. 차라리 대혜 선사가 꾸짖은 말씀과 같이 부처의 종자나 심고 복이나 지으며 공덕이나 쌓는 일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도 생각해볼만하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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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念念에 如救頭燃이니"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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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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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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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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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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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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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나무 아미타불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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