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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태국 통일교회가 태국정부의 끈질긴 박해와 핍박을 극복하고 21년간의 법정 투쟁에서
승리한 자랑스런 승전보로써 그 감동을 식구님과 함께 나누고 싶어
용정식 아시아 대륙회장이 천지인 참부모님에게 올린 서한을 轉載해 올립니다.
존경하옵고 사랑하옵는 천지인 참부모님!
먼저 천지인 참부모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옵나이다.
천지인 참부모님께서는 천일국 기원절 선포 500여 일을 남짓 남겨놓으신 채, 누구보다도 하늘의 급하고도 안타까운 심정과 사정을 가지시고,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섭리의 일선에 서시어서 얼마나 분주하신 삶을 보내시고 계시옵니까?
참부모님께서는 금번 라스베가스에서 천기2년 7월19일(양력8월18일)을 기해 해양섭리의 경륜에 있어서 한 획을 긋는 원모선의 봉헌식과 진수식을 거행하셨을 뿐만 아니라, 평화와 참사랑의 세계 실현을 위한 재단으로 원모평애재단을 설립해 주셨습니다. 이는 역사를 두고 참부모님의 승리와 영광으로써 역사에 길이 남아질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어서 조국광복을 위한 섭리의 일환으로 미국 성직자들을 한국에 동원 하시는 등 지극정성을 드리시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선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부모님을 그리며, 저희들도 가일층 참부모님과 일심 일체 일념이 되어 천일국 건설을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사옵니다.
이번 아시아 태국에서는 선천시대에 사탄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했던 법정 21년간 싸움에서 우리 교회가 가정법원 고등법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법원에서 승소하는 최종적인 판결이 있었습니다. 오늘 9월 1일 오전 10시 30분에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통일교회의 활동이 태국 법에 아무런 저촉이 되지 않음과 무죄함을 만천하에 선포했습니다.
장장 21년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을 치르면서 싸운 승리의 결과였기에 그 진가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두가 천지인 참부모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끊임없이 정성 드려 주시고 성원을 보내 주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참부모님의 위대하고 역사적인 승리를 머리를 조아려 진심으로 경하 드리옵나이다. 지금 태국 온 식구들은 감동과 감격 그리고 지금까지 천지인 참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회한의 심정이 아우러져 기쁜 마음을 어찌 표현할 지 모르고 있사옵니다.
1991년 우리교회가 태국 쿠데타 정부와 유명 일간지인‘Daily News’로부터 핍박을 받아 8명의 태국 지도자들이 억울하게 21개월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참부모님 내외분 존함까지 입국금지의 명단에 포함 시키는 등 실로 우리 교회에 대하여 벌인 그 작태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이제 탕감시대가 완전히 종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이 더 이상 타락권의 운세에 지배를 받지 않는 하나님의 전체 전반 전권 전능의 직접 주권 관권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실감하고 있사옵니다. 후천시대에 이르러 유럽의 센겐 문제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태국의 재판 문제가 드디어 해결됨으로써 마지막 남은 일본의 납치감금의 문제나 천지인 참아버님의 일본 입국금지 문제도 이 천운의 운세를 막지 못하여 조만간 해결 될 때가 오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런 참부모님의 승리와 천운의 운세와 더불어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의 앞길을 막던 모든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장을 여는 신천 신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옵나이다. 2013년 정월 13일까지 천지인 참부모님을 중심하고 개인으로부터 천주단계에 이르는 대 전환의 시대를 맞아 내.외적으로 확청운동과 더불어, 중생 부활 영생하는 실체적인 천일국 시대의 백성이 되어야 할 저희들임을 깨닫게 되옵나이다.
다음은 태국 통일운동을 초창기부터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인도해 왔었고, 정부의 박해로 21개월 간 영어사리를 했고 현재는 태국 UPF의 책임자로써 일하고 있는 Dr.Lek의 보고서입니다.
1. 통일교회를 박해했었던 그 당시의 국가적인 배경
1988년, 태국 통일교회는 효진님을 중심하고 태국에서 가장 큰 방송 통신 대학인 람캄행 대학과 공동 주최한 제 5차 세계 학생CARP 총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실적과 더불어 당시 우리 식구와 교회 활동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1990년, 통일 문화 센터와 관련된 젊은 준회원이 20만 명 정도 되었고 교회 활동에 헌신하는 젊은이와 대학생이 약 300명 가량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활동과 식구 수의 급격한 증가를 기반으로 태국 교회는, 교회발전의 빠른 성장에 대해 참부모님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 상을 받은 나라는 태국과 일본 두 곳뿐이었습니다. 태국 통일교회는 식구의 증가와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층 고차원적인 국면으로 접어 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1991년 초, 군부가 군주제를 보호하고 현정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민주정부를 쫓아내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당시 우리교회는 일부 식구 부모들의 오해와 핍박으로 경찰에 잘못된 신고가 들어갔고, 이 일은 데일리 뉴스(Daily News)신문에 실렸습니다. 통일 문화 센터는 법적으로 정식 등록된 단체였지만, 신문에는 우리 센터가 무니즘(Moonism)이라고 하는 불법 단체이며,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거나 반항하도록 가르치고 세뇌 시키며,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센터에 감금 시켜 놓고 만물복귀 활동에 내보낸다는 내용이 신문 1면 헤드라인 기사로 실렸습니다.
우리는 데일리 뉴스 신문과 조사를 담당한 공안부의 고발에 대한 무고함을 입증하고 사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긴 조사 끝에 경찰은 우리 활동에 제재를 가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지만, 데일리 뉴스 신문은 매일같이 우리를 공격하고 교회에 대한 대중의 반대 여론을 이끌어내고, 군사정권을 압박해 우리 활동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하기 위해 1면 헤드라인에 부정적인 기사를 실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지속적으로 공격한 언론은 그 신문이 유일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신문 판매 부수가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에 그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언론의 부정적인 공격으로 당시 군사 정권 하에 있던 태국의 민감한 정치적 상황에 우리 교회가 노출되었습니다. 그 때는 거짓 고발과 기사에 대해 법원에 신문사를 고소하는 것 외에는 그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1991년 6월, 우리가 신문사를 상대로 법원에 고소장을 접수하자 마자 국가범죄를 담당하는 경찰들이 갑자기 센터로 난입해 어떤 범죄 행위에 대한 명백한 증거도 없이 지도자 8명을 구속하고 모든 물품을 압수하고 센터를 폐쇄시켰습니다. 군사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던 국가범죄담당 부장 경찰은 군사 정권에 우리 교회가 일반적인 재판을 받게 하는 대신 계엄령하에 직결 처분(이는 계엄령하에 사형선고를 의미함)하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는20만명에 육박하도록 성장한 식구 수와 그 가르침으로 인해 무니즘이라고 불리는 우리 활동이 공산주의 보다 더 위험하고 국가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측과 경찰은 우리교회가 태국을 비롯한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어를 공용어로 하고 문선명 목사를 중심하여 태국 왕권을 타도하고 새로운 주권을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통일교회는 한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통일주권을 세우기 위해 태국 국내 안보에 반하는 음모를 꾸민다는 혐의로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 결과 우리 지도자 8명은 보석의 조건도 없이 구속되었습니다. 부모님 내외분 또한 이 사건에 연루 되어 입국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당시 태국에 있지도 않던 김병우 회장을 비롯해 그 부인에게도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이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참부모님은 태국에 입국하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1992년 5월,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권력과 통치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를 교묘하게 조작해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방콕에서 민주주의 개혁을 주장하며 데모가 일어났습니다. 주동자들은 군대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되었고,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태국은 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었고 내전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 때 태국 국왕이 개입해 군사 정부를 끝냈고, 새롭게 치러진 선거에서 민주당의 시민 정부가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 때를 맞추어서 통일교회와 관련 있는 VIP의 지지서명이 담긴 편지를 가지고 변호인단은 법원에 항소했고 21개월 구류 후 보석으로 가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2. 기소 중 교회 재단 정비
저희들은 법정에 기소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반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법정 싸움을 위해 남아있던 모든 자원을 통합하고, 교회를 재조직하고 재활성화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평화교수협의회, 다양한 학생 사회 봉사 활동, 원화도 무술을 비롯해 전도활동을 재개했고, 세계평화여성연합 활동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박해는 매우 극심했고, 교회 이미지는 무척 왜곡되고 손상을 입어 많은 지지자들과 VIP들이 우리 교회가 살아남아 다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떳떳한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 가고자 하는 진심 어린 헌신과 전념을 통해, 우리는 VIP들의 확신과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었습니다.
3.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 축복을 통한 새로운 이미지 구축 :
1997년 2월, 초청위원회 회장으로서 전 왕립태국군 최고사령관인 사리윳 케드폴 장군이 참석한 가운데 태국 가정연합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법정 소송이 진행중인 상태에서 출범식을 갖는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VIP들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200명이 넘게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1997년 11월 29일, 태국 가정연합은 방콕에서 워싱턴 D.C.의 위성 생방송과 전국 TV 방송을 통해 253쌍의 미혼 커플과 573명의 기성가정, 그리고 천 여명의 참석자가 참석한 가운데 3,600만쌍 국제 축복식을 거행했습니다. 그것은 가장 큰 규모의 태국 최초의 국제 합동 결혼식이었고, 기자 회견과 라디오 인터뷰, TV 광고를 통해 축복식이 있기 몇 주 전부터 행사에 관해 대중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축복식이 있기 약 일주일 전부터는 축복식을 집도하시는 참부모님 영상이 매일 방송되었습니다.
실제 축복식이 있기 하루 전에도 우리 적들은 태국에서 가장 큰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과 공모하여 잘못을 찾아내고 행사를 공격하는 음모를 꾸미고 나라 전체의 관심과 흥미를 공격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법적 문제도 없게끔 철저히 준비했고, VIP들과 긍정적인 언론 관계자, 지지자들이 잘 방어해 준 덕분에 그러한 공격을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축복식을 통해 가정연합의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태국 전역에서 단숨에 가정연합 조직과 활동을 구축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8년 6월, 1차 3억 6,000만쌍 국제축복식이 태국 가정연합과 정부 내무부와 공동 주최로 거행되었습니다. 이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공동 주최한 최초의 공개 축복식 행사였습니다. 축복식은 태국 각지에서 올라온 1천쌍의 대표 가정이 본 프로그램에 참석한 가운데 위성방송을 통해 뉴욕에서 거행되는 본 행사와 동시에 방콕에서 거행되었으며, 그 다음날 TV 방송을 통해 전국의 다른 모든 가정들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행사는 태국 가정연합과 함께 정부가 지지하고 공동 주최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1999년 7월, 축복 운동이 전속력으로 전파되고 있는 와중에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TV 방송국 중 하나인 ITV 뉴스 TV 방송국이 국내외적으로 우리 교회를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ITV는 통일교회 창시자와 우리 운동에 대해 한 매우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켜 30분 분량으로 편집해 방송을 내보내고, 우리의 좋은 이미지를 공격하고 손상시키기 위한 의도로 새로 설립된 가정연합과 관련되어 태국에서 진행 중이던 법정 사건을 들춰냈습니다. 우리는 법원에서 진행중인 사건에 개입하지 말라고 사이윳 케드폴 회장의 이름으로 ITV에 공식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어떤 부정적인 내용을 방송하지 않았습니다. 그 공격으로 모든 VIP 위원회는 우리 활동을 지지하고 보호하는데 더욱 똘똘 뭉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재조직하고 강화하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어 어떤 공격에도 우리활동을 법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소송 승리, 평화대사 발족 및 새로운 기반 마련
2003년 초, 평화대사 위촉이 마무리되고 교회의 모든 조직이 평화 대사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갔습니다. 2003년 2월 19일, 장장 12년이나 이어진 법정 싸움에서 승리했고, 법원은 모든 고소를 취하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맡은 검찰은 법원의 판결이 난 직후 항소법원에 사건을 상고했습니다. 이는 국가적인 박해에 대해 태국 통일교회가 거둔 가장 중요한 승리 중 하나였습니다. 이 사건의 승소로 태국 통일 운동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뉴스는 국가의 공식 기록으로 태국의 모든 주요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그래서 평화대사의 위촉과 법정싸움 승리는 태국에서 우리 활동에 새로운 기반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2003년 12월 2일, WANGO와 우리 단체가 중심이 되어 방콕 왕궁에서 비공식적으로 공주에게 개인에게 주는 WANGO 최고의 상인 2003 WANGO 세계 평화상(Universal Peace Award)을 수여했습니다. 이 행사는 전국의 모든 TV 채널에서 왕실 뉴스 보도로 방송되었습니다. 이는 외무부와 왕실 사무국의 기소에 대한 국가적인 승리를 여실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WANGO 세계평화상이 WANGO창시자인 문선명 총재의 특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같은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는 왕세자비에 대한 의례로, 태국과 관련된 우리 단체가 태국 외무부와 왕실 사무국에서 검사하고 확인되어야 했습니다. 왕세자비가 그 상 수상을 허락했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리 활동에 대한 모든 법적 혐의를 벗었으며, 태국에서 우리 활동의 이미지도 제대로 인정 받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는 2003년 우리 활동이 커다란 승리를 거둘 전조였습니다.
5. 항소법원에서의 승리 및 가정연합, UN, 정부의 협력
2004년 10월 12일, 우리 교회는 항소 법원에서 또 한번 승소했으며, 법원은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제1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검찰은 두 번이나 재판에서 패소하고도 대법원에 사건을 다시 항소했습니다. 이 시간은 결국 2005년 4월 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대법원 형사법원과 항소심에서 피고가 승소한 경우, 일반적으로 검찰은 법적으로 대법원에 다시 항소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법무장관이 특별 승인을 내주어 사건이 항소심에 부쳐져 대법원에서 재심 받을 수 있게 배서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건을 담당한 검찰 위원회는 이 사건이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하고 큰 사건이기 때문에 대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할 수 있게 허가해 달라고 법무장관에 부탁했습니다. 법무장관의 승인을 받은 이 사건은 2005년 3월쯤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대법원은 2005년 4월 경 고소를 접수했습니다.
대법원에서 3년 가까이 소송이 진행된 후, 우리는 이 소송이 벌써 17-18년이나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소송을 검토하고 마무리 지어달라고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대법원은 가능한 한 빨리 사건을 공정하게 심사하겠다는 공식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된 이후, 나라 전체가 태국 역사상 전례 없던 자연 재해와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 등 온갖 국가적인 위기를 겪었습니다. 최고 정치가와 정당이 연루 된 많은 국가적인 형사, 정치, 부정부패 소송이 발생했습니다. 대법원에서 우리 소송의 중요성과 우선순위는 잊혀진 듯 했고, 우리 사건은 나중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법원에서 우리 사건이 얼마나 검토되었는지, 아직 보류 중인지, 아니면 언제 마무리 될 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국회 의원, 법무부 장관, 국가 인권위원회, 태국 부총리, 심지어는 총리까지 만나 청원함으로써 소송에 박차를 가하고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고 그들은 법원의 재판 절차에 개입할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우리의 사건은 20년 후인 2011년 6월 26일자로 공소 시효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는 참부모님께서 이제는 태국에 입국하실 수 있으시며, 아직 대법원에서 이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하더라도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는 태국에 참부모님을 모시고 싶어하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에 큰 기쁨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2011년 5월 말경, 이번에 새로 임명된, 경찰관이자 방콕 선거 위원회 위원이며 태국 상원 산하 여러 위원회의 법률 고문으로 있는 타베삭 투친다(Taveesak Tuchinda) 평화대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 소송의 현 상황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법무 장관에게 이 사건이 거의 2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고 우리 교회 혹은 활동은 이미 형사법원과 항소 법원 모두에서 두 번이나 승소했으니 이제 우리 소송을 마무리 지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우리 단체가 태국 사회와 국가에 큰 공헌을 했으며, 국가 안보에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마침내 2011년 8월 1일, 법원은 2011년 9월 1일 9시 30분에 형사법원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받으러 오라는 법원 명령을 발부했습니다. 드디어 9월 1일 오전 10시 30분, 태국 대법원이 통일교회가 무죄임을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세 번의 기소와 판결, 21년의 기나긴 세월과 21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국가적 박해와 법적 기소가 완료되고 우리의 마지막 승리가 된 것입니다. 태국의 모든 식구들은 이 크나큰 국가적 승리와 함께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고통스런 심정을 해방시키고 큰 기쁨을 돌려 드리며, 참부모님 내외분을 태국에 모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상은 21년간 재판과정을 치러온 Dr.Lek의 보고였습니다.
다시 한번 천지인 참부모님께 태국법정 싸움의 승리를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부모님의 지대하신 관심과 정성이 없었던들 오늘과 같은 승리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금년 한해 어떻게 하든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한 정성과 심정으로 법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평화대사들이 앞다투어 뛴 결과이옵니다. 결국 부모님께서 동기가 되셨고 결론이 되셨습니다. 온 아시아 식구들을 대표하여 천지인 참부모님께 머리를 조아려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옵니다. 아울러 태국의 재판을 놓고 기도와 정성을 드려 주신 문형진 세계회장님과 문국진님 재단 이사장님, 특히 감옥에 갔던 지도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늘 안부를 물어주신 어머님의 사랑과 정성에 진심으로 감사 드리옵니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과 식구들을 비롯하여, 태국 법정 싸움을 놓고 주야로 정성 드리며 수고해 준 태국 국내외 식구들께도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무엇보다도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굳게 참부모님에 대한 절대신앙을 지켜 준 8명의 지도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누구보다도 아시아의 최고 사령관으로써 참부모님을 대신하여 21년 간 이 법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마음 고생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왔던 전임 대륙회장부부에게도 온 태국 식구들을 대신하여 고마움을 표하는 바입니다. 지도자만이 홀로 모든 것을 감수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던 외로운 심정을 일선에서 일해 보니 체휼할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내외분 수고하셨습니다.
천진인 참부모님!
천지인 참부모님께서 1965년 세계성지를 정하실 때 태국을 다녀가신 이래 46년의 근 반세기 세월 동안 오시지 못하셨습니다. 지금 태국의 식구들은 기쁨의 눈물, 감사의 눈물 그리고 그 동안 모시지 못했던 회한의 눈물과 함께 천지인 참부모님을 모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21년 간의 오랜 재판과정을 거치면서도 태국식구들은 비가 온 뒤 땅이 더 굳어지는 것처럼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장한 식구들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성과 충정은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자랑스런 식구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태국 식구들은 천지인 참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 부모님이 주신 상금과 식구들의 정성으로 마련한 본부 5층 건물에 참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그리움에 사무쳐서 부모님을 뵙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천지인 참부모님 어서 속히 오시옵소서!
이제 2-3일 후면 신문방송 그리고 모든 미디어에서 대서특필내지는 주요 톱 뉴스로 다룬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 만큼 우리 사건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케 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들 앞에 더 이상 적은 없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태국통일운동은 승승장구 천일국 건설을 위해 보무도 당당하게 총 진군 할 것입니다. 핍박은 축복에 비례하는 것처럼 후천시대와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의 승리의 운세와 더불어 전심전력을 기울여 부모님께 부모님께 위로와 안식을 드리는 저희들이 되겠습니다.
참부모님의 영광과 승리가 만만 세세토록 온 누리와 세계에 가득 하소서!
이상으로 태국에 대한 21년간의 대법원 판정 법정 승소의 소식을 보고 드렸습니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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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동안 참부모님께서 입국하지 못했던 곳 중에 유럽과 태국은 이제 마음대로 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만 남았습니다.
빠른 시일내로 참부모님께서 자유롭게 어머니 나라인 일본에 들어 가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