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와 신앙고백의 차이
신조(信條, creed)
종교 공동체의 필수적인 신앙조항에 관한 공인된 간략한 형식의 진술을 말한다.
공중예배나 입교의식 때 전례문(典禮文)의 형태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신조는 일부 개신교 교회의 신앙고백과 비슷한데, 신앙고백은 훨씬 확대된 공식용어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종교적 신념은 대개 신조나 신앙고백처럼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며 의식이나 신화로 표현되는데, 특히 원시종교에서 그렇다. 원시종교 이후의 시대에는 신념이 의식집전서, 경전, 법전, 신학적 사변 등 비(非)신조적인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그리스·로마의 고대 종교와 전통적인 도교·유교·힌두교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어떤 종교가 타문화에 전래되는 경우에는(셈족 문화가 헬레니즘 문화로 전래됨) 단절·변화·개종·다원주의에 대처하는 상황에서 종교의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공적인 신조가 생긴다. 진정한 의미의 신조를 소유하고 있는 종교는 조로아스터교·불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및 몇몇 현대 힌두교 운동 등의 세계 종교들뿐이다.
동양의 종교에서는 특정 단어와 어구가 부분적으로 신조적 선언의 역할을 한다. 유교의 '理'(적합한 행동 법칙)·'孝'(부모에 대한 도리), 도교의 '도'(道)는 각 종교 전통의 중요한 특징을 총괄하는 것이다.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만트라'(신을 부르는 성스러운 말)는 세상(로투스)에 아발로키테스바라(보석)가 존재함을 믿는다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힌두교의 '만트라'도 신앙을 공표하는 데 많이 쓰이는데, 브라만 계급의 청년이 입교 의식의 일환으로 배우는 〈리그 베다〉에 나오는 가야트리 기도문이 특히 그렇다. 사실상 대부분의 종교는 주로 종교의식의 표현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고 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소승(小乘) 불교의 신조적 표현은 초기의 '트리라트나'에서 보다 완전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부처·교리·공동체 속에서 피난처를 구한다는 고백이다.
신조 형식의 진술은 서양 종교, 특히 3개의 고전적인 유일신 종교에 가장 많다. 이슬람교도 개개인의 삶은 '샤하다'라는 고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신이며, 마호메트가 하나님의 예언자라는 고백이다. 유대교에서는 연례 절기 예배 때 고백했음이 분명한 초기의 신조 형식의 진술이 히브리어 성서에 보존되어 있다. 중세 때 유대교에서는 신조를 작성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그 가운데 마이모니데스의 13개조는 비록 공식적으로 승인된 적은 없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유일성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고백이다. 유대교에서는 신조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의 정체성이 교리의 수용보다는 구전율법을 지킴으로써 정의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수많은 신조를 내놓았다. 부분적인 이유로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출발부터 뚜렷이 교리적인 성격을 지닌 특수한 복음 또는 '케리그마'(선포)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시대부터 이 선포는 예배시의 공동고백(예를 들면 "예수는 주이시다")과 부분적으로 정형화된 보다 긴 신앙개요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서로마 교회의 신조 작성 과정은 사도신경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사도신경은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례의식과 공중예배에서 쓰인다. 사도신경이 현재의 형태로 사용된 것은 아마 8세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도신경은 그 이전의 세례 신조, 특히 고대 로마 신경에서 시작된 것 같은데, 그 내용의 골자는 2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니케아 신조는 정통 교리에 대한 권위 있는 규범으로 입안된 것으로,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최초의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작성되었다. 이 신조를 개정한 이른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동로마 교회와 서로마 교회가 다같이 받아들였다. 니케아 신조는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는 이단의 주장들, 특히 성부와 성자의 동등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이단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본질(homoousion)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서방교회는 또한 성령이 성부에게서 뿐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나온다는 뜻의 '필리오쿠에'(성자로부터)라는 구절을 채택했다.
서방교회의 3번째 에큐메니컬 신조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이다. 16세기 이래로 동방교회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한 이 신조는 로마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가 공식적으로 채택하고는 있지만 최근 몇 세기 동안 예배에서 이 신조를 사용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논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이 신조는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삼위일체의 주제들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 신조는 450~500년에 남부 프랑스에서 생겨난 듯하다.
신앙고백(信仰告白,confession of faith)
개인·단체·회중·교회회의·교회 등이 주로 교리적 신념을 공적으로 선언할 의도로 작성한 공식적인 진술서이다.
신앙고백은 교회 신조와 비슷하지만 대개는 좀더 포괄적이며, 특히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세워진 교회들과 연관된다. 중세 그리스도교 교회는 교리를 공적인 문서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고대에서 전승된 신조(니케아 신조)나 중세 초기에 작성된 신조들(사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조)을 공적인 예배 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데 사용했다. 교리상의 특정한 문제들은 논쟁을 거쳐 공의회에서 확정했다. 1439년 페라라·피렌체 공의회가 공포한 7성사(聖事)에 대한 칙령은 교리체계의 한 가지 중요한 부분에 관한 진술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교리를 문서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또한 중세의 이단운동들도 신앙에 대한 포괄적인 선언문들을 내놓지 않았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리체계의 주요쟁점들을 정의하기 위해 선언문들이 작성되었다. 이들 대부분의 문서들은 교회의 교리적 입장을 밝힐 목적으로 편집되었다. 그중 몇몇 문서는 원래 다른 목적으로 작성되었지만(예를 들면 루터의 교리문답서), 곧 권위 있는 교리서가 되었다. 최초의 종교개혁 신앙고백서들은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앞서 작성된 초안들이었다. 루터파의 이 신앙고백서 형식을 다른 개혁교회들도 따랐으며, 심지어 트리엔트 공의회(1545~ 63)도 이것을 따랐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칙령들과 교회법들은 1564년 공포된 〈트리엔트 신앙고백 Professio fidei Tridentina〉과 함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적 입장을 문서화한 것이다. 그 밖의 중요한 프로테스탄트 신앙고백으로는 루터교 슈말칼덴 조항(1537), 협화신조(1577), 협화서(1580), 개혁교회의 헬베티아 신앙고백(1536, 1566), 갈리아 신앙고백(1559), 벨기에 신앙고백(1561),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 도르트 신조(1619), 장로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 성공회의 39개 조항(157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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