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2. 토요일. 늦은 저녁에도 비가 내린다.
며칠째 내린 것으로도 모자라 한 밤중까지 마구 창을 두드리며 천둥 번개를 친다.
TV에서는 비 피해 상황과 함께 호우주의보에서 경보로 바뀌는 지역을 열거하고 있다.
꾸리던 배낭을 젖혀두고 서동익 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내일 괜찮을까요? 남쪽지방으로 비구름대가 몰려간다는데요?”
“안 그래도 걱정 중입니다. 비가 오면 낙뢰 등으로 큰 산행은 불가능하니 봐서 가까운 산이나 다녀오는 것으로 하시지요.”
내 산행 길은 이상하다.
통보 받으면 단박에 결정되는 적이 거의 없이 포기했다가 변수가 생겨야 동참하는 식이다.
용봉산 갈 적에 동창회가 연기되어 참석하게 되었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서동익 회장님의 모친 별세에 따라 부득이 1주일 연기하게 됨에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암튼 7월 13일 새벽, 빗속의 산행을 걱정하는 집사람을 꼬드겨 유부초밥과 주먹밥을 챙기고, 덤으로 문화예술회관까지 배웅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집결지에 도착했다.
양승근 소설가가 혼자 서 있다. 저만치에서 이병록 선생님 부부가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어오신다. 너무 일찍 와서 공원을 한바퀴 돌다가 지갑을 주웠는데 현금은 한 푼도 없고 카드만 남아있는데 어찌 연락할지 걱정이시란다.
잠시 후 서동익 회장님과 임동숙 총무님이 도착했다.
‘인천은 날씨가 개이지만 남쪽은 늦게까지 비가 올 거라는데---’
강화로 갈까 안양으로 갈까 궁리타가 이왕 나선 김에 당초 예정대로 팔공산에 가보고 싶다 고 몇 사람이 우긴다.
실은 나도 통일신라시대 오악 중 중심인 중악 이었다가 고려조에 왕건이 견훤에게 크게 패한 후 목숨바쳐 사망한 여덟 공신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으로 개명했다는 그 산이 가보고 싶어 만사 젖히고 나섰던 길인데---
비가 오던 안 오던 산은 결정 되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가서~, 산에 못 오르면 새로 설치한 케이블카나 타고~, 아래쪽 동화사에 들려 대불이나 보고 오~~면 되지~~~”
몸이 불편한 이병록 선생님을 뺀 채 사모님만 서동익 회장님 차에 모시고 출발했다.
“비야! 올 테면 오너라 오너라~~~”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망향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차 한 잔 들 새도 없이 바로 김천, 구미, 왜관, 칠곡, 대구를 거쳐 팔공산 입구에 다다르니 어느새 11시다. 오락가락하던 날씨가 드디어 말갛게 갠다. 분명 일행 중 누군가 선행을 베푸는 이가 있기 때문에 덕을 보는 것이리라. 등산로는 입구부터 만원이라 허락도 없이 카페 입구 한쪽에 차를 비켜 세워두고 매표소를 들어섰다.
계곡은 벌써 피서 나온 인파로 꽉 차 있다. 겨울 추위와 여름 더위로 유명한 대구가 아니던가? 더불어 인천처럼 도심에는 큰 산도 별로 없을 테니 장마 끝 무더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팔공산 계곡을 찾음은 당연하리라.
만약을 위해 점심대행 음식을 덜어 이병록선생 사모님께 드리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초입은 계곡을 따라가며 완만하게 나무그늘 이라서 오르기에 좋다.
습한 소나무 등걸엔 이끼가 끼고 담쟁이가 신이 나서 오르고 있다.
손을 씻고 수건을 적시며 차근차근 오르다 보니 제법 너른 곳에 ‘綏陵-封山界’ 표지석이 서 있다. 설명문에 이르기를 조선조 헌종이 부친인 익종을 이곳에 모시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 시켰다는 내용이니, 곧 연산군이 사냥하기 위해 금표석을 세웠던 고양시 일원의 입산금지와 같은 뜻이 아니던가? 얼마를 더 가니 북한산 인수봉 같은 화강암 석질의 암벽이 나오고 많은 이들이 자일에 매달려 등반 연습을 하고 있다.
바위 한편에는 ‘石泉然居 徐錫止’라고 멋진 글씨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 오래전에 자연을 벗 삼아 은거했다는 표식이리라.
바야흐로 등산길이 험해진다. 며칠 전 모친상을 치루며 잠도 못 이루었을 텐데도 회장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등산길에 나서서 손수 운전까지 한 서동익 회장님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계곡이 한눈에 보이는 너럭바위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지나온 발아래 세상을 바라본다. 따지고 보면 인간사 잠깐 인 것을 평생 아웅다웅하며 살 일도 별로 없을 듯한데 사람들은 누구를 젖히고 앞서기 위해 혈안이 되어 비행까지 저지르는 것이 안타깝다.
길이 점점 가파르다.
“얼마나 남았어요?” “다 왔어요. 저 너머예요.”
숱하게 반복해 묻고 들으며 깔딱고개를 오른다.
우측의 케이블카를 타고 오는 등산길과 반대편 동화사에서 오르는 세 길이 합류하는 지점에 하드 장사가 있다.
1000원씩 하는 꽁꽁 언 하드를 하나씩 입에 물고 아직도 300여 미터 높이에 있는 정상을 향해 굽은 길을 오른다.
산 아래로 한 떼의 검은 구름이 계곡과 능선을 덮치며 지나간다. 발아래가 금세 하얀 운무 속으로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몰려온다.
바위투성이 길을 돌고 또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맞았어! 이젠 진짜 다 온 거야!”
계단을 센다. 하나 둘, 셋 넷---
마지막 99 계단을 셌을 때 팔공산 동봉 정상에 올랐음을 안다.
팔공산 동봉-해발 1,167미터
좁은 바위정상엔 벌써 많은 이들이 올라 사진 찍기에 바쁘다.
‘갓바위 부처님은 어디쯤 계신가요?’ 물으니 한 등산객이 저 멀리로 한없이 펼쳐져 있는 팔공산 능선을 가리키며 한 40분 더 가면 된다 한다. 오늘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1등으로 오른 임동숙 씨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 곁의 편편한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서동익 회장님이 대관령감자와 포도주, 양승근님이 약밥, 임동숙 님이 잡곡도시락을 푼다.
맛이 없는 것 같으니 다른 분들께는 절대 드리지 말라고 집사람이 신신당부하던 유부초밥을 꺼내놓고 함께 점심을 들었다. 옆에 식사중인 다른 일행과 약밥을 주고 얼음물 한통을 물물교환한 후 맛있게 먹는데, 예의 그 시커먼 구름이 비 한 바가지를 냅다 쏟고 간다. 서둘러 비옷을 걸치며 ‘세상사 공짜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산 길은 동화사 쪽으로 잡고 이병록선생 사모님을 그곳으로 가시도록 연락을 취했다.
오를 때는 힘들어서 보이지 않던 야생화 '꿩의 다리'가 하얀꽃을 폭죽처럼 활짝 피우고 있다. 능선을 내려간다. 가도가도 끝없는 길고 지루한 하산 길에 하모니카 몇 가락 날리다 보니 저 아래 浮屠菴이 보인다. 그 곁의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너른 주차장이 보인다. “맞았어! 여기가 그 유명한 동화사야!”
명성에 비해 불친절한 안내원을 타박하며 붉은 색과 초록색 잎이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지나 사모님을 기다리는데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산행을 거의 마치고 비 피할 전각들이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대웅보전을 오르기 전 아름다운 2층 누각이 鳳棲樓 이다. 계단 가운데 돌로 빚은 봉황의 알 3개가 놓여있다. 493년 신라 소지왕 때 창건해 瑜伽寺로 불리다 흥덕왕 때 중건하는 중 오동나무가 상서롭게 꽃을 피워 桐華寺로 명칭을 바꾸었다니 ‘절 개명도 한 순간이구나’ 느껴진다. 대웅전을 나와 1992년 노태우대통령시절 완공했다는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둘러보았다. 높이 33미터 둘레 16미터나 되는 대불 속에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셨다 한다. 규모가 너무 커서 왠지 경내 자연풍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데, 두꺼비 한 마리가 도로 경계석을 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사진 한 장 찍는 조건부로 풀밭으로 올려주었다. 대불 아래 긴 돌계단을 내려오니 드디어 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온통 비에 젖으며 어찌어찌 매점까지 내려와 서동익 회장님과 양승근 님께 우산을 모두 내어준 후 차를 이끌고 오시도록 하였다.
상경 길은 제2의 석굴이 있다는 칠곡 쪽으로 나와도 무난할 것으로 보았으나,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철수하는 계곡의 피서객들 차량과 엉켜 한없이 지체되었다. 큰 저수지 밑에서 서산낙조를 감상한 후 고속도로로 들어서기 전 칠곡에서 생태탕으로 점심 겸 저녁을 들었다. 주변은 벌써 어두워졌다.
천안 어디쯤부터 이었던가? 피곤한 회장님을 대신해 운전하다가 기름이 떨어져, 밤 11시 어둔 비봉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왔음은 차라리 희극에 가깝다. 0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니 호우경보 속에 멀리 대구의 팔공산에 다녀왔음이 꿈만 같다.
긴 시간 수고하신 서동익 회장님과 함께 이병록선생 사모님, 양승근 부회장, 임동숙 총무님께 숙원이던 팔공산을 다녀오게 해 주셨음에 두루 감사드린다.
* 산행기가 너무나 늦어 죄송합니다.
산행 모습은 양선생이 올린 앨범방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한 편의 영화 같은, 진실하고 리얼한 산행기 쓰시느라 고생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신나게 잘 읽었습니다.
이토록 숙성된 산행기를 올리시기 위해 늦으셨나 봅니다. 그날이 새롭게 떠오르도록 생생하게 쓰신 산행기, 감사하게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눈에 선하도록 산행기를 쓰셨습니다.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산행기 속에 베인 생생함과 어떤 상황 이였는지 어떤 모습들였는지 ... 저도 갔다온 것 같습니다. 부럽습니다.
세 분 격려에 감사드리며, 다시한번 늦은 산행기 수록- 사과 드립니다. 보람찬 가을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