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사정이 어떻든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이것만큼은 꼭 누리면서 살고 싶다는 식의 ‘자기만의 사치’가 다들 한 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라면 여행이다. 매 년 한 달씩 해외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은 분명 나에게 사치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올해까지 6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친구를 따라 다녔다.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할 땐 갠지스 강가에 머물기 위해 인도를 갔고 그 외에도 아프리카, 호주오픈이 열리던 호주, 유럽등 해를 거듭할수록 배낭여행이 주는 진짜 맛을 알게 되었다. 작년 연말에 떠나 올 1월 말에 귀국한 33일의 배낭여행지는 뉴질랜드였다. 다 알다시피 뉴질랜드는 지루한 천국이지만 또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올 수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매우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마오리와 실버펀, 코루로 상징이 되는 뉴질랜드의 여행은 매우 스팩트럼했고 이외수씨가 말하던 존버정신으로 견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촬영지였던 타우포가 아름다워 번지점프를 했고 해발 2천고지의 휴화산 통가리로를 정상까지 다녀왔다. 나무도 없이 화산 돌로만 된 산을 8시간 산행을 하는데 특별한 정신력이 필요했다. 정상에 있는 에메랄드 호수까지 내려갔다 기어오르는데 경사가 70도는 되어 보였다. 미끄러지면 그대로 호수에 빠질 상황이었지만 무모한 여행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과감한 시도를 하며 극적인 오르가즘을 맛보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암벽등반도 해 보았고 샌드 슬라이딩도 해 보았다. 무엇이든 기회가 되면 다 시도를 했고 그 짜릿짜릿한 순간을 온 몸에 담아왔다.
취재도 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헤글리 파크에 있는 천연 잔디코트에서 테니스를 하며 클럽탐방을 했고 교포 동호인 정은주씨 집에 초대되어 저녁식사도 대접 받았다.순수 키위와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아 키우는 은주씨는 큰 아들 저스틴을 다섯 살 때부터 테니스 레슨을 시키고 있으며 만약 아들이 원한다면 테니스 선수로도 후원해 줄 생각이라고 했다.
한국인이 제일 많이 살고 있다는 오클랜드에서 재뉴대한테니스 협회 신경학 회장을 만나 인터뷰하고 또 마이랑기베이 클럽을 탐방하며 한인들과 어울려 하루를 보냈다. 모두 다 고국을 떠나 사회적인 고리가 다 끊긴 타국에서 테니스로 뭉친 한인회는 가족 같은 따듯한 정을 교류하고 위안 받을 수 있는 종교 같은 의미의 모임이라고 했다. 이역만리 타국으로 이민을 온 우리 한인들이 제각각 성공해서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몰래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외국에 나가면 무조건 애국자가 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이 들어 배낭을 메고 한 달 동안 타국을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서러움이 복받치는 한계에 도달하는 시점이 온다. 그것은 체력의 한계와 겹쳐 극심한 외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데 여행 떠난 지 20일 전후해서 꼭 잊지 않고 찾아왔다. 그 때가 바로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 블루 타임이다. 그때는 잠시 여행도 독서도 멈추고 살아온, 더 살아야 할 내 인생 전체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는데 여행 중에 그런 고독을 느껴 본 여행자들은 블루타임이 매우 값진 것임을 안다.
배낭여행은 출발 2개월 전에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것부터 준비가 시작이 되는데 일반적인 여행사 투어와는 달리 그때부터 매우 바빠진다. 한 달 동안 어느 지역에서 며칠을 머물고 교통편은 무엇을 이용할 것인지 숙소와 교통편을 미리 예약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함께 동행한 내 친구는 배낭여행 20년 구력의 베테랑이어서 척척박사였다.
우리는 인터시티 버스를 이용해서 전 구간 이동했고 남섬을 다 돌고 북섬으로 이동할 때는 배를 탔다. 기차는 딱, 한 번.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그레이마우스로 가는 길에 트란츠 알파인 기차를 탔다. 그 기차는 해발 760 고지를 통과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차여행으로 값도 비싼 만큼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풍경을 한꺼번에 다 구경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후 폭우가 쏟아져 철로가 이탈이 되는 바람에 한 동안 그 기차를 탈 수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한 달 내내 숙소는 거의 유스호스텔 더블 룸을 썼다. 도미토리 다인실을 쓰면 경제적으로는 보탬이 되나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이 밤새 벌이는 향연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이미 호주 배낭여행에서 경험을 했던 터라 밤을 평화롭게 보내고 싶어 내린 결정이다.
뉴질랜드에서 나는 요리사였다. 유스호스텔은 어디를 가나 모든 주방기기를 다 갖춘 대형 주방이 있는데 거의 외식을 하지 않고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까지 직접 다 만들어서 해결했다. 재료가 최고급이니 하는 요리마다 일품요리가 되었다. 그곳의 소고기는 싸고 맛이 좋다. 우리나라의 어떤 그룹의 회장은 뉴질랜드 소고기 아니면 안 먹는다고 하듯이 사방 천지에 펼쳐진 녹초지에서 전혀 스트레스를 안 받고 자란 송아지 고기 아이필랫은 입에 넣는 순간 녹는다. 그린머슬을 또 어떤가? 살아 꿈틀거리는 초록 홍합을 쪄먹고 미역국 끓여먹고 유난히 싼 연어를 사다 슬라이스 해서 회를 치면 스위스나 유럽 쪽에서 온 배낭여행자들은 군침을 흘리며 감탄을 했다. 하루 종일 투어에 지친 여행자의 피로는 밤이면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 한 잔에 곁들인 저녁 식탁에서 용해가 되었다.
가는 숙소마다 한국의 젊은 배낭여행자들을 만났다. 혹시라도 이다음 만약 내가 천당을 가게 된다면 가난하고 배고픈 우리 한국의 배낭 여행자들을 위해 만날 때마다 요리를 해 식사를 대접한 덕분일 것이다. 훈제 닭을 사 껍질을 벗겨내고 굵직하게 감자를 썰고 얼큰한 고추장을 풀어 국물 넉넉한 닭볶음탕을 만들어서 주면 한국의 엄마가 더 이상 그립지 않을 만큼 맛있다고 한다. 맛이 풍부한 스와티의 소스를 뿌려 갖은 야채를 넣고 스테이크를 만들어 주면 너무 행복해했다. 이역만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모두 다 내 딸이었고 아들이었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매우 스팩트럼했다. 반지의 제왕을 촬영했던 험악한 돌산이 있는가 하면 바로 그 옆에는 아프리카 열대 우림을 떠올릴 만큼의 빽빽한 나무들이 자라는 산이 있다. 소와 양떼들이 유유히 풀을 뜯는 넓은 목초지가 한없이 펼쳐지다가도 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연기를 피워 올리며 유황 냄세 팍팍 풍기는 화산이 바로 곁에 있으니 가면 갈수록 어떤 풍경이 펼쳐질 것인지 끝까지 호기심을 감출수가 없었다. 로토루아에 가면 여기저기서 용암이 끓어올라 120도 되는 그 간헐천에 냄비를 올려놓고 음식을 익히는 광경도 목격을 했다. 지루한 천국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천의 얼굴을 가진 천혜의 자연으로 축복받은 나라였다.
여행 내내 나는 늘 감사한 마음을 잊은 적이 없다. 여행을 떠나기까지 나를 협찬해 준 많은 분들, 가족들 그리고 죽기 전에 보고 꼭 시도해 볼 것임을 강조하며 끝까지 나를 이끌었던 내 친구 유길초 선생, 평생 살면서 갚아야 할 아름다운 빚을 많이 졌다. 늘 내가 먼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남들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며 그 소중한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매 순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멘토의 죽비도 잊지 않았다.
여행기간 동안 늘 평화롭고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운트 쿡을 트래킹 하다가 얼어붙을 듯 한 빙하 물에 빠져 끙끙 앓아 본적도 있고 집나오면 고생이라는데 줄줄 새는 캐빈에서 연 이틀을 덜덜 떨며 잠을 잔적도 있다. 할 수 없이 쓰레기통을 뒤져 주스 통에 뜨거운 물을 넣어 껴안고 잠을 자야했고 연이어 하루 열 시간, 여덟 시간 차와 배를 타며 이동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 생전 그토록 아름다운 푸카키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축복받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던 순간 모든 고통의 기억은 사라졌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겪었던 고된 경험들을 통해 나는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탄탄한 가슴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 새로운 활력으로 새롭게 정신무장이 된 나는 앞으로 하루하루를 에누리 없는 존재의 절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도 투자라고 하나보다. 이번 뉴질랜드 여행기는 앞으로 1년 후 친구와 공동저자로 책으로 펴 낼 계획이며 그때 더 자세한 내용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래는 일정
인천공항-오클랜드-크라이스트처치- 프란츠죠셉-퀸스타운- 데카포-크라이스트처치- 넬슨-웰링턴- 네셔널파크-로토루아- 타우포-마운틴 쿡-오클랜드- 파이히야-오클랜드-인천공항
글 사진 송선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