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아만 두고 먼지가 잔뜩 쌓인 37년 전 그러니까 1970년 발행
영양군지(英陽郡志)를 꺼내 보았다.
비매품 군지(郡志)가 서울 우리 집까지 흘러 들어 온 경로는
아마도 돌아 간 어른이 당시 얼마간 찬조하지 않았을까 ?
짐작해 본다.
군지 제호(題號)
국회의원 휘호
출신구 국회의원이 군지에 휘호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고,
국회의원 오준석이라...
그러고 보니 옛날 그런 사람 있었던 것 같기도..
그때 세월 시골 국회의원이니 당연히 여당-민주광화당.
오(吳)가 라지만 함오(咸吳)는 아니고 울진 어디 사람일 것이다.
영양은 선거구도 혼자 못하고 어디에 붙이기 마련인 데
군세가 작으니 늘 저쪽 군에서 국회의원 되지
영양출신 당선되기 어렵다.
이재오도 서울 은평인가에서 나오니 되었지
고향에서는 오히려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 영양읍
흑백 옛날 사진 보니 감회가 일지만 촬영 앵글이 좀 그렇다.
험한 산으로 앞이 꽉 막혀 답답하지 않은가 ?
사실 영양 고을이 그렇긴 하지만 사진이란 찍기 나름인데.
우재(愚齋) 할배 기사
우재할배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은 족보나 행장에 있는 것과 거의 같지만 읽기가 어렵다.
지금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37년 전에도 문장 이해는 커녕
한자에 토라도 제대로 붙이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이어군아(異於群兒)하였으며..
누첩(累捷) 하였으나
막불차석(莫不嗟惜)하였다
미상각사기장(未嘗各私其藏)하였다.
이거 제대로 이해할 사람 몇이나 되었을까?
요즈음 젊은이들은 아예 소련말 듣듯이 할테니
불원 현대문으로 번역해 놓아야겠다.
조계정 (造溪亭) 사진
사진 밑에 해설 기사가 있다.
규모(規模)가 굉걸(宏傑)하다 ?
하아.... 굉걸(宏傑)할 것 까지야...
과장에는... 흐흐...
아무리 우리 집안 정자 칭찬이지만
굉걸(宏傑)하다는 표현은 겸연쩍다.
첫댓글 하하 멋지네요 한번 시간나면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갈수록 많이 나네요^^ 글 감사합니다 .
우리 선조님 이라고해도 된까요 선조님의 얼을 본바다씀 좋겠습니다 좋은글에서 잠시 고맙습니다 종친님
郡誌에 집안어르신들에 대한 자그마한 자취에 대한 글과 造溪亭에 대한 소개까지 실린 걸 보면 영양군에서 함양오가의 위세가 나름의 터를 잡았었음을 알겠습니다.한문으로 된 문장을 해석함에 있어 약간의 불완전성이야 이해할 수 있을 것같구요. 좋은 자료 글 잘 보았습니다.^^
조계정 아름답군요 영남에서 함오씨의 뿌리가 더욱 깊어보입니다 글에대한 해설 기대해 보면서 늘 감사 드립니다
언제나 강영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