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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물과 감물로 맨처음 만든 양면벙거지. 여류화가는 이 벙거지를 보고 3색으로 만들어 달라 하였다. 몇 해 빨았더니 지금은 조금 희끄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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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다른 작업 잠시 미루고 먼저 먹물염색부터 해야 했다. 스님들이 쓸 모자 넉 장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고는 불교용품을 의식하고 만든 적이 없어 고민 중인데, 또 먹물염, 감물염의 모자를 원하는 여류화가의 주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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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무명 9마를 1차로 먹물에 담가 말리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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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나의 임의대로 물들이고 그것에 만족한 무언가를 만들면 부담이 적은데 대상을 정하고 그 입맛에 맞춰 물들이고 만든다는 것은 꽤 조심스럽다. 어떤 원단에 물들일 것인가를 시작으로 모양의 다양함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스님들에게 건너갈 것이니 무엇보다 화려하거나 튀지 않아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은 기울었지만 딱히 '이것'이라는 그림이 떠오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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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에 다니는 친정어머님께 선물한다고 특별 주문한 먹물 챙모자. 작년 여름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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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여름비처럼 호우성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간 뒤끝, 볕도 맑고 바람도 적당하다. 먹물염색 한 가지 작업만으로 모든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되었으니 부담도 덜어냈고, 넉넉한 풍채만큼이나 털털하고 화끈한 성품인 여류화가의 까다롭지 않은 주문도 유쾌하다. 이놈저놈 3색으로 감물 벙거지 하나. 저놈그놈 3색으로 먹물 벙거지 하나. 집으로 찾아와 모양과 색깔 배합까지 군더더기 없이 정해 주었으니, 나는 그분의 무명옷에 어우러질 모자에만 충실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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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무늬면에 물들인 먹물염 조각으로 띠를 둘러 변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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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찜통에 물을 한가득 붓고 먹물과 식초를 각각 소주잔 반 컵의 동량 비율로 섞어 30분 이상 끓이는 동안, 정련하여(이때는 선매염을 하지 않음) 잘 말려둔 손무명 9마를 물에 적셔 빨랫줄에 널었다. 베 보자기에 2회 거른 먹물이 조금 식기를 기다려 9마 넘는 무명을 어깨에 걸친다. 누군가 맞잡아 주면 끄트머리부터 염료에 밀어 넣으며 조금 수월하련만 폭은 좁아도 9m 가까이 되는 긴 무명을 얼룩이 안 지도록 조심하려니 나의 어깨와 동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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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무명 9마를 연하고 진하게 3등분하여 물들이느라 중노동의 시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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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먹물염색을 할 때는 30여 분 주무른 것을 바로 씻지 않고 볕에 바싹 말리면 먹빛의 견뢰도가 좋으므로 나는 늘 이 방법으로 물들인다. '주무르고 말리기'를 3회 반복하여 널고는 남은 먹물에 처음과 같은 분량의 먹물과 식초를 넣고 또 끓인다. 3단계의 연하고 진한 잿빛을 내야 하므로 완전히 마른 것의 1/3을 잘라내고, 나머지 2/3를 다시 주무르고 말리고 3회… 또 그 반을 잘라내 먹물 첨가해 끓인 것에 주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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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색 6조각으로 이은 먹물염 벙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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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이틀에 걸쳐 물들인 3단계의 먹빛에서 중간과 가장 진한 부분의 차이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아 하루 더 정성을 들였다. 진한 색을 원하더라도 연하게 시작해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얼룩을 막아 주고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고생스러워도 반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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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무늬면2색, 손무명3색. 모시3색. 모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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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숙제 검사 받는 기분으로 모두 싸들고 건너갔다. 3단계의 무명도 흡족해 하고, 특히 층층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모시에 후한 점수를 받았으니 사흘간의 혼곤함은 그윽한 먹내음에 녹아내린 것은 물론이다. |
첫댓글 글터님이 오월 한달간 봄을 주물러가며 작업한 오마이 기사를 오두막 공방에 한꺼번에 올립니다. 요즘 힘들고 바쁘신지 오두막 발길이 뜸하지만 오두막 식구들이 응원을 하고 있으니 힘내셔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