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완종 회장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4형제의 맏이로써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집에 들여오게 되고
오랜기간을 버티다가
어머니는 새어머니와 대판 싸우게 되고
그것을 본 아버지가 어머니를 밤새도록 아침까지 때렸던 기억...
4형제들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그래서 어머니는 4형제를 데리고 지인집에 간신히
얹혀사는 입장이 되었다.
그때가 성완종 회장이 불과 13살때다 . 막내는 이제 2살..
이 상황에서 어머니는 나중에 꼭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4형제를 놔두고 서울로 올라가 식모가 된다.
성완종 회장은 일단 우선 막내를 외할머니 댁에 맡기고 어쩔수 없이
다시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이미 술집으로 변해있었고,
새어머니는 유난히 성완종 회장을 싫어했다.
결국 성완종 회장도 가출을 하게 되고 동생들이 근근히
챙겨주는 주먹밥에 의지해 버텨 나간다.
하지만 성완종 회장도 현실의 비참함을
그냥 눈뜨고 볼수가 없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바로 어머니를 찾게 된다.
정말 영화같은 스토리이지 않은가..
일근천하무난사-근면하나면 세상의 어려운 일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나의 스승이요, 근면은 나의 재산이다.
가난하면 저절로 간절함이 생기고
저절로 부지런해지는법.
나도 우리 가족이 부유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돈없는 서러움을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나는 배추 수송 현장에서 만난
트럭기사 이홍수씨에게 보수도 필요없으니
조수로 쓰면서 수송을 하는일에 눈을 뜨게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나는 헛된 욕심이 날때마다
불쌍한 어머니를 생각했다.
식구들이 함께 살아갈 날만 생각하면
나는 한눈을 팔 여유가 없었다.
내가 서울가서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시작하는
나에게도 꼭 맞는말이 될것이다.
사람의 일생이란,
어떠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고자 하는 일이 다르다면
언젠가는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는 법이다.
나도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나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에게
늘 좋은것을 주고싶다.
내가 가는길이 다르면
하나님께서 정말 알맞은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주시라 믿는다.
영등포역에 처음 내렸을때나
교회에서 잠자리를 구할때,
그리고 지프를 들이받았을때도
내가 택한 방법은 직접 당사자를 만나서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뒤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식이었다.
나는 직선코스가 보이는데 우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공법을 나두고 편법을 쓰는것을 체질적으로
싫다.
아주 훌륭한 교훈을 주셨다.
남들은 모두 돈봉투를 들고
타협을 하려고 했지만
성완종 회장은 과일바구니 하나를 들고
집앞에서 새벽까지 기다린후
자신의 사정과 비젼을 모두 이야기 해서
인간적인 공감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자신의 책임, 임무는 자신이 직접 지어야 한다.
아주 훌륭한 일화였다.
사업을 하다보면 정도를 지킨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정도를 걷는 것이 어려울수록
그것을 지킴으로써 얻는가치 또한 그만큼 커지는게 사실이다.
아...정말 솔직한.
참고 아끼고 아끼면 그 후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엄청날 것이다.
< 네이버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