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낙타가 사막을 가다가 날이 저물자 천막을 친 주인에게 다가가 밤에 추우니 코만 천막 안에 넣고 자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주인이 낙타의 부탁을 들어주자, 낙타는 조금 후 자기의 코가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며 천막 안에 목까지 집어넣고 자게 해달라고 한 번 더 부탁한다. 주인은 낙타의 부탁을 또 들어준다. 이렇게 낙타는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결국엔 천막을 차지하고, 주인은 밖에서 잠을 자게 된다. <아라비안나이트>
방문판매원이 어느 집 문의 초인종을 누른다. 주인이 나오자 상품 설명을 하는데 시큰둥해하는 주인이 언제 문을 닫을지 영 불안하다. 그럴 때에 문간에 발을 쓱 들이밀고 말을 하면 적어도 예고도 없이 문을 쾅 닫아버리는 일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 문간에 발을 들이미는 것은 비유적 표현으로, 상대방이 거절하기 힘든 작은 부탁을 뜻한다.
----> 그래서 이것을 '문전 걸치기 전략' 또는 '단계적 요청법'이라고 한다.
언젠가 부산영화제에선 일부 영화운동가들이 영화의 사전심의 철폐에 대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서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별 생각 없이 쉽게 서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명을 마치자마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들에게 독립영화 발전기금을 모금하기 위한 배지를 사라고 권유하자 별 저항 없이 2,000원을 내고 배지를 샀다.
-----> 만일 순서가 바뀌었다면 즉, 서명 전에 배지를 먼저 팔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침 7시에 시작되는 실험에 참여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더니 실험 참가자의 24퍼센트가 “예!”라고 대답했다. ‘아침 7시’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게 틀림없다. 반면 “실험에 참가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참가자의 56퍼센트가 “예!”라고 대답했고, 이어진 두 번째 질문에서 “시간은 아침 7시입니다. 그래도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단 1명도 변동사항 없이 모두 실험에 참가하겠다고 대답했다. 일단 참가하겠다고 대답을 해버렸으니 자신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서 ‘아침 7시’라는 부담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주의회의 한 의원이 자신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면서 원수처럼 굴자, 프랭클린은 한 가지 꾀를 냈다. 그의 자서전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의 호의를 얻으려고 나는 굴욕적인 존경을 표하지는 않았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그 주의원이 매우 희귀하고 진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 책을 숙독하고 싶다며 며칠간만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그 책을 즉시 빌려주었고, 나는 일주일 안에 매우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그 책을 반환했다. 그다음 우리가 주 의사당에서 만났을 때 (그는 결코 예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으나) 나에게 말을 걸고, 매우 친절했다. 그 후 그는 어떤 일이든지 나를 도와주려 했고, 우리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우리의 우정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은 내가 옛날에 배웠던 교훈의 또 하나의 예가 된다. 즉, 그 속담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너를 한 번 도와준 일이 있는 사람은, 네가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보다 더욱더 너를 다시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은 홈쇼핑의 쇼호스트들이 즐겨쓰는 기법이기도 하다.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작은 부탁은 거절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아는 쇼호스트들은 “딱 3분만 집중해주세요”와 같은 멘트를 날리면서 좀처럼 제품의 진짜 가격을 말하진 않는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내 가족의 건강”과 같은 감성적 멘트를 띄우면서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금액, 즉 한 달에 단돈 몇만 원이라는 식으로 힘주어 말할 뿐이다. 택시 한 번 안 타면 되고, 담배 한 갑 줄이면 되고, 술 먹고 대리운전 한 번 안 부르면 된다는 식이다.
문전 걸치기 전략은 처음 만난 이성을 유혹하는 데에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남성 보조요원들로 하여금 길거리에서 300명 이상의 젊은 여성들에게 접근해 술을 한잔하자는 제안을 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일부 보조요원들에게는 직접 제안을 하기 전에, 길을 묻는 등 가벼운 질문을 먼저 하도록 했고, 다른 보조요원들에게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곧바로 제안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먼저 길을 물어본 경우에는 60퍼센트의 여성이 흔쾌히 동의한 반면, 직접적으로 제안을 한 경우에는 20퍼센트만이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사소한 차이로 중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문전 걸치기 전략은 삶의 지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정신과의사 문요한은 변화와 성장의 과정에 ‘문전 걸치기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덩어리가 크면 뇌는 일단 두려워하거나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목표를 단계별로 나누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목욕탕의 뜨거운 탕 속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발부터 담그는’ 요령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뜨거운 물에 적응이 되고 더 들어갈 수 있는 준비와 용기가 마련된다. 중요한 건 첫 승리를 확보해서 발판을 마련한 다음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전략이 필요하다.”
'문전 걸치기 전략의 반대'는 '문전박대 전략'이다. '거절 후 양보 전략'이라고도 한다. 아예 처음부터 상대방이 들어줄 수 없는 큰 부탁을 함으로써 거절하느라 부담감을 느끼게 만든 후에 작은 부탁을 함으로써 성사시키는 방식이다. 첫 번째의 과도한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이 방식은 일석이조다. 처음 요청을 거절한 사람들에겐 부담이 적은 요청을 해서 성사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래저래 시도해보아서 밑질 게 없는 전략인 셈이다.
큰 부탁을 위해 작은 부탁을 먼저 하든 작은 부탁을 위해 큰 부탁을 먼저 하든, 우리 인간은 부탁을 주고받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상호성의 동물’인 셈이다. 문전 걸치기 전략과 관련해서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그 함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 게 흥미롭다.
"아무리 사소한 요청도 함부로 승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승낙이 우리의 자아 개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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