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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산행후기
내장산 단풍, 그 목마른 손짓 양승근
전북 정읍시 내장동,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 걸쳐 불끈 솟아오른 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는 산으로 기암들과 더불어 형형색색 단풍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움에 취하며 산행을 즐기고 싶어 다시 찾게 되곤 하는 내장산(內藏山 : 763.2m).
몇 해 전, 새벽에 도착하여 승용차 안에서 비몽사몽 눈을 부친 후 여명 무렵부터 산행을 시작했던 적이 있었고, 바로 작년 이맘 때 그러니까 11월 첫째 화요일에 다시 오른 적 있었던 산인데, 특히 이번 산행은 여느 때와 달리 KTX를 이용한 산행이어서 전에 없이 기다려졌다. 솔직히 'KTX'라는 고속열차가 여러 해 전 떠들썩하게 개통되었음에도 아직 한 번도 승차감을 느껴보지 못한 주변머리여서 그랬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런 주변머리를 체질 개선하는 당일 이른 아침, 3시간여를 취침한 05시 20분 '일어나세요' 하며 깨우는 휴대폰 모닝콜 소리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일어나 용산역 대합실에 도착하니 07시가 채 안 되었다. 개찰구 앞에서 젊은 남자 두 명이 조그마한 팻말을 치켜든 채 간헐적으로 소리 지르며 일행을 부르고 있다. 모두 목적지가 '내장산'이다. 역시 단풍 산행하면 내장산이 최고임에 틀림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피크 시즌임에랴!
일행을 기다리며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새 팻말 든 남자들이 사라지고 대신 박홍식 선생님과 서동익 회장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습을 드러내신다. 부평역에서 06시 12분 정차하는 첫 급행 전철을 각자 다른 칸에 타고 셈이었다. 반가운 인사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데 임동숙 총무님이 아드님을 앞세워 등장함으로써 오늘의 산행 인원이 모두 집합 된 상태. 너무 간소한 인원이다. 산행지가 산다운 산이요, 그것도 단풍 피크 시즌에 최고의 단풍 명소를 산행하기로 한 것인데 인원이 적어 쓸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번 정해진 목적지를 변경하거나 그만두는 일은 스스로를 더욱 쓸쓸하게 할 뿐일 터, 예약된 표를 구입한다. 한데 왕편은 KTX인데 복편은 새마을이란다. 인원 파악 뒤에 예매하다 보니 그리 된 모양이다. 실무자의 마음이 어땠을 지 십분 이해가 간다. 1시간 남짓 늦어질 뿐 도착 시간이 기약 없이 늦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07시 20분, 드디어 KTX 고속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는가 싶은데 금세 광명역이다. 온양온천을 지날 즈음 7,000원 짜리 도시락 정식을 구매해 아침을 먹고 나자 얼마 안 있어 서대전(08 : 23)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내릴 승객들을 일으켜 세운다. 빠르기는 빠르다. 승용차였다면 어디 쯤 달리고 있을까. 천안 쯤? 아마 그쯤 될 것이다. 서대전을 출발한 KTX는 마을 어귀 고삿길을 쓰다듬고 들녘을 감싸오는 아침 안개가 정상 수면의 3분지 1밖에 이루지 못한 눈꺼풀을 끌어내린다. 눈을 감고 부족한 잠을 보충할까 마음먹는데 아까부터 계속 귀를 거슬리게 하던 아이들의 소리가 더욱 커진다. 아예 무엇이 불만인지 칭얼대며 울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쩌랴, 필자도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 칭얼대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데 언짢아 해본들 무슨 소용인가. 짐짓 작년 이맘때를 떠올려 거슬림을 잊는다. 그때는 평일인 화요일이어서 사람들이 적당히 붐벼 산행하는데 알맞았다. 오늘은 어떨까?
정읍역에 도착, KTX를 내리다 드디어 09시 34분, 비록 작자는 미상이지만 유일하게 가사가 현존하는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하며 망부석에 올라 행상 떠난 서방님 밤길 무사히 돌아오도록 기도하며 불렀다는 백제가요 '정읍사'의 고장 정읍역에 도착한다. 안내소에 들러 몇 가지 물어보고 셔틀버스 대신 택시를 탄다. 시내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길이 주차장이 되어 다가온다. 기사는 그대로 뒤를 따르다가는 2시간 가지고도 어림없다며 샛길로 접어들어 가다 그래도 막히자 역주행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불안하기 그지없으면서도 내심 빨리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싶은 속마음은 또 어인 것인가. 다른 분들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반대편에서 차가 나오지 않기를 기도하는데 우리 일행을 실은 택시는 밀려 있는 차들 사이로 숨었다 나오고 나왔다 숨기를 반복하며 역주행한 끝에 거대한 주차장 끝에 있는 셔틀버스 회차 지점까지 오늘도 '무사히!' 도착했다.
무료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대한민국 사람 다 모인 양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 사람 많은 곳에 장사치 또한 많은 것은 당연한 것, 시장을 방불케 하는 노점상들이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듯 손님 받기에 여념 없다. 일주문까지 가는데 2시간 이상 걸어야 할 것이라 하기에 우리 일행은 망설임 없이 100미터쯤은 족히 되고도 남을 만한 긴긴 줄의 말미에 붙어 섰다. 딱히 줄이라 할 것 없이 2미터 정도 폭의 공간에 빽빽이 들어선 긴 줄, 셔틀버스 타는데 얼마의 시간을 허비해야 할지 답답했다. 단풍 피크 시즌에 그것도 일요일이니 대충 짐작은 한 터이지만 상상 외로 많은 인파였다. 그러나 의외로 줄이 쉽게 줄어들었다. 정읍시내 관광버스란 관광버스 모두를 무료 셔틀버스로 투입했는지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 내내 버스 두 대가 늘 서 있었다. 한 대는 승차 중 또 한 대는 하차 중, 승차한 차가 떠나면 하차를 끝낸 차가 승차장으로 다가오고 뒤이어 하차장에 또 차가 다가와 하차를 시작하고...... 우리가 줄을 서기 시작한 이후 차에 오르기까지 몇 대가 오고 갔을까, 30여분 남짓 만에 우리도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차는 걸어가기를 택한 사람들 사이를 막힘없이 달렸다. 얼마를 갔을까 셔틀버스에서 내려 다시 걷기를 한참, 드디어 매표소에 도착한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진 게 언젠데 아직까지도 매표를 해야 입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입장료가 자그마치 2500원씩이나 되었다. 내장사 관람비인 모양인데 내장사를 관람할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모두 매표를 해야 하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었다.
가뭄으로 제 빛깔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을 정취만큼은 물씬 매표소에서 1시간여를 걸어 일주문을 통과하기 직전 서래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지나치며 작년 이 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단풍이 참 아름다웠었다. 한데 오늘은 영 아니다. 너무 가물고 오르내리는 기온차도 심하지 않은 탓이리라. 화려하기는커녕 곱게 물들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지는 단풍들도 있었다. 원래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단풍 종류가 전체 15종인데 그중 11개나 되는 종이 자생하고 있어 다른 산에 비해 그 아름다움의 격이 다르다는 산이라 산행 중에 덤까지 누릴 수 있는 게 오늘의 산행인데 아무래도 그 덤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그 덤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깊은 가을의 정취만큼은 살갗 속속들이 스며들고 있음은 분명했다.
12시 30분, 본격적인 산행의 출발지인 내장사 사천왕상 앞, 많은 인파 때문일까 박홍식 선생님과 회장님이 필자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찾고 보니 내장사 오른쪽 등산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데 그 입구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표지판은 없다. 무심코 걷다 발견된 이정표에 씌어 있는 세 글씨 허, 이게 어인 일인가. 불출봉 방향인 원적계곡이 아니던가. 애당초 계획된 코스는 금선계곡을 통해 신선봉을 올라 까치봉을 밟고 원점으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쪽은 내장사 왼쪽 등산로에 해당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선 것을. 우리는 당초 계획을 수정해 불출봉을 찍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망해봉이나 서래봉을 더 오른 후 셔틀버스를 탄 주차장 근처에 있는 서래봉매표소로 하산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쪽이 예매해 놓은 상경 열차 시각에 맞추기에는 효과적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갈래 길이 나오기에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물어 원적암 방향으로 갔다. 어느 쪽으로 가든 불출봉이 나오는데 원적암 방향이 볼 게 많다는 얘기다.
비자나무 그쪽은 아름드리 비자목이 가을 단풍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짙푸른 잎으로 우뚝우뚝 서 있었다. 300~500여 년간 암수 딴 그루로 자라 가슴높이가 지름 2미터나 된다고 한다. 앞으로 1,000년도 거뜬하리만치 건강하고 육중했다. 우리는 원적암, 벽련암 이정표를 보고 원적암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데 암자에 비해 거대한 황금색 야외 불상이 격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잠시 불출봉 방향 등산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갑자기 더듬이를 잃은 개미마냥 등산로가 있을 법한 방향을 다시금 두리번거린다. 없다. 대신 승복을 입은 스님이 보이기에 불출봉 등산로를 묻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우리가 올라온 방향을 가리킨다. 올라온 방향으로 다시 가라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그러나 이정표만 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을 귀찮게스리 왜 자꾸 묻느냐는 듯 보다 더 신경질적인 투로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알면 왜 물었을까. 기분이 몹시 언짢아 진다. 스님은 소위 수도승 아닌가. 필자가 물을 때 예의를 갖추지 아니한 것도 아니고 정중하게 물었는데 돌아온 것이 신경질이라니,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이다. 똥물 묻은 승복을 뒤집어 입은 땡추중이었나? 마치 땡감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어느 등산객이 일러준다.
벽련암 쪽으로 가다보면 불출봉 가는 길이 나와요.
같은 말을 승복 입은 사람한테서 들었더라면 이토록 고약한 기분이 들었을까 싶다. 필자는 그 즉시 디카에 담았던 원적암과 전봇대로 이 쑤시는 격이 되어버린 거대한 야외 불상을 삭제 시켰다. 뒷날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원(怨)이 쌓여(積) 암(癌)이 되는 원적암으로 다가오지나 않을까 싶어 서둘러 빠져나와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우리를 헛갈리게 한 이정표에 디카를 들이댔다.
벽련암 방향에 불출봉 글씨가 더 있어야 등산객이 헛갈리지 않을 것이다. 분명 벽련암 방향에 '불출봉'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어느 등산객이 일러준 대로 벽련암 방향으로 걸었다. 불과 1백 미터도 가지 않은 듯싶은데 갈래 길이 나오고 그곳에 '불출봉'이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앞선 이정표에 '불출봉' 세 글씨만 씌어 있었더라면 등산로를 묻지 않아도 되었을 것은 물론 귀찮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원적암을 들리지 않을 수도 있어 애꿎게 디카 속의 불상을 지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새삼스레 대구의 팔공산을 올랐다가 하산 길에 동화사를 둘러볼 요량으로 안내원 표찰을 걸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던 적이 생각난다. 똑같은 경우를 당했던 것이다. 거기에서도 거대한 대리석 야외 불상이 천년 고찰과 어울리지 않아 보지 않음만 못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문득 생뚱맞은 생각이 든다. 거대한 불상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거만스러워져야 하는 것인가.
비탈길 경사가 심하다. 제대로 물들지도 못한 단풍들은 말라 있고 등산로에는 먼지가 풀석거린다. 임동숙 총무님과 아드님은 씩씩하게 저만치 앞서 가고 박홍식 선생님이 힘이 드신 모양인지 자꾸 뒤처진다. 회장님은 육중한 체중을 버거워 하지 않고 묵묵히 오른다. 이 산은 어느 코스로 오르든 모두 급경사라는 필자의 말에 '내장산은 원래 고구마 지형'이라 그렇다고 회장님이 받는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한 비유다.
그 비탈길 정상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암벽 아래 '불출암지'가 나타난다. 고려 광종 26년(서기975년) 하월선사가 이곳의 암벽에 형성된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암자를 세웠던 자리인데 나한전 등의 건물은 6.25동란 때 완전히 불타 버리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는 입간판이 서 있다. 그 암자 터에 자리를 잡은 등산객들은 에너지를 보충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는 그냥 정상을 향해 지나친다.
불출암자 터를 배경으로 임동숙 총무님의 아드님 정웅이. 위 사진은 불출암자 터 위쪽
드디어 불출봉(622.2m) 정상, 그새 14시다. 동쪽으로 서래봉(624m)이 우뚝 솟아있고 그 너머에 있을 월영봉(427m)은 보이지 않았으나 북쪽 방향으로 내장 저수지와 정읍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서쪽 방향으로 망해봉(679.3)을 시작으로 연지봉(670.6m), 까치봉(717), 신선봉(763.2m), 연자봉(675.2m), 장군봉(696.2m)이 남쪽 방향을 아우른 후 동쪽까지 한 바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포란형이라 할까, 삼퇴미형이라고나 할까. 희뿌연 스모그 안개가 스카이라인만을 보여줄 뿐 맞은 편 능선줄기의 가을의 정취를 드러내놓지 안타깝다. 산행을 하다보면 곧잘 이와 같은 현상과 대면해야 하는 실정이고 보면 못내 안타까워 할 일만도 아니지 않은가. 흔히 있는 일이려니 하자.
드디어 불출봉에 오르다 불출봉에서 본 오른쪽부터 망해봉 연지봉 불출봉에서 본 서래봉 대체 장사꾼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랴! 불출봉 정상에도 막대형 빙과를 파는 사내가 먹고 남은 봉지와 막대는 버리지 말고 자기한테 달라며 목청을 돋운다. 이 자연의 정상에서 그나마 장사를 하려면 그 뒷갈무리만큼은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우리도 빙과를 사 먹으며 360도 조망을 한 후 서래봉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배낭을 열었다. 회장님의 주먹김밥과 고구마, 그리고 찬과 배, 박홍식 선생님의 밥과 찬에 사과와 매실주, 임동숙 총무님의 잡채, 필자에게서 나온 것은 후식으로 넣어온 사과 와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 필자가 직접 담갔던 버찌주 밖에 없었는데 배낭 무게를 줄여 달라는 박 선생님의 부탁으로 그나마 필자의 사과는 깎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산행할 적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산 정상에 올라 먹는 점심은 언제 어느 때일지언정 맛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음식 자체의 맛도 맛이지만 자연의 내음과 함께 먹다보면 그 맛은 배가 되는 것은 당연, 배불러 못 먹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먹고 일어서고 보니 14시 50분이다.
계속 서래봉 방향으로 걷다가 물 한 방울 없는 서래약수터에 도착해 잠깐 의견을 나누었다. 서래봉을 올랐다가 되돌아 다시 이 지점까지 오려면 최소한 왕복 1시간은 족히 걸릴 터인데 남은 시간으로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예약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정읍역에 도착하기 위해 서래봉은 그냥 눈바래기를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서래봉을 400미터 앞두고 서래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하산을 계속하여 16시, 우리는 모처럼 낙엽 깔린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물 많고 시원한 배를 깎아 먹으며 덤으로 이도 닦은 후 25분 다시 걸어 16시 25분에 서래매표소 탐방지원센터를 나섰다. 그새 사람들은 많이 빠져나가 주차장 근처 거리가 허름했다. 그렇다고 빈 택시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 걸어 나오다 행인에게 물으니 주차장 건너편에서 셔틀버스를 타랜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가다가 서래봉을 오르지 않은 탓에 시간 여유가 있는데 동동주 한 잔 하고 가자는 의견이 있어 <2008년 내장산 단풍 부부 사랑축제. 영원면 새마을 부녀회>라 쓰여 있는 포장 아래로 스며들어 막걸리와 도토리묵, 해물파전을 주문하자 전라도 특유의 정이 따라온다. 걸쭉한 토종 된장국과 김치찌개에 밥, 더불어 찬까지 덤이란다. 게다가 얼마든지 더 있으니 말만 하라면서 추가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도토리묵 한 접시가 더 나오고 마시다 남으면 올라가는 열차 안에서 먹으라며 막걸리 한 병을 더 내오는 아주머니. 아무리 축제 마지막 날 끝나는 마당이라지만 이런 대접 받기는 처음이다. 내려올 때처럼 열차 안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열차 안에서의 그 어느 메뉴인들 이 고향의 맛에 비견되랴 싶었다. 굳이 공짜로 먹기 때문이 아닌 그 소박한 우리네 시골 정서 그대로를 먹고 있기 때문이리라. 새삼 그 옛날, 그러니까 끼니 굶던 어린 시절, 논배미에서 일하다 먹던 점심 생각이 난다. 먼발치로 지나가는 나그네가 보일라치면 으레 큰 소리로 불러서는 때론 막걸리를, 때론 평소 구경하기 힘들던 흰 쌀밥을 아낌없이 나누어 먹던 기억이다. 또 생판 처음 보는 나그네라 하더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음식을 먹어주던 그 때 그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어렸던 필자는 늘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려니 했었다. 어느 집 어른이건 늘 그렇게 했기 때문이었다.
정 넘치는 영원면 새마을 부녀회 회원과 함께 우리는 따뜻한 고향의 정을 그냥 낼름 받기가 미안해서 열차 안에서 먹기로 하고 파전 하나를 포장 부탁한 후 값을 지불하는데 하도 저렴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군의 방침에 따라 봉사차원에서 그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약간의 거스름돈 대신 커피를 마시며 부녀회 아주머니들과 사진도 찍은 후 고향 내음 트림을 하며 셔틀버스 승차장으로 갔다. 17시 33분,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오전에 이용했던 셔틀버스가 생각나 뒤를 돌아보니 벌써 다음 차가 대기하고 있다.
셔틀버스는 별로 막히지도 않고 곧장 정읍 시내 정읍 시청 앞에 멈춰 선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타고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 정읍역에 도착(18 : 03), 잠시 여유를 가진 후 18시 33분 용산행 새마을호에 올라 3시간 30여 분이면 도착하리라는 약속된 시간을 헤아리며 느긋하게 노독을 풀면서 부평에 도착한 시간이 20시 40분 경, 승용차를 이용했을 경우 과연 같은 시간대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며 수고해 주신 회장님과 총무님께 감사한 생각이 들면서 많은 회원님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
첫댓글 소설가능 역시 다르네요. 한 점도 놓치지 않고 풀어쓴 산행담과 간간이 펼치는 소설적 구사가 감칠 맛을 더합니다. 수고 많으셨고 마지막 막걸리 한 병- 정말 정이 듬북 든 귀한 선물 이네요.
꼬리말 감사합니다. 소설적 구사가 얼마나 표현 되었는지는 독자만이 알 일입니다만, 아마 선생님이 동참하여 쓰셨더라면 시적 언어가 철철 넘쳤으리라 믿습니다. 다음 산행 때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09년도 창작집 발간 지원신청서 서류를 작서하다 잠시 들어와보니 <내장산 산행기>가 올라와 있네그려. 카메라보다 더 세세하게 잡은 산행기 참 잘 읽었어요. 그리고 올라올 때 박홍식 선생과 오징어를 찢으며 마신 매실주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안은 까닳은 요사이 잇몸병 때문에 오래도록 술을 금주해 온 탓이겠지...... 빨리 잇몸을 가라앉혀 덜렁거리는 어금니를 몽땅 빼버리고 틀니를 해넣을 때까지는 술을 잊고 살아야 하는데 밥 먹을 때 반주 몇 잔 마시는 즐거움도 세월이 뺏어가니 물밀듯 밀려오는 세월의 흐름을 그 어찌 막을손가. 내장산 당단풍나무 잎새마냥 아직도 곱게 꽃피우고 싶은 꿈은 많고도 많은데......
열차 안에서의 매실주 얘기 빼먹었는데 대신 이야기 해 주시는군요.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회장님의 말씀대로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막을 수 없다면 그 세월을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크흐, 외람된 말씀 보태 죄송합니다.
깔끔하게 정리한 사진과 자세하게 쓰신 산행기를 읽고 참석하지 못한 점이 참 아쉽습니다 .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얼굴 잊겠습니다. 어디 길을 가다 못 알아보더라도 지는 책임 읎심다
전 산행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단풍나무가 드리는 '덤'을 포기하였으나, 깊은 가을의 정취를 피부로 받아들이셨다니 너무부러워 다음 산행은 꼭 함께 하려 합니다. 그리고 둘레가 2m나 되는 바라목, 시골 마을 앞 '당산나무'나 볼수 있는 나무를 그곳에서 보셨다니~!. 그리고 스님의 불친절에 어짢으셨던 것, 다 잊으셨겠죠?. 푸짐한 전라도 인심 등 사진과 함께 올여주셔서 더 실감나게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12, 7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