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보는 캄보디아 정보 전문 연구공동체인 '크메르의 세계'(크세)가 선정한 것으로서, 본 카페 정회원들로 구성된 <2012년 캄보디아 10대 뉴스 선정위원회>의 편집회의를 거쳐 정리된 것입니다. '크세'가 선정하는 <캄보디아 10대 뉴스>는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인류의 보편적 상식에 가치를 부여하며, '한국'이나 '한국인' 같은 협소한 개념을 탈피하여 '국제인'의 관점에서 하나의 국가를 관찰한다는 편집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크세] |
DAUM 카페 '크메르의 세계' 선정
2012년 캄보디아 10대 뉴스
2012 Cambodia TOP 10 News
1. 노로돔 시하누크 전임 국왕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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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lexander Crook / Phnom Penh post) 노로돔 시하누크 전임 국왕의 추모주간 마지막 날인 10월23일, 한 청년이 왕궁 앞의 추모 인파 속에서 탈진한 여성을 후송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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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EN) 시하누크 국왕의 유해가 캄보디아에 도착한 10월17일 왕궁 앞에 모여든 추모 인파의 모습. |
캄보디아 독립의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받던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1922~2012) 전 국왕이 10월15일 중국 베이징의 병원에서 향년 89세로 사망하여, 캄보디아의 20세기가 비로소 그 막을 내렸다. 그의 사망은 자신의 90세 생일(10.31)을 보름 정도 앞둔 시점이었고, 그가 주도적 참여를 하여 20년 내전을 종식시켰던 <1991년 파리평화협정> 체결 21주년 기념일(10.23)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시하누크 공은 20세기 아시아의 여러 정치 지도자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보여준 인물이었고, 그의 생애가 곧 캄보디아의 20세기 역사였다.
그는 프랑스 식민당국이 옹립한 꼭두각시 국왕으로서 캄보디아 역사와 정계에 등장했고, '국왕의 순례'라는 사건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후엔 자신의 부친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정당을 이끌고 총선에 출마해 승리했다. 그는 이후 '총리'와 '국가수반' 등 다양한 직함으로 최고 권력자 시절을 보냈다.
1970년 그가 외유 중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 놀(Lon Nol) 장군이 무혈 쿠테타를 일으키자, 그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그는 곧장 중국으로 가서 망명정부의 수반이 되어 정권 탈환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때 자신이 탄압했던 젊은 공산주의자들인 크메르루즈(Khmer Rouge) 반군과 동맹을 맺어, 그들이 결국 1975년에 캄보디아를 장악하는 일에 힘을 보태주었다. 하지만 그는 크메르루주 정권기에 왕궁 안에서 사실상 가택연금을 당했고, 자신의 자녀들 중 6명을 잃기도 했다.
1979년에는 숙청을 피해 달아났던 전직 크메르루주 당원들인 훈센(Hun Sen) 등이 베트남 침략군의 선봉에 서서 귀국해 정권을 잡았을 때, 시하누크는 또 다시 외국으로 떠났다. 미국을 거쳐 다시금 중국에 정착한 그는 또 다시 크메르루주 세력을 포함하여 여러 반군 세력들을 통합적으로 대표하는 망명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에 <파리평화협정>이 조인되고, 1993년에 최초의 총선이 실시되자 모든 정파들의 동의 아래 캄보디아로 귀국하여 국왕에 복위했다. 커다란 실권은 대부분 훈센 총리의 정파가 장악한 상태에서, 시하누크는 2004년에 건강과 노령을 이유로 들어 막내아들인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에게 양위한 후, 대부분의 시간을 베이징에서 지병을 치료하며 보냈다.
시하누크 공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며, 그 성격 또한 대단히 복잡하다. 크메르루주 세력을 지원하여 캄보디아의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이란 평가도 있고, 독립을 쟁취한 영웅이자 오랜 내전 속에서도 캄보디아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통합성을 상징해준 정신적 지주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또한 공식적으로 6번이나 결혼했던 플레이보이이자, 영화와 음악 창작에 대단한 조예를 보였던 예술가였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의형제였으며, 철권 독재자에서 반군지도자로, 그리고 마지막엔 자상한 할아버지 국왕이기도 했던 시대의 기인이었다. 이에 대해 임희모 교수는 20세기에 오랜 고난을 겪은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시하누크란 존재는 기다림의 희망을 주었던 종교적 메시아(구세주) 같은 존재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마치 그러한 평가를 직접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시하누크 사후에 캄보디아 국민들이 보여준 추모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캄보디아에서 통합 야당이 출범하여 2013년 7월 총선의 대격돌을 앞둔 시점에서, 여야는 모두 시하누크의 정신을 자신들이 계승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그의 다비식(=화장의식)은 내년 2월4일에 거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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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목록] 시하누크 전임국왕 사망 관련 기사 홈페이지"
☞ "[인물탐구] 노로돔 시하누크 전임 국왕 : 캄보디아의 국부" |
2. 통합 야당의 출범
캄보디아의 제1야당인 '삼랑시당'(SRP: 26석, 1997년 창당)과 제2야당인 '인권당'(HRP: 3석, 2007년 창당)이 '역사적인 야권통합에 합의'했다. 해외에 망명 중인 SRP의 삼 랑시(Sam Rainsy) 총재는 7월1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HRP의 껨 소카(Kem Sokha: 껨 속하) 총재와 회담을 가진 후, '캄보디아 구국당'(Cambodian National Rescue Party: CNRP)의 창당을 발표했다.
삼 랑시 총재와 껨 소카 총재는 각각 CNRP의 총재 및 부총재를 맡았고, 저명 여성인권 운동가인 무 소쿠(Mu Sochua)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았다. 그러나 기존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은 당적을 옮길 경우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이들의 임기가 끝나는 향후 수년 동안은 SRP와 HRP 역시 등록 정당으로 남아있게 된다.
SRP와 HRP의 두 야당은 금년에 치뤄진 '6.3 지방선거'에서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 1978년 이후 존속, 90석)의 각종 관권 금권 불법선거 행태에도 불구하고, 양당 합계 30% 이상의 득표율을 보이며 선전한 바 있다. 그리고 거물 정치인이었던 노로돔 라나릿(Norodom Ranariddh) 왕자가 8월 초에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친여 성향의 군소 왕당파 정당들인 '푼신펙당'(Funcinpec: 2석)과 '노로돔 라나릿 당'(NRP: 2석)의 비주류 인사들도 통합야당으로 합류하고 있다. 따라서 사상 최초로 민주 야당들의 통합이 이뤄짐에 따라, 내년(2012) 7월에 있을 총선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가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훈센 총리의 집권세력도 '선거관리위원회 개혁에 대한 국내외의 압력을 무시'하고, 삼 랑시 총재의 귀국 불가 재확인, 급속히 늘어나는 인터넷 사용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PC방 금지구역 설치' 등 공세적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선거는 베트남계 유권자들(=친-훈센 집권당 성향)의 대거 등록으로 인한 인구학적 왜곡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고, 최근 그 추세는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치뤄지는 2013년 캄보디아 총선은 훈센 정권의 권위주의 행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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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목록] 2012년 캄보디아 정치 외교 군사 동향" |
3. 훈센 총리의 5시간20분 국회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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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ha Lina / Phnom Penh Post) 훈센 총리가 8월9일 프놈펜의 국회의사당에서 연단에 오르기 직전 특유의 익살스런 몸짓을 보이고 있다. 총리의 연설이 있었던 국회에는 캄보디아의 주요 각료들이 전원 참석했다. 사진에서 훈센 총리의 우측으로 사켕(Sar Kheng: 서있는 이)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과 속안(Sok An: 우측 끝) 부총리 겸 관방부장관이 보이고 있다. |
훈센(Hun Sen) 총리가 장시간 연설을 하는 일은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8월9일 국회에서 무려 5시간20분 동안의 연설을 하여 자신이 기존에 세웠던 연설시간 기록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베트남과의 국경선 획정 문제를 설명하면서 야당에 악담을 퍼부은 후, 문서화된 질문 외에는 어떠한 질문에도 답변하길 거부했다. 총 120석 중 103명의 국회의원이 출석한 가운데 진행된 연설에서, 훈센 총리는 자신의 비판자들에 대한 신랄한 공격을 가하면서,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영토 교환을 할 경우 피해를 볼 주민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보상할 것인지에 관해 초점을 맞췄다.
캄보디아 정치에서 베트남과의 국경선 획정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훈센 정권은 '1978년 12월 25일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이후 10년간 점령'하는 기간 중에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친-베트남 담론은 훈센 정권의 민감한 아킬레스건에 해당한다. 따라서 야당은 집권당의 대-베트남 정책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영토잠식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야당 지도자인 삼 랑시 총재가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해외에 망명중인 것도, 2009년에 베트남의 영토잠식을 주장하면서 국경에서 '임시 국경표식을 뽑아내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글맵 지도 정보를 유포'시킨 일 때문이다.
금년 4월에 있었던 '베트남-캄보디아 정상회담'에서는 국경선 획정에 박차를 가하기로 합의했고, 담당 선임장관은 '베트남과 일부 영토의 맞교환을 시사'하기도 했다. 또한 양국 정상들은 6월에 '육상 국경선의 최종 국경표식 제막식'까지 가져,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이의 영토 획정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야당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더구나 내년(2013) 7월의 총선을 앞두고 통합 야당이 출범한 상태에서, 베트남 국경선 문제는 주요한 선거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훈센 총리의 5시간20분간의 국회 연설을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서 여론의 반전을 꾀하고자 한 커다란 정치적 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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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훈센 총리의 5시간20분 국회 연설 : 베트남 국경문제에 집중"
☞ "[기사목록] 2012년 캄보디아-베트남 관계" |
4. 약자들의 총기살해와 인권상황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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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uters) 불법벌목 현장을 감시하다 군인의 총격으로 사망한 저명 환경운동가 춧 우티 씨의 부인(우측)이 장례식장에서 오열하고 있다. |
'토지수탈'(=강제철거)과 '불법벌목', 그리고 노사분규는 최근 수년간 캄보디아의 가장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그와 관련된 시위나 활동들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도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금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사회적 약자나 정부의 비판자에 대한 총격살인이 연속되면서, 국내외의 우려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1월에 발생한 'TTY 사 관련 토지분규에서 주민들에게 가해진 총격사건', 2월에 발생한 '바웻 시 노동자 시위대에 대한 시장의 발포사건', 4월에 발생한 '환경운동가 춧 우티(Chut Wutty) 씨에 대한 총격 피살사건', 5월에 끄라쩨(Kratie) 도 강제철거 중 발생한 '14세의 소녀의 피격 사망 사건', 9월에는 북부지방인 로따나끼리(Ratanakiri) 도에서 '불법벌목을 폭로한 기자가 도끼로 살해당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의 범인들 중 어느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고, 끄라쩨 도의 강제철거 사건은 경우엔 도리어 민주화 운동을 해오던 '라디오 방송 사주를 반란죄 혐의로 체포'한 후 징역 20년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또한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석방되었던 '벙꺽지역 철거민 여성 13인' 중 1명 및 폭력 철거가 진행됐던 보레이 께일라(Borei Keila) 지역 철거민 여성 1명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다시금 구속'되었다.
이러한 캄보디아 상황에 대해 국내의 인권단체들은 물론이고, 국제적인 압력들도 거세게 일어났다. 캄보디아 담당 유엔 인권대표는 '8월에 발간된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토지분규 및 인권상황의 악화를 보고했고, 10월말에는 '유럽연합(EU) 의회가 캄보디아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호주 상원의회도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또한 11월에는 국제적인 인권감시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정치적 살인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하여, 훈센 정권이 지난 20년간 체계적인 암살단을 운영하며 수십 명을 살해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훈센 총리와의 비공개 회담'에서 캄보디아의 인권상황 악화가 양국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을 직접 경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캄보디아 정부는 총리가 직접 나서 유엔 인권보고관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등 조직적인 반발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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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목록] 캄보디아 토지분규 진행상황"
☞ "[기사목록] 캄보디아의 장미목 불법벌목 동향"
☞ "[기사목록] 2012년 캄보디아 사회 및 문화 동향" |
5. 아세안 의장국 맡은 캄보디아 : 중국 편향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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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Photo / Heng Sinith)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11월20일 프놈펜의 '평화의 궁전'(=총리 관저)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그의 가슴에는 서거한 시하누크 전임 국왕을 기리는 흰색 리본이 달려 있다. 훈센 총리는 폐막 기자회견에서 "시하누크 상왕께서 우리나라가 이런 큰 행사를 주최하는 모습을 못보시고 돌아가셔서 슬프다"며 눈물을 보이고, "피곤하다"면서 질문을 받지 않았다. |
캄보디아는 올해 아세안(ASEAN) 의장국을 맡아 주요 정상회의들을 주최하면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역내의 주요 문제들에 대한 조율 역할도 담당했다. 따라서 캄보디아는 올해 외교적 측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남중국해 분쟁에서 일방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빈축을 샀고, 야심차게 도전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 자격 역시 한국에 패해 결과적으로는 좌절을 경험한 한해였다.
캄보디아는 아세안 의장국 지위를 이용하여, <남중국해 행동지침 선언>(Declaration on the Conduct of Parties in the South China Sea: DOC)의 <행동수칙>(code of conduct: CoC)이 안건으로 채택되어 의결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이 분쟁의 국제화를 반대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철저하게 보호했고, 중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지원도 받아냈다. 하지만 필리핀과 베트남 등 역내 당사국들이 반발하면서, 2015년까지 경제공동체를 이루려는 아세안이 역사상 가장 분열되는 모습은 보이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필리핀의 경우 캄보디아의 움직임에 크게 반발했고, 결국 주 필리핀 대사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폐막 기자회견에 나선 훈센 총리가 "눈물"의 신파극을 벌이며, 기자들의 껄그러운 질문들을 사양하는 사태에도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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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목록] 2012년 캄보디아 정치 외교 군사 동향"
☞ "[기사목록] 2012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 및 군사 동향" |
6. 태국과의 관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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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FP / Khem Sovannara) 캄보디아와 태국은 7월27일 '쁘레아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주변의 분쟁지역에서 약 500명씩의 병력을 철수시켰다. 일년 전 흙먼지 길을 달려 파견됐던 캄보디아 군 병력이 새로 개통된 아스팔트 도로를 통해 귀환하고 있다. |
캄보디아와 태국은 2011년 상반기에 거의 준-전쟁급의 '유혈 무력충돌 사태'를 벌였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011년 7월18일 명령'을 통해, '쁘레아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인접 지역에 '임시 비무장지대'(Provisional Demilitarised Zone: PDZ)를 설치하고 병력을 철수시키라고 명령하면서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태국의 7월 총선에서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총리가 이끈 친-탁신계 정권이 출범하면서, 양국은 완전한 화해무드에 접어들었다. 이후 양국간 교역량과 방문객 수가 다시금 예년 수준 이상으로 회복되었다.
4월에는 잉락 총리의 오빠이자 '2006년 쿠테타'로 실각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태국 총리가 '캄보디아의 시엠립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대규모 집회'를 가졌고, 훈센 총리는 자신의 친구인 탁신 전 총리를 위해 물심 양면의 지원을 했다. 금년 7월에는 '양국 정상회담'을 거쳐 '쁘레아위히어 사원' 지역에서 '양측의 군 병력이 철수를 시작'하여 긴장완화를 상징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또한 '탁신 전 총리의 조카 딸과 캄보디아 재벌 아들이 결혼한다는 발표'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가 내년(2013)에 '쁘레아위히어 사원' 주변 땅에 대한 최종적인 영유권 판결을 예정하고 있어서,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는 상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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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목록] 2012년 캄보디아-태국 관계" |
7. 주식시장 거래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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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보도자료용) 캄보디아의 께엇 촌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4월18일 주식거래 개시를 알리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캄보디아 측 인사 300여 명과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유재훈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 우주하 코스콤 사장 등이 참석했다. |
'캄보디아 증권거래소'(CSX)가 '공식 개장'한 것은 2011년 7월 11일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CSX에 상장된 기업은 하나도 없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CSX는 금년 4월18일에야 '프놈펜 수도관리국'(Phnom Penh Water Supply Authority: PPWSA) 주식을 '상장시켜 거래를 개시'했다. PPWSA 주가는 거래 초기에 액면가(1주당 1.55달러)보다 고가(2.55달러)에 거래됐지만, 이후 곧 거래량도 감소했고 최근에는 액면가보다 약간 낮은 상태에서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캄보디아의 주식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면서, 여기에 지분을 투자했던 '한국거래소'(KRX)의 '라오스ㆍ캄보디아 주식시장 투자에 대한 논란'이 한국 내에서 일기도 했다.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원래 상장을 준비해오던 기업들과 일부 민간기업들도 2013년에는 상장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그러한 보도보다 실제 상황이 느리게 진행되긴 했지만, 아마도 2013년에는 캄보디아 주식시장에서 거래될 주식의 종류가 금년보다는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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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캄보디아 주식시장 전망 : 상장 준비 기업들 증가"(월스트리트 저널 2012-11-12)
- "라오스ㆍ캄보디아 거래소 상장사 단 3개 : 한국거래소 투자 논란"(연합뉴스 2012-10-10)
- "KRX 국민행복재단 : 캄보디아에 ‘KRX IT 직업훈련센터’ 설립"(뉴스와이어 2012-10-8)
- "캄보디아 유일의 상장 주식 : 지속적인 가격 하락세"(프놈펜포스트 2012-5-4)
- "캄보디아 주식시장 : 거래량 감소"(프놈펜포스트 2012-4-27) |
8. 크메르루주 국제재판의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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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CCC/Reuters) 키우 삼판 피고인이 '제002호' 사건 본심재판에서 ECCC 법정에 출두해있다. |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던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국제법정'(ECCC)의 전범 재판은 지난해 제001호 사건을 진행하여 깡 껙 이우(Kaing Guek Eav) 피고인에 대한 종신형을 선고했다. 깡 껙 이우는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기에 악명높았던 '뚜올슬렝 교도소'(Tuol Sleng prison: S-21 보안감옥)의 소장이었다.
ECCC는 작년 연말부터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사건번호 제002호 재판을 진행했다. 제002호 사건은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의 최고위급 실세들 가운데 현재까지 생존해있는 4인에 대한 재판이다. 여기에는 크메르루주 정권에서 '브라더 넘버 투'(Brother No 2)로 불렸던 누온 찌어(Nuon Chea), 외무부장관을 역임한 이엥 사리(Ieng Sary), 국가주석을 지낸 키우 삼판(Khieu Samphan), 이엥 사리의 부인으로 사회부장관을 지낸 이엥 티릿(Ieng Thirith) 피고인이 포함된다.
제002호 사건의 피고인들은 한 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인사들답게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누온 찌어는 "우리는 베트남의 침략에 응전했던 애국자들"이라고 주장했고, 키우 삼판은 자신들의 동맹자였던 "시하누크도 데려오라"며 역공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ECCC의 국제재판은 순탄치 못한 진행을 보이고 있다. 이 법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재정지원이 순탄치 않아서 일시적으로 직원들의 월급 지급이 지연되기도 했고, 제003호 및 제004호의 추가적인 사건조사에 캄보디아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한 유엔이 지명할 국제 판사나 검사들의 임명에도 잡음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재판소의 미래에 그늘을 드리우는 점은 피고인들이 모두 고령이라는 점이다. 여성 피고인인 이엥 티릿은 치매 증세에 시달리다 '이미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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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록] 크메르루즈 국제재판 진행상황 보도" |
10. 요인들의 신병이상설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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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EN) 3월24일 제3기 캄보디아 상원의회 개원식에서, 노로돔 시하모니(좌측 2번째) 국왕이 찌어 심(중앙) 상원의장을 부축하며 입장하고 있다. 우측의 인물은 상원의장 경호실장인 유임 리엉 중장으로서, 유임 처일 리 부총리의 아들이다. |
올해는 캄보디아 정부 정권 실세들의 신병이상에 관한 소문이 유행했다. 먼저 7월에는 훈센 총리의 최측근 인사인 속안(Sok An: 62세) 부총리 겸 관방부 장관의 간암설이 유포됐고, 8월에는 훈센 총리와 함께 정권 내 양대 계파의 리더이기도 한 찌어 심(Chea Sim: 1932년생) 상원의장 겸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 당의장의 사망설이 유포되기도 했다.
이같은 신병이상설의 유행은 집권 CPP의 장기 집권에 따른 사회심리적 피로감 및 세대교체기에 접어든 정계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2013년) 7월에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사회적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음을 반영해주는 현상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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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서실 : 찌어 심 상원의장 사망설 공식 부인"(Khmerization 2012-8-6)
- "찌어 심 캄보디아 상원의장 사망설 유포 중"(KI-Media 2012-8-5)
- "캄보디아 정부 : 속안 부총리 건강이상설 부인"(프놈펜포스트 2012-7-25)
- "캄보디아 관리 : 속안 부총리 겸 관방부장관 건강이상설 확인"(CEN 2012-7-19) |
* <2012년 캄보디아 10대 뉴스> 선정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도 후보군에 올라왔었다.
- 보시라이 사건 연루 프랑스인 사업가, 캄보디아에서 중국 송환 후 귀환
- 중국이 건설 중이던 캄보디아 댐 붕괴사고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상 최초 캄보디아 방문
- 마약사범의 대폭 증가 및 단속의 강화
- 장미목 불법벌목 및 관련 사망사고 더욱 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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