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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열다섯 중학생이던 때 출가를 감행하신 월암스님은 요즘 주무시다 자주 일어나 앉는다고 고백했다.
“내가 생긴 모양은 이래도 민감한 사람입니다. 늘 일대사에 대한 중압감이 떠나질 않는데 오십이 넘어가니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날이 많습니다. 이렇게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생각에 일어나 앉아 잠을 못 이루죠.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이라, 하늘의 명을 알 나이인데 그것은 고사하고 나의 명도 스스로 알지 못해 안심입명을 못하고 살아가니까 갑갑하죠.”
문밖에 염라대왕 신발 끄는 소리 들리는 것 같다는 스님께선 혼잣말처럼 이런 말씀을 했다.
“모든 것 놓아버리고 한 5년, 무문관에 들어가 나오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 경계 없이 마지막 청춘을 불태우면서 정진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심정입니다.”
죽음으로 뚫어야 할 관문인 무문관(無門關)에 들어가야겠다는 말씀 끝에 여쭈었다.
“지난 동안거 해제 법문에서 법정스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대들이 서 있는 자리가 곧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곧 도량이니, 기도수행을 한다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스님!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말씀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잖아요. 그래서 우린 잠시라도 세간을 떠나 기도도 하고 수행도 하고 싶어합니다. 스님께서도 그렇게 공부를 하시고도 무문관으로 들어가야겠다고 하셨잖습니까? 우리들 딜레마 아닙니까?”
“만공스님께서 ‘도반, 도량, 도사(스승)를 구족해야 공부한다’고 하셨죠. 이 세 가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스승입니다. 법의 안목을 제대로 가르쳐줄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스승은 회초리를 들고 업을 질타하고 전도된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올바른 길을 일러주는 분입니다. 그런데 신도분들은 아무리 법을 깊게 말해줘도 그때뿐입니다. 인정으로 잘 해주어야 따라옵니다. 이러면 무슨 법이 살겠습니까?”
이 부분에서 스님의 큰 목소리가 더 커지셨던 것 같다.
“불교는 ‘꿈을 깨라!’는 것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악몽도 길몽도 꿀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간밤의 꿈은 소몽(小夢)이고 인생은 대몽(大夢)이죠. 우린 지금 칠팔십 년에서 백 년 정도 큰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악몽이든 길몽이든 꿈인 것이니 ‘꿈 깨라!’ 하신 겁니다. 팔만대장경 법문이 그 하나죠. 그런데 한국 불교는 악몽을 꾸지 말고 길몽을 꾸라고 일러주고 있어요.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그걸 말해주고 있고 신도들도 그런 이야길 좋아하죠. 중생은 꿈에 젖어 있어서 꿈을 깨면 죽는 줄 알아요. 그리곤 늘 길몽 꾸는 방법을 묻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부끄럽게 듣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 가서 신수 묻기를 좋아합니다. 말이 좋아 가피이고 영험이죠. 내가 관세음보살을 몇 번 부르고 삼천배를 몇 번했으니 우리 집에 편안함이 오겠지, 건강하겠지 하는 것은 결국 꿈속의 일로 길몽을 꾸는 것 가르치는 거예요. 설사 방편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핵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꿈 깨!!’라고 하는 겁니다. 꿈 깨고 나면 산해진미를 먹은 자나 굶은 자나 똑같습니다. 꿈에선 부자를 매우 부러워하지만 꿈 깨고 나면 똑같습니다. 도를 깨쳐 바른 눈이 열리면 원수니, 친한 이니 하는 경계는 다 꿈속의 일입니다.”
스님의 법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좋은 일만 일어나고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기 원하는 것은 올바른 불교가 아닙니다. 칠불통게에서도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情其意)’라고 했습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야 한다고 했으나 그것에만 머물면 불교가 아닙니다. 자정기의, 스스로 그 마음(뜻)을 깨끗이 하라, 곧 자각기심(自覺其心), 그 마음을 깨달으라’‘를 행했을 때 앞의 것도 동시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상대적인 것이 아니고 그 전체를 다 보듬어서 중도로 회통되어질 때, 그러니까 세 번째 것을 깨우쳤을 때 선악이 올바른 것입니다. 역대 조사들께서 이런 말을 다 하셨어요. 요즘 신행 차원을 보면, 신도들은 스승을 찾아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간절하지 않습니다. 이젠 재가불자들이 스님들에게 화엄의 자리, 법화의 자리를 물어야 합니다. 화엄경 무슨 품이 이해가 안되니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열변을 토하시는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꿈은 어떻게 깹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괴로워서 죽거나 좋아서 죽거나 꿈속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누가 깨워줘야 합니다. ‘뭐 하냐’고 흔들어 깨워야죠.
공부를 해서 공부로 죽어야 합니다. 사중득활(死中得活 : 불가의 선사에서 내려오는 말. 완전히 죽은 데서 다시 살아난다)이라고 하죠. 악몽을 꿀 땐 최고로 막다른 골목에 가면 깨잖아요. 까무라치게 기쁠 때도 깨어나죠. 그런데 밤에 잠들어 꾼 꿈은 자고 일어나면 절로 깨지는데 중생의 업으로 인한 꿈(업몽)은 갈수록 깊어집니다. 나를 위한 기도에서 벗어나 교리 공부를 제대로 해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처음엔 어설퍼도 자꾸 해야 합니다. 수행은 반복입니다.
대혜 선사는 참선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선 것은 익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익은 업식망념은 설게 하고, 선 진여 본성 자리는 익게 하라는 뜻이죠. 수행은 반복입니다.
중생은 업으로 태어나잖아요. 업생(業生)이죠. 그래서 중생은 업을 반복하고 보살은 원생(願生)이라, 원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업생을 떠나 원생은 없죠. 중생은 앞이 가려 있으니 업이 되어버리고 보살은 트여 있으니 업이 원이 된 겁니다. 수행을 해서 벗어나야죠. 수행이 우리의 삶의 테마가 되지 않고는 업의 미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수행을 해야겠습니까?”
“경전 읽고 염불하고 주력하고 화두들고 하는 일 모두가 수행 아닙니까? 경전 독송은 지혜의 눈을 틔워줍니다. ‘간경자(看經者) 혜안통투(慧眼通透)’라고 했어요. 경전을 마음으로 보다보면 심안이 열립니다. 지혜가 열리죠. 염불을 하던, 화두를 들던, 주력을 하던지 일심으로 하면 업장소멸이 되는 겁니다.
용성스님은 ‘옴마니반메움’ 주력을 선 채로 9개월 동안 하고 선방에 들어갔는데 한 주만에 열려버리셨다고 합니다. 역대 고승들이 주력을 많이 했어요. 통찰하고 직관하는 것이 업장소멸이고 끊는 것입니다.
업은 분명 장(障)이 되면서 힘을 발휘하죠. 업력이라고 하잖아요. 금생에 익혀 습관이 된 담배도 그만큼 무서운 힘이 생겨 끊기 어려운데, 수억 겁 동안 자유분방하게 중생의 업을 반복해왔으니 수행한다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 방울 빗방울이 수천 년 동안 떨어져서 바위를 뚫잖아요.
수행은 반복이니까 무간단(無間斷), 틈이 없이 해야 해요. 물샐 틈 없이 일념으로 해야죠. 처음엔 잘 안됩니다. 하다보면 어느덧 도망가 버리고 없어지기 일쑤예요. 엄격히 말하면 화두도 망념입니다. 그러나 화두라는 일 념의 망념이 천 념의 망념을 누르는 거지요. 처음엔 잘 안되지만 반복이 되면 저절로 되어집니다.
<선요(禪要)>라는 책에 고봉스님이 ‘화두드는 것은 철로 된 밑 빠진 배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했죠. 끊임없이 젓지 않으면 물살을 거슬러 가지 못하고 뒤로 밀리는 것처럼 망념이 일어나면 이룰 수 없는 게 이 공부입니다.
수행한다는 것은 화두드는 사람은 화두로,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로 관조하는 것이죠. 탐진치가 올라오면 화두로, 염불로 돌이키는 것, 이게 마음공부요 수행인의 자세입니다.”
박원자의 <인생을 낭비한 죄> 144~149쪽
인생을 낭비한 죄
: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다
박원자 지음 325쪽 2011 김영사
2016.5.17.(화) 녹양도서관에서 대출 5.17(화) 저녁 6:50 타이핑 시작
저자: 박원자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인생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했던 스물세 살 때 불교와 처음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경위원을 역임했으며, 그동안 많은 수행자들을 만나 취재하고 그분들의 삶을 그린 글을 월간 〈해인〉에 기고했다.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슬로건으로 한 인터넷 사이버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며 수행에 대한 글을 쓰고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고 있다.
그동안 쓴 글로는 스님들의 행자시절을 엮은 『나의 행자시절』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이신 법전 스님의 수행기, 전 종정이신 혜암 스님의 유고법문집, 비구니 역사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동국제강 창업주이자 이 시대 유마거사로 불린 장경호 거사의 평전 『대원 장경호 거사』 등이 있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잤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아
깊고 외로운 산중에서 한없이 우셨다는 법전 스님,
“인생을 낭비한 죄는 살생보다 크다”고 말씀하신 혜국 스님,
나이 때문이 아니라 꿈을 버릴 때 늙는다는 백졸 스님,
정성을 다해 세상을 대하면 세상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_ 혜국 스님
누구든 밥값을 하지 않으면 도둑이나 다름없다_ 성철 스님
가져가는 것은 그의 일, 나의 일은 주는 것뿐이다_ 숭산 스님
끊지 말고 풀어야 한다. 작은 일도 풀기 쉽도록 고를 내라_ 탄성 스님
그리고 모녀 사이의 애틋한 교감이 느껴지는 딸아이와 함께한 삼천배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빛깔의 수행자들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가슴을 울리는 치유의 말씀들. 삶에 대한 깊고 감동적인 전언을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따스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살생보다 더 큰,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인생을 낭비한 죄!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혜국 스님의 이야기는 인생의 핵심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오늘 할 일, 오늘 만날 사람이며 하루를 정성을 다해 사는 것이 영원을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한번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박원자님! 고맙습니다.
첫댓글 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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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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