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회] (2009년 2월) 수종사를 안은 운길산
한상준
2월을 여는 초하루, 봄이 온다는 입춘을 며칠 앞두어서 일까, 겨울을 보내려는 봄의 입김이 거세어서 일까, 마치 3월의 온기 같은 걸 느끼면서 07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평상시엔 부평구청역까지 운동 삼아 걸어 다니는 길인데도 왠지 마음이 급하다. 시간은 다소 여유가 있으나 08시 10분전에 집결지인 부평역까지 가야겠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마침 택시가 눈에 띄자 얼른 손짓을 했다. 부평시장역에서 “오늘도 많이 버십시오.” 라는 인사를 나누고 인천지하철 1호선의 도움을 받았다. 부평역 플랫폼(platform)에 도착하니, 유당 김학수 선생님과 한 달 전에 닉네임을 얻으셨다는 찌르레기 박홍식 사장님이 나를 맞는다. 반가웠다. 바로 이어 관담 양승근 부회장님이 손을 잡으셨고, 잠시 후 낯선 분 한분이 김학수 선생님과 인사를 하는가 싶었는데, 모두에게 소개를 하신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는 ‘김성진’선생님이시란다. 젊음의 혈기가 넘치는 걸 보는 순간, 지난날 나의 교직생활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바로 이어 서동익 회장님 내외분이 밝은 표정으로 합류하신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08시 12분, 용산행 급행에 몸을 맡겼다. 회장님의 친절하신 안내가 임동숙 회원에게까지 전해진다. H.P의 편리함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하는 계기였다. 부천역에 다다르자 조금 전의 실감을 입증이라도 하듯 임동숙 회원이 승차한다. 이로써 오늘의 산행 가족은 모두 8분으로 확정되었다. 불과 30여분 후, 종착지인 용산역에 내리자, 바로 대기 중이던 ‘국수’행 열차에 환승하였다. 대부분의 승객이 배낭을 멘 것으로 봐 어느 山인지는 알 수 없으나 등산객임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열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 어느새 ‘운길산역’이란다. 일행이 하차하면서 주변을 살피니, 등산객을 위해 특별열차를 마련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배낭 맨 손님이 많았다.
오전 10시경 입산이 시작되자,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진중 1리 부녀회 구판장’에서 오늘 처음 선 보이신 ‘김성진’신입회원님이 막걸리 한 병을 사신다. 벌서 점심 때 반주가 기다려진다. 그 누가 2월을 도약의 달이라고 했던가? 날씨가 풀린 것처럼 요즘 어려운 경제도 풀렸으면 하는데 지금이 고난이요 시련이 아닌가 싶다. 작은 마을을 지나 이 산의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한 ‘수종사(水鐘寺)’에 오르는 길을 걷는다.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겨울동안 엄동설한(嚴冬雪寒)을 견뎌낸 나무들의 줄기에, 쌀 알갱이보다 작은 잎눈들이 금방이라도 싹을 틔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저것이 바로 희망이 아닌가 싶었다. 진중리 마을 안쪽에 있는 입간판을 보니 수종사까지 2km 지점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2km! 평지라면 별거 아니지만, 오르막길이여서 일까, 단숨에 오르기에는 힘에 부친다. 경사에 이리저리 구부러져 웬만큼 걸었는데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왼 차는 그리도 많은지…. 이리피하고 저리피하면서 타박타박 오르다 중간 중간 고개를 돌려 오르던 길을 내려다보니, 올려다보는 경관만큼이나 풍치가 솔솔하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강이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여 흐른다는 ‘양수리’란다.
드디어 11시 05분경 수종사에 다다랐다.(수종사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는 금년, 1. 25.에 서동익 회장님께서 보내 주신 산행안내문과 같아 생략함.)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위치한 수종사, 운길산(雲吉山) 중턱에 자리하였으며 동방사찰 제일의 전망이라 일컬어질 만큼 시원한 전경이 압권인 사찰이란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1939년 경내의 석조부도를 중수하면서 조선 초기 유물이 대거 발견됨에 따라 유물이 조성된 같은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한다. 또한 1890년(고종27) 풍계 혜일 스님이 고종에게서 8천 냥을 하사받아 폐허가 된 절을 중건하고, 이듬해 4천 냥과 금백홍사를 시주받아 사존 불을 개금했는데, 이 때 방광(放光)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사찰 내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찻집이 있으나, 우리 일행이 들어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하고 통과해야 했다. 대웅보전 옆으로는 석조부도와 삼층석탑, 팔각오층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22호)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부도는 1493(세종 21) 태종태후의 발원에 의해 조성된, 정의옹주(세종 2녀)의 부도로 8각 원당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중량감과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1939년, 이 부도를 중수할 때 발견된 고려시대 청자항아리와 그 안에 있던 금동제 구층탑, 은제도금 육각감은 보물 제259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절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기 위해, 등산객 모두가 이곳을 둘러 간다. 잠시 후 드디어 우리 일행의 차례가 왔다. 생수가 목마름을 잠재운다. 대웅보전의 앞마당을 지나 몇 걸음 옮기면 허름한 불이문이 나오는데, 그 안으로 고개 숙여 들어가면 세조가 중창 기념으로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높이 40여m에 둘레는 7m가 족히 넘을 것 같은 이 나무는, 전설 속의 나이대로 라면 550년을 훌쩍 넘은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 절을 비켜 왼쪽으로 약 30분 정도 오르니 ‘절 상봉’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 곳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약 20분정도 내려가니 헬기장이 보인다. 그 많던 등산객들이 이 헬기장 주변에 나름대로 끼리끼리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 일행은 좀더 정상 쪽으로 올라가, 양지바르고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각자 짊어지고 온 먹을거리를 꺼냈다. 입산 초기에 김성진 신입회원이 사들고 오신 막걸리로 목축임을 하니, 옛날 모내기 할 때 새참거리로 마시던 농주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모두들 푸짐한 점심거리를 풀어 놓았다. 회장님 내외분이 애써 지고오신 먹거리가 눈길을 끌었다. 맛있는 양념을 발라 만든 주먹밥,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것, 수십 개를 은박지에 쌓아 먹기에 아주 편리하다. 김학수 선생님이 커다란 감귤 2개를 내놓으시자 ‘야, 크다’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바로 이어 박홍식 사장님이 내 놓으시는 노리끼리한 매실주로 일 순배를 하자 굶풋했던 점심이 더욱 입맛을 돋운다. 내 도시락을 열자 아직은 식지 않은 밥이 집에서 먹는 것 보다 훨씬 맛이 좋다. 식사 후 입가심으로 가져온 귤은 희망에 따라 드시게 하고, 요구르트를 한분에게 두개씩 드리고 나니 어느 한분은 한개만 차지가 되되어 미안하다. 그러나 없는 것보다는 났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모님이 제공하시는 녹차도 일품이었다. 산행의 상큼한 맛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점심! 시장기를 달래어 좋긴 하나, 다소 나른함을 느낀다.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제2의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 가을에 진 낙엽이 가루가 될 정도로 많은 발길이 오갔다. 그 길을 우리도 다를바 없이 밟는다. 13시 20분, 운길산 정상에 오르자 해발 610m란 팻말이 우리를 반긴다. 좁다란 사각정이 쉼터를 제공하였으나 많은 분들의 웅성거림 속에 더 쉴 수가 없어 약 5분 후, 바로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달리 다소 급경사가 많다. 여름 한 때 장마철이나 소낙비를 받아 흘려보내는 계곡의 바위사이로 아직도 덜 녹은 얼음이 봄을 기다린다. 회장님께서 기다란 막대 하나를 꺾어 주시면서 조심히 내려가라신다. 어찌나 고마운지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그런데 아뿔싸, 이를 어째! 뒤 따라 오시던 일행 중 양승근 부회장님이 발을 헛디뎌 약간의 부상을 입으셨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으나 그 통증이 다소는 지속될 것을 생각하니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위안의 말씀을 전하였다. 우리 모두 산행시엔 언제나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려와 보니 오르던 길과는 달리 비닐하우스가 꾀 여러 개 보인다. 호기심에 내부를 살폈다. 딸기를 우리에게 선사할 입새들이 모두 너덧 잎씩 나와 키 재기를 하며 자라고 있다. 그 안에서 딸기 모종의 잎을 손질하는 네 명의 인부가 열심히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그래, 무슨 일이든 노력한 만큼 땀의 대가를 얻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침에 내렸던 운길산역에 다시 가니 15시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열차 운행 시간표에 시선이 간다. 15시 27분에 용산행이 있다. 아침에 올 때처럼 그렇게 많은 승객은 아니지만 상당히 분빈다. 승강장에 나가 다시 운길산 쪽을 바라보니 예스러운 정치(情致)가 그윽하여 고색창연(古色蒼然)함을 느끼게 한다. 그로부터 약 1시간이 지난 16시 20분경, 종착역인 용산역에 도착하였다. 약 10분 후, 바로 그 승강장 반대 철길로 용산발 동인천행 급행열차가 진입한다. 노약자 석에 앉아 명상에 잠긴다. 즉 <세월이 흘러 삶의 풍파 속에 아기의 그 예쁜 모습과 새순이 자라, 모진 역경을 견뎌온 세월의 흔적이 우리 인간이나 나무도 세월 앞엔 초연(超然)할 수가 없구나. 나무도 이러할 진데 감성을 가진 우리 인간이 살아온 길은 파란곡절이 오직 많았으랴. 이제 삶을 달관하고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 저 고목처럼 세월의 흔적 드러내 놓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랴. 저 나무가 우리네 인생처럼 고목이 되기까지는 모진 비바람과 천둥이 몰아쳐도 불평불만은커녕 그 자리에 변함없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음이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바가 크지 않은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시끄럽게 굴면서 사람으로 말하면, 수족과 같은 곁가지를 마구 잘라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저렇게 세월의 얼룩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무를 일컬어 “나무는 철인이요, 安分知足의 賢人이다” 라고 어느 필자가 나무를 칭송했다. 나도 죽으면 분수에 만족하며 절개를 지키는 나무가 되고 싶다.> -노인과 고목. 중에서-
부평역에 내리자 어느덧 해가 서산에 기운다. “그냥 헤어질 수 없으니 저녁식사나 하고가자”는 회장님의 말씀에 모두가 공감한다. 김학수 선생님이 안내하는 곳, ‘신토불이’라는 식당이다. 나는 부평에 살면서도 처음인데 우리 김학수 선생님은 얼마나 발이 넓으시기에 이런 곳을 안내하시나 싶었다. 바로 음식이 나오는데 불포화지방이라 우리 몸에 좋다는 오리고기다. 날(生) 오리고기 만인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양념을 한 오리고기,(일명 샤브샤브) 이름 하여 ‘금상첨화’란 요리였다. 이렇게 안주가 좋은데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 소주잔이 몇 순배 오가고, 점심 때 먹다 남은 매실주도 바닥이 날 때까지 한몫 하였다. 찌르레기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언제나 느끼는 행사지만,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헤어지는 이 맛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랴. 여름 불볕더위를 잘 견뎌내야 달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듯, 힘든 과정을 이겨 낼 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지고 강해질 수 있다는 진리를 되새겨본다.
첫댓글 교장 선생님!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산행기가 게시될 줄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만사 제치고 이렇게 빨리 산행기를 작성하셔서 올려 주신 점 전 회원님들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활달하고 거침없는 행문, 시를 쓰시는 분들한테서 이런 진솔하고 자기 속을 다 보이듯 수사가 가미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내보여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문장에서 새로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운길산 정상에 오르자 해발 160m란 팻말이>라는 문장에서 <160>을 <610>으로, 또 <인산산행기> 안내문 <글 제목>도 고쳐 주십시오. 선생님이 오기하신 것 같습니다.
회장님 오자를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숫자, 1과 6을 바꾸어 썼군요. 몇번을 검토한 후에 올렸습니다만, 제 눈에는 당연히 610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수종사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 생략 이유를 쓰면서 '회장님의 산행안내'라 했지 '산행기 안내라' 쓰진 않았으니 재 확인 바랍니다.
선생님 산행도 어려우셨을텐데 철저히 기록하셨네요. 제가 곁에 다녀온 것 처럼 상세히 읽다보니 함께 못 간 것이 속 상하네요.
과찬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서동익입니다. <인산산행기> 안내문 제목 쓰는 곳에 보면 <수종산을 안은 운길산>이라는 산행기 제목 적는 칸이 있는데 그 글제목도 본문 제목처럼 <수종사를 안은 운길산>이라고 고쳐 주십시오. 선생님이 오기하신 것 같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지적하신대로 산자의 'ㄴ'을 빼고 '사'로 바로 잡았습니다. 쓴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썼으려니 라고 생각해서 일까요? 오자가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다음부터는 천천히 여유를 두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읽기는 일찍 읽었으나 소감으로 꼬리말을 올리려다 컴이 말을 안 들어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산행하던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르도록 꼼꼼한 글 재미 있게 잘 보았습니다. 철저하게 메모하시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신 글이어서 더욱 감명 깊었습니다. 읽을 거리를 제공해 주신 점 재 감사드립니다. 다음 로 예정 되어 있는 인왕산(월 산행 계획안에 있슴)도 함께 할 수 있겠지요
서툰 글 솜씨를 감명 깊게 읽으셨다니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더욱 잘쓰라는 채찍으로 받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다음달 '인왕산'에 함께할 예정입니다만, 날이 갈 수록 체력저하로 동행하신 분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