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순흥
1457년(세조3년) 순흥은 역사 속에서 흔저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으로부터 553년전 금선대군과 이보흠 순흥 부사가 주도한 단종복위 거사는
밀고로 실패했고 '정축지변(丁丑之變)'이란 참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금성대군이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순흥에 유배되어 와 있다가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다시 거사를 도모하다 실패한 사건은 순흥을 뒤흔들었다. 숱한 백성들과 아이들은 물론 우마계견이 죽임을 당하고 순흥부는 폐부되었던 것이다.
정축지변(丁丑之變)은 위리안치(탱자나무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심한 유배형)되었던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 등 지역 유림이, 이웃한 영월에 유배된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던 사건이다.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고 충신이었던 사람들이 엉뚱하게도 ‘국가 전복 기도 주모자’들로 몰려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으면 그렇게 멀리 피끝마을까지 흘러갔을까?
정축지변 후 225년이 지난 1682년 숙종 때 읍으로 복원되었다고 하니 그 오랜 시간동안 순흥은 ‘역적 마을’이었다.
이들의 충절을 기억하고 추모하기위한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영주문화원이 주최하고 영주문화보존회(회장 김태환)가 주관하는 제2회 유계향토사연구발표회가
2010.10.12(화) 14:00-17:00
영주상공회의소 3층 대회의살에서 열렸다.
영주시와 영원군의 향토사 연구학자들이 대거 발표에 나섰고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발표 주제:단종과 금성대군의 애한
발표:김태환/영남의 단종 절신//영주문화보존회장
엄흥용/단종과 금성대군의 신격화와 제의//영월향토사연구회장
권용학/금성대군 위리안치지의 위치와 금성단 성역화 기본 방향//금성단 성역화추진위원장
유계(幽溪)/송지향의 호
흰 바지저고리와 두루마기만을 고집 백의현자(白衣賢者)로 불리는 고 송지향(宋志香)
선생님은 항상 꼿꼿한 자세 와 청정한 생활로 우리고향 「마지막 선비」로 추앙받고 있다.
사회자/김용기//영주문화유산보존회
국민의례
내빈소개
회장 인사/김태환//영주문화보존회장
축사/영주향교 전교
발표/김태환//영주문화유산보존회장
발표자2/엄흥용//영월향토사연구회장
발표자3/권용학//금성단성역화추진위원장
토론/질의 응답
영주문화유산보존회원/영주의 뿌리를 찾는 사람들
첫댓글 언제 이리 많은 사진 찍으셨데요?? 참 보기 좋습니다.
사진이 너무 잘나왔고 설명까지 ....감사드립니다..... 사진 잘못찍었다고 회장께 야단 맞았는데.. 이날은 정말. 죄송....다음부터는 잘 찍을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