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Michael Joseph Jackson. 마이클 잭슨은 록으로 매우 유명했던 음악가족 멤버로 인디애나주 개리에서
자랐다.
마이클의 아버지 조셉은 자녀 다섯 형제로 '잭슨 파이브'(Jackson 5)라는 화려한 어린이 스타 그룹을 만들었는데,
마이클은 다섯 형제 중 제일 어렸으나 재능이 가장 뛰어났다.
마이클 외에 잭슨 파이브는 재키 잭슨(시그먼드 잭슨의 예명, 1951. 5. 4 개리 출생), 티토 잭슨(토리아노 잭슨의
예명, 1953. 10.15 개리 출생), 저메인 잭슨(1954. 12.11 개리 출생), 말론 잭슨(1957. 3.12 개리 출생)로 구성되었다.
모타운 레코드사의 사장 베리 고디 주니어는 이 그룹에 매료되어 1969년 계약을 체결했다. 화려한 의상,
부풀린 흑인 헤어스타일, 활기찬 안무, 젊고 풍부한 감성을 자랑하며, 잭슨 파이브는 곧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1970년에 〈돌아와주오 I want you back〉, 〈ABC〉, 〈당신이 간직한 사랑 The Love You Save〉,
〈내가 갈게요 I'll Be There〉의 4곡으로 연속 1위 히트곡을 냈다.
마이클이 솔로로 부른 〈벤 Ben〉은 팝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고, 〈Rockin' Robin〉은 2위에 올랐다.
잭슨 파이브는 〈댄싱 머신 Dancing Machine〉 같이 유행을 주도하는 댄스 음반을 발매하면서 1975년까지 모타운에서 흥행을 계속했다.
마이클은 성숙해가면서 목소리가 변했고 가족 간 갈등을 일으키기기도 하면서 계약 기간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이 그룹은 결국 모타운과 결별하고 '잭슨스'란 이름으로 에픽 레코드로 이적했다. 저메인은 솔로가수로 모타운에 잔류했고,막내 동생 랜디 잭슨(본명 스티브 랜들 잭슨, 1961. 10. 29 출생)이 그의 자리를 대체했다.
음반 제작활동으로 잭슨스는 1984년까지 연이어 흥행을 누렸고 그들의 여동생 자넷 잭슨은 1980년대 초반에 독자적인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이클의 솔로 앨범의 성공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에픽 레코드에서 낸 잭슨의 첫 솔로 앨범 〈오프 더 월 Off the Wall〉(1979)은 그 해 베스트셀러 앨범이 되었다.
이 분야의 노련한 대가인 퀸시 존스가 제작한 〈오프 더 월〉은 국제적으로 히트 한 〈충분할 때까지 멈추지 말아요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와 〈당신과 함께 록을 Rock With You〉를 담았다.
이 두 곡은 마이클의 열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고 당시 유행했던 디스코 댄스를 이용했다.
3년 후 그는 존스와 또 하나의 합작품인 〈스릴러 Thriller〉로 돌아왔다.
<스릴러〉는 여러 명의 게스트 스타들을 포진하고 그를 세계적 슈퍼스타로 격상시킨 역작이었다.
<스릴러〉는 4,000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8개의 그래미상 수상 기록을 세우는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사상 최다 판매 앨범이 되었다.
이 앨범의 첫 싱글인 〈더 걸 이즈 마인 The Girl Is Mine〉은 폴 매카트니와의 편안한 듀엣곡으로,
1982년 리듬 앤드 블루스 차트 1위와 팝 차트 2위를 기록했다.
후속 싱글은 〈빌리진 Billie Jean〉이었는데, 이는 전자댄스 음반이자 잭슨의 트레이드마크인 〈문워크 moonwalk〉 댄스의 매개체였다. 이 곡은 〈빗 잇 Beat It〉과 마찬가지로 팝 차트 1위에 올랐다.
〈빗 잇〉은 유명 기타리스트 에디 반 해일런의 요란한 솔로로도 유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빗 잇〉은 라디오와
새롭게 부상하는 텔레비전 뮤직비디오 체제에서 흑백 아티스트들 사이의 장막을 허무는 데에도 기여했다.
1984년까지 잭슨은 '팝의 제왕'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고대했던 형제들과의 재결합 공연은 1984년 가장 인기 있었던 음악 공연 중 하나였다.
이후 솔로 앨범인 〈배드 Bad〉(1987)와 〈대인저러스 Dangerous〉(1991)는 팝 음악에 관한 잭슨의 권위를 공고히 했다.
잭슨 파이브가 1997년에 올랐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2001년에는 마이클이 올랐다.
잭슨의 별나고 은둔적인 사생활은 1990년대 초반 논란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1993년 잭슨은 알고 지내던 13세
소년에게 어린이 성추행으로 고소당해,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민사소송은 법정 밖에서 합의되었다.
1994년 잭슨은 비밀리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으나 결혼은 2년이 안 되어 끝났다.
이후 잭슨은 다시 결혼하여 아이들을 얻었으나 이 결혼 또한 이혼으로 끝났다.
국제적 명성이 지속되고 미국 내에서 그의 이미지가 천천히 회복되어 가는 듯했으나,
2003년 11월에 어린이 성추행으로 체포되고 기소되자 그는 또 한 번 곤욕을 치렀다.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었던 14주 동안의 심리 후, 잭슨은 2005년 무죄로 석방되었다.
2009년 컴백 공연을 준비하던 마이클 잭슨은 6월 25일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LA의 한 병원에 후송됐지만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