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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벧전 1:13-21
1.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벧전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거룩은 “분리”, “구별”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피조물과 완전 분리되어 절대적으로 순결하시다는 뜻이다.
서방이나 동방이나 문제는 하나님과 피조물을 혼동하고 그 연장으로 보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시고 심판주이신 것은
그분이 피조물과 완전 분리되고 그 거룩한 속성이 절대적으로 다르기에 가능하다.
세상은 같은 것들이 다르다고 하면서 특권과 차별로 살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예배와 섬김의 대상이신 그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여 구별한 사람들이 성도들이다.
거룩한 분이 택하셨으니, 그 거룩한 분의 백성이 되었으니, 성도가 되었으니 거룩하라고 하신다.
거룩한 자가 되어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하신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면 그분께 속한 사람이 함부로 인생을 살 수는 없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품과 문화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성도들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이 물려준 헛된(망령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를 대속하는 제물로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그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대속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그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씻으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해주셨다.
그런데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듯이 할 수는 없다.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진정한 회심을 하였다면 그렇다.
그러나 조상들이 물려주고 우리 부모들이 어릴 적에 심어준 행실들은
우리 몸과 마음에 베어 있기 때문에 광야생활의 훈련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은 씻어내게 하신다.
광야 생활의 고난과 훈련을 통해 씻으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도 없는 정신과 의사들,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리학에 우선권을 둔 사람들은
겉은 좀 씻어내고 극심한 것들은 좀 완화시킬 수 있을는지 몰라도
그런 것으로 씻어낼 수가 없는 것이 조상이 물려준 옛사람과 그 행실들이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씻어낼 수가 없다.(회심)
그리고 그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 몸에 남아 있는 죄의 행실들을,
말씀으로 고난으로 성령으로 점차 씻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성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은 회심과 성화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오직 우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우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하는 것이다.
2.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야 한다.
(벧전1:17) 외모롤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겉에 있는 모습만을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중심과 행위대로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은 통치하시고 마지막 날 하나님은 반드시 각 사람을 심판하신다.
인류 역사는 심판을 증거하고 있고, 성경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나그네로 있을 때 행위, 심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다.
다음 세상이 있고 영원한 세상이 있다. 죽은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쓴 성경이 확실하게 증거하는 바이다.
그 영원한 세상에 비하면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다.
나그네가 목적지를 가면서 잠시 스쳐가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다시 가는 나그네 인생인 것이다.
다윗의 고백이다.
(대상29: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시편도 우리 인생이 그림자 같다고 증언한다.
(시102: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시144: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우리가 돌아갈 본향은 따로 있다. 하나님이 예비한 성이 있다.
(히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와 그림자에 불과함을 우리가 항상 인식해야 한다.
청교도들처럼 천국을 눈에 넣고 살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본향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 나그네와 그림자 같은 생애가 이후의 영생의 삶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벧전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순종하는 자식이 되었으니,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사리사욕을 본받아 사는 것이 세상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구별되고 선택되기 전까지 살았던 삶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
어떻게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사람들처럼 두려움 없이 살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 없는 사람은 결국 정욕과 사욕과 탐욕을 따라 살게 되어 있다.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법과 양심을 잘도 얘기하다 자기의 이익과 명예에 관련되면
사람은 그렇게 쉽게 사욕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사욕은 근원인 정욕에서 나오고, 사욕은 탐욕으로 자란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사로운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고 그 죄가 장성해서 사망을 낳는다.
사람은 안 되면 남 탓, 환경 탓 하다가, 아니면 조상 탓, 더 나가면 하나님 탓을 한다.
자기의 사욕과 죄가 지금 사망과 같은 불행과 비극을 낳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욕과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새로운 존재, 새 삶을 살 수 있다.
회개하고 영접하였으면, 이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 이상 사욕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이러한 사욕과 죄에 대해서는 날마다 죽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두려운 마음으로 삶으로 거룩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이 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
축복과 영광은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섬김과 거룩한 삶으로 받는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은 축복과 영광을 하나님이 주시기 위함이다.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 되라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고 행복과 영광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사욕과 죄에 탐닉하는 한 저주와 사망, 불행과 비극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이 땅에서도 그렇고, 마지막 날 심판에서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하고 회한의 눈물을 쏟아도 돌이킬 수가 없다.
이 땅에서도 풀리지 않는 인생, 흑암과 혼돈과 공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루라도 빨리 회개하고 광명을 찾아야 한다.
내 회개하지 않는 죄가 내 가까운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고 함께 흑암과 혼돈에 가라앉게 한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먼저 근본적으로 씻어내고
이후로는 그분을 내 중심에 모시고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되어,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품과 삶에 있어서 주님을 닮아가며 행복을 맛보고,
약속된 풍성한 기업을 푯대 삼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달려가야 한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3.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해야 한다.
(벧전1:20-21)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소망은 우리가 앞으로 바라는 것이고, 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은 소망이 있으면 활기찬 인생을 살고, 준비하는 즐거움이 있다.
소망이 끊어지고 잃어버리니까 사람들은 우울한 삶을 살고 심지어는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가 된다고 하신다.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눈으로 그 바라는 것의 실상을 볼 수가 있고 증거할 수가 있다.
믿음의 대상과 소망의 대상은 같은 것이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소망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고, 그 하나님과 약속을 내 소망으로 삼는다.
믿음은 소망을 실상으로 증거로 잡을 수 있다.
현재의 내 모습과 환경이 다가 아닌 것을 안다. 그래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한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고,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올 것을 믿는다.
(롬2:9-11)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세상은 겉 모양만 보고, 겉에 가진 것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취한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행하는 것을 보시고 사람을 판단하고 취하신다.
이런 분이 계시고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
소망이 있고, 믿음으로 살 수가 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기에 믿음과 소망이 있다.
이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많이 이뤘다고 그분이 상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욕에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고서는
이 땅에서 부와 권력에 있어서 성공하거나 성취할 수 없다.
그래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의인의 형통은 사리 사욕이나 탐욕의 산물이 아니라, 거룩과 의와 선의 산물이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그것을 믿거나 소망으로 붙들고 부러워하지 않으시기 바란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우리는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신다.
행여 죄와 사욕과 세상과 사탄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말씀의 법도대로 섬기고 말씀의 법도대로 살고 성화를 이룬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신다. 이를 온전히 바라라고 하신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 항상 중요하다.
(벧전1:20-21)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성자 하나님으로 계신 분이시다.
이 분이 말세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믿게 되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게 하신 분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남은 생애와 영생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고 그 하나님만 믿으시기 바란다.
사람은 나그네와 그림자일 뿐이다.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광도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만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과 영혼이다.
영원한 분과 영원한 진리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사시기 바란다.
우리 모두 의인의 형통을 받고 누리고 영생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