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도봉산을 오르다 임동숙
늘 그렇듯이 이날도 그랬다.
하루전날 마음이 들뜨고 무슨옷에 무엇을 점심으로 싸갈까.. 파전을 해갈까? 닭도리탕을 해갈까? 이런저런 생각을 갖다가
정작 당일날은 시간에 쫓겨 아무것도 준비 못하고 허겁지겁 씻는 시간을 이용해 계란 대여섯 개을 삶는게 고작이다.
거기다 좀 부족하다 싶으면 김밥집에서 김밥 한줄 추가~~
늘 염치 없지만 이것이 내 한계다. 일요일이면 정말 하루종일 자고 싶은 마음이 안드는게 아니기에 갈 수 있는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친구(한혜영씨)와 송내에서 만나기로 하루전날 약속을 하고 기다리다가 부평에서 출발하시는 회원님들이 타신 전철을
탔다. 무전같은 신호를 주고 받으면서......
전철을 타니 제일먼저 몇달 만에 본 김문호씨가 서 있었고, 그 맞은편에 이담하, 임노순 선생님이 나란히 앉아 계셨다.
저 쪽편 좌석으로 한상준 선생님, 임평모 박사님과, 서동익 회장님이 앉아 계셨고, 오랫만에 오신 박경하 선생님도 함께 계
셔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이렇게 모인 인원은 (어른7명에 꼬맹이 2명(한혜영씨 아들-박제윤(초딩2년), 내아들 윤정웅(
초딩4년) 해서 합이 11명 이었다.)
늘 사진 찍어주시느라 바쁘셨던 양승근 부회장님과, 회사일의 교대근무로 참석못하시는 조성범 산행부장님과, 아직도
사모님의 완쾌가 되지 않아서인지 심경의 변화가 생기셨는지 2년동안 개근을 하셨던 김재덕 선생님과 아들 정웅이에게
세뱃돈을 주셨던 박홍식 선생님,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분들 모두 산을 무엇보다도 사랑하시기에 다음 달에는
뵐 수 있을런가 고대해 본다.
길다면 긴 전철에서의 시간이 흐르고 도봉산역에 도착, 역을 나오니, 많은 인파가 떼지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역시나 유명한 산이라 사람도 많고 먹거리도 많고 길가 에서는 헌모자 주면 새모자로 바꿔준다는 재미있는 장사꾼도 있었다
사실, 많은 산을 다녀 봤지만 도봉산은 처음이었기에 더욱 기대가 컸었다.
뭐니뭐니해도 안가본 산을 가본다는것이 젤 신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산 리스트를 적어놓고 다녀올때마다 발자국 도장을
쿡쿡 눌러놓을 때면 무슨 큰 일을 성취한 기분이 들어서 좋다. '도봉산, 도봉산 힘들다' 라고 귀동냥만 했던지라 산행을
하는 내내 곳곳의 명칭이라든가 유래라든가 간판의 설명 따윈 관심도 없었다. 다만, 도봉산이 이런산이었구나! 바위도
멋있고 사람도 많고 암벽타기 제격이고, 먹거리도 많고,,,내가 바라본 앞 바위에선 실제로 깨알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암벽을 타고 있었다. 한명도 아닌 서너명이,,, 여자분도 있어 보였다. 그런분들은 목숨이 두갠가? 난 목숨이 두개라도 암벽
만은 해보고 싶지 않은데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초여름 날씨를 초월하는 무더움 때문인지 올해들어 제일 힘든 산행이었던것 같지만, 이정도의 힘듬과 땀이 흘러야
'산' 이라고 불러 줄 수 있다고 본다. 정말로 오랫만에 얼굴과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들이 그 동안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물론 몸 구석구석에 쌓인 씨잘데기 없는 지방덩어리를 씻어 주는듯 하여 붉게 상기된 얼굴빛처럼 몸에선 빛을 뿜어
내는 듯 황홀했다. 꽤 짧지 않은 고행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정상의 자리에 발 디디고 싶은 마음에 쉬지 않고
천천히 라도 계속 걸었다. 준비된 것도 없는데 회장님께서 산행기를 쓰라고 하셔서 '에라 모르겠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 싶어 쓰겟다고는 했는데 이태까지 걸어온 자취가 기억에 하나도 없네.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 마지막 깔딱바위는 네 발로 줄을 잡지 않으면 안되는 무섭고도 힘이 겨운 절벽이었다.
올라가는건 힘으로, 깡으로 올라간다지만 올라가면서도 내려오는 것이 더 걱정이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 두번째 산행을 해 본다는 친구 혜영씨의 아들래미 제윤이는 공포에 떨며 기다시피 정상에 도달하여서도 고개만
숙인채 겁을 먹은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상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쉬고 있는데 박경하 선생님께서 몸이 안좋으시다며
도중에서 기다리신다는 전갈을 받고 정상에서의 단체사진을 못찍고 서둘러 내려오는데 역시나 공포 속에서 밧줄에 의지해
깔딱바위를 내려오니 앞쪽에 박경하 선생님과 몇몇분이 서 계셨다. 오랫만에 산행에 나오신데다가 푸짐한 음식 보따리 땜
시롱 기력이 먼저 쇠하신 것이다. 마땅한 곳을 찾아 각자 준비한 먹거리를 풀었다. 늘 감탄하신 것이지만 아침에 이러한
음식을 어떻게 준비를 하셨나 먹기 바쁜 나로서는 늘 다짐하는 '소식'을 지킬 수 가 없었다.
알코올성 치매증상 2기 정도가 되었는지 나는 언제 부턴가 하루전 일을 기억을 못한다. 그러니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그
때의 먹었던 음식들을 어찌 기억을 할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기억나는건 오랫만에 나오신 박경하샘은 푸짐한 음식 덕분에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 나로선 맛있게 감사하게 먹었다는 걸로 인사를 대신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앞으론 음식으로 인해 그렇게 고생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들고 메고 오시는 분도 고생스럽지만, 뒤에서 보이지
않는 수고를 하시는 분들 때문이다. 그저 없으면 없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먹고 서운하면 근방 음식점에서 한끼를
사먹을지라도 우리는 만남이 좋고 산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게 아닌가 싶다.
배는 부르고 햇빛 쏟아지는 가운데 중간중간 불어오는 봄바람에 나른한 몸을 휘청이며 조심스런 하산길에 씨원한 생맥주
한잔이 얼마나 그립던지.... 그 마음을 회장님께서 아셨을까? 아님 마음이 통해서일까 애초에 인천으로 가서 저녁을 먹자던
계획을 바꿔서 근처 음식점 (도봉산 명문집)에서 젤루 맛있다는 족발에 파전에 메추리구이를 불러놓고 생맥주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산행의 묘미를 난 이런점에서 즐기는 편이다.
다음달의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고 전철에 몸을 실고 나와 내 아들 정웅이가 제일 먼저 부천역에서 내렸기에 그 다음 스토리는
모른다. 다들 무사히 귀가하셨기에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으신게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집을 한 100M 앞에 두고 아들과의 대화가 입가에 주름지게 한다.
정웅 : (퉁명스럽게, 힘을 주며) "엄마! 나 다음엔 산에 안가요!! "
엄마 : (째려보며, 강하게) 왜!
정웅 : (힘없이 바라보며) "개콘(개그 콘서트) 못 보잖아......"
엄마 : (한심하게 바라보며) "에라~~~ 미친놈아 !" (속으로) '니가 그래봤자 아직은 엄마를 거역못하제~~아무리 귀찮아도
끌고 다닐 수 있을때 까정 델꼬 다닐거니까 꿈 깨라~'
" 빨리 가면 반은 볼수 있겠다 . 뛰자!! " 하고 들어온 시간이 9시 반이었다.
첫댓글 온새님 반가워요. 즐거운 도봉산행이었군요. 저도 좋아하는 산인데- 5월 산행도 가요제 2차 예선이라 참여하긴 틀렸고- 맨 끝에 아들과의 대화가 백미였습니다.
샘~~ 반갑습니다. 관장님 얼굴 잊어버리겠어요.. 언능 뵙고 싶어요. 보고 잡아요....
감성 깊은 산행기로 참석 못한 서운함을랠 수 있어 감사하고 다행입니다. 오랫동안 용광로에서 삭혀낸 산행기라 그런지 짧지만 그 날의 모습이 눈에 보일 듯 상상이 됩니다. 또한 원곡 선생님의 말씀마따나 마지막 대미가 백미로 손색이 없습니다. 한데 본인은 5월 산행도 빼먹어야 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안 좋던 발목이 삐끗, 평지 걷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데 산행하기에는 좀 무리가 아닌가 싶어 5월 산행까지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 못해 죄송하고 산행 못하게 되어 아쉽습니다. 멋진 산행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