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경주 인경도 되지 말고, 전주 인경도 되지 말고,
송도 인경도 되지 말고, 장안 종로 인경되고, 나는 죽어 인경 마치 되어, 삼십삼천(三十三天) 이십팔숙(二十八宿)을 응(應)하여, 질마재 봉화(烽火) 세 자루 꺼지고, 남산 봉화 두 자루 꺼지면, 인경 첫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다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 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뎅' 도령님 '뎅'이라 만나 보잤구나’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의 '사랑가' 대목 가운데 '이도령이 부르는 노래'에 질마재와 남산의 봉화가 등장하면서 러브 스토리가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봉수’는 흔히 ‘봉화’라 하며, 이리 똥을 태워 연기를 낸다고 해서 낭화(狼火), 낭연(狼煙)이라고도 한다. 즉, ‘봉수’는 수십 리의 거리를 두고 서로 살피기 좋은 요지의 산 정상에서, 국방상의 중요한 임무를 발휘해 위급한 일을 빨리 알리는 경비 전신 역할을 맡아하던 중요한 시설이었다. 봉수처럼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의 높은 산정에서 횃불이나 연기로 신호를 보내어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봉수제는 세종 대에 이르러 고려시대 규제를 바탕으로 하고, ‘당률(唐律)’과 ‘대명률(大明律)’ 등 중국의 제도를 참고로 하여 거화거수(擧火炬數) 등 관계 규식을 새로 정비 및 강화된다. 하지만 봉수제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왜적의 침입이 빈번하던 시기에 국가 군사 통신망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선조 말년 경부터 파발제가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치폐의 논란이 제기됐다. 이후 1894년(고종 31)에 근대적 통신법인 전신 전화가 도입된 후 완전히 폐지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국경 방어유적인 관방유적’ 산성(山城)이 최근 들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고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등이 축제를 개최하는 등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고 조사가 활발한 것에 반해 봉수(烽燧)는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방안 마련이 더욱 절실하다. 특히 현대의 디지털 광통신의 원형으로서, 고대의 광통신 매체로서, 유형의 유적과 무형의 콘텐츠가 있어 ‘OSMU(One Source Multi Use)’가 가능한 개발잠재력이 높은 산림문화자원임을 주지하고자 한다. 현재 전북 도내엔 100여 개나 넘는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종합적인 시굴조사, 또는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숫자마저 파악이 안되고 있는 등 체계적인 보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전북 도내에 산재해 있는 봉수 가운데 원형이 100% 보존된 곳 한 곳도 없다. 다만, 진안 태평봉수대(전북 기념물 제36호)와 부안 계화리봉수대(부안향토문화유적 제9호) 등 단 2곳만이 문화재로 지정보호 받고 있다. 진안군에는 이밖에 봉수대 터로 기록되고 있는 곳이 정천면 갈룡리 호학마을 뒷산 정상에 있는 국사봉 봉수대지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국사봉 정상에 둘레 90m정도의 석축의 흔적이 있을 뿐이다. 무주 봉화산 봉수대는 석축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 무주 매방재산 봉수대는 이미 오래 전 헬기장으로 조성돼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 150여 기의 가야계 고총이 밀집 분포된 진안고원의 장수권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으면서 그곳을 방사상으로 에워싸고 있다. 섬진강 유역에는 임실군을 중심으로 진안군 일부 지역에만 봉수가 분포된 것으로 밝혀져 흥미를 더하고 있다. 아직은 봉수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그 설치 시기와 설치 주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일단 장수 가야와의 관련성이 가장 높다는 게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따라서 이를 잘 활용, 학술적 고증을 거쳐 정비 및 복원이 이뤄진다면 새로운 역사, 관광, 문화 자원으로 크게 활용될 수 있다. 원형이 잘 보존된 봉수대를 선별, 숲길을 따라 등산로를 개설하고, 주변의 잡목을 제거한 후, 지역민과 청소년들의 교육, 체험, 관광 자원,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축제와 체육 행사, 남북통일 기원 행사(6.15 공동선언 전북 행사), 진안 마을축제, 남원 춘향제와 흥부제, 무주 반딧불축제, 장수 사과랑한우랑축제, 임실통합축제 등 개막식에 봉화를 피우는 것을 비롯, 지역의 축제에 활용하는 등 녹색복지국가를 구현했으면 한다. 이제는 전북 동부산악원의 생태와 유적을 야외의 박물관 개념으로 접근하는 에코뮤지엄의 관점에서, 봉수대를 매개로 휴양림, 산촌, 숲길, 지역의 인적자원으로 결합된‘포레스크 에코뮤지엄(Forrest Ecomuseum)’ 모델의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