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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 고려 왕실,문벌귀족 통제 못해
- 무신란 이어 원나라 지배 받아
- 새로 등장한 권문세족도 횡포
- 백성을 도탄 속으로 몰아넣어
- 500년 왕조 결국 멸망의 길로
- 온갖 특혜 받으며 성장한 롯데
- 탐욕에 찬 그들만의 '쩐의 전쟁'
- 국민과 수많은 中企에 피해 줘
- 정부 노동시장 개혁 본말전도
- 정작 개혁해야할 대상은 재벌
"약자들에게는 새로운 족쇄를, 부자들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한 사회와 법률의 존재는 자연 상태의 자유를 회복 불가능하리만큼 파괴시켰고, 불평등 소유라는 규칙을 끝없이 확립시켰으며, 교묘한 강탈을 확고부동한 권리로 변모시켜, 전 인류가 소수의 야심찬 인간들을 위하여 노동과 예속과 비참 속에 살도록 강제하였다."-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불평등 소유를 확장하는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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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그룹의 또 다른 마루지(랜드마크)가 될 롯데월드타워. 연합뉴스 |
최근 롯데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그러나 정작 국가와 국민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재벌'의 존재 자체다. 그것은 재벌이 시대착오적인 기업집단이면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은 일반적으로는 가족이나 친인척 구성원들이 출자한 지주회사(모기업)가 핵심이 되고 다양한 산업을 경영하는 자회사를 지배하는 형태를 이룬다. 계열사들의 관계는 순환출자를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재벌은 이런 경우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면서 아울러 재벌도 성장하였는데, 고도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문제는 이들 재벌을 중심으로 법률과 권력이 움직이면서 수많은 중소기업들과 대다수 국민이 불이익을 받았고 또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만 80여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그룹은 한 해 매출이 84조 원에 이르지만, 계열사 간에 416개 순환출자 고리로 엮여 있다. 대부분이 비상장기업이어서 기업의 구조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한마디로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가진 재벌이다. 롯데가 이런 재벌이 되는 데에는 법률과 권력의 비호가 있어서 가능했다.(이는 다른 재벌도 다르지 않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70년대 초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신격호 롯데제과 사장을 청와대로 불러 호텔을 지으라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가 일본에서 모은 재산을 모국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였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호텔을 짓는 일과 관련해서 오히려 롯데가 온갖 혜택을 다 받았기 때문이다.
롯데는 우선 외자도입법의 혜택을 받았다. 당시 외자도입법은 부동산 취득세와 재산세, 소득세, 법인세 5년 간 면제와 이후 3년 간 절반 감면, 관세와 물품세 영구 면제 등의 혜택을 담고 있었다.
당시 신격호 사장은 한국 국적이었지만 일본에 10년 이상 영주해 외자도입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롯데호텔 건설을 위해 부동산을 대규모로 취득했지만, 취득세와 재산세 등 세금은 내지 않아도 됐다. 호텔 건설에 쓰인 외국 물품과 주방, 가전 용품 등을 수입할 때 관세도 전혀 물지 않았다. '특정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도 이 즈음 마련되어 부동산투기 억제세, 영업세, 등록세도 면제받았다.
이렇게 롯데는 출발부터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법률적으로 갖가지 혜택을 다 받았다. 이 혜택으로 롯데는 수많은 계열사와 10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재벌이 되었으나, 과연 롯데그룹이 누린 혜택과 그로부터 거둔 막대한 이익이 실제로 이 나라와 국민에게 얼마나 큰 보탬이 되었을까? 이런 재벌이 없었더라면 과연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룩했을까 하고 반문하는 이도 적지 않겠지만, 과연 누구를 위해 왜 경제성장을 하려 했는지 생각해보라. 오로지 특정한 기업인이나 기업을 위해서 법률과 권력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권력이 개입하고 법이 비호하는 순간, 실제로는 재벌의 배만 불린 꼴이 되었다. 이런 재벌의 성장이 끼쳤고 또 끼칠 악영향에 대해서는 서두에 인용한 루소의 글을 보라.
■문벌과 권문세족의 환생
오늘날의 재벌은 고려시대에 백성들 위에 군림했던 문벌귀족(門閥貴族)을 떠오르게 한다. 문벌이란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이나 지위를 대대로 이어오는 가문을 뜻하는데, 정치적으로는 군주를 위협할 정도로 대단한 위세를 누리는 가문을 뜻하기도 한다. 대체로 고려 전기의 귀족 계층을 두고 일컫는 용어인데, 신라 말의 호족(豪族)들과 육두품 출신의 문인들, 그리고 개국공신들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음서제(蔭敍制, 공신이나 고위 관료들의 자손들을 관리로 임용하는 제도), 경제적으로는 공음전(公陰田, 5품 이상 고위 관리들에게 지급한 토지) 등 특권을 누리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해갔다.
문벌귀족들은 서로 혼인을 통해 가문의 세력을 확장시키려 했다. 특히 왕실과의 혼인은 문벌귀족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일뿐만 아니라 정권을 장악하는 지름길이기도 했는데, 왕실이 스스로 이를 허용한 것은 자충수였다. 결국 이를 이용하여 왕실의 외척으로서 정권을 독점하는 명문세족(名門世族)들이 등장하였고, 인주(仁州) 이씨(李氏)가 대표적이다.
인주 이씨는 문종(文宗, 1046~1083) 때부터 인종(仁宗, 1122~1146) 때까지 7대 80여 년 동안 외척으로 크게 세력을 떨쳤다. 그들은 왕실과 중복되는 혼인 관계를 맺으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이윽고 자신의 집에서 키웠던 인종을 끼고 횡포를 저지르던 이자겸(李資謙)이 반란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결국 한 패거리였던 척준경에 의해 제거되고 척준경 역시 귀양을 갔으나, 문벌귀족들이 여전했으므로 고려의 정치와 사회는 결코 안정을 되찾지 못했다.
'한비자'의 '화씨(和氏)' 편에는 춘추시대에 오기(吳起)가 초나라 도왕(悼王)에게 초나라 풍속에 대해 일깨워준 말이 나온다.
"대신들의 권한이 너무 크고, 영지를 받은 귀족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위로는 군주를 핍박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학대합니다. 이는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고 군대를 약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영지를 받은 귀족의 자손이라도 3대가 지나면 관작과 녹봉을 거두어들이고, 일반 관리의 녹봉은 끊거나 줄이며, 긴요하지 않은 관직은 줄여서 이것으로 병사들을 잘 뽑아 훈련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문벌귀족들에게 핍박받던 무신들이 마침내 무신란(1170년)을 일으켰다. 다시 고려의 백성들은 무신들의 횡포를 겪다가 몽골의 침입 이후에는 '권문세족(權門勢族)'의 횡포에 도탄에 빠졌다. 권문세족은 문벌 귀족의 일부와 무신란으로 등장한 가문, 원나라와 관계 속에서 성장한 세력들을 아우르는 용어다. 누이가 원나라 순제(順帝)의 황후가 되면서 번영을 누린 기철(奇轍)의 가문은 대표적인 권문세족이다. 이들이 저지른 짓은 그대로 '한비자'의 '궤사(詭使)'에 묘사되어 있다.
"세금을 착실히 거두고 백성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국난에 대비하고 재정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인데도 병사들이 일을 피해 몸을 숨기고 세도가에 빌붙어서 부역을 회피하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자가 수만 명에 이른다. 기름진 전답과 좋은 집을 포상으로 내건 것은 병사들이 열심히 싸우게 하려는 것인데도 머리가 잘리고 배가 찢겨 해골이 들판에 버려진 자는 몸 둘 곳이 없고 그나마 있던 전답조차 빼앗긴다. 반면에 어여쁜 딸과 누이를 둔 대신과 군주의 측근은 아무런 공이 없음에도 좋은 집을 골라서 받고 기름진 밭을 가려서 먹고 산다."
■재벌개혁 없이는 강국도 없다
고려는 왕실이 문벌귀족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무신란을 부추겼고, 무신들 또한 서로 다투며 피바람을 일으켰다. 이어 최충헌 일가가 정권을 잡았고, 고려는 더 이상 군주의 나라도 백성들의 나라도 아니었다. 몽골의 침입을 받고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등장한 권문세족들이 다시 횡포를 저지르며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해 호소하고 있는데, 이는 본말과 선후가 전도된 것이다. 정작 개혁의 대상은 재벌인데 말이다.
"이 글에서 또 실제로 모든 경우에 법률과 정치권력은 빈자들을 억압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빈자들의 공격을 받아 곧 무너져버릴 재화의 불평등성을 자기들 뜻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부자들의 결사체라 간주하고 있다. 빈자들은 정치권력의 방해가 없다면, 공공연한 폭력으로 부자들을 자신들과 같은 평등한 처지로 낮춰버릴 것이다."―애덤 스미스, '법체계에 관한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