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영화 「7번방의 선물」을 보다 >
- 文霞 鄭永仁 -
아주아주 오래간만에 집사람과 영화 한 편을 본다.
방화(邦畵) ‘7번방의 선물’이라는 코믹 영화다. 저예산으로 천만 관객을 흡인하여 초대박을 터뜨린 영화라고 한다.
그저 웃고 울려면 이 영화를 한번쯤 보리고 권하고 싶다. 먼저 본 어떤 다 늙은 친구분이 눈물을 질질 흘렸다고 권한다.
가볍기도 하고 웅숭깊은 영화기도 하다.
자적장애자인 아버지와 아주 야무진 어린 딸아이가 겪는 한국적 현실에 바탕을 둔다. 결국 권력은 무죄인 자를 유죄로 만들어 사형을 시킨다. 시쳇말로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라는 아주 어느 나라 사회에서나 진리인 것 같은 법칙이 무자비하게 초처곡으로 적용된다.
교도소 내에서 벌어지는 코믹영화이고, 아마 뮤지컬영화로 만든다면 성공할 것 같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웃다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현실에 얼어붙었던 관객 마음들을 꼬마주인공이 돋을볕이 되어 해토머리 시킨다.
경로 우대, 4,000원의 기적!
소설도 영화도 다 있을 수 있는 세계를 그린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나 관객들은 감동을 먹는다. 또, 공감의 장이 되는 것은 나의 처지가, 이 사회의 현실이 투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믹은 과장이다. 그 과장 속에 인간의 애환이 똬리 틀 듯 서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타르시스라는 감동의 선물이 있다. 감동을 많이 먹어야 오래 산다고 한다.
그 사형 당한 지적장애자의 딸이 커서 변호사가 된다. 그리고 재심을 청구하여 억울하게 사형당한 지적장애자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 무죄를 선고를 받아낸다. 물론 그 권력은 건재할 것이다. 마치 ‘레미제라블’ 영화처럼…….
여기서 엊그제 청원으로 서명한 ‘사형제도 폐지’가 맞물리기도 한다.
7호방 감방, 동료들과 교도관들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따뜻한 온정과 황홀한 배려에 관객들은 웃으며 울며 눈물은 따뜻한 온수(溫水)가 되어 흐른다.
영화가 끝나고서 그래도 좀 준 고급(?)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여러 군데 가격표를 보면 마음에 흥정한 다음 무려 1인분에 7000원 짜리를! 저렴한 지하식당가가 아니 8층 우아한 식당가에서. ‘안동국시집’라는 식당에서 집사람은 비빔밥을, 나는 묵사발을……. 먹으면서도 목이 멘다. 방금 보고 나온 영화 ‘7번방의 선물’ 때문에.
비빔밥처럼 온정으로 비벼졌던 7번방 죄수들!
또 공권력에 의해 묵처럼 묵사발이 된 지적장애자인 꼬마 아버지!
탈출을 도운 열기구 풍선은 결국 교도소 담장 철조망에 걸리고…….
사형장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이별하는 어린 딸, 딸을 위해 모자라는 인간이라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며 딸을 도와달라고 울부짖으며 절규하며 사형장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부정(父情). 권력을 휘두른 공권력도 부정(父情) 때문이고, 이들을 도와주는 교도관도 부정(父情) 때문이고…….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역시 그러했으리라. 지금 나라는 ‘아버지’는 어떠한가? 이 시대의 아버지 가슴 속에도 보이지 않는 눈물은 흐른다.
다만, 왜 영화 제목이 ‘7번방의 선물’인지는 가서 보아야 그 진정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리 깊지도 그리 얕지도 않은 영화라고 생각을 한다. 그저 부부 동반하여 한 달에 한번쯤은 영화 한편도 보고, 나처럼 우아한 식당에 가서 7,000원짜리 외식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영화관에 들어갈 때는 젊은 연인들처럼 팝콘 한 봉다리와 콜라 한 컵을 사들고 들어가 빨대로 같이 쪽쪽 마시는 것은 의무 사항이다.
그런데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 난다고 하는데…….
그리고 새로운 정권은 어떻게 권력을 사용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그러나 우리는 일말의 기대 때문에 현 정권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