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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자연, 사랑
―이남섭의 시세계
이은봉(시인, 광주대 문창과 교수)
시인 이남섭은 전통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는 그가 隱村이라는 고풍스러운 호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隱村이라는 그의 호는 ‘숨어 있는 마을’, ‘시골에의 은거’ 등의 내포를 갖는다. 따라서 그는 세상에 알려지 기를 별로 바라지 않는 隱者形의 사람으로 보인다. 실제의 그의 삶은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매우 바쁘고 분주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의 호 隱村은 선조인 “李箕大공”(「可隱堂」)의 당호(堂號) 可隱堂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가 명성에 급급하는 속물들과 거리가 먼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집을 月白堂이라는 당호로 높여 부르는 것만 보더라도 확인이 된다. 그의 시에 따르면 “산골 마을/연분홍 분꽃/홀로 피어 빈 집을 지키”(「月白堂」)는 것이 月白堂이다.
이 月白堂에서 그는 할아버지한테 유교식 교육을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새벽부터/천자 책 펴고는” “어린 손자 훈도하던/우리 할아버지”(「성묘」)와 같은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가 이렇게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외롭게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은 찔레꽃이 “만행 떠난 아버지/기다리시는 어머니 같”(「찔레꽃」)이 피어나는 곳이 그의 고향이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할아버지 밑에서 유교식 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가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시에는 “가내 (可川)터에 집(堂)을” 짓고 살아온 사람들, 곧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 마을”(「可隱堂」) 사람들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다. 그의 선조인 “李箕大공”이 可隱堂을 짓고 처음 뿌리를 내린 이 ‘가내’는 성주 이 씨의 집성촌이거니와, 이들 성주 이 씨는 진작부터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듯싶다. 이는 그의 후손들이 “수천 여권의 책을 可隱堂의 시렁에 싸놓고/세상 얽매임 없이 書와 詩를 즐”겼다든지, “公의 외손자 송재 서재필도 일곱 살까지/이곳에서 공부했고, 추사 김정희도/가끔 들러서 함께 일필휘지했다”(「可隱堂」)든지 하는 구절이 잘 징험해준다. 그가 갖고 있는 이러한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세계관은 다음의 시에도 잘 드러나 있다.
고향집 가내마을에 가면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하는 건 푸른 산, 푸른 하늘이네. 그곳을 지키고 있는 어릴 적 친구는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서재필 기념공원으로 나서는 내게 말을 건네네.
일곱 살 어린 시절 나는 동화책 속의 주인공에 불과했는데, 한 말 가내 마을을 떠나 한양 유학길에 나선 송재는 그 나이에 나라와 시국을 고민하는 책을 엮었다고 하네.
기우는 국운은 뜻 있는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송재도 평탄한 길 멀리 하고 개혁의 물결에 몸 실었네.
개화의 바람 거칠게 불어 갑신정변의 오적이 되자 어머니 성주 이씨, 아버지 대구 서씨, 아들의 큰 뜻 따라 시퍼런 칼날에 먼저 저승으로 가셨네. 사랑하는 형제와 아내와 자식까지 참혹하게 죽음을 맞으니, 삼족이 멸하는 아픔 그치지 않았네.
결국 이국땅의 망명객이 된 송재, 몸은 타국에 있어도 넋은 늘 태평양 건너 한반도로 뻗쳤네.
몸의 병 고치는 의사의 길 툭툭 털고, 나라의 정신 바로 세우는 애국지사의 길 택하고는 얻은 물질 소중하게 받들어 조국의 어둠 밝히는 등불이 되었네. 조국 사랑의 큰 뜻 솟구치고 솟구쳐 영은문 헐고 독립문 우뚝 세우셨네.
뜨겁게 타는 온몸, 붓끝으로 각성을 촉구하는 독립신문이 되어 나라의 개화 위해 상하귀천 없애는데 앞장 서니 이 나라, 이 백성 깨우치는 선각자요, 스승이었네.
선생이 가신지도 벌써 반 백 년, 육신은 죽어 조국의 땅에 돌아와 묻혔어도 선생의 뜻은 여전히 이 땅에 다하지 않고 살아 있네.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 땅에 입상의 동상으로 우뚝 서서 두 눈 부릅뜨고 주암호의 푸른 물처럼 일렁이며 두 다리 곧게 세워 조국을 지키고 있네.
송재 서재필 당신의 얼을 기리는 기념관 오갈 때마다 가내마을 어린 소년은 세월 제법 살아 장년이 되었어도 당신이 걸었던 아픈 발길 따르지 못하고 있네.
―「송재 서재필 기념공원에서」 전문
이 시는 “조국 사랑의 큰 뜻”으로 “영은문 헐고 독립문 우뚝 세우”는 데 앞장선 갑신정변의 주역 서재필 선생을 추념하는데 초점이 있다. 서재필이 애국계몽의 일념으로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이 “나라의 개화 위해” 앞장섰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의 고향인 “가내마을”은 이러한 서재필 선생이 그의 선조인 “李箕大공”의 외손자로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 그는 과거의 일들, 조상의 일들에 깊이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이는 그가 성주 이 씨 종친회의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증명이 된다.
예의 일들을 곧바로 그가 조상을 추모하는 일만이 아니라 전통적 세계와 고전적 세계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전통적 세계와 고전적 세계는 고향의 세계이기도 해서 더욱 주목이 된다. 그의 시에서 고향의 세계는 전통적 세계와 고전적 세계에 곧바로 닿아 있기 때문이다. 月白堂이라는 당호로 존중되는 그의 고향집이 “50여년 세월 끊임없이” “울타리 가에/달빛처럼” 수국이 “피어나”(「수국을 보며」)는 곳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어쩌다 들려 하룻밤을 묵는 곳이겠지만 이 月白堂에서의 시간을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잠 깨어 창문을 여니
연초록 앞산
이 작은 산골 마을로 내려와
딴 세상 펼친다.
가난한 산골 마을
일찍 핀 살구꽃, 배꽃
가난한 몰골 털고
제 세상인양
화들짝 웃어젖힌다.
흐르는 개울물
졸졸졸 소리만 남기고
먼 세상 향해 흐르며
작은 풀잎들 위
사랑의 흔적을 남긴다.
솔잎바람, 댓잎바람
작은 뜰로 모여 들고
동백꽃 노랑 꽃술 따던 동박새
꼬리 흔들다 말고
그만 봄잠에 취한다.
―「산중일기」 전문
이 시에 의하면 그의 월백당은 아침에 “잠 깨어 창문을” 열면 “연초록 앞산/이 작은 산골 마을로 내려와/딴 세상 펼”치는 곳이다. “살구꽃, 배꽃/가난한 몰골 털고/제 세상인양/화들짝 웃어젖”히는 “가난한 산골 마을”에 자리한 것이 그의 월백당이다. 이처럼 그의 월백당은 “개울물/졸졸졸 소리만 남기고/먼 세상 향해 흐르며/작은 풀잎들 위/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평화와 행복의 공간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의 시에 그려져 있는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향에 대해 그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이제 나도 고향으로/돌아갈 때가 되었나 보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고향이 늘 “봄이면 쑥국 향기/여름이면 아욱국 향기/그리워”(「돌아가야 한다」)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고향의 강”이 “말만 들어도 눈물이”(「추억의 강」) 나는 곳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의 시에 고향이 언제나 이처럼 평화와 행복의 공간으로만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현재의 공간으로 그려져 있는 고향은 고통과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의 고향도 “오직 출세를 위해/많은 사람들 도시로 떠”난 “두메산골”(「낯선 고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의 고향 역시 지난 시절의 풍성함을 갖고 있지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추석날 아침에나/겨우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고향이라는 뜻이다.
추석이 가까워지자
고향 언덕길, 가을비에 젖는다.
명절에나 간신히 돌아와
달랑 하룻밤 보내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폐허 같은 서러움이 짙어온다.
옛날의 금싸라기 땅들
잡초만 무성하다.
올해도 쌀농사는
내 가슴을 서럽게 하고
고향 사람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추석날 아침에나
겨우 부활하는 골목 안 사람들
이 날만큼은 그래도
화들짝 옛날이 돌아온 것 같다.
뉘 집엔들 외동자식
객지로 내몰던 고달픈 세월이 없으랴.
추석 다음 날 저녁
고단한 어머니는
늙은 모습 보이지 않으려
손도 흔들지 않으신다.
―「추석 무렵」 전문
이 시에 따르면 이제는 그의 고향도 “명절에나 간신히 돌아와/달랑 하룻밤 보내고/떠나야 하는 사람들”로 “서러움이 짙”은 곳이다. “옛날의 금싸라기 땅들/잡초만 무성”한 곳이, “올해도 쌀농사”도 “사람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곳이 그의 고향이다. 심지어는 “추석 다음 날 저녁”에는 “고단한 어머니”가 “늙은 모습 보이지 않으려/손도 흔들지 않”는 곳이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고향에 대해 그가 양가적 감정, 곧 긍정의 마음과 부정의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고향과 관련한 그의 감정이 절망적이기보다 희망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의 시에서의 고향에 대한 입장이 여전히 능동적인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렇다. 그가 생각하는 고향은 아직도 전통적인 풍속들과 풍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금도 고향이 섣달그믐이면 “흰 접시 위에/무명실을 꼬아 기름을 붓고/온 집안 불을 밝”(「섣달 그믐 고향집에선」)히는 곳이고, “백중날”이면 머슴 “매수 씨”가 “씨름판에서 장사되어/황소를 타”(「머슴 매수씨」) 집로 돌아오는 곳이라는 것이다.
시를 통해 보여주는 고향에 대한 그의 애정은 이처럼 지극하고 정성스럽다. 언제나 “찌든 얼굴/푸른 차향으로 씻어내고 있”(「낯선 고향」)는 곳이 그의 고향이다. 그가 자신의 시 「득음정을 찾아」에서 보성소리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녹차를 따르며」에서 보성녹차의 이미지를 그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고향에 대한 이러한 애정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애정은 고향 주변의 사찰인 송광사나 대원사, 만연사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법고소리」, 「대원사 가는 길」, 「대원사 숲길에서」,「만연사」, 「범종소리」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거니와, 이들 시에서 그는 불교에 관해 남다른 친연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음의 시는 그가 불교의 아우라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법고소리가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은
유년시절 고향에서
송광사 법고 치는 스님을 만나고부터다.
그가 치는 법고소리를 듣고부터다.
삶의 에너지가 필요할 때마다
좋은 시를 쓰고 싶어질 때마다
법고소리를 들으러
나는 송광사에 간다.
더러는 법고를 치는 스님보다
법고를 치는 시간이 되기를
더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 시간엔
나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둥둥둥 쿵쿵 딱딱딱
위 아래로 좌우로 툭툭 튀어나오는
법고 치는 소리는
언제나 영혼을 불 태워
육체를 구원한다.
둥근 법고를 향해 몸을 날리며
북을 치는 스님들
오늘도 흰 새로 환생해
저녁 어둠을 환하게 가른다.
―「법고소리」 전문
이 시에 따르면 그가 “법고소리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유년시절 고향”의 “송광사”에서 “법고 치는 스님을 만나고부터”이다. 그런 이후 그는 “삶의 에너지가 필요할 때마다” “법고소리를 들으러” “송광사에 간다.” 거기서 만나는 “법고 치는 소리는/언제나” 그의 “영혼을 불 태워/육체를 구원”해준다. 이처럼 고향 근처의 사찰에서 “산안개/강물과 은밀히 손잡고/때 묻은 속세의 인연/바위에 새기며 대숲에 묻는”(「대원사 숲길에서」) 것이 그이다.
불교적 아우라를 담아내는 것은 자연과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고, 도시나 문명과 멀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이러한 모습은 고향의 자연을 복원시키려는 의지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고향의 풍물들은 그 자체로 자연 일반의 사물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의 시에 함유되어 있는 자연이 매우 독특한 것은 사실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야생 동백나무 밑둥을 잘라/어두운 아파트 베란다로/유배를 보내는 일”(「시를 쓴다는 것은」)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 그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무엇보다 ‘자연친화’가 일차적인 내포로 존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시에서는 고향회귀에의 의지가 곧바로 자연회귀에의 회귀의지로 轉化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을 가리켜 어머니 대지라고 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자연회귀에의 의지는 잃어버린 지 오래인 어머니 대지, 곧 에덴회귀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 대지, 곧 에덴은 본래 양수로 상징되는 물의 이미지와 함께 하는 공간이다. 그의 시에 바다의 이미지나 강의 이미지, 곧 물의 이미지가 충만하고 풍부하게 드러나 있는 것도 실제로는 이에서 기인한다. 이는 그가 “어쩌다 빈손으로” 찾아가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향바다」)고 반겨주는 곳이 고향의 바다라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물의 이미지가 드러나 있는 그의 시로는 「漁水樵山」, 「물소리」, 「5월의 성산포」, 「보성강」, 「추억의 강」, 「침묵의 강가에서」, 「마음의 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시에 따르면 그에게 자연의 핵심요소인 물, 곧 바다나 강은 추억의 것이거나 기억의 것, 즉 마음의 것이다. 하지만 이들 공간은 찾아“가면/그래도/그리움 가라앉”(「추억의 강」)게 해주는 곳이다. “걸음마도 하기 전”에 “누이의 등에 업혀/버드나무 아래에서 처음”(「보성강」) 바라본 곳이 보성강인 만큼 그럴 만도 해 보인다. “사는 일 너무 힘들면/남몰래 찾아 가는/강”이, "서러운 눈물/빗물처럼 포근히 받아주"는 강이 “하나 있으면 좋겠네”(「침묵의 강가에서」)라고 노래하는 것이 그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세상의 모든 상처
가슴으로 꼭 껴안는
작은 江 하나
내 마음에 두고 싶다.
돌이 있으면
돌아 흐르고
웅덩이가 있으면
채워 흐르는
그런 江 하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실개천이지만
물이 부족하면
비를 기다릴 줄 아는
생명줄 같이 조용한 江
가슴으로 흐르면 좋겠다.
끝내 세월 다투지 않는
바다에 닿아도
고향의 물결 쉬 잊지 않는
그런 작은 江 하나
내 마음에 두고 싶다.
―「마음의 강」 전문
이 시에서 시인 이남섭은 “돌이 있으면/돌아 흐르고/웅덩이가 있으면/채워 흐르는/그런 江”을 “마음에 두고 싶”어 한다. 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시에서 강은 평화와 행복을 지향하는 위안의 기제로 존재한다. 자연이 그러한 기제로 존재하는 것은 강의 경우만이 아니다. 그의 시에서는 산도 동일한 기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 수용되어 있는 산은 「겨울밤 산행」,「바래봉에 올라」, 「일림산 5월」, 「천관산 억새」, 「茶鄕에 가면」, 「산행」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바래봉, 일림산, 천관산, 활성산 등이다. 물론 이는 모두 그의 고향인 보성 근처에 있는 산들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산에 대한 노래는 자연에 대한 노래이면서도 고향에 대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리움 넘실대는 날”이면 고향의 산인 “바래봉” 등 산에 “올라/낮은 하늘과 높은 산을 바라”(「바래봉에 올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는 것이 그이기 때문이다. “그리움이 닿을 수 없는 높이로/흩날리는/억새꽃”(「천관산 억새」)이 그가 찾아오기를 원하므로 그는 이들 고향의 산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움은 본래 사랑과 함께 하는 정서이다. 그리움이 충만하고 풍부한 사람은 사랑도 충만하고 풍부하기 마련이다. 그가 사랑이 충만하고 풍부한 사람인 까닭도 다름 아닌 이에서 기인한다. 그렇다. 그는 늘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다. 기회가 있는 대로 “사랑하는 이여./당신의 앞머리 가에/고귀한 흰 빛, 에델바이스를 꽂아 드릴게요”(「함께 알프스로 가요」)라고 노래하는 것이 그이다. 그가 넘치는 사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시의 “차 한 잔 앞에 놓고/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사랑이란 것을/좀 알 것 같다(「사랑」)라는 구절 등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시를 통해 보여주는 그의 사랑은 당연히 仁의 마음, 즉 측은지심까지도 포괄한다. 측음지심으로서의 그의 사랑은 항용 자연 일반에까지 미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양지 바른 외딴 밭에/겨울 상추씨를 뿌리고 돌아”와 “내내 노심초사”(「「상추 씨앗을 뿌리며」)하는 것이 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사랑의 대상은 사람이어야 보다 제격이다. 이를테면 “꽃집의 여자”를 노래하는 것이 좀 더 그럴싸하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손끝이 닿으면/돌도 나무도 풀잎도/새로운 꽃으로 다시 피”워내는 것이 “꽃집의 여자”(「꽃집에서」)이다.
독사에 물린 자국이다.
해독되지 않아
아직도 몸살 중이다.
독사에 물려
잘린 손가락
봄이 되면
또 다시 근질거린다.
―「첫사랑」 전문
이 시에 따르면 그는 “독사에 물린 자국” 같은 첫사랑이 아직도 “해독되지 않아” “몸살 중”이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이처럼 그의 첫사랑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어 그를 괴롭힌다. 그에게는 “위성도 돌고, 계절” 돌지만 “돌지 않는 것은 오직 지나간 시간뿐”(「레테의 강」)이다. “오늘 밤에도/그 별,/다시 볼 수 있을까/그녀의 집 앞에서/서성이”(「그리움」)고 있는 것이 그라는 것이다.
사랑이 충만하고 풍부한 사람은 이별도 충만하고 풍부하기 마련이다. 본래 사랑은 이별을 거느리는 법이고, 이별은 사랑은 거느리는 법이다. 그렇다. 그는 “덜컹덜컹 떨어지는” 동백꽃의 “붉은 꽃송이가/이별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관계가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이별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세상에 대한 열정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의 열정은 때로 허위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비판의 형식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고향과 자연이 낙원이 아니고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시에서의 고향과 자연도 실제로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파괴되고 해체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의 고향과 자연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주체는 물론 개발과 성장의 주도권을 지니고 있는 공권력이다. “수돗물 오염시키는 주범이라고/환경청장이 잡아가버”린 “수변보호구역”(「漁水樵山」)을 다루고 있는 시가 특히 그것을 잘 말해준다. “거대한 도시”에서 “이억 이천오백만 년” 전의 “공룡으로 다시 부활하”(「공룡시대」)고 있는 대형마트를 비판하고 있는 시도 그와 유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시는 매우 의미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장점은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쉽고 편하게 읽힌다는 것도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다소 소박하고 단순하게 읽히는 것이 그의 시라는 뜻이 되기도 하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의 시가 좀 더 복잡하면서도 생생한 내포를 갖기를 빌며 여기서 글을 맺는다.(이남섭 시집 『마음의 강』, 푸른사상, 2010. 10. 24)
첫댓글 감사합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