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절을 통한 영적 교훈.(레23:33-44) 찬 넓은들에, 날구원하신주감사,
오늘은 추수감사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날입니다. 한해동안에 영육으로 돌보아 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 절기는 어제 오늘의 생겨난 것이 아니고 수천년의 역사를 지나오면서 지켜온 이스라엘민족의 절기이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감사예배입니다. 여기에는 각자의 신앙고백이 있게 되고. 영적인 의미가 큽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절기의 참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하는 하나님의 명령이셨습니다.
말씀으로 들어가면 출23:14절에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어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인 절기의 참여는 때론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민족에게 큰 부담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매 안식일이 있는데 무슨 절기가 따로 필요한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민족이 절기를 지키며 산 것 같아도 결국은 그 절기가 이스라엘민족을 지켰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내가 신앙을 지킨 것 같아도 오랜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신앙이 나를 지켰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절기로서 지켜지는 추수감사절은 구약성경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수장절 또는 초막절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뿌리인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의미에 있어서는 초막절이라는 이름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나 성경 원어는 초막이란 단어는 없고 장막입니다.(숙코트)는 "초막","장막","거처"라는 뜻이며, 한글 성경은 의역을 해서 번역을 했고 출애굽사건과 관련하여 드려질 때 초막절, 혹은(장막절)이라 하는 것입니다. 또 시기에 있어서는 수장절이니 출23: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내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중에 밭에서부터 거두워 저장함이라 농사의 마지막 추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고백적 측면에서 강조될 때 수장절로 불리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 수장절 추수감사절은 그 명칭에 따라서 강조점만 달리할 뿐 동일한 절기를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은 7일동안 이 절기를 지켜왔고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에 초막을 지어 일주일 동안을 그 초막에서 생활하면서 절기를 지킵니다.
즉 초막에서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은 감사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다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광야 일주일의 절기를 지킴으로서 쉽지는 않지만 여기에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고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수장절 초막절 추수감사절에 무슨 감사를 드렸을까요?
먼저 출애굽에 대한 감사입니다. 역사적으로 430년동안 애굽과 바로에게 매여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안에서는 전혀 희망이 없던 해방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애굽에서 탈출하였음을 감사하는 것이요 구속사적으로는 죄와 사망에 매여 있는 나, 우리, 우리안에서는 전혀 희망이 없던 우리들을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사건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하기위해 투쟁을 한일도 없고 아니 꿈꾼적도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 투쟁이나 반란을 통해서 쟁취한 결과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신5:15절에서는 이렇게 강조하며 말씀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이 이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늘 기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신5:6절에도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기적을 주신 하나님, 만나를 주신 하나님, 바다를 가르신 하나님 많은 것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자로 기억되길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예수님은 오셔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병자도 고치시고 죽은자도 살리시고 귀신도 쫓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예수님을 전할 때 기적을 베푸신 주, 능력이 많으신 주님으로 전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살아나신 부활의 주, 사망을 이기신 구원자로 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 구약은 같은 맥락으로 흐르고 있는데 구약의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기억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낸 구원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예수를 전할 때 능력자로 전하지 않고 구원자로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주님을 구원자로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는가 돌아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를 삶속에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생각속에서 잊었다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잊었다는 말씀 입니다. 삶속에서 기억되는 주님이라면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기를 주신 것입니다. 즉 이 절기를 통해 출애굽사건을 기억하고 애굽 땅 곧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 낸 분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추수감사절기를 통해 구원받은 백성임을 확인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애굽이 무엇일까요? 죄악된 세상입니다. 죄악에서 건져주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일까요? 죄악에서 죽었던 나를 살리신 그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통해 주시는 영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알곡을 거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추수의 열매와 성도의 관계를 말씀하셨는데.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하라고 했습니다(마9:37,눅 10:2).이것은 복음선포와 하나님나라 확장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요4:25)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선포와 영혼을 수확하여 주의 창고인 교회에 저장하는 것을 말씀하심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 구원받은 천국 시민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리며 즐거워하고 우리의 대적 마귀와 죄악의 세력을 주의 능력을 힘입어 싸워 승리하고 개선가를 부르는 것, 성경은 이것을 영적이고, 신령한 추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의 오늘 가장 값진 예물은 영혼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이야기는. 마13장 24-30절에서 교회와 천국을 씨뿌리는 것과 추수로 비유하였습니다. 즉 좋은 씨를 밭에 뿌렸는데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추수때에 추수군들에게 명하여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현재에 교회안에 참 신자와 사탄의 종자가 같이 자라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는 혼란이 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의 재림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그것들 심판하고. 거기에 알맞는 상벌이 있으며. 즉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하십니다.(마4:29도 같다).더우기 계14장 14-20절을 보면 심판을 추수로 비유했고, 천사가 땅 위의 인간 즉 곡식을 수확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24장에 보면 주님이 재림하심만 아니라 그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택한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겠고" 즉 천국에 들어갈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 계6장 12절 이하에 보면 불신자들은 주의 재림 때에 주의 진노를 받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계20장에는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으며. 또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자들과 "행위록"에 기록된자의 심판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심판을 거쳐 천국과 지옥의 형벌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림하는 주를 맞아 천국에 입성하는 자는 초막절에 여러가지 제사가 거행된 것같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과 그 공로를 힘입어 그 은혜와 축복 가운데서 살면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저 천국에서 영생과 복락을 누리며, 주님과 더불어 영화를 누릴 것이다(히11:6,벧전 1:24,히10:1910:20).
그러므로 위에 말씀한 초막절은 지상의 교회에 영적 곡식이 수장되는 것 뿐 아니라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받고 성령안에서 중생하고 주의 일에 충성하던 성도들이 예비했다가 영원한 집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에 우리의 기쁨은 말할 수 없으며 행복할 것입니다. 마치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 가실 때 주님 앞에 옷을 펴고 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리로다"(마21:1-9)고 했던 것처럼. 이것은 장차 주님과 성도들의 천국 입성의 예언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초막절을 지킬 때에 즐거워 하며 열매를 초막절에 놓고, 여러나무 가지들을 꺾어 마당과 지붕과 장막 옆에 세우고 즐긴 것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천국에서 누릴 환희와 영화입니다.
초막절을 통한 또 하나의 감사는 광야 생활속에서의 인도와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의미하고 상징하는 것입니다.
초막의 특징은 일시적인 거처입니다.
추수감사절을 통한 신앙고백은 이 땅의 삶은 나그네의 삶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이 세상은 광야로 비유됩니다. 광야 이스라엘에게 있어 소망은 가나안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있어 최고의 영성은 그 삶의 목표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은 나그네의 삶인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의 위기는 하늘을 잃어버린 것에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언제나 하늘을 그리워했고 하늘을 사모하며 하늘을 목적하고 살았습니다. 하늘을 말하면서도 이 땅에서 영원할 것처럼 방향을 잡고 산다면 잠시 머물 휴가지에서 철근 콘크리트로 자신의 집을 짖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절기안에서 있어지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는 기억하여 회복케하심에 있습니다.
하늘신앙의 회복입니다. 이 땅은 우리의 안주할 장소가 아닙니다. 돌아갈 영원한 처소를 바라보며 좀 더 나누고 좀 더 베풀고 좀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헌신적인 신앙의 회복입니다.
이는 여호와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예물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절기의 의도는 드려짐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매력은 더 받으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드려지는데 있습니다. 신앙의 매력은 거둘려고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심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절의 예물은 드려짐의 정도를 스스로 확신하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감사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그리스도인은 나그네입니다. 초막을 짓고 사는 나그네입니다. 왠만큼 불편한 것은 감수하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구원받은 하늘 백성임을 감사하는 신앙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살전 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모든 시간들 사건들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감사부터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매력은 감사하는데 있습니다. 관계속에서 감사하고 하나님앞에서 감사하고 누구에게든지 감사해야 합니다.
하늘산소..
첫댓글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