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처럼 복음은 행실의 전체 문제를 높은 영적인 차원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다른 어떤 사람이나 다른 어떠한 것도 그런 일을 하게 하지 못한다. 세상은 이 두 가지 가장 장엄한 동기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
사도는 완벽한 답을 준비하고 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첫째, 우리 자신 전체, 우리의 몸과 영과 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혼적인 부분(mind),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영을 가리킨다.(위치만 니의 삼분설적인 이해가 아닌 여기서 존스 목사님은 전인적인 헌신을 강조하기 위해 삼분설을 씀-번역자) “영적인 예배”라는 표현도 같은 것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 ‘드리다’ - 자신을 어느 누구의 마음대로 하도록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를 지나치게 해석하여 내 자신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리는 항상 ‘노예들’ 이다. 우리는 본질상 죄의 노예, 사탄의 노예이다.(롬6:17) 그러나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노예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자원하는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자유로운 자가 아니다. 사람은 다 사탄의 노예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6:20) 그러니 너희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의 삶의 양식을 계속 할 권리가 없다.
‘권고하노니’ - 그 노예는 자원하는 노예이며, 자기가 노예됨을 기뻐하는 노예이다. 억지로 노예 되지 않은 사람이다. “누구를 섬기느냐 하는 것은 완전한 자유이니이다”(영국 국교회 공기도서 중) 여러분은 자원하는 심령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고 넘겨주었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 행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자비심 때문이며, 여러분에게 주어진 권리로 그것이 최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몸’ - 주석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순전히 육체적인 몸으로 해석해야 한다.(롬6:12,13 8:12,13 골3:5 고전619,20,15 살전1-5, 5:23)
사도는 여기서 구약의 제사 체계로부터 끌어 온 유추법을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피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느니라”(레11:12)- 그들은 몸도 드렸다. 짐승의 몸이 제단 위에 올려졌다. 그것이 전제로 드리는 번제이다. 영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육체의 몸도 드렸다. 사도는 여기서 우리의 실제적인 육체의 몸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스러운 구원에 우리가 참여하게 하실 정도로 크신 자비하심을 베푸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