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류다인....
해동공자 율곡 이이(栗谷 李耳)
국민윤리서
「격몽요결」을 저술한 해동의 공자라 일컷는 율곡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이다. 어머니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은집 오죽헌(烏竹軒)은 우리나라
주택 중 가장 오래 됐다해서 보물 1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죽헌 오른쪽 언덕에 축대를 쌓고 율곡의 사당 문성사를 짓고 영정을
모시고 있다. 강릉은 또 四仙과 화랑이 차를 마시던 한송정(寒松亭) 해운정(海雲亭) 경포대(鏡浦臺)등 茶의 옛 고장임을 자랑한다.
우리나라 茶界의 오랜 숙제이던 ‘각종 제상에 차를 올려야 하나 말아야하나’의 논란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고 있다.
「격몽요결」은 그가 세상을 떠난후 인조 임금이 왕명으로 전국 각도의 향교에 비치하도록 한 국민윤리 교과서였다.
이 책의 부록 〈제의초(祭儀 )〉는 복잡한 제례의식을 누구나 알기 쉽게 간추린 의식서로 전통제의에 어두운 현대인들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특히 ‘제례나 차례때 차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전통차례와 예절을 기본으로 하는
오늘의 차인들이 눈여겨 봐 두어야 할 대목이다.
조선시대 儒家의 규범은 관혼 상제 즉 사례(四禮)에 집약되어있다. 모든
의식은 문공가례(文公家禮)에 그 근본을 두고있다. 사례편람(四禮便覽)등 의식서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너무 어려워 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복잡한 제례의식을 간략하게 요점만을 기술한 것이 〈제의초〉이다. 〈제의초〉의 참례의(參禮儀:설 동지 초하루 보름에 올린 차례)에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술을 올리지 않고 차를 올린다’고 분명히 밝히고는‘ 그러나 지금의 국속에는 차를 쓰지 않는다’며
분향만 하라고 했다.
율곡은 13세에 진사(進士) 초시에 합격했으나 3년 뒤 겪어야 하는 어머니의 죽음은 하루아침에 어린
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어머니 신사임당의 3년상을 치르고 나서 율곡은 홀연히 금강산으로 들어가 佛門을 기웃거렸다.
율곡이 뒷날 茶의 심오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산중생활 때문이었다고 보고 있다. 호(號)까지 의암(義庵)이라 지은
율곡은 산골짜기 암자에서 좌선하고있는 한 스님을 만난다.
“여기서 무얼 하시오?” 스님은 그저 웃을 뿐이다.
“무엇으로 요기하고 지내시오?” 스님은 소나무를 가리키면서, “저게 내 양식이오.” 율곡은 점점 더
끌려갔다.
“공자와 석가 중 어느 분이 성인이시오?” “그대는 노승을 놀리지 마시오.” 율곡이 내쳐 묻는다.
“불교는 오랑캐의 법이니 중국에는 시행 할 것이 못되겠지요?” “순임금은 동방 사람이며 문왕은 서방 사람이니 그들도 역시
오랑캐란 말이오?” 율곡은 궁금한 것을 또 묻는다.
“불교의 오묘함이란 것도 우리 유교를 벗어날 것이 없는데 왜 굳이
유교를 버리고 불법을 구하는 겁니까?” “유교에도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 있소?” 그들의 대화는 끝이 없다. 이번에는 스님이
묻는다.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란 건 무슨 말이요?” “그것 또한 눈 앞에 있는 경계지요.” 스님이 빙그레
웃는다. 율곡이 다시 덧붙인다.
“솔개가 날아 하늘에 이르고 고기가 못 속에서 뛰노는 것이 색인가요, 공인가요?” “색도
아니요 공도 아니요. 그건 진리의 본체 그것이니 어찌 그런 시 구절을 가지고 비겨서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율곡은 웃으며
말하였다.
“이름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이면 그것은 벌써 현상 경계이겠는데 어떻게 본체라고 하는 것이오? 만일 그렇다고 하면
유교의 오묘한 대목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말로써 전할 수 없는 것이고 불교의 이치도 글자밖에 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오.”
스님은 놀랐다.
“그대 속된 선비가 아니구려. 나를 위해 시 한 장 써서‘저 솔개가 날고 고기가 뛴다’는 구절을 풀어
주시오.” 사흘 뒤, 율곡은 다시 암자를 찾았다.. 스님은 벌써 암자를 떠나고 없었다.
茶香과 함께 피어오른
율곡의 詩心
약을 캐러 산속을 헤매다 길을 잃었네 온 산 봉우리가 담풍속에 잠겼구나 산승은 찻물을 길어
돌아가는데 숲 속에는 차 연기가 일어나누나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율곡의
차시<산중>이다. 또 1558년 무오년에 석천(石川)에게 준 시에서는
차솥(茶鼎) 에 불기운은 남아있으나
찻물끓는 소리(솔바람 소리)는 조용하고...
또 1559년 기미년에 이사평(李司評)을 방문 하고서는
처마
끝에 차연기(茶煙)가 구름 속에 한데 섞여 버리고...
비구름에 산속은 어둡고 산사에는 고요함만 가득하다 차를
마시고 나자 그나마 일도 없고 시를 이야기하다 선정에 들게되네
원숙한 경지에 든 율곡의 詩心이 차향기 속에서 잠겨있다.
또 율곡이 강릉 해운정에서 노래한 시를 보면
勝地逢杯酒 해운정 승지에서 술잔을 드니 斯遊也不o 흥겨운 이 자리
싫지를 않네 那地千里外 누가 알았으랴 이 먼 곳에서 得시二難兼 어진 주인 훌륭한 손 함께 얻을 줄이야 海色初收霧 안개는
서서히 걷히어 가고 松風不受炎 솔바람 사르르 더위 식히네 何須韓吏部 하필이면 한퇴지 옛 시를 그려 茗椀奉纖纖 찻잔드는
섬섬옥수 떠올릴건가
어진 주인이야 율곡 자신을 말함이고 손님이란 평생을 흉금을 터놓고 지내던 차벗인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1534∼1599)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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