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던 날 이화(장미희)는 신분을 감추고 자신에게 연애 편지를 보내던 부잣집 아들 요섭을 만난다. 이화를 그를 따라 요섭 아버지의 청평 별장으로 간다. 별장에서 요섭이 자신을 안으려고 하자 이화는 요섭을 뿌리치고 집을 나선다. 요섭이 이화가 자신을 무시한데 비관해 자살하자 이화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화는 자신을 따라온 대학신문 기자 우석기(김추련)와 사랑에 빠진다. 학생운동에 가담한 우석기와의 만남 덕에 이화는 사회의식에도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우석기는 군에서 제대를 일주일 앞두고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이화는 고교 은사인 허민(신성일)과 우연히 재회한다. 이화는 이혼 후 고독하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는 허민을 위로하기 자신의 몸을 내맡긴다. 그러나 허민이 결혼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고 허민과 그의 전부인이 재회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떠난다.
현대 여성의 파격적인 성모럴 묘사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어안이 벙벙한 난장판(정영일)’이라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젊은 관객층에게 크게 어필해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논란은 여주인공 이화의 성적 태도에서 비롯됐다. 순진하기만 했던 이화는 요섭의 죽음 후 보시하듯 남자들에게 자신의 육체를 기꺼이 허락한다. 여러 남자를 거칠수록 그녀의 성적 개방성은 더욱 심화되어간다. 두 번째 남자 우석기와는 그래도 연애 감정을 지니고 정사를 나누지만, 고교 은사 허민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허민을 위로하기 위해 육체를 내맡긴다. 이러한 이화의 행동 묘사는 기존의 윤리관과 성모럴에 전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이화의 당돌할이만큼 깜찍한 행실은 지탄받아야 하느냐? 아니면 용납되어야 하느냐?"라는 당시의 신문광고 카피를 통해 쉽사리 짐작된다. 당시 한국영화 속 여성은 하이틴영화에서의 '순수한 소녀' 아니면 호스티스영화에서의 '성적 개방성을 지닌 여자'였는데 이화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새롭고 도발적인 인물 유형을 선보였던 것이다. <겨울여자>의 성공은 이러한 사회적 논란 이외에 꽉 막힌 한국영화계에 일말의 숨통을 터주었다는 점에서 제작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곧 외화 한편으로 벌 수 있는 수익을 윗도는 흥행 실적을 올림으로 제작자들에게 ‘한국영화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표본을 제시해주었던 것이다. <성춘향>(1976)으로 데뷔한 장미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이기도 하다.
133일 간 상영되는 동안 58만6천명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수립했는데, 이 기록은 1990년 <장군의 아들>(67만9천)에 가서야 깨졌다.
김호선 감독의 연출의도: "성장과정에 있는 이화의 세계를 그리는 것인데, 이화가 처음 부딪치는 이성, 기성 윤리관 등을 통하여 육체보다 마음의 순결을 부르짖는 여대생의 엘리트. 즉 육체의 속박에서 해방, 마음의 순결을 내세우는 의미를 형상화시키는데 노력했지요. 그것을 이를테면 이화라는 한 여성을 통하여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오늘날의 남성에 대한 문제, 더 나아가서는 현대인들의 그릇된 윤리관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화 역의 장미희는 이듬해 출연한 <속 별들의 고향>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퀸'의 자리에 올랐다.
김호선(1941 ~ ) 1941년생. 한국영화의 퇴색이 짙었던 1970년대 하길종 등과 함께 영상시대 동인 운동을 벌이며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감독이다. <환녀>(1974)로 데뷔 후, 1975년 상경 여성이 대도시 서울에서 겪는 몰락을 그린 대표작 <영자의 전성시대>를 발표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변화하는 성모럴의 문제를 제기한 <겨울여자>(1977)는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해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활로를 연 영화로 평가받았다. 이후 <밤의 찬가>(1979) <겨울 여자2>(1982) <서울 무지개>(1989) <사의 찬미>(1991) 등을 발표했다.
감독 김호선 ( 1977년도 제작 ) *출연 장미희, 신성일, 김추련, 신광일 *스태프 제작/박종찬, 기획/김재웅, 촬영/장석준, 조명/정덕규, 음악/정성조,
녹음/이재웅, 미술/김유준, 소품/김호길, 효과/손효신, 편집/현동춘, 조감독/이광섭 *줄거리 예쁘고 착한 이화는 대학에 합격한 날, 부잣집 아들인 요섭의 연애편지를 받고 그와 사귀게 된다.
그러나 청평별장에서 요섭의 포옹을 뿌리치고 이화가 도망가자, 요섭은 이를 비관해 자살한다.
충격받은 이화는 앞으로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교내 신문사 기자인 석기와 사귄다. 그러나 석기는 군에 입대한 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방황하던 이화는 다시 고등학교 시절의 교사 허민을 만난다. 결혼에 실패한 후 힘들어하는 그에게 부인과 재결합을 시켜준 후, 자신은 정신박약아와 창녀를 후원하는 선생이 된다.
한국영화음악 / 겨울여자
영화 <겨울여자>는 1977년 당시, 서울 인구 600만이던 시절에, <단성사> 단일관에서만 5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스크린수, 인구비율, 3류상영관의 관객수 등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요즘 최고의 흥행작 <실미도>를 능가하는 흥행기록이다.
<조해일>의 신문연재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성장하면서 만나는 여러 남자들을 통해
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변화하며 수많은 갈등과 대립을 낳은 당시의 한국사회를 투시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불안한 삶을 조명”하여 당대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영화 <겨울여자>는 <장미희>라는 신인배우를 하루 아침에 스타로 만들며,
70년대 후반 제 2의 트로이카 대열에 합류하게 하였고, <김호선>감독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부상하였는가 하면,
소설가 <조해일>은 <최인호>에 이어 스타작가가 되었다. 영화속에 삽입된 많은 노래들이 히트하였는데,
극중에서 여주인공이 즐겨 들었던 클래식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히트한 것은 특별한 일이다.
영화의 주제가는 <김세화>가 부른 <눈물로 쓴 편지>이며, 이 노래는 영화만큼은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눈물로 쓴 편지 - 김세화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가 없어요
눈물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고칠 수가 없어요
눈물은 지우지 못하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부칠 수도 없어요
눈물은 너무나 빨리 말라버리죠
눈물로 쓴 편지는 버릴 수가 없어요
눈물은 내 마음 같으니까요 *
(* 반 복 *)
눈물은 내 마음 같으니까요
눈물은 내 마음 같으니까요
김세화 & 권태수
봄에도 우린 겨울을 말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봄 속에도 남아있다고 여름에도 우린 말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한 여름에도 눈을 내리죠
가을에도 우린 겨울 얘기를 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가을에 벌써 다가 왔다고 겨울엔 우린 겨울을 모르죠 우리들의 겨울은 너무나 추운 생각뿐이죠
가을에도 우린 겨울 얘기를 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가을에 벌써 다가 왔다고
겨울엔 그러나 사랑이 있죠 우리들의 겨울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랑이 있죠 우리들의 겨울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랑이 있죠
우리들의 겨울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랑이 있죠
김세화
본명 : 김홍진
출생 : 1956년 5월
데뷔 : 1975년
장르 : 성인가요
대표 : 나비소녀, 눈물로 쓴 편지, 나비야, 내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등
활동시기 : 1978년 ~
학력 : 서울 배성여고
앨범 : 1집(김세화) 1975년
2집(김세화의 매력) 1978년
3집(고운노래 모음) 1978년
4집(앤의연가/사랑의 열차) 1979년
5집(김세화독집[아쉬운 사랑/야생화]) 1979년
6집(작은 연인들/야생화) 1979년
7집(작은풀입) 1980년
8집(잠자는 인형/여심)1985년
9집(김세화VoI.2 [타인인줄 알면서도]) 1986년
10집(88김세화)1988년
11집(True Love) 2009sus
권태수 / 김세화 - 작은 연인들 [프로필]
권태수는 1974년 서울 종로 쉘브르음악감상실과 명동 쉘브르라이브카페출신의 가수였다. 1976년 ‘님으로’라는 첫 음반을 출시하며 70년대 중 후분에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했었다. 1977년 <노래하는 곳에>라는 프로그램에서 '눈으로 말해요'로 신인상 수상 하였고, 이후 ‘노래하는 곳에’(TBC), ‘토요일 토요일 밤에’(MBC), ‘신인탄생’(KBS)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현재는 복음 가수로 활동중이다. 히트곡으로는 '눈으로', '아기곰', '파파'등이 있다. 이영식과 듀엣으로 부른 "겨울이야기" 그리고 권태수와 같이 부른 "작은 연인들"도 무척 인기를 얻었던 곡이다.
영화 <겨울여자>는 1977년 당시, 서울 인구 600만이던 시절에, <단성사> 단일관에서만 5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스크린수, 인구비율, 3류상영관의 관객수 등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요즘 최고의 흥행작 <실미도>를 능가하는 흥행기록이다.
<조해일>의 신문연재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성장하면서 만나는 여러 남자들을 통해 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변화하며
수많은 갈등과 대립을 낳은 당시의 한국사회를 투시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불안한 삶을 조명”하여 당대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영화 <겨울여자>는 <장미희>라는 신인배우를 하루 아침에 스타로 만들며, 70년대 후반 제 2의 트로이카 대열에 합류하게 하였고, <김호선>
감독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부상하였는가 하면, 소설가 <조해일>은 <최인호>에 이어 스타작가가 되었다.
영화속에 삽입된 많은 노래들이 히트하였는데, 극중에서 여주인공이 즐겨 들었던 클래식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히트한 것은 특별한 일이다.
영화의 주제가는 <김세화>가 부른 <눈물로 쓴 편지>이며, 이 노래는 영화만큼은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