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는 성종 19년, 홍치 원년 3월 기사조에 허종이 동월 등의 동정에 대하여 국왕에게 보고한 기사가 실려있다. 거기에 허종은 "대명일통지를보니 우리나라 풍속을 실었는데 "부자가 냇가에서 함께 목욕한다(父子同川而浴)"던가 "남녀가 서로 상대를 좋아해서 혼인한다"(男女相悅爲婚)'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고사(古史)의 말이지, 현재 우리나라에 이같은 풍속이 없다'고 하면서 "대명일통지에 이런 종류의 잘못된 기사를 어찌하면 좋을까"라고 했더니, 부사 왕창이 "동월은 지금 마침 선제(先帝)의 실록편찬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이를 고쳐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답했고, 동월 자신도 "조선의 지금 풍속을 기록해야지 고사의 말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조선의 아름다운 풍속을 당신들이 모두 나에게 써서 준다면 내가 실록을 편찬할 때 실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의주에서 평양에 이르는 사이에 박천(博川)에서 있었던 일이다.
참고문헌: 후마 스스무(夫馬 進) 저, 하정식 외 역, <연행사와 통신사>, 신서원, 2008, 438면
한편 100여 년이 지난 뒤에 선조 때 학봉 김성일은 <학봉집> 조선국 연혁고이 및 풍속고이편에서 조선은 모두 초가집이라는 대명일통지의 기록을 비판하며 도성에는 와가도 있다는 사실을 반론하고 있다.그러니 상우당 허종 할아버지의 생각을 100년 뒤에 실현한 학봉 김성일은 후계자감이다. 아마 조선전기의 상우당 학풍을 받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