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교나 강의를 이렇게 준비한다.(1)
1. 쉽게
일본의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을 표현하기를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과 같다" 하였다.
불가(佛家)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라 하여 고통의 바다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태복음 11장 28~30)
요약컨대 예수께로 오면 쉼을 누리게 되고 삶의 짐이 가벼워지고 인생살이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설교를 준비할 때나 강의를 준비할 때에 다섯 가지 나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설교학에서는 설교를 준비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의 전 과정을 Inventory라 한다.
나의 설교 인벤토리에 다섯 가지 기준이 있다.
그 첫째가 <쉽게>이다.
나는 설교를 준비할 때나 강의를 준비할 때에 먼저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쉽게 전할 수 있을까?’부터 생각한다.
내가 행하는 설교를 ‘할머니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알아들을 수 있게 하자’라는 생각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던 나는 전도사가 된 후에도 처음엔 철학용어들을 사용하여 가며 어렵게, 복잡하게 설교를 하곤 하였다.
장로회신학대학 2학년 학생이던 때에 청계천 빈민촌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
개척 초기에는 역시 어려운 설교를 하곤 하였다.
그런데 빈민촌 주민들을 전도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설교시간이 되면 잠자는 교인들이 많았다.
보기에 민망하여도 처음엔 못본척 하고 설교를 계속하곤 하였다.
그러나 6개월 정도 지나 어느 정도 친하여진 후에 하루는 예배 시간에 교인들에게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여러분 왜 교회에 오면 늘 자는 겁니까?
예배당이 여관방으로 착각하시는 겁니까?
설교시간만 되면 자는 교인들이 많으니 무슨 연고입니까?" 하고 나무라는 듯이 말하였더니 그 말을 듣고 앞자리에 앉아 늘 졸고 있던 한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이고 젊은 사람이 딱하시오. 우리를 재우면서 잔다고 나무라면 어쩝니까?"
그 말에 내가 말하기를 “할머니 내가 재운다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내가 자장가를 불렀어요, 수면제를 드렸어요. 왜 재운다고 하셔요?”
하였더니 할머니가 답하기를 “재우는 게지요. 하는 말이 어려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데 졸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고맙다 하여야지 존다고 나무라면 경우가 없는 소리지라요”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아 곰곰이 생각하였다.
빈민촌에서 설교하며 하이데거니 칸트니 하는 말들을 섞어가며 설교를 하였으니 껌팔이, 행상, 막노동 하는 주민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설교를 한 것이다.
그래서 설교시간이 되면 교인들이 졸게 되었다.
다음 날 나는 빈민촌까지 가지고 들어갔던 철학책들을 모두 엿장수에게 주고 엿을 바꾸어 마을 아이들과 갈라 먹고는 주민들의 생활현장으로 들어가 함께 살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대화하고 설교하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나는 설교나 강의를 할 때에 쉽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김진홍
나는 설교나 강의를 이렇게 준비한다.(2)
설교학에서 설교를 준비하여 행하는 과정 전체를 인벤토리(Inventory)라 한다.
나는 설교의 인벤토리에 나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다섯 가지 기준이다.
이들 기준은 책에서 읽었거나 누구에게 들은 내용이 아니다.
나 자신이 40년의 목회생활에서 스스로 터득한 내용들이다.
첫째는 어제 글에서 소개한 < 쉽게 설교하기 >이다.
둘째는 < 즐겁게 >이다.
설교시간은 설교하는 나부터 즐거운 시간이어야 하고, 설교를 듣는 분들 역시 즐거워야 한다.
설교자들에게는 신도들에게 즐거운 설교를 들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태리 말에 ‘페카토 모르탈레’란 말이 있다.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일컫는다. 이승에서 뿐 아니라 죽어 저승에 가서도 용서 받지 못할 죄가 ‘페카토 모르탈레’이다.
이태리 사람들은 ‘페카토 모르탈레’에 해당하는 죄를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공직자가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죄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그 자리를 유지하는 공직자들이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할 죄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공무원들 중에서도 그런 죄를 짓고 있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듯하여 염려스럽다.
둘째는 기업가들이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죄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나 상업을 하는 상인들이 이익을 남겨 세금을 내고 고용을 늘리며 기술개발에 끊임없이 기여하여야 함이 기업가와 상인들의 의무요 책임이다.
그런데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적자를 낸다면 이는 용서 받지 못할 죄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가들이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기업가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바의 첫째가 이익을 내여 많은 세금으로 기여하는 일이 첫째가는 의무이다.
이익을 많이 내어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이익금을 재투자하여 기업을 더 발전시켜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나가는 일이 기업가들이 하여야 할 의무의 첫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들은 기업가와 상인들을 격려하여 주고 감사함을 표시하여 그들이 고생하며 기업을 경영하고 가게를 운영하는 데에 보람을 누리게 하여 주어야 한다.
나는 이태리 사람들이 말하는 이들 두 가지 ‘페카토 모르탈레’에 한 가지를 더한다.
설교자가 교인들에게 설교 시간을 지루하게 하고 예배시간이 지겨워 하품하게 하는 일이 용서 받지 못할 죄라는 생각이다.
예배시간이 즐겁고 흥겹고 보람이 있는 시간이 되도록 목사는 전심전력을 다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목사의 특권이요 의무요 책임이다.
나의 신학 동료 중에 토요일만 되면 설교 준비에 머리에 쥐가 난다고 말하기에 내가 핀잔을 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목사를 하지 말고 집사를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네가 설교 준비에 그렇게 부담되고 힘들다면 자네의 설교를 듣는 교인들도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
설교 준비에서부터 마칠 때까지 자신이 즐겁고 듣는 교인들도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 일러 준 적이 있다.
김진홍
나는 설교나 강의를 이렇게 준비한다.(3)
설교학에서는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여 마치기까지의 전 과정을 일컬어 Inventory라 한다.
나의 설교에는 다섯 가지 Inventory의 기준이 있다.
앞의 두 글에서 첫째는 “쉽게”, 둘째는 “즐겁게”를 소개하였다.
오늘은 세 번째 기준을 소개할 차례이다.
세 번째 기준은 < 깊이 있게 >이다.
설교든 강의든 성경공부든 쉽고 즐겁기만 하고 깊이가 없다면 만담수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설교에 깊이의 차원이 없다면 이미 설교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누가복음 5장 첫 부분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와의 만남의 장면에서 큰 은혜를 받는다.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시몬 베드로의 배를 빌려 타시고는 호수뚝에 늘어선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지만 아무런 수확을 거두지 못한 베드로였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동안에 빈 그물을 손질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하셨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시요."(누가복음 5장 4절)
물론 이 말은 고기 잡는 그물을 호수 깊은 곳으로 던지라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의 범위를 넓게 받아들인다.
인생의 그물, 삶의 그물을 깊은 곳으로 던지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신앙의 세계, 종교의 세계는 "깊이"의 세계이다.
깊이를 상실한 종교는 이미 종교이기를 상실한 시장잡배들의 수준에 머물고 만다.
고기잡이 베드로에게 "그물을 깊은 데로 던지라"이르셨던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삶의 그물을 영혼의 깊은 세계로 던지라"고 이르신다.
지금 한국교회 전체가 직면한 치명적인 약점 중의 하나가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때 교회에 몸 담았다가 떠나는 지식인, 청년들이 교회에 대하여 비판하는 내용들 중의 하나가 개신교회에는 “깊이가 없다”, “교회가 너무 소란하고 시끄럽다”, “깊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신도들의 요구를 채워 주지 못한다”는 등으로 비판하며 교회를 떠났다.
그래서 나는 설교를 준비할 때에 나의 설교 내용에 깊이의 차원을 어떻게 더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런데 설교에 깊이의 세계가 더하여 지려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다음 3가지를 갈고 닦아야 가능하여진다.
첫째는 폭 넓은 독서이다.
둘째는 깊은 말씀의 묵상이다.
셋째는 방황과 고민, 기도와 영적체험이 쌓여져야 한다.
김진홍
첫댓글 스크랩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나는 설교나 강의를 이렇게 준비한다'라는 글을 제공해 주시고 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샬롬!
김목사님 설교tape 열심히 듣는 사람입니다. 정말 위에 써 있는대로 쉽고, 재미있고, 깊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