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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독 완독 후의 ‘두 개’의 꿈 이야기
100독 완독 이후에 2개의 몽시적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는 누군가로부터 투망을 받는 꿈이고, 하나는 누군가의 인도로 음란한 곳의 여인들의 영적 모습을 본 것입니다.
1. 투망을 주시고 던지라 하신 꿈 이야기
1시간용 100독 훈독이 종료된 시점에서 전주교회 청년 식구들이 30여 명 정도가 여수 청해연수원으로 낚시 수련을 가기로 했고, 어느덧 예정된 날이 다가오면서 상당히 기분이 들뜬 상태로 있던 중인데, 청해연수원으로 떠나기 며칠 전에 희한한 낚시 꿈을 꾸었습니다.
한낮이고 많은 식구들이 바다낚시 배에 올랐는데 이미 먼저 많은 식구들에게 낚시대가 주어졌고, 받아든 낚시대를 하나씩 가지고 일정한 위치로 가고 있거나 앉아 낚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젠 내 차례로구나. 빨리 낚시대를 받아 낚시를 해봐야지’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낚시배 한쪽 바닦에 있던 준비된 듯한 “투망을 잡아라” 하면서 다시 “그 투망을 던져봐라” 라고 했고, 저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네.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얼굴은 안보이고 음성만 들리더군요.
그래도 ‘투망이라도 줘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니 참 다행이다’ 그런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전에 투망을 던져본 적도 없고, 또 이곳은 바다 한 중앙인데 투망으로 뭔가를 잡을 만한 곳이 아닌데 왜 투망을 주시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으나 일단 투망을 집어 들자마자 순식간에 낚시 배가 투망치기 좋을 것 같은 해안가에 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곳이라면 많이 잡힐 것도 같네’ 하는 안도감이 들자 주저 없이 던져보자는 마음이 들면서 바다를 향해 힘차게 투망을 쳐 보았으나 그렇게 크게 펼치지도 않았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투망에 걸려 올라오는 고기들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낚시대로는 겨우 몇 마리씩 잡는데 그칠 텐데, 투망을 쥐니 크고 작은 다양한 고기를 한 번에 엄청난 양을 잡게 되어 얼마나 기분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렇게 기뻐하는 순간 잠에서 깨어 난 것입니다.
그러고서 바로 ‘100독한 결과로 받은 몽시인가’, ‘꿈으로 뭔가 사명을 주는 것 같다’, ‘나에게 주는 것인가, 투망을 던져야할 식구들 전체에 주는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그럼 그것이 무슨 사명일까? 그러자 바로 떠오르는 것이 ‘예전부터 즉 한국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5년부터 15년 이상 해왔던 사이버활동을 다시 해보라는 하늘의 지시인가’, 아니면 ‘저처럼 최근 인터넷 등 사이버 활동에 소홀히 해왔으니 이제라도 심기일전 하늘의 뜻을 위해 최선을 다해 힘쓰라는 뜻인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그 사명은 ‘통일가 누구든 인간책임분담으로 느끼고 사이버활동에 의욕을 갖고 일해야 할 것이다’로 정리되면서 개인적으로는 전에 없던 사명감으로 예전엔 하다가 힘들면 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했지만, 이젠 직접 몽시로 직접 받으니 얼마나 부담으로 다가오던지 ‘이렇게 하늘이 준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가면 어떻게 될까 그 탕감은 어떤 것으로 받을까’ 등 별의별 부정적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만 아래에서 기술한 대로 긍정적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의 홀연한 성화로 슬픔에 젖어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말조심하는 분위기와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막내는 없던 병도 생겨 여유가 없어 교회에 갈 때마다 목사님의 설교도 못 듣게 되고, 경제적 지식을 이용하여 재테크는 해야 할 것 같고 등등 이유로 6년 이상 침묵하면서 오직 교회는 주일날 밥 먹으러 가는 곳이었는데, 그래도 하늘은 언제나 ‘날 잊지 않고 있었구나. 축복가정으로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는 참부모님의 관심과 사랑 앞에 거듭 거듭 죄송함과 불효함이 밀려오고 조상과 절대선령이 뭔가 역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등등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 다시 뭔가 해야겠다는 각오와 다짐, 성화하기 전에 하나님의 한과 고통에 공감되어 흘리신 아버님의 눈물 장면도 떠오르면서 울먹이면서 ‘다시 한번 예전처럼 해보자’는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원리강론을 읽을 때 ‘계시’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계시를 받지 않아도 그의 이지(理智)와 이성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고 생활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후편)”. 맞다 내가 이지와 이성이 성숙되지 않은, 개성완성과 거리가 멀어 몽시를 주는 것이 아닌가. ‘못나서 부족해서 깨닫지 못할까봐 직접적으로 가르치는구나’ 그런 정리된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마 후에, 그런 꿈 내용을 원리100독 전도사이신 교구장(지금은 지구장)님께 말씀드리자 “지금은 1초 시대라 하늘이 보기에도 SNS 등 인터넷 활동이 중요하니 열심히 해보세요.”고 하셨고, 최근에 다시 새벽기도회를 통해 “하늘로부터 받은 그 나름의 달란트”라 하시면서 “꿈 이야기를 글로 써 보내라 하세요.”라는 말씀을 아내에게 주셨다고 해서 이렇게 꿈 이야기를 부끄럽지만 글로 남깁니다. 완성된 글을 지구장님께 카톡으로 보내드리자 다 보신 후에 다시 카톡으로 “하늘이 오선생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던지… 그러기에 하셔야할 사역도 주시고 계십니다. 투망을 던지라는 것은 사람고기를 잡는 일입니다. 가상공간에서 많은 고기를 잡으라 하시네요.” 하시어 사역으로 받아들일까 합니다.
2. 성을 파는 여자들의 영적인 모습을 보여준 꿈 이야기
어느 날 꿈에 저를 포함하여 두세 사람이 ‘얼굴이 보이지 않고 음성만 주시는 어떤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어느 고급 살롱이나 술집 등이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지극히 일상화되고 확산되는 성매매 현장의 유흥가 마을(지역)로 인도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뭔가 즐거운 일이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져 흥얼거리면서 들어가는데 보이는 것들이 정말로 참혹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떤 곳에 이르자 한 여자가 나오는데 예쁜 얼굴과 길고 화려한 머리카락을 했는데 목덜미 아래는 전부 천으로 되어 있으면서 자세히 보니 ‘머리’만 덩그러니 있는 채로 굴러다니기도 하고 통통 튀어 다니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상체도 하체도 없는 여자가 유흥가에서 웃음을 팔고 있다니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너무 놀래는 중에 벌써 다른 여자가 보이는데, 이 경우엔 얼굴과 상체는 있으나 하체는 아예 없는 반토막인데, 상체에도 여자의 상징인 가슴 부분이 없이 평평했고 하체부터는 천으로 만든 인형 같은 모습으로 자기에게 오라 손짓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너무 충격을 받아 어리둥절하는 상황에서 벌써 다른 장면이 나오고 다시 한 여자가 등장하는데, 옷은 예쁘게 해 입었는데 몸은 완전히 깡마른 나무토막 같아 힘이 하나도 없는지 누워 있기만 한 처참한 모습으로 성을 팔려고 유혹하는 것에 다시 크게 놀래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이젠 어느 길거리를 가는 모습이 보이고, 얼마를 가자 길가의 한 여자가 보이는데, 어떤 남자인가를 유혹하더니 여자 손님이 그녀 옆을 지나가자 그녀의 성기는 순식간에 남자 성기로 바뀌고 중성적인 모습같이 변하면서 유혹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까지 지나가면서 보고 있노라니 참기 힘든 충격을 받아 고통스러워하는 중에 문뜩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번에도 깨어나서 ‘100독 결과로 주시는 하늘의 가르침인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원리강론의 타락론 강의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 때때로 목사님 설교나 특강으로 아버님의 천비(天秘)의 말씀을 통해서 절대성의 의미나 순결의 필요성을 교육받았지만 여전히 인간시조의 타락의 원인이 된 음란 문제가 주관하기 어려운 문제였는지 하늘은 ‘어떤 보이지 않는 어떤 분’의 인도를 통해 저를 포함하여 동행한 남자들을 일깨워주는구나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유흥가에서 성을 파는 직업적 여자들은 영적으로 보면 어떤 모습인지, 사탄이 그 여인들의 몸에 어떤 짓을 했는지 꿈으로나마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음란문제로부터 벗어나 삼대축복 중 첫째인 ‘개성완성을 하라’는 하늘의 몽시이자 어리섞은 놈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고 커다란 은사라고 느껴져 감사함이 밀려오고 눈물도 나왔습니다. 두 번째 꿈은 실은 유흥가를 따라가면서 나름 기대하고 따라가는 모습이여서 무척 부끄럽기도 해서 자세히 발표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전주교회 송년문화제 중에 단에 올라 감정조절 못하고 소감 말하다 엉겁결에 이것까지 발표하게 되어 한번 공개된 것 어쩔 수 없구나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보구나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되었습니다.<끝>
* 100독 완독 후의 원리를 통해 얻은 깨달음 중에 ‘두 개’만 밝힙니다.
1. 말씀을 훈독하고 사랑해야 할 이유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이번 원리훈독 100독 완독은 일단 1시간용 원리훈독교재이니 그 중에서 ‘복귀원리 서론’을 보면, “타락인간이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로, 아담의 반대 경로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성장기간을 거쳐야 하는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한다. 둘째로, 믿음의 기대 위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말씀의 완성실체가 됨으로써 개성완성자가 되어야 하는 ‘실체기대’는 세워야 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개성완성하려면 “말씀을 지켜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개성완성의 수단 중에 비록 1시간용(빨리 읽으면 40분 이내에 끝남)으로 제작되었지만 ‘원리강론 100독’의 가치는 임종혁 지구장님의 발길 거쳐 간 교회마다 두루두루 그 은사가 대단하다고 간증되고 있어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는 ‘원리훈독 정성이 아주! 좋다!’ 라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참어버님 성화 후에 참어머님은 교회를 부흥시키고 천일국을 정착에 있어 딱 하나의 방법이 원리말씀 밖에 없다는 말씀은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교회를 부흥시켜야 됩니다. 아버님 생전에 전 인류가 아버님을 정말로 참부모로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한이 너무너무 큽니다. 그러나 방법은 딱 하나, 원리말씀으로 그렇게 만드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전 인류에게는 원리말씀이 약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원리말씀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고 나아가 천일국의 정착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참어머님, 2012/10/27, 천화궁)”
http://blog.naver.com/o2423682/221171392921(관련글)
2. ‘참아버님께서 생전에 복귀섭리를 완성하셨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1시간용 원리훈독교재 중 ‘재림주님을 중심한 실체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보면 “재림주님은 초림 때와 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섭리는 아담에서 예수님을 거쳐 세 번째인 재림 때에는 의당 그 섭리를 이루시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나온다.
원리강론의 위 주장이 하늘의 가르침이라면 실제상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참부모님께서 엄중한 선언으로 2011년 천력 7월 3일 ‘섭리적 최종목적 되다.’라는 발표와 함께 같은 해 11월 17, 18일을 ‘천일국 최대승리기념일’로 선포하심으로써 모든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완성·완결·완료하셨음을 만천하에 공표하셨던 것입니다.(참부모경 p1317)
따라서 참아버님께서 비록 성화하셨지만 기원절 전에 육신을 쓰신 채로 참어머님과 일체를 먼저 이루셨고, 하나님과도 일체를 이루셨기에 하나님의 여성적 실체이신 참어머님께서 홀로 기원절 즉 하나님의 결혼식을 치른다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결혼식이 되는 것은 지극히 원리적입니다. 이때 비로소 원리강론의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지는 않는다.”가 실현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한편, 오택용 교수님은 기원절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원절은 첫째로 무형의 하나님이 결혼식을 통해 참부모님의 체를 쓰고 현현하시는 날이다. 둘째로 하나님과 참부모님이 완전통일일체완성을 이뤄 현현하시는 날이다. 셋째로 창조본연의 이상가정인 하늘가정이 출발하는 날이다. 넷째로 창조본연의 이상가정의 확장을 통해서 이상천국을 완성하는 출발의 날이기도 하다.”
문예진님과 오교수님의 설명을 확대하면, 기원절은 여성해방의 날(하늘어머니가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날)이고, 가인ㆍ아벨 해방이 이뤄지는 날이고, 양위분께서 천신만고 끝에 하나님과 삼위일체를 완료하시고(2011/11/18), 그 터전 위에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인간의 체를 쓰신 채로 기원절(2012/1/13)의 결혼식을 승리하여 사랑의 감정을 실체로 느끼시게 되셨고, 하나님의 해방ㆍ석방의 날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상 원리강론과 아버님의 섭리적 선포들을 통해 참아버님께서 생전에 복귀섭리를 완성하지 못하셨다는 일부의 음해는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마무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