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사도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들을 모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모든 난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행동(윤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 자신을 기쁘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기독교는 인간적인 입장에서 사물들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키는 데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은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나 구원을 매우 행복한 체험의 차원에서만 생각한다. 그것은 소극적인 접근방식이다. 이것은 기독교 구원의 영광을 축소하고 아주 작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 주님께서 바리세인에 관한 말씀을 기억하라.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16:15)
성경은 인간 존재에 관한 다른 관점을 우리가 가져야 함을 일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을 위해서 만드신 것은 사람이 계속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어떠한 특별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십계명을 마가복음 12:30-31로 요약하여 말씀하셨다. “너희 존재 전체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되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도록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대한 개념을 실천적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우리는 단순히 ‘내가 이것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거룩해야 된다는 말씀을 듣고 있다. 사도가 여기 로마서 12장에서 가르치는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도록 되어 있으며 그 뜻을 즐거워하도록 의도된 사람들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1문) 사람들의 문제는 어떤 특별한 죄악들을 저지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전체 태도가 전혀 그릇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구원받고 거듭날 때만이 바로 이 새로운 사고방식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분별하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 사이를 분별하는 능력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가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관한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점은 우리 구원의 결과로 마음이 새롭게 되어 우리가 해낼 수 있게 된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론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 수는 없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곧 실천으로 옮겨야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6-17)
첫째, 새로워진 마음을 가지고 영적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이러한 교리들을 견고히 붙잡을 때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거듭나지 아니한 자연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미워한다. 본성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악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도 선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다른 방식은 그들의 표준이 항상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거룩이 표준이지 행복이 표준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죽으면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종교라는 인간을 압박하는 그 가위눌림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항상 선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선하다’ 그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인뿐이다.(고후1:9-1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나니”(히12:11)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하다. 바로 그 점을 여러분이 분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하면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 선한 뜻을 좋아하고 즐거워하기 시작한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시119:90)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요한은 거듭나지 아니한 자연인에게는 하나님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나 거듭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다. 그 하나님의 계명이 더 이상 자기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받음직한 기뻐할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요일5:1-3)
셋째, 마음을 새롭게 하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 관해서 그 하나님의 뜻이 제안하는 모든 것이 다 온전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온전함이다.(엡5:25-27)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함에 높이기까지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3:20-21, 유다서 24-25에 있는 그 영광스러운 축복 기도를 읽어보라. 우리는 완전함을 위해서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27에서 하늘의 전경의 묘사된 말씀을 듣는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바로 이것이 그 모든 것이 뜻하는 바이다.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라. 이를 위해 부지런하게 열심을 내라. 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관한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곧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고 언제나 기뻐할 만하며 언제나 완전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