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람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새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채
무엇인가 할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 기형도 시인에서 자주 보이는 “죽음”에 관한 텍스트를 읽을 때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늙음”이다. 그는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에서 나타나듯 늙은 사람을 혐오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육체적으로 늙은 이를 혐오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의 시세계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마지막에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는 “죽음”에 관해서는 단정적일 만큼 거부감이 없지만 ‘정신적인 늙음’에 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육체적인 늙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정신적으로 늙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서는 부정적이고 도피하고 싶은 감정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