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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운달산 김룡사 상선원 주련 慶北 聞慶 雲達山 金龍寺 上禪院 柱聯
상선원(上禪院)
摧殘枯木依寒林 최잔고목의한림 幾度逢春不變心 기도봉춘불변심 樵客遇之猶不顧 초객우지유불고 郢人那得苦追尋 영인나득고추심
꺾여진 고목이 찬 숲에 의지하여 몇 번이나 봄이 와도 변함이 없었도다. 나뭇꾼이 보고도 돌아보지 않거늘 영인이 무엇하러 애를 써서 찾는가?
【解說】
이 주련은 처음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번 성지순례 때 미처 주련을 찍지 못해 사진 은 없습니다만 의미 깊은 내용입니다. 선시이기에 그 뜻의 깊에에 대하여 가름하기 힘듭니 다만 조금이라도 그 뜻을 엿보기 위하여 출처를 찾아 옮겨 봅니다.
이 게송의 출처는 《전등록(傳燈錄)》제7권,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법상선사(法常 禪師)」 조에 나옵니다.
이 게송은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의 법을 이은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 선사가 지은 게송입니다. 법상(法常) 선사에 대한 《전등록(傳燈錄)》의 내용을 소개해 봅니 다.
법상(法常) 선사는 양양(襄陽)사람으로 성은 정(鄭)씨였습니다. 어릴 때에 형주(荊州) 옥천 사(玉泉寺)에서 스님이 되었는데 처음으로 대적(大寂. 馬祖)을 뵙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卽心是佛)"
대사는 그 자리에서 크게 깨달았습니다. 당(唐)나라 정원(貞元) 때에 천태산(天台山) 여요 (餘姚)의 남쪽으로 70리에 있는 대매산(大梅山). 매자진(梅子眞)이 옛적에 은거하던 자리에 살았습니다.
이때에 염관(鹽官齊安 ?~842) 스님 밑에 있던 어떤 스님이 이 산에 와서 주장자감을 베다 가 길을 잃고 암자에까지 와서 물었습니다.
"화상께서는 얼마 동안 여기에 계셨습니까?" "사방의 산이 푸르렀다 누래졌다 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산을 벗어나는 길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냇물을 따르라."
그 스님이 돌아와서 염관 스님에게 말하니, 염관 스님이 말했습니다.
"내가 강서(江西)에 있을 때에 어떤 스님 하나를 만났다가 그 뒤로는 소식을 몰랐는데 그 스님이 아닐까?"
그리하여 스님을 보내서 대사를 나오라 하니, 대사가 게송으로 대답했습니다.
摧殘枯木倚寒林 최잔고목의한림 꺾여진 고목이 찬 숲에 의지하여 幾度逢春不變心 기도봉춘불변심 몇 번이나 봄이 와도 변함이 없었도다. 樵客遇之猶不顧 초객우지유불고 나뭇꾼이 보고도 돌아보지 않거늘 郢人那得苦追尋 영인나득고추심 영인이 무엇하러 애를 써서 찾는가?
대적(大寂. 馬祖)이 이 말을 듣고 스님 한 분을 보내서 이렇게 묻게 하였습니다.
"화상께서 마조를 뵙고 얻은 것이 무엇이기에 여기서 사십니까?" "마조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하시기에 나는 여기에 와서 산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습니다.
"마 대사의 요새 불법은 또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 "요새는 다시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라고 하십니다." "그 늙은이가 사람 속이기를 그칠 날이 없구나. 자기 멋대로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 하나 나는 나대로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 하리라."
그 스님이 돌아가 마조에게 말하니, 마조가 듣고 말했습니다.
"대중이여, 매실(梅實)이 익었구나."(대매도 진짜가 되었구나)
이로부터 학자들이 차츰 늘어서 대사의 도가 더욱 드러났다 합니다.
주련의 게송은 이와 같은 일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摧殘枯木依寒林(최잔고목의한림) 꺾여진 고목이 찬 숲에 의지하여 幾度逢春不變心(기도봉춘불변심) 몇 번이나 봄이 와도 변함이 없었도다.
최잔(摧殘)이란 꺾이어 손상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최잔고목(摧殘枯木)은 꺾여지고 말라 빠진 앙상한 고목이란 뜻입니다. 주련에 '의(依)'라고 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의(倚)'로 되어 있습니다. 같은 뜻을 갖고 있어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기도봉춘불변심(幾度逢春不變心)은 몇 번이나 봄을 맞았어도 변함없이 있다는 말입니다.
선시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뜻을 가름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 고자 합니다.
이 게송은 염관스님이 대매스님을 떠보고자 스님을 보내어 탐문한 결과 나온 대답입니다. 염관스님도 마조 스님의 법제자입니다. 말하자면 사형사제(師兄師弟)입니다. 그래서 서로 는 잘 아는 처지였을 것입니다.
최잔고목의한림(摧殘枯木依寒林)은 마조(馬祖) 스님의 법을 이는 대매(大梅) 선사가 대매 산에서 보림(保任)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림(寒林)에 의지하고 있는 최잔고목(摧殘 枯木) 즉 꺾이고 앙상하여 보잘 것 없는 고목에 비유하면서도 마조 스님으로부터 받은 법인 즉심즉불(卽心卽佛)의 마음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없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樵客遇之猶不顧(초객우지유불고) 나뭇꾼이 보고도 돌아보지 않거늘 郢人那得苦追尋(영인나득고추심) 영인이 무엇하러 애를 써서 찾는가?
초객(樵客)은 나무꾼을 말합니다. 우지(遇之)는 최잔고목(摧殘枯木)을 보았다는 말이고, 유불고(猶不顧)는 오히려 돌아보지 않았다는 뜻이니, 나무꾼이 나무하러 왔다가 최잔고목 (摧殘枯木)을 보고도 본체만체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왜 본체만체했느냐 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
영인(郢人)은 영(郢)이란 고을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영(郢)은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강릉 현(江陵縣) 북쪽에 있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초(楚)나라 서울이었습니다. 초나라 영땅에는 나 무를 깎아 목제품을 만드는 장인(匠人)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좋은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나무에 대해서는 안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인(郢人)이란 목장인(木匠人) 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대목(大木)이란 뜻입니다. 나(那)는 '어찌 나'이죠. '무엇하 러'로 새겨집니다. 득고(得苦)는 '애를 쓴다'는 말입니다. 추심(追尋)은 '옛일을 더듬어 생각 한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뒤쫓아 찾음'의 뜻입니다.
여기서 대목장(大木匠)이란 염관(鹽官) 선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윗글에서 염관스님이 문하생 한 사람을 보내 만나자고 하니, 대매선사는 나무꾼도도 본체만체하는 최잔고목(摧殘 枯木) 같은 나를 선(禪)의 거장(巨匠)인 염관스님이 무엇하러 애써 나를 찾느냐고 뜻을 전했 습니다. 이 뜻은 여기서 보림을 계속하겠다는 대매선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즉불즉심(卽佛卽心)이란 확고한 깨침으로 마조(馬祖) 스님의 법을 이은 대매법상(大梅法 常) 스님의 법화(法話)를 이번 주련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뜻 깊은 주련을 깊이 상량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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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꾼이 좋은 기회를 놓쳤군요. 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_()_
쓸모없는 나무야말로 제 수명을 다한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세상에 쓸모 있는 나무는 천수를 누리기 어렵지요. 대들보감, 서까래감,감, 수레바퀴감, 심지어 땔감 등등 소용이 되면 일찌감치 베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쓸모없는 나무는 누가 거들떠 보지 않아 천수를 다한다는 이야기가 <장자(莊子)>에 있지요... 이 이야기를 쓰려다가 글이 길어지는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자유게시판에 올려 보려 합니다. _()_
일화가 담긴 주련이군요...잘봤어요... 사문유관 음악과 함께_()_
이 주련은 알고보면 엄청 유명한 이야깁니다. 꼭 새겨 두어야 할 내용입니다. _()_
나무관세음보살_()()()_
주련방에 오심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_()_
....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_()_
주련에 이런 깊은 뜻이 있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해설을 읽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내용인데 너무 감사합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_()_
예, 저도 주련을 통하여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멋진 주련입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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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