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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 9:24-27
1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금메달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금메달에 그렇게 열광을 한다.
연아가 억울하게 은메달을 받게 된 것을 두고 가슴 아파 한다.
세상은 그러한 줄 알면 족하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 가진 자들의 잘못된 권력 행사로 다반사로 일어난다.
하나님은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암5:24)고 해도
사람은 어떻게든 내 탐욕을 추구하느라, 불법과 악행을 서슴치 않는다.
결국은 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그 날이 있으니 맡기고 평온을 살자.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니 공정하게 상을 주신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는 것이다.
게으르고 태만한 사람은 결코 상을 받을 수 없다.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달리는가?
믿음생활도 경주이다.
(히12: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잘할려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한다.
선수들의 최대한 가벼운 옷차림과 기구들을 보았을 것이다.
너무 많은 일들, 많은 직책들, 다 무거운 짐들이다.
우리를 얽어매는 많은 관계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벗어버리지 않고서는 믿음의 경주를 달릴 수가 없다.
과감하게 정리할 것 정리하고, 끊을 것 끊어버려야 한다.
세상 염려와 재물과 향락도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가시덤불 들이다.
이 무거운 짐들 때문에 달리지 못해서 말씀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욕심과 정욕을 줄이면 짐도 가벼워지고 믿음의 경주를 잘할 수 있다.
또한 게으름에 얽매이면, 달릴 수가 없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게으름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부터 잘 챙기고 그 의무를 다하자.
특별히 기도와 말씀의 경건생활에 게으름이 습관화 되지 않도록 유의하자.
시간을 잘 관리하고 낭비를 줄이자.
건강을 잘 관리하고 아프지 말자.
내게 주어진 작은 일들에 충성을 다하자.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4:7)고 했다.
우리도 생을 마감하는 날 이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믿음의 경주를 잘하자!
전제의 포도주와 같이 다 부어지도록 그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고백한다.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핍박이 기다린다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도 각자 달려갈 길이 있고,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달려갈 길과 사명이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맡긴 달란트 만큼 남길 수 없다.
우리가 약해지고 게을러질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자세를 바로 하자.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자.
푯대를 향하여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자.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2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도록 절제하라
(고전9:25-26)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다른 모든 일에 절제한다.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하고 싶은 것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지옥훈련’이라는 말에서 그들의 훈련의 강도를 느끼게 한다.
결국은 썩고 말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저리도 훈련하고 절제하는데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을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모든 일들을 절제하지 않고서는 의의 면류관을 얻을 수 없다.
바울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한다.
(딤후4:7-8)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다른 모든 일들은 절제했다.
다른 모든 일에 대한 절제 없이 자기의 갈 길을 달려가고 믿음을 지킬 수 없다.
이것도 저것도, 주의 일도 세상 일도 다 할려고 하는 사람은 달려갈 수 없다.
의의 면류관은 다른 모든 일들은 절제하면서,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자의 몫이다.
세상 일과 자기의 일에만 바빴던 사람들은 결산하는 날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젖을 것이다.
기도와 말씀의 경건생활을 소홀히 하고 미루기만 했던 사람들은 받을 면류관이 없을 것이다.
그 날에 가서 그 면류관을 받는 자들을 부러워하며 장탄식을 하는 신세가 되지 않게 하자.
모든 공력은 불에 타 없어지고 불에서 겨우 건져지는 나무토막 신세가 되지 않게 하자.
세상 일과 자기의 일들을 절제하지 못하면 주의 일과 주의 뜻을 행할 수가 없다.
모든 일들을 절제할려면,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푯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자원들, 곧 시간 재물 에너지 등은, 한정 되어 있다.
한 쪽에 많이 쓰면, 다른 쪽에 쓸 것이 없게 마련이다.
오직 재물만 섬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오직 땅에만 보물을 쌓은 사람은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없다.
최우선순위는 세상 일도, 자기 일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믿음의 경주에서 최우선순위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한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한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죽이라고 한다.
상을 얻기 위해 달음질할려면 이런 것들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땅의 것에 대한 절제 없이 하늘의 것을 얻을 수 없다.
돌이키고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육신의 생각을 절제하지 않고서는 영의 생각을 할 수 없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가져오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가져 온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일들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하늘의 목표와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는 없다.
세상 일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 달음질은 향방 없는 달음질이 되고 말 것이다.
다른 모든 일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공을 치는 싸움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영원한 의의 면류관이 우리의 최고의 푯대와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목표와 푯대를 분명히 했으면 다른 모든 일을 절제해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과 세상 마지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자다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한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정욕을 따라 살지 않도록 두려움으로 지내야 한다.
육체의 남은 때를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한다.
목표를 분명히 하지도 않고, 모든 일을 절제하지도 못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그 날에도, 무서운 심판만이 그들의 몫이 될 것이다.
탐욕을 향한 달음질은 “무너졌도다 바벨론이여”로 대미를 장식하고 말 것이다.
3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라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목표를 알고 정하고 달려가기를 작정하였다면,
다른 모든 일은 절제하며, 무엇보다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는 몸을 쳐서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진리와 복음은 듣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한 자가 복이 있다.
진리를 듣는 것은 행하기 위함이다.
율법을 묵상하는 것은 행하기 위함이다.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는 자에게 하는 일마다 형통하는 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몸을 쳐 복종시키지 않고서는 실천할 수가 없다.
내 몸을 쳐 복종시키지 않다가 그 훌륭한 다윗도 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경건생활도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이루어갈 수 없다.
내 몸은 치지 않고, 남의 몸만 쳐서 복종시킬려고 하니까,
공의와 정의가,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마음과 육체의 원하는 대로 가고자 하는 우리 육신의 마음을 이길려면
내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게으름도 유혹도 죄도 내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물리칠 수 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고서는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수도 없다.
하늘을 위해 땅의 모든 일에 절제할 수도 없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세상이 나에 대해, 내가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듣고도 자기 몸을 쳐서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신다.
인생의 폭풍우와 고난의 홍수가 몰려올 때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듣고 자기 몸을 쳐서 행하는 자는 주추를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
인생의 폭풍우와 고난의 홍수가 몰려올 때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망하고 만 것은 그들이 듣지도 않거니와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영혼이 없는 몸과 같다고 하였다.
듣기를 힘쓰고, 들었으면, 내 몸을 쳐 복종시켜,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은 자들의 표본이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았기에 전파한 후에 도리어 버림을 당하고 말았다.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고 난 후에야 밝히 보고 남의 눈의 티를 뺄 수 있다.
남에게 대접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 몸을 쳐서 남을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 몸을 쳐서 희생과 땀과 수고를 해야 한다.
사랑한다면 수고해야 하고, 믿음이 있다면 행해야 하고, 소망이 있다면 인내해야 한다.
입술은 천국에 가 있고, 몸과 영혼은 지옥에 가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자녀들에게 잔소리는 아무 유익이 없다. 해로울 뿐이다.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줄 때, 그것을 보고 새기고 살게 될 것이다.
고난 가운데서도, 변치 않는 환경 가운데서도,
말씀을 들음으로 단련된 믿음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함으로 인내하며 소망을 잃지 아니한다.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하는 사람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한다.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될 것을 소망하고 믿기 때문이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사람만이 끝까지 소망을 붙들고 인내하는 믿음을 견지할 수 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사람만이 모든 일에 절제할 수 있고,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끝까지 달음질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믿음의 경주를 다 마친 바울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딤후4:6-8)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