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소머리 국밥 먹다 >
- 文霞 鄭永仁 -
오늘 월목회는 단출했다. 세 사람뿐이 없기 때문이다. 회장은 비가 온다고 하여 갑자기 동생네 고추도 심기에 간다고 한다.
처음에는 월미산으로 정했다가, 소래습지로 가려고 했으나 결국 응재네 동네 근처 근린공원으로 낙착되었다. 내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응재의 말은 45년 전에 개업한 근사한‘소머리 국밥집’을 알아두었다는 것이다. 문득 시우가 보내준 은퇴 후에 해야 할 당부 중에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걸어라, 가고 싶은 곳을 가 보아라, 먹고 싶은 것을 먹어라’라는 말이 언뜻 떠올랐다.
송내역 나부 광장에서 규형이와 만나서 연수동에 가는 16-1번 시내버스를 탔다. 응재 얘기로는 논현동 사거리를 지나 은봉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란다. 입하(立夏)가 엊그제 지나서 그런지 제법 날씨는 초여름을 향해 달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웠다. 그래도 변두리라고 도심을 벗어나니 드문드문 전원은 녹색의 계절로 갈마듦을 짐작케 한다.
이 얘기 저 이야기하며 응재가 매일 산책하다는 근린공원을 돌았다. 나이 먹은 참나무들은 숱한 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가지각색 철쭉꽃은 요염할 정도로 피어 있다.
쉬엄쉬엄 걸어 응재가 알아둔 ‘호구포(虎口浦) 식당’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그리도 무덥더니 빗방울이 후드득거리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니 싱그러운 대지는 초여름을 향해 더욱 질주하는 것 같았다. 자연의 색들은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가고 있는 ‘호구포 식당’은 45년 전에 문을 연 서민 식당이라 한다. 아마 반세기를 서민들과 같이 한 식당인가 보다. 특히 소머리국밥과 가정식 상밥은 ‘굿모닝 인천’ 5월호에 자세히 소개된 할머니 집이기도 하다.
그 식당은 새로 생긴 수인선의 소래역사 근처, 지금은 헐려졌지만 옛 소래역 자리 앞에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 정말로 허름하게 어느 면소재지의 70년대 식당과 같은 단층집으로 지어진 밥집 같은 식당이다.
변소는 녹슨 자물쇠로 채워졌고, 간신히 열고 들어가니 완전 푸세식 재래식 변소이다. 변소라기보다 어쩌면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 뒷간이라고 하는 게 딱 알맞다. 그것도 시멘트도 아니고 판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나마 판자를 수리해서 조금 다행이긴 하다. 중학교 때, 나는 숭의동 109번지 전도관 밑에서 자취를 했다. 모든 집들의 변소를 푸세식이었다. 비가 많이 오면 하천에다 퍼내어 버리던 모습이 떠 오른다.
인분을 치우던 아저씨들이 똥통을 지고 다니며 “똥퍼, 똥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머리가 허옇고 자상한 주인 할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우리는 소머리국밥에 소주 한 병 시켰다. 김치나 깍두기가 내 입에 맞는다. 부추와 미나리를 데쳐 무친 나물이 맛깔스럽다.
주인 할머니는 기사들 때문에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문을 연다고 한다. 일 년에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을 정도로……. 할머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기사들 때문에 새벽에 문을 안 열 수가 없어!”
소머리국밥이 나왔다. 여느 소머리국밥보다 머릿고기가 푸짐하다. 바특하게 끓인 국물이 어렸을 적 장터에서 먹던 국밥과 비슷하다. 아마 내가 먹어본 소머리국밥 중에 제일 맛나다. 소머리국밥은 7,000원, 가정식 상반은 5,000원이다. 테이블은 대여섯 개쯤 된다.
지금은 없어진, 수인선 협궤열차(挾軌列車)가 다닐 때의 옛 소래역 자리 앞이란다. 얼마나 많은 우리네 엄마들이 다라에다 생선을 받아다 도붓장사하던 역이 아닌가? 정작 그 엄마들은 돈이 아까워 이 국밥을 먹지도 못했을 것 같다.
사방 신도시의 고층 빌딩 숲에 둘러 싸여 있다. 이 식당가도 개발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 풍경 또한 우리 주위에서 조만간에 사라지리라 !
이 식당은 보통 맛꾼들이 말하는 맛집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주인이나 가족이 카운터에 앉아 있고, 보통 낡은 간판을 그대로 쓰고, 주인이 직접 조리를 하고, 또 식당이 허름하고, 게다가 뒷간까지…….’
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우중명일이라 하더니 오늘이 그날이다. 깍두기가 맛있고, 국밥 한 숟가락에 깍두기 얹어 먹는 맛이 구수하다. 연신 깍두기 더 달라고 해도 할머니는 싫은 내색 없이 갖다 주기 바쁘다.
이제 이런 풍경도 머지않아 사라지리라. 마치 수인선 협궤열차 사라지듯이…….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이런 소박한 것들이 개발에 밀려 너무나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삭막할 정도로……. 빠름과 속도감과 부귀영화 땜에.
오늘은 무가네로 응재가 계산했다. 자기 동네에 온 손님이라 대접하는 것이라고.
새로 생긴 수인선 타고 응재는 집근처 논현역에서 내렸고, 우리는 원인재역에서 갈아탔다.
누가 그랬다. 행복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은 ‘소박한 일상의 행복’이라고…….
오늘은 구수하고 바특한 하루 행복이다. 행복이 뭐 따로 있겠는가. 비가 오는 날에 구수한 소머리국밥에, 친구와 같이, 그것도 얻어먹었으니 말이다. 봄날 소래포구에서 먹은 국밥이. 그나저나 ‘호구포 식당’보다는 ‘범아가리 식당’이라고 식당 간판을 바꿔보는 것이 어떨가 하는 객쩍은 생각이 든다.
이 집이 없어지기 전에 몇 번은 더 와서 가정식 상밥도 먹어보고 수육도 먹어 보고 싶다.
봄이 엊그제 온 것 같은데, 벌써 초여름이 성큼 다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