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장 교회의 연합
“(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12:5-6)
교회의 연합이 신령한 연합이고 눈에 보이는 연합이되 성령께서만이 친히 일으킬 수 있는 연합이다. 그 연합은 이지와 교리를 포함하는 연합이며, 그 연합은 ‘머리’를 수반하여 ‘머리’가 나머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연합이다.
다음 요점은 그 연합은 살아있고 역사하는 연합이다. 몸은 살아 그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존재이다. 즉 몸을 통해서 살아가는 인격이 작용하고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몸과 기계를 구분해야 한다. 기계는 죽어 있지만 몸은 살아 있고 활동하고 역사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분명히 그것이 존재하는 목적을 위해서 일해 나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교회는 살아 있고 능동적인 연합을 표현한다.
- 교회의 제일 우선적인 임무는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위대한 구원에 관한 진리를 알리는 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이다. 교회가 활동하지 않으면 그 교회가 무엇인가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죽은 교회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그런 교회 속에서는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몸 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모든 것이 머리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교회의 활동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그 교회 자체의 활동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항상 여기에도 극단이 존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자기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결단코 하나의 부흥을 조직화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산출해 내거나 교회가 그러한 것들을 산출해 낼 수 없다. 교회가 자기의 참된 지체의 수를 결코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명령을 내리시는 분은 머리이시고 그분이 운행하시는 것이다.
또 위험은 우울증이다. 너무 바빠서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침륜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신의 행동을 의지하며 살면, 그 믿음에 있어서도 영적 삶에 있어서도 그릇되어 결국 소진 상태에 빠지고 넘어지게 된다. 마치 술이나 자극에 의지해 사는 것과 같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영적 생명에 대해서 걱정하고 아주 정확히 올바르려고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다른 것을 위해서는 시간을 전혀 쓰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우울증 증세이다.
무엇이 참된 입장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영적으로 검증할 것과, 항상 반응할 준비를 갖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세미한 지시를 하신다 할지라도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홍역’에 감염되어 주님을 떠나 주님을 대신해서 행동하거나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건강한 영혼은 성화를 계속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이러한 영적인 연습이 되는 것들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민감하게 반응할 조건에 항상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성화생활을 시험하는 가장 훌륭한 방식 중 하나는 주님의 뜻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한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왕에게 민감한 신하는 작은 움직임이나 표정 하나만으로도 그 왕의 의도를 즉시 알아차린다. 우리도 그와 같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원하시는 것에 이처럼 반응하고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면, 알지 못했던 활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바로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 교회의 활동은 항상 머리되시는 이의 생각과 마음에 일치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주요한 개개 교파들이 바로 그 원리를 무시해 왔다. 우리 몸의 활동들은 다 본질적으로 인간 존재로 하여금 인간답게 만들 듯이, 교회의 모든 활동들은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과 부합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웠을 것이다”(요18:36)라고 말씀하셨다. 막 10:45, 눅 22:25-27에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하신 것은 주님의 나라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진리는 많이 훼손되어 왔다. 심지어 교회가 칼로 위협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게 만들었던 시대도 있었다. 우리 주님께서 행하시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복음을 확산시키려는 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이 교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그런 잘못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루터도, 칼빈도, 쯔빙글리도 존 낙스도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참된 종교를 강화시키는 것이 국가의 임무요 통치자의 임무라고 말한다. 물론 종교개혁자들이 할 일이 많았고 모든 것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교회는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영적인 몸, 영적인 유기체이다. 사회적인 오락을 발판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유지하려는 것은 이 교회의 원리를 파손시키는 것이다. 1859년 다윈의 책 ‘종의 기원에 관하여’를 통해, 산업혁명으로 도시가 번영하고 더 나은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말하였다. “그들은 기도회를 좋아하지 않고, 긴 설교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어 그들을 붙잡아야 한다”. 교회의 임무는 사람들을 붙잡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여 가장 거룩한 믿음 안에서 그들을 세우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이 원리와 일치되지 않는 방식으로 노력한다면, 교회 안에 붙잡혀 있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진리에 의해서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일시적인 성공에 불과할 것이다. 수세기 동안 교회가 세상적인 방식에 의지하여 지탱하려 애를 써 왔지만 모든 방식은 실패하였다. 그래서 조롱하는 자들은 교회가 결국 끝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까지 한다. 그러나 갑자기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 사람들이 이끌림을 받고 참되게 회심을 하고 살아 있는 교제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가 존재하게 된다. 그러한 것이 지나간 수 세기 동안 아주 풍성하게 입증된다.
바울이 고전 13:1에서 그 논증을 하고 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어떤 말 잘하는 사람이 군중을 끌어 모을 수 있고 추앙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꽹과리를 울리는 것’이고 ‘징을 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잠시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나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지식에 있어서도 거기에 생명이 없다면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숫자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에 의존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 주님이 계신다.(마18:20) 성령의 능력이 이 생명있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면, 그 역사가 백 년 동안에 수천 사람이 해낸 일보다 더 많은 일을 1분간에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그 연합은 우리가 항상 하나 되며 지체들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연합이다. 교회의 영광이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그 ‘하나’, 그 연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그 하나가 그 많은 사람들 서로를 완벽하게 받아줌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둘째,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부분의 일보다 전체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가 저지른 잘못이었다. 인간의 몸의 각 기관이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건강한 것이며, 그것이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개개 부분은 그 자체로는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아무 소용도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 자체로는 혼자서 기능할 수도 없다. 어떤 부분의 가치는 그 전체에 덕을 끼치고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우리는 우리의 무엇(지위 은사)이나 만족해야 한다. 몸 안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내가 몸 안에 있는 것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몸의 지체로서 우리의 주요한 관심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이다. 우리의 활동은 그 주님의 활동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여러분 이러한 일들을 깊이 생각하고, 여러분 자신의 삶에 그것을 적용시키고, 교회와 여러분의 관계를 적용시켜 보라. 거의 모든 난제들이나 여러 가지 좌절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 무엇보다도 교회가 실패하는 것은 주로 이 본질적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 옆에 있는 존재는 여러분에게 의존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다 중요한 존재이다. 우리 모두가 다 핵심적인 존재이요, 우리 모두가 다 큰 특권을 가지고 있다. 난제들을 피하는 방식은 언제나 전체 몸을 생각하는 것이고, 특별히 머리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언제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여러분의 눈이 언제나 그에게로 향하고 있어, 예민하게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교회와 그 교회 연합과 기능에 대한 위대한 신약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