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떨림,
짓밟힌 자존심,
그러나 영혼은 평화를 노래한다.
두려움의 고통
사랑할 수도,받을 수도 없는,
그러나 영혼은 기쁨을 춤춘다.
누군가에 의해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당할 때
마음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참으려니 내 속은 시커멓게 타고 있습니다.
잠을 설치면서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습니다.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한 말이 정의로운 충고라 생각해서 그런건지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행동할 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온 몸이 경직되어지곤 하지요.
참으로 사람은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어 그런가 봅니다.
그렇게 이해하려해도 내 마음은 흙탕물에서 허우적댑니다.
안되겠다 싶어 참다 못해 그 사람에게 '이러저러 해서 내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여러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행동을 옳다고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괴롭다.라고 내 마음을 이야기 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킬 때
우리의 인간 공동체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사랑의 계명을 이야기한 사도 바오로은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가 첫 번째로 등장합니다.
참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희생'... 나를 벗고 비우기 위한 정화의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가정해서 내가 만일 그 자리에서 싸움 잘 하는 사람처럼 대들었다면?
아마 누구보다 내 영혼의 심연에 계시는
우리 예수님을 가장 슬프게 해드렸을 것입니다.
사랑을 거부하는 많은 영혼들에게 버림 받아 지치고 힘드신 그분께
이 보잘것 없는 영혼이 그분께 아주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기쁨을 드리는 것은
바로 내 영혼을 기뻐 뛰놀게하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참느라 아파서 힘들어도, 참느냐고 병이 나도
누군가에게 무질서하게 대드는 성격이 아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내 육신이 요동치는 고통에서도
내 영혼은 평화를 준비하며 저를 위로하고 있음을 압니다.
중요한 것은 나로 부터, 때론 이웃으로부터 오는,
드물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고통속에서
내 영혼은 성장 한다는 그것입니다.
절대로 고통이 없는 삶은 있을 수도 없겠지만
여하간 제게 있어 고통은 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과 사랑을 드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자연스레 친구처럼 여길 수 있는 사랑의 정화가 -나를 향한 사랑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 더 더욱 필요한 것이겠지요.
내 의지를 하느님을 향해 쓰는 그 목적을 향해
겸손의 은총을 구하고 또 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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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젠가 마음 떨림이 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끄적였던 것을 일깨워 정리해 봅니다. 사순시기에 한번은 더 생각하며 극기와 인내, 고통, 용서, 화해, 희생, 이웃 사랑, 이런 단어들을 떠 올리며 부활을 준비하는 마음을 추스려 봅니다.
이웃이 진정한 형제로 보일 때 사랑이 완성한다고 하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대지는 온갖 좋고 나쁜쓰레기들까지도 받아들여 그것을 깨끗이 정화하여 우리에게 되돌려 주듯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주님께 온갖 불경한 생각들로 가득 찰때가 있지요. 그러나 마음의 용광로 속에서 정화의 과정을 거쳐 고통의 열매를 짜내어 주님께 바치면 우리의 마음도 영혼의 떨림 현상으로 이어지겠지요. 바오로 사도의 사랑도 바르나바성인과 논쟁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씀도 있듯이 경험의 지혜가 누구나 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좋은 사순에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네 시릴로 형제님, 좋으신 말씀입니다. 여전히 쇠외된 사람들 위해 애쓰시고 계시죠? 사순절이 아니더라도 극기의 삶을 사시는 시릴로님, 모범의 삶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