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피는 산행의 꽃
예로부터 금강산·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꼽혔던 지리산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기 전부터 한반도 역사와 함께 해온 민족의 영산이다.
마한의 무리는 달궁으로 들어와 '달의 궁전'을 지었고, 가야의 구형왕은 지리산 동쪽 끝자락 돌무덤에 누웠다.
신라 화랑도 이곳에 올라 수련했고,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는 칠불사에서 성불했다.
전설이든 정설이든 중요한 건 아무 것도 없다.
그후로도 지리산은 왜적과 맞서 싸운 격전지였고, 빨치산의 최후 거점이 되어 휴전 후 수년간 총성이 멈추지 않은 전쟁터였다.
예술가들은 이 산을 소재로 그림과 음악과 소설과 시를 지었으며, 지금도 저 짙은 숲 어디에선가 지리산이 낳고 기른 반달가슴곰이 밀렵꾼들의 눈을 피해 마지막 목숨 줄을 연명하며 살고 있는 곳.
지리산은 천왕봉(1915m)·반야봉(1732m)·노고단(1507m)의 대표적 봉우리를 비롯해 25.5㎞의 주능선 상에 토끼봉·명선봉·영신봉·촛대봉 등 해발 1000m가 넘는 준봉들을 거느렸으며, 지난 1967년 12월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에 지정되기도 했다.
노고단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보고 천왕봉에 서서 노고단을 조망하는 '지리산 산행의 꽃' 주능선 종주.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시작해 경남 산청 대원사로 내려서는 사흘간의 산중생활이 이번 여름 발 앞에 길게 드리웠다.
급할 것도 서둘 것도 없이 그 길을 걷는 그대에게 주능선 종주산행은 싱그러운 여름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화엄사~노고단~삼도봉~연하천대피소
천왕봉으로 떠나는 순례자의 길
이틀 내내 쏟아진 비 때문인지 화엄사를 나와 산길로 들어서면서부터 끈적한 기운이 머리 끝으로 내려앉는다.
쾌청한 날씨를 기대했지만 지리산에서 좋은 날씨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우 몇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 안경 가득 습기가 맺힌다.
마치 지난 여름 다녀온 네팔의 공기 같다.
티베트 여행을 끝내고 장무를 거쳐 네팔 국경을 넘었을 때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리 하나로 티베트와 나뉜 네팔의 작은 국경도시에서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던 기억처럼,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길엔 네팔의 끈적한 더위가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땀을 두어 바가지 흘린 후에야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힘들다'는 코재를 지나 드디어 무넹기.
성삼재휴게소에서 이어진 비포장도로가 비웃듯이 서있고, 대형 배낭에 비틀대며 올라선 일행을 한 무리의 행락객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본다.
허기를 달래고 노고단 고개에 올라서자 두 개의 돌탑이 지친 걸음을 반긴다.
오른쪽 정상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예약자만 탐방이 가능하고, 그렇지 못한 일부 등산객 몇 명은 새롭게 쌓은 돌탑 아래서 지리산의 전부를 얻은 듯한 표정으로 사진 찍기에 전념한다.
오후 햇살에 일그러진 노고단에 서서 멀리 무등산과 건너편 왕시루봉과 발끝에서부터 이어진 주능선 길을 찬찬히 훑어본다.
저 끝에 솟은 천왕봉은 흐릿한 운무 속에 이마를 가린 채 그리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걸령까지의 1시간 10분은 오솔길이다.
"노고단에서 임걸령을 향해 화살을 쏘고 말을 달렸더니 말이 화살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
참나무숲을 시원하게 걸어 내려오자 오른쪽 풀숲 한쪽에 무너진 돌담불과 앙상한 비목 하나가 보인다.
1970년대 초 겨울산행 도중 조난사 한 고교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는데, 이제는 늙고 야위어 눈에 띄질 못 한다.
예전 화개 사람과 운봉 사람들의 물물교환 장소였던 화개재에서 토끼봉(1534m) 오르는 길은 종주 첫날 가장 곤욕스럽다.
이 길도 몇 번 다니면 짧아지기 마련이지만 처음 나서는 걸음은 뭉툭한 덩치에 지레 주눅이 든다.
토끼봉 전망바위에 올라 천왕봉 보는 재미가 남다르나 지독한 운무 때문에 모든 것이 소용없게 됐다.
연하천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두르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총각이유, 아가씨유?" 짓궂게 물어오는 중년 사내의 질문에도 여유있게 웃어 보일 수 있는 연하천에서의 밤은 제법 평화롭다.
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여타의 대피소와는 달리 건물도 사람도 조금 더 지리산을 닮았다.
하루 종일 진득하게 오가던 운무도 어둠에 밀려 어디론가 떠나버린 밤.
하늘은 벌써 별들로 가득 차고, 나무탁자 위에 가스등을 켜고 앉은 산꾼들의 붉은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연하천대피소~벽소령~세석~장터목대피소
눈속에 귓속에 가슴에 담아둔 산
대피소 2층에 마련된 침상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서니 아침 기운이 완연하다.
완도산 미역에 변산반도산 새우를 넣고 국을 끓여 각자의 시에라컵에 나누어 신나게 먹으려는 찰라 탁자 주변으로 검은 파리떼가 돌진한다.
손을 마구 흔들며 쫓아내다가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엄지손톱만한 파리 한 마리가 결국 미역국 속으로 투신자살한다.
"으악!"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질러보지만 숟가락으로 고이 건져내 후루룩 마셔버릴 뿐.
연하천대피소엔 잔반통이 없다.
연하천에서 20분쯤 올라서자 남원시 산내면·함양군 마천면·하동군 화개면이 만나는 삼각고지(1462m)다.
외로운 고사목 한 그루가 오가는 산행객들의 사진 파트너가 되어 준다.
나무 옆에 기대어 산신령이 된 것처럼 산마루 깊이깊이 펼쳐진 풍경들을 내려다본다.
산사람은 산에서 자살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왜냐하면 산이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산에서만큼은 왠지 어머니의 주름치마 폭으로 내려앉는 기분일 것 같다.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는 2시간이 조금 못 걸린다.
대부분 암릉이 섞인데다 무던해서 가다 서다 쉬다 사진 찍기를 반복하는 일이 즐겁다.
바위 전망대에 앉아 한참을 보낸다.
따뜻하게 데워진 바윗돌의 온기가 머리까지 파고든다.
형제봉과 잘록한 벽소령이 보이고 멀리 촛대봉과 천왕봉이 아스라한 영상으로 늘어서 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한껏 다리쉼을 하고 덕평봉 아래 선비샘으로 향한다.
성운지기(星雲之氣)라고 부를까.
구름과 별의 기운을 받은 샘물.
설탕과 1:1 비율로 섞어온 미숫가루를 물통에 넣고 마구 흔들어 선비샘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권해본다.
아, 언제부터 선비샘 물맛이 이렇게 좋았지.
선비샘에서 세석까지 이르는 2시간여의 길이 둘째 날 일정 중 가장 힘들다.
전망도 칠선봉(1576m)에 거의 다다라서야 보일 뿐 울퉁불퉁한 오르막 때문에 발을 한번만 헛디뎌도 간신히 모아둔 열량이 수십 칼로리씩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후드득 땀방울이 떨어진다.
까만 머리칼과 구릿빛 팔뚝에서 비처럼 땀이 내린다.
가깝게 세석과 촛대봉(1704m)의 그림자가 밀려온다.
출입통제 때문에 줄이 쳐진 촛대봉은 밧줄로 포박된 억울한 죄수 같다.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가늠하며 지리산이 풀어내는 종주 풍경을 그려본다.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배낭을 매고 태풍의 지리산으로, 빗속을 바람 속을 조릿대 사이를 단풍숲을 낙엽을, 저벅저벅 추적추적.
첩첩산중.
비온 뒤의 풀내음 흙내음.
새소리 바람소리.
멀리 뵈는 광양만의 붉은 불길과 지천에 깔린 야생화.
천왕봉 너머 뜨겁게 떠오르는 태양과 노고단 능선 끝으로 선분홍 자욱을 남긴 채 마지막 숨을 토해내던 석양.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 지독히도 새파란 하늘.
별.
따끈한 커피 한 잔.
웃음소리.
끝없이 펼쳐진 능선, 능선들…. 그리움의 꽃은 쉽게 시들지 않는다.
지리산에 익숙해지면 자꾸 자꾸만 지리산 속을 파고들게 되는 법이다.
장터목은 이름 그대로 시끌시끌 정신이 없다.
배정된 침상에 배낭을 올려두고 어둑한 대피소 밖으로 나선다.
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렌즈는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난감해 했고, 축축한 이슬을 덮어쓴 채 울상이 되어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초롱초롱 별빛으로 가득한데 카메라에 찍힌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물끄러미 앉아 장터목과 제석봉(1806m)과 일출봉 사이를 흐르는 여름 별빛의 소리를 귓속에 가득 채워 넣는다.
장터목대피소~천왕봉~치밭목~대원사
천왕봉에 서면 한 마리 새가 된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두운 대피소 안쪽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랜턴 불빛들.
일출을 보기 위해 대피소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장터목은 여느 곳보다도 일찍 하루를 연다.
매트리스를 말고 침낭을 넣고 밤새 꺼내놓은 잡주머니들을 배낭 깊이 찔러둔 채 장터목을 떠난다.
새벽별 몇 개가 제석봉 고사목 가지에 걸렸다.
한국전쟁을 치르고도 살아남은 제석봉의 무성한 수림은 자유당 말기 정권을 등에 업은 도벌꾼에 의해 불태워졌으니,
사람으로 치자면 방화에 의한 살인인 셈이다.
푸른 공기에 젖은 고사목은 소복을 입고 선 외로운 처녀 같다. 섬뜩하면서도 애처로운 죽은 넋 말이다.
부정한 사람은 오르지 못했다는 통천문과 바위 너덜을 지나면 곧 천왕봉(1915m), 남한 내륙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다.
정상 표지석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출 인파로 좁은 천왕봉 이마에 빈틈이 없다.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조바심을 버리지 못하고 동쪽을 향해 두근두근 눈을 열지만 하늘은 끝끝내 발간 여명만 토해낼 뿐 해를 보이지 않는다.
천왕봉 정상에 서서 이틀간 만난 길들을 조심스레 더듬는 것은 종주산행자의 특권이자 의무다.
삿갓처럼 솟은 노고단과 젖무덤 같은 반야봉과 촛농처럼 흘러내린 촛대봉….
걸어온 길과 걸어야 할 길을 모두 합치면 무려 50여km.
새벽 천왕봉에 서서 폐부 깊숙이 첫 아침 첫 공기를 들이킨다.
이렇게 봉우리 끝에 서면 저 능선 사이사이 저 깊은 골짜기 골골마다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들의 호흡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차가운 손을 입 주위로 모아 편 채 크게 숨을 쉰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다.
산봉우리로 한없이 날갯짓 하는 초록의 새 같다.
천왕봉과 작별한 채 중봉(1875m)~써리봉(1642m)을 지나 유평으로 내려선다.
대략 13.7km.
길고 지루해 진절머리가 나지만 까칠한 바윗길에 재미가 있다.
떠나야 할 지리산의 모습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길이다.
중봉에서 본 천왕봉과 앙증맞은 치밭목대피소, 실비단처럼 흐르는 무제치기폭포와 산죽길.
반팔 밖으로 드러난 살갗을 뾰족한 댓잎이 갈갈갈 두들긴다.
천왕봉을 내려선지 5시간이 지나서야 행락객들 즐비한 유평마을에 도착한다.
어찌어찌 하다 보면 특별히 한 것도 없이 이렇게 산행이 끝나버린다.
땀에 젖은 배낭에 기대어 잠시 돌아보니 천왕봉과 중봉의 거대한 실루엣이 떠나는 등뒤로 손을 흔든다.
그리움을 산중에 남겨둔 채 쓸쓸히 버스가 돌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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