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김정일이 한미동맹을 해체시키고 연방제 적화 통일의 수순을 밟으려는 꼼수는 남북정상회담을 하려 하는 이때에 2년전의 상황을 잠시 더듬어 보자. 2년전 우리는 아래와같은 정황을 파악한 바 있다:
요즘 미국 정가에서 김정일과 노무현 두 인물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김정일이 자기에게 핵무기가 있으니 동등한 자격으로 북미정상회담을 하자고 조르는가 하면 어제도(2005년 6월 11일) 노무현이 부시 대통령과 또 한 차례 정상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의 절정은 노무현이 “미스터 프레진던트, 어떤가요? 한미동맹, 강력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라고 묻자 부시 대통령이 좀 황당하다는 듯 “그렇다고 말하겠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배가 고프군요. 당신도 시장할겁니다. 식사하러 갑시다.”라고 답변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김정일도 노무현도 신용을 잃은 채 자기들 논리로 미국 대통령을 꺽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있다. 김정일은 1994년 제네바 협약을 어겼기에 이미 신용을 잃었으며, 노무현은 2002년 16대 대선 때 "만약 북핵 문제로 북한과 미국이 충돌하면 북한 편을 들겠다"고 공약하여 당선되었다. 노무현이 북한 편을 들겠다는 것은 김정일 편을 들겠다는 말이었다. 여기 자기 입으로 김정일 듣는 곳에서는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김정일 편을 들겠다고 말해 놓고 미국 대통령 앞에서는 "어떤가요? 한미동맹, 강력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사실 김정일이 남한의 반미주의에 힘을 입어 남한을 핵인질로 삼게 된 경위는 광주사태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광주사태 상황을 다시 조명해 보자. 만약 4공화국 최규하 대통령 업적 중에 큰 업적이 있다면 그것은 1980년 4월 말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 서리로 임명한 것이었다. 군부 시절부터 오랫동안 김대중의 부하였으며, 김대중의 정권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을 품었던 이종찬씨가 당시 중앙정보부 총무국장으로서 중앙정보부 실세였는데, 당시 국가 안보를 위해 그를 견제하여야 할 인물이 필요한 한반도 정황이 있었다.
왜 그날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느냐에 대한 이유는 아마 중국에서 비밀 문서를 해제할 때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한중 수교가 없었을 때 중국이 일본 정부에 5월 초에 긴급히 전해 준 정보는 5월 15일부터 5월 20일 사이에 북한이 남침한다는 것이다. 아마, 김일성이 제2의 한국전 발발시 자동 참전하게 되어 있었던 중국에 남침 계획을 알려 주었어야 했으며, 1950년 한국전 참전으로 미국과의 수교가 끊어진지 30년만에 핑퐁 외교로 미국과의 수교 물꼬를 다시 터야만 중국 경제 소생의 희망이 있었던 중국으로서는 다시금 미국과 전쟁을 치루고 싶지 않아 일본 정부에 북한 남?정보를 전해 주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에 보관된 문서로 당시 상황을 좀 더 소상히 살펴 보자. 1980년 5월 10일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는 김영선 중앙정보부 2차장으로부터 일본 내각조사실로부터 입수한 남침첩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 내용은, 북한은 한국정부가 80년 4월 중순경에 김재규를 처형할 것으로 예상하고, 김재규 처형시에는 항의 데모사태가 발생하여 남침을 위한 결정적 시기가 조성될 것으로 판단하여 남침시기를 4월 중순경으로 예정하였으나 김재규의 처형이 지연됨에 따라 이를 연기하여 오던 중, 80년'5월 들어 학생과 노동자의 소요사태가 격화됨에 따라 한국 내 소요사태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80년 5월15일에서 '5월20일어간에 남침을 감행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광주사태는 왜 일어났는가? 사실, 광주사태 점화 요인 중 하나가 5월 10일경부터 김대중 일당이 운동권 학생들에게 괴전화걸어 퍼뜨렸던 "군부 쿠데타설" 유언비어였다. 김대중은 광주청문회 때 자신이 퍼뜨린 유언비어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십중 팔구 당시 김대중 심복 노릇을 하였던 중정 총무국장 이종찬씨도 배후에 있었던 유언비어였을 것이다.
유시민의원, 한홍구 픽션소설가, 심재철 의원 등이 한결같이 당시 받았던 괴전화에 대하여 회고하며 그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광주에서 폭동 선동 삐라를 제작하였던 녹두서점 주인 역시 괴전화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서울과 광주 운동권에 동시에 괴전화가 걸려왓다. 북한의 남침 계획을 중국과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받은 이상 중앙정보부 서리는 그 사실을 정부에 즉각 보고할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단순 보고를 쿠데타로 와전하는 이가 있었다. 김대중은 자신의 인맥 이종찬씨가 중앙정보부를 완전 장악하기를 바랐으며, 여기에 김대중과 이종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전두환 죽이기 음모가 있었던 듯하다. 국가 안보보다 정권 탈취를 중요시하였던 이들은 훗날 김정일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노벨평화상을 위해 대북비밀송금을 자행하였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전방에서 주한미구을 후방으로 철수시킨 것이었다. 즉, 반미발언으로 인계철선이 없어지도록 부추겼으며, 인계철선이 없어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인계철선을 없애 놓고 노무현이 “미스터 프레진던트, 어떤가요? 한미동맹, 강력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라고 물었다. 인계철선이 무엇인가? 혈맹의 표시이다. 북한군이 전면전을 일으킬 경우 전방의 3만 오천 명의 미군은 금방 전사한다. 그리고 삼만 오천 명의 미군의 전사는 미국에서 참전 여론을 일으킨다. 그래서 북한이 함부로 남침하지 못하게 하는 인간 철선, 즉 미국인이 스스로 인질 역할을 하는 철선을 말한다.
인계 철선 없는 동맹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월남 국민은 안보는 미국이 언제나 책임져 주는 줄 알고 있었지만 1975년 4월의 월맹군 남침 때 미군은 오지 않았다. 인계 철선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국가 안보를 팔아넘기는 김대중과 달리 미국 대통령은 자국 국민의 안보를 생각한다. 김정일이 남한을 핵인질로 붙잡아 놓고 미국을 위협하지만 만약 핵무기가 테러범들의 손에 넘어가면 미국 국민이 위협을 받는다. 미국 국민을 지키는 것은 부시의 임무이다. 그런데 북핵 위기 해법을 번번히 방해해 놓고서 “미스터 프레진던트, 어떤가요? 한미동맹, 강력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라고 물으면, 부시는 "배가 고프군요. 당신도 시장할겁니다. 식사하러 갑시다.”라고 답변할 말에 없는 것이다.
자, 김정일의 자가 당착 논리는 이것이다. 김정일의 한결같은 목적은 남한을 집어삼키는 것이요, 그 걸림돌인 한미동맹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이 핵장난을 하고 노무현이 김정일 편을 들면 한미동맹을 깨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김정일은 노린다. 김정일은 그대로 밀고 나가면 미국이 한미동맹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김정일이 모르는 것은 미국이 한미동맹을 포기하더라도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노무현도 자기 논리로 부시를 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미국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김정일과 노무현의 우가 있다.
김정일의 우둔한 머리로는 클린턴과 부시가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 김정일은 미국 대통령은 다 똑같은 미국 대통령이요, 1994년에 클린턴을 속였으니깐 이번에도 부시를 속일 수 있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부시는 클린턴이 아닐뿐더러 미국이 사기꾼을 존중하는 나라도 아니다. 그리고 노무현의 독재 논리에서는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가 이해되지 않는다. 노무현은 부시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미국 전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결코 국가간의 동맹이 노무현이 “미스터 프레진던트, 어떤가요? 한미동맹, 강력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라는 질문 한마디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미스터 프레지던트. 배가 고프군요. 당신도 시장할겁니다. 식사하러 갑시다.”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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