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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도 2017년 11월 월례치성 도훈
"나에게 태을도란? "
2017. 11. 25(음력 10. 8)
11월 월례치성을 오늘 인천법소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95년 6월에 천명(天命)을 받을 때, 비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치고 번개가 무섭게 집안에 들이치고 그랬는데,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 오늘 이렇게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태을도인들이 상제님 고수부님의 천명을 받들어서, 급살병에 다 죽어가는 천하창생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라는 간절한 뜻이 전해져오는 것 같습니다.
제 고향이 인삼이 많이 나는 충남 금산인데, 인삼이 비싸다 보니까 인삼을 캐고 난 다음에 삼장 밭에 가서 인삼 이삭을 주으면 꽤 돈이 되거든요. 그래서 대전 같은 인근 도시에서 인삼이삭을 주우러 사람들이 많이 오는 걸 어린 시절부터 볼 수 있었어요. 저도 동네 친구들과 인삼이삭을 주워서 용돈도 벌고 엿도 사먹고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인삼이 돈이 되니까 엿장수, 아이스케키 장수들도 많이 왔어요. 그런데, 엿장수나 아이스케키 장수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저 사람은 어떤 엿장수고 어떤 아이스케키 장수다 하는 것을 어린 우리들도 금방 알 수 있었어요. 관록 있는 엿장수는 엿가락 치는 소리가 달라요. 아주 구성지게 치면서 흥을 돋우거든요. 그래서 인기 있는 엿장수가 따로 있었어요. 그 엿장수에게 가면 서비스로 엿도 더 주고 그랬어요. 아이스케키 파는 분도 “아이스케키~” 하는 그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아서, 친구들하고 따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무슨 일이든 간에 진심을 다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목소리나 행실 속에서 진실성이 느껴지고 열의가 느껴지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와요. 그런데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마지못해 하고 재미없게 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라든가 행실이 별로 진정성있게 전해지지 않아요.
사람이 음식을 뭘 먹느냐에 따라 영양가가 달라서 체형도 다르고 건강상태도 다르듯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소리를 많이 듣느냐에 따라서 이성적으로 영성적으로 감성적으로 성숙되는 것이 달라져요. 사람은 평생 자신이 의미부여를 해나가면서 자기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인생의 목적을 달성해가는 것이거든요.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어떻게 일체화를 시킬 것인가?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그건 내 판단과 내 소신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 것이거든요.
과연 우리가 백 년을 살면서, 내 목숨을 바쳐서 의미를 부여하고 내 생명을 바쳐서 이룰 수 있는 꿈을 발견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내 일생을 일체화시킬 수 있는 그 꿈, 내 목숨을 바쳐서 반드시 내가 완성시켜야 될 목표, 그런 것이 내가 얼마나 있나 이런 생각을 해 보면, 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열성을 다해서 이루려고 하는 꿈과 목표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시골에서 엿장수를 하든 아이스케키 장수를 하든, 아주 열심히 헌신적으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그 자체가 주변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주변사람들한테 시사하는 점도 있고, 최선을 다한 그 일을 가지고 ‘내 인생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보람도 느끼고 뿌듯함도 느끼게 되잖아요. 단계 단계에서의 그 성실함과 진실함, 그런 노력들이 쌓여서 더 큰 목표로 발전하고 더 큰 목표로 나아가는 거지요.
오늘 11월 월례치성에서 “나에게 태을도란?” 이란 주제로 5분 도훈을 하기로 했는데, 과연 내가 태을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판단을 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간단히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충익도인 :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그걸 계기로 내 삶의 변화된 모습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삶의 전환점으로 작용해, 전화위복이 되거나 더욱 어려움에 처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란 말처럼, 그동안 지녀왔던 자신의 일상생활과 정신의 변곡점에서, 내가 지향하는 목적의 의미를 수단과 과정에 가치를 두느냐 그저 목적달성에 가치를 두느냐는 각자의 인생관이 어디에 달려있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처럼 높은 산의 등반코스는 크게 두 개의 등반길,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등로주의(登路主義)로 구분된다 하더군요.
등정주의 등반은 이미 만들어진 등반길이나 완만한 능선을 따라 등반을 하게 되는데, 남보다 먼저 정상등정이 목적이기에 등반을 같이하는 동료라 하더라도 견제를 하고 경쟁을 함으로써 전력질주해서 골인점에 먼저 도착해야 하는, 마치 달리기 시합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안전하고 무난한 등정주의와 반대로, 등로주의 등반은 한마디로 맨 땅에 헤딩 하듯 정상을 향한 등반길을 내가 새로 내야하고 개척을 해나가야 하는 걸 말합니다. 때로는 절벽도 만나고 빙벽을 타야 할 때도 있고 눈사태를 만나서 목숨이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 것이라, 동료와의 경쟁보다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기에, 경쟁은 상대가 아니라 오직 자신에 두고, 등반 목적은 정상등정이지만 정상까지의 여정에 의미를 둠으로써 산과 더불어 호흡하고 산의 숨결을 느끼며 등반을 하는 것이 등로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방벽에도 기대지 말라. 백사(百事)에 모든 일을 물어서 알려 하지 말고 네 스스로 깨우쳐서 알라.’ 하신 엄중한 말씀 따라, 나에게 태을도는 등로주의의 등반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충덕도인 :
제가 증산신앙, 태을도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생명의 비밀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구성하는 근본이치나 진리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태을이고요. 그 다음에 그 이치를 운용하는 기준인 마음길도 마음씀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시천(侍天)이 되는 겁니다. 또 태을과 시천의 진리와 마음을 가지고, 이 현실의 시공 속에서 특화된 상태로 존재하는 나 자신이 있습니다. 결국은 태을 시천이 있고 그것을 운용하여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특화된 제 자신이 있는 거죠.
그런데 생명이라는 것은 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일부분으로서 우주의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보면 우주의 변화에 순응을 해야 되는 데, 우주의 마음의 변화는 기(氣)의 변화로 나타나고 이는 현실적으로는 천지일월의 운행으로 나타나게 되죠. 그런 변화에 잘 순응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일 년의 경우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사 계절에 적응해서 각 계절에 맞는 적당한 옷을 입고 음식이라든가 여러 가지 활동을 사시사철에 맞게 순응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우주의 일원(一元)은 생장염장의 과정으로 순환하는데, 이는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우주의 변화에 따른 시공의 변화와 일 년 사시사철의 변화에 잘 적응해야 인간은 살아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상생의 관계로 유지해야됩니다. 상생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나도 죽고 너도 죽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어찌됐든 다른 사람과 덕을 주고받는 상생의 관계를 유지해야 됩니다. 최종적으로는 태을과 하나가 되어서 태을의 이치에 따라 살고 존재해야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저도, 행복하게 되고 싶고 생명을 영원히 유지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제가 태을도를 통해서 배운 것은 내 생명을 어떻게 영원히 유지하느냐는 것이고, 그 다음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생명의 본질에 맞고 생명의 본분에 맞는 것이냐 하는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태을도는 저한테 있어서 생명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태을도를 통해서 전해지는 진리, 마음, 이런 것을 제가 다 이해하고 수용해서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저의 몸이라고도 볼 수 있죠.
그리고 나 자신만 잘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대동세계, 그 대동세계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태을도에 들어있다는 거죠. 또한 제가 생명으로서 가지는, 존재로서 가지는 근본적인 질문들, 생명의 시작과 생명의 끝, 그리고 현실 속에서 생명을 어떻게 유지할 거냐? 그런 것에 대한 의문도 주고 해결책도 주는 것이 태을도입니다. 마음이란 사방팔방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정해진 범위와 정해진 길을 가지 않으면, 결국 몸도 무너지고 마음도 없어지는 결과가 초래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리를 모르는 인간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해서는 절대 안 되니까.
결국은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밖에 없고, 내 맘대로 하면 내가 원치 않는 불행이라든가 죽음이 오기 때문에, 삶의 과정을 통하여 내 자신을 통제하고 이끌어주는 길과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그것이 바로 태을도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태을도는 제 꿈을 이루어주는 희망의 길이고, 현재 제 생명을 잘 유지시켜주는 디딤돌이고, 제 생명을 영원히 유지시켜주는 영생의 길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의 전부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충정도인 :
충익도인님께서 등산에 있어서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등로주의(登路主義)에 비유해 말씀을 해주셨는데, 공감이 되는 비유인 것 같습니다. 제가 태을도를 한 지가 7년이 되었는데, 그 전에 다른 증산신앙을 할 때나 태을도에 처음 왔을 때 저 또한 증산신앙이라는 것을 누군가 대두목이 나타나서 다 해결을 해주니 따르면 되고 나중에 도통이 열리면 그때 가선 다 알겠지 하는 그런 도식적인 신앙의 방식을 당연시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태을도를 해오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상제님께서 “세상은 너희들 하기에 달려 있다”고 하신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은 상제님이나 고수부님께서 저희에게 남기신 말씀을 보면 큰 틀을 말씀해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상생, 해원, 도통 등 큰 틀에서의 앞으로 올 세상에 대한 가닥을 잡아주셨고, 고수부님 같은 경우는 7계잠을 통해서, 예를 들면 ‘마음 속이지 마라, 척짓지 마라’ 하는 등의 큰 틀에서의 피해야 할 것들을 짚어 주셨거든요. 그 틀에서 우리 인간들이 인간들의 마음을 써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 주어진 틀에서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우리가 상극세상을 살아오면서 세상에 대해 느끼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는데, 인간관계, 가정의 불화, 조직의 문제, 정치체제에 있어서의 수많은 다툼들, 사회적인 투쟁의 모습들, 이런 문제들을 누군가 짠하고 나타나서 다 해결해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거든요. 우리들 각자의 문제이고, 또 증산신앙인들이 개인의 행동, 말, 실천하는 모습으로써 몸으로 하나씩 길을 내가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7년이 지나고 나서야 좀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아까 천지개벽경 서문을 읽다 보니까, “정덕군자(正德君子) 출어기간(出於其間)하야 정필정론(正筆正論)이 필득기중(必得其中)하야 대덕(大德)이 무독(無瀆)하리니” 하는 부분에서 느낌이 왔는데, 결국은 그 마음자리를 밝혀주시고 그 마음자리를 이해하고 그 마음자리를 현실 속에서 구현해서 어떤 정치체제가 거기에 맞고 어떤 경제체제가 어울리겠다하는 그런 현실적인 부분들도 역시 고민해가고 다듬어가고 실천해가야 하는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필득기중"하야. 그 중(中)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들부터 체화를 해서 사람들을 이끌어서 그렇게 세상을 바꿔가야 하지 않나.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는 등로주의 등산처럼, 그런 것이 증산신앙의 결론이 아닌가.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하나의 종합된 하나의 문명을 마무리하는 길, 새로운 길을 내어 가는 것이 태을도의 방식이요, 내 삶에 있어서 태을도의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상입니다.
충일도인 :
제게 태을도란, 천지부모님의 마음을 배우고 태을을 깨쳐가는 진리의 도장이며 마음의 고향이라 생각합니다.
천지부모님의 마음을 알기에, 낮아지고 겸손해지며 남에게 지고 사는 용기도 배워, 가족에게 사랑과 용서 그리고 무극의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태을 천상원군님의 무극의 진리, 무극의 사랑으로 저의 주위를 감화시켜나갈 수 있는, 진리의 도자(道子)가 되는 길을 열어주고 걸어가도록 만들어준 곳이 태을도입니다.
진리의 사랑을 실천하여 대인이 되는 길, 성인이 되는 길도 태을도에서 깨달았으며, 석가의 단점, 공자의 단점, 예수의 단점, 노자의 단점을 알고 나의 본심 마음부터 상생의 마음, 성인의 마음으로 고쳐 조상님과 부모님, 가족과 형제자매에게 먼저 진리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며, 그 다음 직장과 사회, 국가와 천하를 진리의 사랑으로 감화시켜 통합하고 화합해야 하는 것이 천지부모님의 대행자이며 도자의 길이며 태을도인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천지부모님을 통해 어짊도 사랑도 알아가며 또한 의로움도 배워갑니다. 천지부모님을 모시는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어떤 인간상이 되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후천세상을 어떻게 지상천국, 용화세계, 대동세계를 만들어갈 지 공부하며 성인의 길, 대인의 길을 가야만 하는 태을도인의 사명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천지부모님을 통해 비열해질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천지부모님은 우리나라가 너무 못 살고 문명과 과학기술이 낙후되어있어, 하느님의 힘으로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바꾸면 더 큰 피해가 일어나기에, 일본에 의탁하시고, 대한민국 백성에게 시련을 주시어 성숙하고 발전해나가게 하시며, 일본신명들의 원을 풀어주십니다.
상제님을 믿는 제자에게는, 비열한 것 같지만 일본사람에게 잘해주어라 하셨습니다. 어질 인(仁)이 없는 일본이 얼마나 독했겠습니까? 그런 일본인들에게 잘해주는 것이 피난하는 길이요, 살 수 있는 방법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6.25사변을 통한 남북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습니까? 상제님의 공사를 보면 정말 무섭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짜놓으시고, 우리에게 어질 인을 주시며 잘 간직하라 하셨습니다.
비열한 것 같지만 ‘인자(仁者)는 무적(無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고 지며 어질게 살면 적이 없으므로 나를 해치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그것이 피난하는 길이요 도를 잘 닦을 수 있으며, 상제님의 도를 잘 전해주고 비열한 듯한 의통으로 생사판단을 하고 세상 사람을 살려 모두가 잘 사는 상생세상 대시국을 건설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열풍뇌우불미라 생각합니다.
제가 태을도를 만나 의로움보다 어질 인이 먼저라 배웠기에, 제 마음의 독기와 살기를 빼고 어짊과 사랑의 마음으로 지고 살며, 겸손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셔서 대북한공작원 출신으로 독기와 살기로 가득 찬 마음을 버리고 상생의 인간으로 재생신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내 마음을 성인의 마음, 천지부모님의 마음, 태을의 마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내 마음이 성숙해지고 그 성숙해짐을 바탕으로 가족에게 생기와 화기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되고 난 뒤에, 정음정양의 현모양처와 같은 좋은 인연의 부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좋은 인연 또한 제가 한 가정을 이끌어나갈 진리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심법이 되어가니, 법소치성을 같이 모시게 되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후천 상생세상은 성심(誠心)으로 사람을 감복시켜 만들어 나아간다는 것을...
아무리 좋은 진리도, 말로 설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믿음이 싹트고 한 가족이 태을도가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동물의 성정을 버리고 온전한 진리의 사랑을 실천하기란 죽기보다 어렵습니다.
한 가정의 태을도가가 세계일가의 태을도가, 지구촌 세계일가인 후천 대시국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가족 간에 종교가 틀리고 사상이 틀리고 생각이 틀리다고 서로 언쟁을 높이고 싸우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고, 내가 진리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가족들이 스스로 깨달아가길 기다리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며, 그 마음이 통해 지심대도술시대의 통합과 화합으로 상생의 세상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저에게 태을도는 생활이며 가치관이며 진리이며 운명이며 정치관이며 세계관입니다. 제가 마음을 바꾸어 천지부모님의 마음으로 재생신한 곳도 태을도이며, 가족들의 화합과 사랑을 다시 찾아준 곳도 태을도입니다. 또한 제가 주위의 사람에게 태을의 사랑을 전해주어 태을도가를 이루게 만들어가야 하며, 더 나아가 병겁을 극복하고 천하창생을 건져 후천 대시국을 건설해 상생의 진리, 사랑의 진리로 지심대도술의 지상천국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태을도인입니다.
내 가족을 안돈되게 하지 못하면 어찌 세상 사람들을 안돈시킬 수가 있으며, 사랑과 용서 없이 어찌 세상을 하나로 통합시켜나가 모두가 평화로운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가 있겠습니까? 태을도에서 작게는 내 가정에서부터 상생의 진리, 사랑의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면 태을도가를 이루고, 주위분들에게도 감화를 주어 진리의 사랑이 넘치는 태을도가를 만들게 하고, 앞으로 닥칠 병겁을 대비하고 대시국의 건설을 준비하는 곳이 태을도이며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태을도인이라 생각합니다.
충양도인 :
태을도는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가르침을 온전하게 전달하여, 천하창생들에게 선천동안 윤회환생 해오면서 지은 죄를 참회하고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 새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태을도란, 과거 증산종단에서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다툼의 신앙이었다고 한다면, 태을도는 상극의 길에서 벗어나 상생의 길로 들어서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어느날 종도 한 사람이 무슨 일로 다투고 분해하며 복수하기를 말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돌로써 치면 돌이요 떡으로 치면 떡이라 할 것이라. 그러나 너희들은 돌로 치는 자에게 돌로 하지 말고 떡으로써 하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너희들은 말하기를 세상에 대적할 것도 많고 다스릴 것도 많다 하나 이는 곧 너로 말미암아 대적할 것도 많아지고 다스릴 것도 많아짐이라." 하시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 290 - 291)
태을도는 용서와 화해를 가르칩니다. 태을도인들은 모두가 증산상제님 고수부님과 이심전심되어 하나된 형제자매들입니다. 태을도에서 후천 대시국을 건설하는 것은 후천에는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 상생의 삶을 생활화하여 참사랑을 실천하는 태을도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충희도인 :
저에게 태을도는 도(道)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연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종교는 종교적 가르침이 일상과 괴리되어있거나, 부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다고 봅니다.
심지어 어떤 종교는 일상을 버리도록 종용하기도 하고, 현실의 정확한 인식을 마비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불·선 삼도(三道)가 모두 일상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있고 어떤 점에서는 강력한 실천능력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을 방해하는 면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유·불·선 삼도(三道)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려고 하면, 신(神)에 대한 인식의 대도약이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유·불·선 삼도(三道)를 구분해서 인식하지 말고, 유·불·선 삼도(三道)를 모두 주재하는 최고의 주재자가 있다는 인식이 발생하는 순간, 삼도합일(三道合一)의 지평이 열리기 시작한다고 봅니다. 그 최고의 주재자가 바로 강증산 상제님입니다. 강증산 상제님은 태을(太乙)을 용사하여 유·불·선 삼도(三道)를 다스리시고, 삼계우주를 다스리시는 옥황상제님이십니다.
인류가 그 동안 유도, 불도, 선도를 열심히 공부하고 일심·혈심으로 기도하고 노력하여 문명세계를 개척하여 왔지만, 삼도합일(三道合一)의 문명은 아직 제대로 개척되지 않았습니다. 태을도는 삼도합일(三道合一)의 태을문명을 개척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을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입니다. 유·불·선 삼도(三道)를 구분해 놓으면 일부 추진력이 좋을지는 몰라도, 도(道)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삼도(三道)를 합일(合一)하는 태을도를 해야 도(道)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구현됩니다. 그것을 실천하신 분이 바로 강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수부님께서 유불선을 돌돌 뭉치면 마음 심(心)자 하나가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잘 닦으라는 말씀은 태을의 대광명을 밝혀서 유도와 불도와 선도의 장점을 돌돌 말아서 마을을 잘 사용하라는 뜻으로도 느껴집니다.
천지부모님과 단주 대종장님께서 가르쳐주신 도(道)를 일상에 잘 연결하면, 가정과 기업과 국정을 도로써 다스리는 도정(道政)시대가 열릴 거라고 느껴집니다.
‘마음에 달린 일이다. 우리 일은 하루 밥 세 때 먹으려고 하는 일이다. 부인을 공대해라. 부모님께 효도해라. 자식에게 눈을 틔워 주어라.’ 상제님과 수부님께서는 일상을 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삼계우주의 근본자리인 태을(太乙)에서 인간의 일상을 어루만져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면, 아직 일상에 태을도를 구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깊어지고 마음을 잘 닦아서 태을도를 잘하면,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도(道)의 모습이 나타날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존시대가 열린다고 봅니다. 저에게 태을도란 현재 이런 것입니다.
종부님:
태을도는 나에게 무엇인가. 제 전생은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으나, 현생에서는 ‘태을도는 이번 생의 목적이다’ 라고 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쭉 생각해오고 추구해왔던 게, 첫째는 진리를 만나서 깨치는 삶을 원했고요, 그다음에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 진정한 쓰임새가 무엇인가 그걸 찾고자 했었고요. 그리고 억울하거나 아프거나 슬픈 사람이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저도 누리고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었고, 만약 그것을 이번 생에서 이룰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식 대(代)에 이룰 수 있도록 토대만큼은 마련해놓고 가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이 태을도를 만나서 제가 이생에서 추구했던 모든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제게 태을도는 이번 생의 목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태을도는 ‘살아가는 삶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저희들이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된다.’ 어른들의 말씀에서 배우고 학교에서도 배우고 또 제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느껴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의미, 어떻게 살아야 되고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는 지에 대한 그 가르침들이 태을도에서 해석하는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 의미가 명확해졌어요. 예를 들면, 우리가 살아온 선천이 상극지리로 운행되어왔으므로 우리 또한 독기와 살기를 품게 되었고 그것이 척과 살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내가 품은 그 독기와 살기를 스스로 풀어 없애야 된다는 거지요.
앞으로 오는 후천은 상생의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상생을 지향하며 살아야 된다. 그래서 마음을 닦아서 바꾸어야 된다. 태을주를 읽어야 된다. 그렇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하는지의 삶의 방향, 의미를 태을도를 통해서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행동지침이 태을도를 통해서 저희에게 제게 주어지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세 번째, 태을도는 제가 살면서 ‘평생 추구해야 하는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알았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는, 평생 붙들고 거기에 맞추어서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아까 충덕도인이 진리를 통해 자유로와지려면 마음의 방향이 정해지고 범위가 한계 지어져야 한다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려면, 또 내가 인간완성을 이루고자 꿈꾸었다고 하면, 그 삶의 방향은 지극히 당연한, 필히 그쪽으로 가야만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길을 걸어가기가 사실은 쉽지가 않아서, 일상에서 우리가 실천한다는 것이 진짜 쉽지가 않아서, 태을도를 시작할 때보다 지금이 더 마음 바꾸기가 정말 어렵고, 독기와 살기를 빼내고 사랑으로 나를 채우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이 진짜 쉽지가 않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제가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이전에 참회했다고, 반성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도 부족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고 있고요. 예전에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지나온 관계 속에서의 제 과오들도 뒤늦게 드러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러한 부분들까지 하나하나 다 끄집어내어 참회하고 반성해야 하는 과제가 지금 제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과제처럼, 태을도가 저에게 그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을도는 이번 생의 목적이고, 삶의 기준이며, 그리고 제가 평생 추구해야 할 과제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종장님:
마지막 뒷심, 생사를 뛰어넘어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이런 것들은 결국은 내 최후의 보루, 최후의 꿈이 무엇인가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말과 글과 행실이거든요.
아까 충정도인께서 태을도가 새로운 문명을 내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면, 정확하게 세상의 중심을 잡아서 그 중심의 이론과 이론의 실천을 통한 관계망과 일들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 후천개벽기는 근본적으로 변하는 때이고, 원천적으로 바뀌는 때이고, 유무형이 통째로 대개벽되는 때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성과 우리의 이성과 우리의 감성이 근본하고 연결이 되지 않으면, 이 후천개벽기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고 판단할 수도 대처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해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원천적으로 변화하고 유무형이 통째로 바뀌는 때이기 때문에, 근본과 원천과 근원에 대한 치열한 공부와 치열한 깨침과 치열한 이해 없이는 우리가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링컨이 남북전쟁 시에 노예해방을 선포했는데, 이 아브라함 링컨이 미국 국민들을 울리고 감동을 준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주변적인 지식 때문이 아니라, 이 양반이 원초적인 근원자와 대화를 했기 때문에, 그 대화의 결과를 말과 글과 행실로 호소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무의식을 움직여서 미국을 바꿔 나간 것이거든요. 그래서 링컨은 연설문을 준비할 때, 달랑 성경 한 권을 가져갔다는 거예요. 오두막집에 가서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 양심과 근원자와의 대화를 처절하게 했다는 거예요. 예수를 믿었고 여호와를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이시여! 여호와 하느님이시여! 이 미국의 전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흑인에게도 인권이 있는데 이렇게 남과 북이 갈라져서 동족상잔의 이런 피를 흘리고 죽이고 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저에게 영감을 주십시오!” 하고 울면서 기도했다는 거예요. 그 울면서 기도한 속에서 영감을 받아서, 그 영감을 바탕으로 해서 연설문을 직접 썼다는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게티스버그 연설이라든가 유명한 연설들이 많아요. 그것을 통해서 노예를 해방시키고 남북의 혼란을 해결하고 오늘날 미국 인권의 기초를 놓았거든요.
안중근 의사는 여순감옥에서 사형을 앞두고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말과 글과 행동을 했어요. 그래서 간수가 감동을 해서 안중근 의사한테 글을 써 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그 여러 글 중의 하나가 “위국헌신(爲國獻身) 군인본분(軍人本分)”이라는 글이에요.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경술삼월(庚戌三月) 어여순옥중(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安重根) 근배(謹拜)” 하고 다섯 손가락에다가 먹을 묻혀서 찍었다고요. 안중근은 자기의 나라, 자기의 백성을 자기와 동일시했어요. 어떻게 보면 자기보다 더 위대하고 높은 존재로 자기 나라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고 아꼈다고요. 그랬기 때문에 목숨을 초개같이 바치려는 마음으로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二等博文)를 암살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는 그림자라는 게 하나도 없어요. 당당해요. 말이 당당하고 글이 당당하고 행실이 당당한 거예요. 그 당당함이 일본 관리들까지 감동시킨 거예요.
고려말에 포은(圃隱) 정몽주는 고려에 대한 애정을 단심가(丹心歌)로 표현하지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려라는 나라, 고려라는 백성, 자기가 모시는 주군에 대해 자기가 목숨을 바쳐 수호하겠다고 하는 순정어린 혈심을 단심가를 통해 표현했어요. 결국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지만. 조선입장에서 보면 정몽주가 역적이에요. 그럼에도 조선시대 때에 비록 적이지만 제일의 충신으로 정몽주를 치거든요.
애사심(愛社心)이 특별하고 애국심(愛國心)이 투철한 사람들에 의해 회사가 부흥하고 나라가 자리 잡힌다고요. 아까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했는데, 위국헌신은 군인의 본분이듯이, ‘위도헌신(爲道獻身) 도인본분(道人本分)’, 도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도인의 본분이에요.
아브라함 링컨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성경을 가지고 오두막에 가서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한테 울면서 방법을 알려달라고 기도했듯이, 우리 태을도인들이 이 후천개벽기에 천지부모님의 대행자로서 후계자로서 급살병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려면, 우리 태을도인들이 누구보다도 용기가 있어야 하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어야 하고, 누구보다도 헌신적이어야 하고, 누구보다도 일심혈심이어야 돼요.
그러려면 우리가 근본에 대한 대화, 근본에 대한 공부를 치열하게 해야 돼요. 누가 이 세상의 중심이냐? 근본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공부한 사람, 그 치열하게 공부하고 수행한 결과로, 말과 글과 행실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사람, 그 사람이 이 시대의 중심이고 선각자인 거예요.
아까 우리 충덕도인께서는 ‘태을도는 내 생명줄이다’ 말씀하셨고, 충익도인님은 ‘태을도인이라는 것은 마치 맨 땅에 헤딩하면서 없는 길을 만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을 바쳐서 가는 등로주의 등산과 같다.’ 말씀하셨고, 충정도인님도 ‘태을도는 중(中)을 잡고 우주 통일문명을 마무리하는 새로운 길을 내는 일이다’ 말씀하셨고, 종부님은 ‘태을도는 이번 생의 목적이다’ 말씀하셨어요. 상제님 고수부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두 분이 남기신 말씀과 행적이 유일하게 경전 속에 기록으로 전해오는데, 그 속에서 우리가 뭘 배워야 되느냐.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깨우치신 근본에 대한 마음,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천하창생을 사랑하는 투철한 애민심, 그런 것을 배워야 한다고요. 결국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마음과 뜻이 내 마음과 뜻이 되어서 내가 태을(太乙)과 하나가 되어야, 내 말과 글이 근원적인 말이 되고 근원적인 글이 되고 근원적인 행실이 되는 거예요. 그래야 이 세상 사람들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고 유형과 무형을 깨우쳐줄 수가 있어요.
오늘 11월 월례치성을 모시는 내내 뇌성벽력이 치고 비가 쏟아졌어요. 우리 태을도인들도 저 뇌성이 천지를 울리듯이, 우리 태을도인들의 일심혈심이, 우리 태을도인들의 말과 글과 행실이, 내 가족과 이웃과 세상을 울려나갈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으로 다같이 힘써보도록 합시다. 훔치~
첫댓글 오늘따라 우리 태을도인님들의 말씀들이 모두 주옥같은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훔치~
태을도인님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인연들입니다. 천지부모님의 마음과 마음씀을 배우는 진리의 도반으로서 참으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말씀들에 많은 것을 뒤돌아보아 반성하고 배우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훔치!
올 정유년 지나온 시간들과 남은 시간들이 우리 태을도인들에게 커다란 깨침을 주어 더한층 성숙한 신앙인을 만드는 뜻깊은 시간이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태을도인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인연들이 참으로 귀한 인연입니다.
후천개벽기에 태을도에 입도하여 태을도인의 길을 간다는 것은 천재일우의 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