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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류씨 - 뿌리 깊은 버드나무
 
 
 
카페 게시글
류-차 문제 류교수님이 하도 논리적으로 반박하라고해서 마지막으로..(하나를 보면 열을 알기에)
연안 추천 0 조회 400 13.11.24 14:15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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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1.24 17:25

    첫댓글 이수건 교수의 논문을 읽어보셨습니까? 혹시 읽어보지 않았다면 말씀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논문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엽적인 세세한 것들을 가지고 늘어지는 것은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차문에서는 여전히 자신들이 류문에게 준 정말 깊은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류문에서 잘못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억지에 일일이 반응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만 해결해 보십시오. 곧 “일성록”은 저는 학문을 깊이 사랑한 정조대왕이 차원부와 설원기에게 내린 사망선고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한번 “일성록”을 부인해 보십시오.

  • 작성자 13.11.24 20:32

    류주환교수님의 글이 없어면 댓구도 못할 입장이지만(일성록도 보지 못한 처지임 번역본이라도 봐야 하는데 책 읽기 힘들어서) 류교수님의 일성록 관련 글에서 ""(예조가) 또 아뢰기를, "유학 차세진(車世軫)이 상언을 올려서, '자기 선조인 고려의 간의대부(諫議大夫) 원부(原부)가 고려조에 대해 백이(伯夷) 숙제(叔齊)에 버금가는 꿋꿋한 절개가 있었고, 우리 조선조에 대해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과 저위(儲位)를 정하는 것을 도운 큰 공렬(功烈)이 있었기에, 사시(賜諡)의 은전을 청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오래전의 일이라 상고하여 믿을 수 없으니, 그대로 두시기를 요청합니다."고 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 [아래연결]

  • 작성자 13.11.24 20:41

    차원부의 공적이 하도 오래전 일이라 예조에서 확인 할 수 없으니그냥 두라는 말 같은데..차원부와 설원기에 대한 사망선고라니..정조대왕도 모르니 신하들의 말을 따른 것인데..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가..공적을 확인 할 수 없는 것이지 차원부를 부정하거나 설원록이 거짓이라고 한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정말 흥미롭군요..

  • 13.11.24 23:35

    1. 교지는 진짜입니까? 2. 차원부의 시호는 진짜입니까? 3. 설원기의 기(記)는 박팽년 선생이 지은 것입니까?
    [이제 그만 글을 올리세요. 선생님과 나눌 만한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났습니다.]

  • 작성자 13.11.25 11:09

    @채하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차원부을 부정하기 위해 찾아낸 자료가 오히려 차원부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증거가 된 듯 합니다그토록 일성록을 믿던 채하님은 류교수의 말을 아무런 생각없이 그대로 따라하는 앵무새 같군요 저도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집안의 자존심 때문에 역사적 사실도 부정하는 패륜적 행위는 둘째치고 진실을 오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삼가해 주길 바랍니다 전 지금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접점을 찾기를 원할 뿐 입니다 류문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한없이 부정적이 됩니다 몇가지 오류들은 차원부설원기가 위작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제발 정신 차리시고 더 이상 서로를 폄하하는 [아래로]

  • 작성자 13.11.25 11:12

    @연안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또한 위에 언급된 군현의 모촌성에서 나중에 주읍을 본관으로 한 차씨들이 사회적 기반을 넓혀 본관을 연안으로 했다는 것은 문중의 세가 커졌다는 증거인데 무슨 득이 있어 문화류씨를 참칭하겠습니까

  • 13.11.25 17:26

    @연안 제가 류주환입니다. 흠... 위의 세 질문은 답이 모두 명확히 '아니오'입니다. 너무도 명백한 이 사안들에 대해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학문적 소양이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으면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거짓투성이 위에 가문의 역사를 세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일성록에서 정조가 상언(上言)들에 대해 결코 담당 관청들의 의견을 그저 허수아비처럼 재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정조대왕이 믿을 수 없다고 세 번이나 거절하였는데 해당 문중 사람들은 그 시기에 설원기 목판을 나라에서 제작한 것으로 위조한 담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 13.11.25 17:28

    @채하 [이어서] 설원기 관련으로는 위작에서 위작으로 이어집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며 별로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비루한 일들입니다. 이런 부질없는 대화는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3.11.25 19:30

    @채하 조선이 망한 이유 중에 하나가 학자들의 아집내지 고집이 한 부분을 담당했을 것 같은 생각이 류교수님을 보면 생각납니다 너무도 명백한 사안들에 대해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학문적 소양이 없는 사람일 것이라니 자기 논리에 유리한 기록만 취사선택하시는 분이 올린 일성록 내용은 글을 읽을 줄 알면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문맥인데도 ‘아니다’라고 하시니 제가 부끄럽군요 학자라면 겸손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얼마나 아신다고 뭐가 부족하니 하는 그런 표현을 어떻게 씁니까 일성록의 기록을 보고 어느 학자가 류교수님의 아전인수격인 해석에 동의를 하셨는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수건교수 논문의 [아래]

  • 작성자 13.11.25 19:30

    @연안 차원부설원기 부분은 소설 같더군요 난 처음엔 영남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사학자 이선근박사인줄 착각했습니다 이선근 박사님이라면 논문에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고 내심 조심스러워 했는데 다른 분이더군요

  • 13.11.25 21:57

    @연안 이선근이면 어떻고 이수건이면 어떻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누구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선생님은 누군지 모르니 하는 말이 모두 완전히 무시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생각을 하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만 하십시오. 이것은 제가 이 카페의 관리자로서 경고로 하는 말입니다.)

  • 13.11.25 16:33

    연안님께서 " 한 때 같은 형제집안이라고 믿고 지내온 후손입장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져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하신 것처럼 한때는 "차류대종회"가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부터 연안차씨의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을 하면서 가만히 있는 문화류씨의 시조를 류차달이 아니고 류효금이다라고 차씨유래비문에 세기고, 부산 기장 차릉 아래 문화류씨 5대단에 있는 류색 류숙 류진부 류무선 류보림을 차문의 평택 의덕사에 "차승색 차공숙 차진부 차무선 차보림"으로 위패를 모시고 류차달은 "차달"로 위패를 모시고 또 고려대전에 도 차달로 위패를 모시면서 "류차달"이라 부르는 것은 차문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하면서(연안차씨

  • 13.11.25 16:45

    -윗글 계속-(연안차씨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차류대종회"도 해체되도록해놓고 이제는 2000년 이전으로 돌아가지고 합니다. 차원부설원기나 일성록 여러 학자의 논문을 떠나서 이런 형태가 차문에서 먼저 시작하였기에 류문에서 방어 차원에서 문헌을 수집한 것입니다. 저는 학문적 접근은 할 수 없지만 연안님이 지금이라도 차씨유래비문에서 문화류씨 시조를 "류차달"로 수정하고 평택 의덕사에 위패와 고려대전 위패를 "류씨"로 수정을 차문에 요구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문화류씨가 만든 최초 족보와 두번째 족보에 "차효전" 이름이 없는데 "원파록"이 나온 이후 차문과 형제 집안으로 지내오다가 2000년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 작성자 13.11.25 18:56

    그런 일을 문중 차원에서 정식으로 제의해 보시는 것이 어떨지요? 정말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은 피곤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전 그런 일이 일어 난 줄도 몰랐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어느 누가 정확히 알겟습니까 학계에서는 남의 집안일에 휘말리기 싫어 할 것이고 족보 기록에 대해선 양가문에서 합의 된 내용이 아니다 수정해 달라면 수정해 주면 그만이고 양가문에서 합의된 내용이다 올려 달라면 그대로 해 주면 그만입니다 가문사는 가문에서 제일 잘 안다고 보고 별 문제 없어면 고쳐 줄 뿐 입니다 어느 한쪽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 주긴 곤란할 것 입니다 부디 문중 대표들이 나서서 해결해 보시길..

  • 14.05.31 14:02

    늦었지만, [차원부설원기]에 관한 자료들을 탐구해보니 위서임이 여실합니다. 연대, 지명, 인물, 관직 등 역사적 사실이 [설원기]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군요.
    그리고 왕건이나 이성계도(뛰어난 신하들이 우상화를 돕고 싶었을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3대조 이상은 누군지도 모르고, 찾아내지도 못했는데 차씨가 수십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상들의 역사를 황제(복희씨)까지 일목요연하게 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소설이거나 위서임을 방증하고 있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엄연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 차문을 위하여 진정 명예로운 해결책이 무엇인지 고민하시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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