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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슈케나지의 고백
이 유대인들은 종교적 박해를 받던 유대인, 민주적인 국가에 살고 있던 유대인, 성경적 예언에 충실한 유대인들이었다.
나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으로 25살까지는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은 유대인들에게 완전한 자유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유대인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미국땅에서 성공하였고, 유대인 중의 일부 그룹(시오니스트)는 미국땅에서 정치, 경제적 지배권을 자치하는 지위까지 올라갔다.
내가 지금부터 당신에게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시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시오니스트들은 거짓선전을 활용하여 시오니즘과 유대이즘이 동일한 것이며, 유대인 종교의 본질적인 면이라고 미국 사람들이 믿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 이다.
유대교는 종교이다; 시오니즘은 공산주의와/사회주의 뒤에서 수백 년 동안 숨어서 활동한 동유럽 유대인(아슈게나지)의 정치적인 활동이다.
시오니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들이(유대계 은행 포함) 단일 정부를 만들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1967년 중동 전쟁 이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향 땅(이스라엘)이 힘있고 성공하였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은 미국땅에서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거짓 선전에 놀아났다.
그래서 1967년부터 1970년 까지 대략 50,000명의 미국계 유대인들의 시오니스트의 거짓 선전에 속아 이스라엘로 이주한다. 나도 이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시오니스트의 선전에 푹 빠진 나는, 미국보다 새로운 유대인의 국가인 이스라엘이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의 삶은 도전이며, 다른 유대인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라고 하는 또 다른 가짜 선전도 있었다.
내가 미국을 떠나 이스라엘로 가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왜냐면, 비록 내가 이스라엘로 이민을 간다고 하여도 나는 미국 시민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으며,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과 몇몇 다른 국가의 이중국적을 가지는 것이 허용되는데 미국이 그 중 한 나라이다.
미국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독일계 미국인은 독일과 미국 국적을 함께 가지지 못한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도 미국과 이탈리아의 국적을 함께 가지지 못한다.
이집트계 미국인도 이집트와 미국의 국적을 함께 가지지 못한다. ….
그러나 미국계 유대인은 이스라엘 시민과 미국 시민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시오니스트의 힘이 미국정부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에, 내 유대인 친구는 내가 이스라엘에서 자신의 여동생 Fawzia Daboul과 그녀의 노처녀 숙모와 잠시 지낼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델아비브 밖의 Lod 공항에 도착한 후, 나는 Daboul과 그녀의 숙모가 사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나는 Fawzia를 보는 순간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그녀의 히브리 이름은 Ziva라고 불렀다. 그녀는 나처럼 시오니스트의 선전에 속아 이집트에서 건너온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 이었으며, 미용사로 일하고 있었다.
Ziva와 그녀의 숙모와 같이 2일을 지낸 후, 나는 6개월을 Kibbutz에 있는 ‘Ein Hashofet’에 있는 공동체에서 생활을 하기 위하여 떠났다.
이 공동체는 이스라엘에서 운영하는 150여개 공동체중 하나였으며, 더 많은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특별히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쫓아낸 지역에 공동체가 많이 생겼다.
Kibbutz는 농업 및 벤처기업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중요한 것은 Kibbutz의 시스템이 폴란드, 러시아로부터 이스라엘로 이주한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이 만든 일종의 매트릭스란 것이다.
이들 폴란드/러시아로부터 이주한 유대인들은 볼세비키로 알려진 유대인의 한 분파이다.
볼세비키는 1917년 벌어진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 국가의 시작의 근원을 일으킨 세력이다.
1967년 전에 kibbutz에서 노동일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하였다. 그러나 1967년 전쟁 이후, 이 노동일은 저임금의 아랍인들과 해외에서 온 자원자 들이 하였다.
Kibbutz의 모든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그들은 옷과 음식 그리고 적은 양은 돈을 받았다.
벤쳐기업에서 발생한 모든 이익은 미래를 위하여 Kibbutz 공동체 계좌에 입금되었다.
이 모든 Kibbutz들은 사회주의 및 극렬 공산주의로 구성된 이스라엘 막시스트 당과 연관되어 있다.
Kibbutz에서 생활할 때, 나는 극렬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나는 계획된 6개월에서 2개월 일찍이 4개월 만에 kibbutz를 떠다는 것이 행복하였다.
Kibbutz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Ziva와 교제를 하였다.
내가 Kibbutz를 4개월 만에 떠난 이유중의 하나가 Ziva 였다. – 우리는 결혼 하였다.
결혼식은 세파라딕(Sephardic) 예배당에서 하였는데 간결하지만 아름다웠다.
Ziva와 나는 결혼에 행복하였지만, 우리의 결혼은 문제를 야기 하였다.
Ziva는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이고, 나는 아슈게나지 유대인이다.
아슈게나지 유대인이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결혼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아슈게나지 유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아슈게나지 유대인과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간의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막강한 시오니스트의 선전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유대인은 “신의 선택”을 받은 단일 민족이라고 믿게 하였다.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거짓말은 나중에 설명을 할 것이고, 지금은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 단일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유대인은 명확히 구별되는 두 개의 그룹이 있으며, 이들이 각기 다른 곳에서 이스라엘로 왔다.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은 중앙 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왔으며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은 동유럽에서 왔다.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은 아주 역사가 깊은 유대인들이며, 성경에 언급된 유대인들이며 성경에 언급된 지역에서 이제껏 살아왔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아랍인들과 아주 비슷하다.
아랍인들과 단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이들이 믿는 종교일 뿐이다.
현재 전 세계 유대인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아슈게나지 유대인은 이상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많은 역사가들 역시 유대인), 아슈게나지 유대인은 1200년 전에 생겼다,
그 발생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유럽의 동부 끝 자락에, 카자르(Khazars) 로 알려진 부족이 살았다.
기원후 740년에 이 카자르의 왕은 그들의 종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대표자가 초대 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설명하였다.
카자르왕국은 유대교를 선택하였는데, 이것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만약 카자르가 기독교를 선택하였다면 이들은 강력한 이슬람 국가의 분노를 초래했을 것이고,
이슬람교를 선택하였다면, 이 역시 강력한 기독교 국가들의 분노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중간 형태인 유대교를 선택하였다,
이것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이다.
13세기 어느때쯤 이들 카자르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땅으로부터 쫒겨나서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들 상당수가 가주한 지역이 폴란드와 러시아이다.
이들 카자르인들이 현재 알려진 아슈게나지 유대인이다.
이들은 실제 유대인들이 아니며, 유대 혈통도 아닌데, 단순히 유대교를 믿는다고 유대인으로 불려진다
발전된 유전공학에 의하여 아슈게나지 유대인의 기원이 카자르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아더 쾨슬러의 [열 세번째 지파]라는 책을 읽어 보면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도갈마의 7 번재 아들 카자르 족이 유대교를 믿어서 오늘날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이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출판하고 살해되었다.
아슈케나지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뿌리가 카자르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지금의 이스라엘 땅을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뿌리채 흔들리게 되기 때문에 유전자 운운 하는 것이다.
참고할 문헌 [13번째 지파], [카자르 사전]
1800년대에 주목할 만한 숫자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유대인들이 독일에 있었으며 결국 발칸 반도 및 전 유럽으로 확대 되었다.
이들이 러시아 정부 및 사회 업무에 계속적으로 개입을 하여서, 결국 러시아 황제 짜르는 유대인들은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어떤 사람들은 중, 남미로,
그리고 상당수의 인원이 미국으로 넘어 왔다.
Political Zionism is Born – 정치적인 시오니즘의 탄생
1897년 첫 번째 시오니스트 의회가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었다.
이 의회에서는 유대인 국가 건설이 결정되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장소를 찾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아프리카를 제공하였으나, 시오니스트들은 이것을 거절하였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을 원하였다.
이 때 팔레스타인 땅에는 50만명 정도의 아랍인들과 이들과 혈연으로 연결된 소수 팔레스타인 유대인 (세파라딕 유대인) 들이 수백 년 동안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다.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을 자신들의 땅으로 결정하고, 유럽의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설명하였듯이 이들 대부분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자들이며 이들 중 일부는 세계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극단적인 볼세키비였다.
유대인에 관하여 생각을 할 때는, 특별히 이스라엘과 관련된 유대인을 생각할 때는,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아슈게나지 유대인간에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주의하여야 한다.
이들은 단일 민족이 아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특별히 혈통적으로 구분된다.
이제 다시 Ziva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ziva와 함께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이스라엘에서 살았다.
결혼 초기 삼 년 동안, 나는 Ziva의 숙모와 같이 지내야 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서 집에 부족하기도 하였으며, 인종차별주의 때문이다.
집을 할당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l 아슈게나지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서 오래된 사람에게 최우선 배정한다
l 두 번째는 유럽에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 - 특별히 이들이 이스라엘에서 출생한 아슈게나지 유대인과 결혼한 경우
l 그 다음 순위는 미국에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 - 특별히 이들이 이스라엘에서 출생한 아슈게나지 유대인과 결혼한 경우
l 집이 남아 있는 경우, 그 다음 순위로 세파라딕(Sephardic)에게 할당됨
l 마지막 순위는 무실림, Druze와 기독교
그 다음이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 그리고 무실림, Druze와 기독교인들은 천한 직업이 주었으며 이들의 상당수는 실업자였다.
나는 비록 미국에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 이었지만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결혼하였다는 이유로 집의 배정에서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번역자 주) Druze - 이슬람교 시아파의 한 분파
내가 이스라엘에 도착한 때부터, 나는 많은 욕설을 들었다.
미국계 유대인들은 이 욕설을 피하지 못하였디.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하여, 미국의 기부 및 원조에 많은 것을 의지하여야 하였으며, 아무런 값어치 없는 이스라엘의 채권을 미국이 사주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엘리트 아슈게나지 유대인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으며, 비록 같은 아슈게나지 유대인 이었지만 미국에서온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이 질투를 피할수 없었다. 나는 여러 번 “니네 나라로 돌아가. 우린 너의 돈이 필요할 뿐이지,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아” 란 말을 들었다.
그런데, 미국계 유대인의 한 부류는 환영 받았으며 특별대우를 받았는데, 이들은 정식 유대인 공산당원들이었다. 나처럼 1967부터 1970년 까지 이스라엘로 이민간 미국계 유대인 50,000명중의 20%(10000명)정도가 막시스트였으며 이들 상당수는 정식 유대인 공산당원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 및 지역 아슈게나지에게 환영 받았으며 특권을 부여 받았다- 주택, 직업 그리소 사회적 지위. 이것 말고도 상당한 수의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이 칠레, 아르헨티나 그리고 남 아프리카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결국 이때 이스라엘로 이민간 50000명중 80%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남아 있는 20%는 정식 공산당원 또는 막시즘을 흠모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제까지 말한 것을 정리하여,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스라엘이 막시스트(공산주의/사회주의)국가라는 생각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이것이 정확한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3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 파시즘 그리고 민주주의.
러시아로부터 이스라엘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그들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을 많이 실행하였다.
독일에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은 공산주의에 대한 음모를 하며 이들을 지원하며,
나찌 스타일의 파시즘을 시행하고자 한다.
세계 2차 대전 중, 독일에 거주하던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나찌 게슈타포와 긴밀히 협력하여 사회 하층부에 있는 독일계 유대인을 탄압하고 이들을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
현재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이들 엘리트 사오니스트 유대인들은(나찌즘에 친숙하고 이것을 선호하는 유대인들)은 파시즘의 여러가지 측면을 이스라엘에 심어 놓았다.
이스라엘이 민주주의라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고전적인 선거를 통하여 이스라엘 의회를 구성하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이 민주주의 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리쿠르트당이 정권을 잡던, 노동당이 정권을 잡던, 엘리트 시오니스트들이 독재정치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 이들은 엘리트 집단을 따르며, 이들에 반대하는 어떠한 세력도 잔인하게 억압한다.
시오니스트/공산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계획에서, 이스라엘의 임무는 중동에서 끈임 없는 분란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 계획의 실현에서 전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스라엘의 청년들이 어렸을 때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전쟁을 배우는 것이 당연하게도 보인다.
이스라엘은 히틀러의 유겐트(청년대)와 동일한 청년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명칭은 Gadna이다.
모든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Gadna에 참여하여야 한다- 남녀 모두. 히틀러의 청년대와 마찬가지로 이들 Gadna도 군복 유니폼을 입는다. 이들은 준 군사 훈련을 받는다.
심지어, 이들이 하는 놀이에서도 총과 전쟁과 연관된 것들을 발견된다.
이들이 소풍을 가면, 야구나 축구 이런거 대신, 반 자동 소총이나, 저격용 총으로 사력훈련을 하며, 전쟁 놀이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청년들은 3년 동안 (여자는 2년) 육군에 복무하거나, 4년(여자는 3년) 동안
공군 또는 해군에 근무하여야 한다.
초 정통파(Ultraorthodox)의 종교적 유대인은 이 군 복무를 면제 받는다.(주 - 유대 정통종교의 사제가 되고자 하면 군 면제가 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 군복무를 마친, 상당수의 사람들이 Shin Bet(이스라엘 국내 안전부)에 들어간다.
이 조직은 히틀러의 게슈타포 조직과 같은 것으로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시오니스트의 막시즘/파시즘 정권에 대한 반대를 하는 누구라도 제압하는 것이 이들이 임무이다. 마치 나찌 독일에서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히브리 말로 “Teudat Zehut”라고 하는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하고 다녀야 한다.
어떤 날, 내가 재킷을 갈아입은 후, Teudat Zehut를 잊어버리고 델아비브의 중심가에 간 적이 있었다.
경찰관이 다가와 “Teudat Zehut”를 보여줄것을 요구하였고 나는 재킷을 갈아입은 후 깜빡 하고 챙기지 못하였다고 대답했다.
결국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경찰서에서 내근중인 한 경사는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재판 없이 또는 재판 전까지 16일 동안 구금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경찰이 “구류 명령서”에 사인만 하면 나는 16일 동안 구금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부인에게 나의 신분증을 가져오도록 전화를 사용을 요청하였고 경사는 2시간의 시간을 주었다.
나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 부인인 이 2시간을 몇 분 남겨두고 경찰서에 도착하였다.
만약 나의 부인이 늦었다면, 나는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16일 동안 구류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민주국가가 아닌 경찰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찌즘/파시즘과 관련하여, 정리를 한번 해보자. 독일 사람들은 존경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나는 독일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일반 대중들은 교활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권력을 손에 쥔 나찌의 희생자였다.
독일에서 일반적인 유대인들은 나찌와 같이 협력하였던 시오니스트 엘리트들의 희생자들 이었다.
독일 나찌와 협력 하였던 많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건너와 이제 폴란드/러시아에서온 시오니스트/공산주의 유대인들과 같이 손잡고 일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공산주의/나찌 스타일의 파시즘의 두 가지 얼굴이다.
민주주의는 그냥 헛것일 뿐이다.
엘리트 아슈게나지 유대인들과 나찌의 연결 고리에 관하여, ‘Ashkenazi’ 란 단어를 살펴보자.
Ashke-Nazi 재미있지 않나요?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혼란이 있는데, 파시즘은 국가 사회주의이며,
공산주의는 국제 사회주의 이다.
경제학적으로, 이스라엘은 파산했다. 물론, 이스라엘의 경제 구조가 사회주의에 기반한 것이라 이것은 쉽게 예상 할 수 있다.
국가의 정부와 시민들이 자신들이 생산하는 가지 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면, 그 결과는 경제의 파산이다.
만약 미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의 경제는 예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스라엘은 ‘복지국가’이다 – 미국으로부터 복지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이다.
미국의 농부, 중소기업인 그리고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하여 노력할 때, 시오니스트 유대인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미국의 정부는 미국 납세자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어 이스라엘 사회주의 경제와 전쟁 시스템을 지원한다.
이스라엘 정부와 시오니스트들은, 미국에 대한 시오니스트의 압력이 미국이 계속 막대한 양의 돈을 이스라엘로 보내줄 것임을 알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와 몇몇 특권층들은 마치 술 취한 뱃사람처럼 돈을 마구 사용한다. 이것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며 결국 경제 붕괴를 초래한다.
이스라엘을 술 취한 뱃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뱃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다. 최소한 뱃사람은 자신의 돈을 사용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돈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그 생존을 위하여 미국의 지원에 의지하는 복지국가 이기 때문이고, 이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의 인플레이션은 130%였다.
1983년에는 200%였고, 오래는 400%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의미 하는 것은 1월 초에 1달러를 하던 햄버거 값이 12월 말에 5달로 오른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만큼 경제문제에 빠진 국가가 없었으며, 이런 문제를 당하고 경제붕괴를 피한 나라가 없다.
오로지 미국이 주는 원조를 늘리는 것만이 이 붕괴를 피하는 방법이다 – 그러나 이것 역시 임시 방편일 뿐이다.
파괴적인 사회주의적 경향의 경제와 관련하여 말을 하면, 사람을 돕는 사회 복지망이 성공하기 위하여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그 사회내부에 충분한 자금이 있어야 하며, 시민들은 도덕적이어야 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에는 이런 것(돈, 도덕적인 시민, 남을 위한 배려)이 전혀 없다. 국가의 경제는 외부의 지원으로 위태하게 영위되며,
정부가 시민들에게 필요한 여러 것들을 공급하기에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잊어 버리고, 자기 만족에 빠져 버린 사람들의 국가는 쉽게 망한다.
관광산업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수입원중의 하나이다. 미국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가장 큰 집단이다.
그러나, 미국계 기독교인 역시 성스러운 장소 및 “신이 선택한 민족”들이 사는 나라를 보고자 많이 이스라엘을 찾는다.
이들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유대인들과 가축(Gentile, 비유대인 관광객)들은 세심하게 모니터링을 당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실수로 관광지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어두운 면 -이스라엘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소련과 다른 동구 공산주의 국가처럼, 관광객들은 미리 계획된 장소만을 방문하게 된다. 종교적 유적지, 대학교, 잘 가꾸어진 과수원, 첨단 과학단지, 미술관 그리고 이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홀로 코스트 박물관을 보게 된다.
이러한 계획된 관광으로 인하여 관광객들은 게토(ghettos)를 보지 못한다.
이 게토는 대부분 아랍 정치범들과 세파라딕(Sephardic) 유대 정치범을 감금하는 교도소인데,
이곳에서는 반인간적인 고문이 자행된다.
관광객들은 이스라엘에 광범위하게 퍼진 범죄, 부패, 조직범죄 집단과 경찰과의 협착 등을 보지 못한다.
관광객들은 이스라엘 막시스트/파시스트 정권이 벌이고 있는 작태를 보지 못하며, 인종차별도 보지 못한다.
나는 이스라엘에 와서 종교적 흥분으로 자신을 주체 못하는 미국여성 관광객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해주었다
“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에게 성경책 한 권을 주어보세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종교적 자유를 얼마나 보장해주는지 아시게 됩니다. 만약 경찰이 당신이 성경책을 주는 것을 목격하면, 당신을 체포할 것입니다. “
홀로 코스트 박물관과 관련하여, 나는 다음의 내용을 분명히 언급 하고자 한다.
1. 독일에 있는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이 나찌에 협력하지 않았다면 홀로코스트는 발생하지 않았다.
2. 시오니스트들이 전 세계에 퍼져있던 유대인들을 설득하여 독일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미국에 있던 시오니스트들은 루즈벨트를 설득시켜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봉쇄하였다.
이 때는 전쟁 전이어서 유대인들이 목숨을 보존할 기회가 있었다.
비고 - 그리고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의 학살을 과대 선전 하였다.
실제 벌어진 유대인의 학살과 시오니스트들이 선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Religion – 종교
예전에는 팔레스타인 땅이었고, 현재 이스라엘이 수립된 이곳은, 모세(유대교), 예수(기독교) 그리고 마호메드가(이슬람교) 활동한 장소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은 각종 종교적 장소 및 이벤트로 가득하며, ‘성스러운 장소’로 언급된다. 누구라도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은(현재는 이스라엘), 이곳이 성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무슬림과 팔레스타인 유대인이 이곳에서 살고 있을 때,
이곳은 종교적 오오라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오니스트들이 이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을 세운 이후로,
이 땅은 세상에서 가장 죄악이 가득한 땅으로 바뀌었으며
유대교를 믿는 인구는 전체인구의 5% 밖에 안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한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아랍 무슬림과 아랍 기독교 인들이 이스라엘 인구구성에서 소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법은 모든 종교를 억압한다.
- 예를 들면, 유대인을 다른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이스라엘에서는 불법이다.
그 유대인이 무신로자이던, 그냥 휴머니스트이건 관계없다.
기독교인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교회건물 내부에서만 허용되며, 성직자나 그 박에 누구라도, 교회 밖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전파하면 징역 5년에 처해진다.
기독교인이 성경에 나와있는 구절이나 다른 종교적인 문구를 유대인에게 전하면 징역 5년에 처해진다.
심지어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어떠한 친절이나 호의를 베풀어도- 예를 들면 음식이나 선물을 주는 것-
이것은 종교적 개종을 권유하는 것으로 사료되어 징역 5년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억압은 이슬람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이슬람인이 유대인에게 친절이나 회의를 베푸는 행위도 개종행위로 간주되어 징역 5년에 처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지배층인 시오니스트들에게 있어서 유대교를 처리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이던 비 유대인이던 이스라엘을 유대교의 본고장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유대교의 활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오니스트들은 전세계의 반감을 우려하여 유대교에 대하여는 함부로 억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오니스트들은 이스라엘 내 소수 유대인들의 종교활동에 대하여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신이 선택한 민족’ 이라고 믿게끔 세뇌 되었다.
이러한 신화는 소수 유대인 그룹이 만든 것이l다.
몇몇 유대인 지도자들이 성경에서 몇 가지 문구를 발췌하여 이것을 근거로 하여 하느님이 그들을 ‘선택된 민족’으로 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들은 사실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유대교 무신론자들이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울부짓는 사람들은 시오니스트/막시스트(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인데
이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대교를 선택한 것이며, 성경에 나오는 실제 유대인과는 아무런 혈연적 관계가 없다.
이스라엘의 어떤 종교적인 유대인이 말하기를 “한때 우리는 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었으나, 오래 전에 그 권리를 박탈당했다”
누구라도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신이 한 때 유대인들을 편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언약의 궤’로 구성되는데, 신의 편애의 조건은 ‘언약의 괘’에서만 성립된다.
– 이 조건은 유대인들이 신의 말을 섬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유대인들은 언약을 저버렸다.
그들은 신을 거부하였고 마몬을 숭상하였다.
성서학자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성경을 읽어보면 오래 전에 유대인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권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의 3가지 종교를 비교하며, 나는 다음과 같은 관찰 사항을 언급한다.
유대교 – 세파라딕(Sephardic)이던 아슈게나지이던간에 아주 소수의 유대인만이 믿는 종교이며, 미국,이스라엘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공히 마찬가지다
기독교 – 기독교는 유대교의 방해공작(참견과 간섭)에 의하여(특히 미국), 다양한 교파들의 혼동과 갈등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일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정교에 대하여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만들었다. 유대인 또는 유대인으로 구성된 단체의 지도자들이 무수한 기독교 분파와 그들의 교리를 만들어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이슬람 – 이슬람의 교리를 따르는 무슬림은, 이들 3가지 종교인들 중에 가장 열심히 종교적 믿음을 따른다.
미국에서 흔히 접하는 유대-기독교 윤리(Judeo-Christian ethic)는 사실 쇼이다. – 이것은 시오니스트의 선전활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신화와 관련하여 마지막 언급을 한다. 성경에, ‘유대인이 아니지만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를 경계하라. 왜냐면 그들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 성경에 언급된 이 사람들이 아슈게나지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Israel Stirs Perpetual War – 이스라엘은 영구적인 전쟁을 획책한다.
성스러운 땅에는 평화가 가득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평화 대신 전쟁과 전쟁준비가 있다.
이스라엘은 군사력은 전 세계 4위로 알려져 있다.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 탱크 및 기타 전쟁 장비와 더불어 이들이 최신 장비인 것을 고려하면, 이스라엘을 군사력은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육군에서 약점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스라엘 육군의 약점을 말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개입한 전쟁을 잠시 살펴보자.
-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한 이후로, 평균 매 8년마다 전쟁이 있었다.
1948년 전쟁 – 이스라엘이 스스로 국가라고 선포한 후, 팔레스타인과 기타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이스라엘의 육군은 Irgun과 Stem Gang 이라는 테러 그룹을 구성하여 조직하였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살인과 테러로 시오니스트들이 빼았은 땅을 되찾기 위해서이다.
팔레스타인은 평화로운 민족이었으며 군사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련, 폴란드 그리고 독일에서 시오니스트들은 군사적인 전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주 - 이르군단(團): 유태주의자 군사 지하 조직; 주로 제2차 세계 대전 후 영국의 Palestine 통치하에서 활동했다.
여기에 더불어 시오니스트들은 미국에서 받은 엄청난 양의 무기와 공산주의 국가에서 밀수한 무기로 무장을 하였다.
결국 아랍인들은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였다.
1956년 – 이집트땅에는 수에주의 운하가 있었다.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나세르는 이 운하에서 영국을 몰아내고 대신 이집트가 운하를 운영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제국주의 영국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공모하여 이집트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이집트가 거의 패배할 무렵에,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철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때 미국의 군사력은 이미 이들 국가에게 철수를 명령할 정도로 강하였고, 이 세나라는 철수했다.
이 사건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있어서 미국의 대통령이 자국의 이익을 이스라엘의 이익에 앞서서 내세운 유일한 사건이다.
1967년 전쟁 –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 이스라엘 두 국가의 긴장이 형성되었다.
소련은 이스라엘을 돕기 위하여 속임수를 사용하였다 : 이집트에 있는 소련대사는 나세르 대통령에게 전쟁으로 위협만 하고 실제 공격은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대신 이스라엘에 있던 소련 대사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전쟁으로 위협하고 즉각 공격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기만적인 속임수는 이스라엘이 아직 전쟁준비를 마치지 않은 이집트 군대를 6일만에 격파 할 수 있게 합니다.
나일강과 유프라케스강 사이에 있는 지역을 접수하는 것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오랜 바램이었다.
이집트와의 전쟁 중에 빼았으려고 한 시나이 반도와 가자기구 외에도, 이스라엘은 요르단 서안과, 시리아의 영토이었던 골란 고원를 빼앗고자 하였다.
그래서 1967년 전쟁 중에 이스라엘은 속임수를 사용하였다.
이스라엘은 라디오 주파수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가로채어 그 내용을 변경하고 원래 주파수의 목적지로 보낼 수 있는 장비가 있었다.
전쟁 중,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요르단, 시리아로 가는 메시지를 가로채 이것을 변조하였고,
요르단과 시리아가 전쟁에 개입하게 하였다.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에게 패배하였고,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뿐만이 아니라 요르단 서안과 골란 고원을 차지 하였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한 1967년 전쟁은 종종 6일 전쟁으로 불리는데, 사실 이것은 전쟁으로 볼 수 없다.
이 당시 아랍 국가 중 가장 강력했던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거의 전쟁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위에서 소련과 이스라엘의 속임수를 설명하였다.
1967년 전쟁은 소련과 이스라엘이 합작으로 벌인 기만적인 테러행위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1967년 전쟁 중, 가장 대담한 행동이 감행되었다.
미국적 선박 USS 자유호를 미국의 친구라 불리는 이스라엘이 공격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기만적인 방법으로 이집트를 공격하고 있을 때, 미국의 감시선 USS 자유호는 이스라엘의 해안가에서 전쟁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USS 자유호가 이스라엘의 기만적인 방법을 알아챘고,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증거를 없애기로 결정하였다.
이스라엘의 비행기와 어뢰정이 자유호를 공격하였으며 침몰이 공격의 목표였다.
만약 배가 침몰하면, 증거는 사라질 것이고, 그러면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이런 짓을 했다고 주장 할 수 있었다.
– 그리고 시오니스트들이 통제하는 미국의 언론은 거짓말을 통하여 이집트에게 미국인들의 분노를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용감한 자유호의 승무원들은 배가 침몰되지 않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동맹인 미국을 향하여 기만적인 전술을 사용하려다 실패 하였다.
그러나 이 공격에서 37명의 승무원이 사망하였으며 171명의 승무원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공격이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생존한 승무원의 증언 및 다른 증거는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공격한 것임을 증명한다.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공격 부분은 시오니스트가 통제하는 미국의 언론에서 삭제되었다.
시오니스트들이 미국인들에게 말해준 것은 이스라엘이 미국 선박을 공격하였으며, 이것은 실수에 의한 것 이다.
미국 정부에 의한 조사는 흐지부지 되었고 이 일은 빠르게 잊혀졌다.
이것은 시오니스트의 영향력이 미국 정부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만약 언론이 그 의무를 다하여 공격과 관련된 진실을 보도하였다면, 미국정부가 이 사건을 덮어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 있는 시오니스트 언론이 미국인들에게 왜곡된 보도와 진실을 숨기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1973년 전쟁 – 1967년 이스라엘과 소련에 의하여 기만적으로 벌어진 전쟁의 결과, 아랍인들은 즉시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고자 하였다.
1973년에 전쟁의 준비가 되었다.
비록 여러 아랍국가들이 군대를 준비하였으나,
이들은 외교적,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헬렌 토머스 구설수, 유대인 비난 발언으로 여론의 집중포화 맞아 헬렌 토마스 기자야말로 지금의 이스라엘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브라함 자손도 아니고 이삭의 후예도 아니며 야곱의 자손도 아니고
정직하가게 말하자면 도갈마의 7 번째 아들 카자르 족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헬렌 토마스의 말대로 그들이 자신들의 땅을 찾으려면 코카사스(카프카즈)로 돌아가야 맞는 말이다. 유대교를 믿었다고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헬렌 토마스는 가장 바른 말을 한 것이었
헬렌 토마스 기자는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지만 미국의 기자들 중에 모처럼 속에 있었던 말을 토해낸 것이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폴란드나 독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점령당했다"고도 말했다. 또 '이스라엘 국민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집으로 가야 한다"며 "폴란드, 독일, 미국 등 어디로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와 인터뷰한 언론은 "유대인은 고향인 폴란드와 독일에서 600만명이 학살당했고,
논란이 일자 토머스는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깊이 후회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유대인인 애리 플라이셔 전 백악관 대변인은 "흑인, 히스패닉에 대해 같은 말을 했다면 직장에서 쫓겨났을 것"이라며 허스트 측에 그의 해임을 촉구했다.
한 백악관 출입기자도 "역겨운 말"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레바논 이민자 2세인 토머스는 1961년부터 백악관을 출입, 10명의 대통령을 지켜본 기자실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그러나 기자실에서 유일하게 좌석이 지정되는 등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http://ezrahouse.org/home/bbs/board.php?bo_table=guest2&wr_id=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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