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차살림 가운데 일본 ‘다도’를 거의 그대로 흉내내고 있는 것은 말차(抹茶) 마시는 모습입니다. 말차는 차나무의 어린 순을 가루로 갈아서 만든 차인데 더운 물에 타서 마시며, 찻잎을 우려 먹는 엽차(葉茶)와 함께 차(茶)의 주된 종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루로 만든 차를 마시는 법을 일본 다도에서는 ‘농차(濃茶)’라 부릅니다.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은 찻가루를 더운물에 타면 짙은 초록색이 되는 모습을 두고 부른 이름이기도 하고, 이 차를 마시는 특별한 방법에서 비롯된 이름이기도 합니다.
우선 ‘농차’는 일본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신라의 원효(617~686)가 즐겼던 무애차(無碍茶)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시 살펴보도록 하지요.
농차는 일본 다도의 상징적 존재이자 다도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해서 한국 차인들도 이를 배우고 마시는데 많은 공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웬만큼 차살림 하는 사람이라면 농차를 모방한 이른바 말차와 관련된 꽤나 복잡한 일을 즐겨 행함으로써 차인으로서의 풍모를 드러내려고 하지요.
흔히 전통찻집에서도 말차를 차완에 직접 타서 팔기도 할만큼 한국에서도 농차는 대중화 되고 있습니다.
일본 다도에서 농차는 옛부터 정해져 있는 규칙이 있습니다. 정리해볼까요.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쟈왕(茶碗)’ 즉 차완입니다. 다도 완성을 위해 200여년 동안 선구자들이 가장 고심했던 것이 차완이었거든요. 마침내 다도를 완성시켜준 차완이 저 유명한 ‘이도쟈왕(井戶茶碗)’이었지요. 농차 최고의 멋과 품격은 이도차완을 사용하는 것인데, 한국 차인들도 이 전통을 배워 따르고 있지요. 진품 이도차완이 아닌 현대 도공들이 흉내낸 이른바 막사발을 사용하지요.
둘째는 ‘차샤꾸(茶杓)’ 즉 차숟가락입니다. 대나무를 쪼개서 만드는 차숟가락은 중요한 역사적 미술품으로 분류됩니다.
셋째, 차완은 찻상 따위에 올려 놓지 않고 방바닥에 놓아야 합니다.
네째, 방바닥 위에는 헝겊으로 만든 작은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차완을 얹지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섯째, 차완을 다룰때는 매우 조심하고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차완은 사용하기 앞서 맑은 물로 깨끗이 헹궈내야 합니다.
여섯째, 차가 담긴 차완을 받아 앞에 놓고 공손히 합장하여 차를 낸 주인과 차를 이루고 있는 우주를 향해 인사해야 합니다. 차를 마실 때는 소리를 내지 말고 끝까지 정숙해야 합니다.
일곱째, 차를 마신 뒤 차완 바닥에 조금 남아있는 차를 마저 마시기 위해 따로 물을 조금 받아서 부은 뒤 잘 휘저어서 말끔하게 마셔야 합니다.
여덟째, 차를 다 마신 뒤 빈 차완은 차수건으로 깨끗이 닦고, 차수건은 정해진 순서대로 접어 제자리에 둡니다.
아홉째, 차실에는 담백한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족자나 액자 한점, 싱싱한 들꽃 한송이를 꽂은 꽃병, 작은 향로 하나 외에 잡다한 물건을 두지 말아야 하며,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차완은 오동나무 상자 안에 넣고 수건을 덮은 뒤 뚜껑을 덮습니다. 상자를 묶는 끈은 반드시 정해진 순서대로 묶어 ‘一’자나 ‘人’자를 뜻하는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이 규칙은 불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