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읍 서남향 20리에 위치한 곳인데 높이 1천 1백 51m의 고산이다. 소백산맥에서 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산이다.
장수는 거의 전지역이 소백과 노령의 분지적 협곡지대다.
장수(長水)라는 글자 그래로 물이 길다는 곳이다.
물이 길다는 것은 금강의 최상류이자 섬진강의 최상류가 되며 수분치에서 분수하여 남쪽으로 가는데 한편 물은 금강이 되고, 다른 한편 물은 섬진강이 된데 기이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상의 수분치의 북류수는 발원하여 장수 천천 진안 용담, 영동, 옥천, 대덕, 연기군까지 오던 산을 따라서 올라간다.
그러므로 물이 거슬러 간다고 하여 「역류삼백리」라 하고 산이 오던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하여 「역산삼백리」라 한다.
영동군에 위치한 추풍령을 지나 덕유산, 장안산, 팔공산으로 해서 다시 추풍령밑으로 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팔공산을 호남의 진산이라고 하는 뜻을 장안산까지 산경의 연맥을 살펴보았지만 팔공산에 성수산, 마이산, 주졸산, 남노, 북노를 연결하여 충청도 일부를 이 산의 영향권 아래에 두고 경남을 경계로 하고 호남의 전역이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이 산을 진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산에는 기원 6세기경에 팔성사라는 고찰이 창건되었고 팔성사에 예속된 암자 8개소가 있었는데 암자마다 성인이 한분씩 거처하고 있었으므로 팔성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 이 산에는 합미성이라는 고성이 있는데 이 성은 최근 고고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백제때 축조한 성이라고 하니 백제가 강성해지면서 마한을 병합할때나 아니면 백제 근초고왕때 전방기지로 축성된 성인듯하고 1천 5백년전이나 1천 6백년전의 축성이라고 보는데 현재까지 성의 형태가 온전하게 유지되어 그 시대의 축성기술을 알 수가 있다.
이상과 같이 신앙적, 교육적, 군사적 요지로 선택되었다는 것부터가 중요한 위치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산은 장수읍에서 보면 가장 아름답게 볼 수가 있다.
아침해를 이 근방에서 제일 먼저 볼 것이요, 저녁달은 제일 앞에 지는 곳이다.
풍부하고 우람한 모습은 천병만마를 앞에다 세워놓고 훈시하듯 하며 때로는 인자한 어머니가 온후한 모습으로 자식들을 굽어보는 듯한 산으로 억천만년이 지나도 변하지도 않고 이땅을 지켜줄 듯 하다.
동쪽에는 유명한 명당이 있다는데 누구의 글인지는 모르나 명사의 고시가 있어서 소개한다.
팔공산 한맥이 동쪽으로 와서(八公一脈向東來) 혈은 중봉의 둥근돌위에 있네(穴在中峰圓石上) 충암백호는 거기에 머리가 싸이었고(層岩白虎近蓄頭) 첩첩싸인 청룡은 몸을 멀리 둘렀구나(重疊靑龍遠抱身) 하늘을 찌를듯 소는관성은 뒤에서 응해주고(後應仲天鬼樂星) 조산은 봉황산이데 역수하여오네(前組逆水鳳凰山) 하늘이 감춘물건을 누가 알것이냐(天藏之物誰能識) 화성자가 그게 귀하고 부할것이다(二七華孫大富貴)
이상의 명당이 양화낙지라는 명당 즉 버들꽃이 땅에 떨어진 혈이라고 하며 그 크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래서 춘추가 되면 수많은 풍류객들이 지나간다.
이 산에 팔성사가 있어서 산사를 찾아 배회하는 모습을 시로서 남겨 놓은 남고 유일수 선생의 고시를 소개한다.
산안개 서로 따르니(山霞連絡似相隨) 연기도 비도 아닌데 볼수록 기이하고(非雨非烟看且奇) 산사에 찾아간 스님이(歸僧却失山菴在) 멀리멀리 돌아서 찾아 가더라(遠遠排徊還復窺)
이 시는 안개가 자욱한 산중에서 심사하는 산승들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라 하겠다.
이 시속에 내포되어 있는 정신문제는 어디에서 보아도 지극한 데가 있다.
조선조에서 척불사상으로 인하여 불가의 어려움이란 말로 다할 수없으나 살기 위해 무엇을 얻으려고 극심한 고생이 이 시에도 모름지기 불굴의 신앙정신이 나타난다.
아무튼 팔공산에 성인고승이 많이 수도하고 간 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
이 산에서 수도를 통해 오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 성인 고승들이 많았던 이유는 그만큼 명기명산이기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