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올리브대올리브 》
- 文霞 鄭永仁 -
(가) 글
‘아티스틱한 감성을 바탕으로
꾸띄르적인 디테일을 넣어
페미닌함을 세련되고
아트적인 느낌으로 표현합니다’
이 글은 최근 한 인턴넷 사이트에 백화점 여성 브랜드 옷 소개 문구이다. 무려 3개 국어 한국어, 영어, 불어가 뒤섞인 명문장이 아닌가?
이 말을 해석하면 이 정도라고 한다.
(나) 글
‘예술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맞춤복의 세밀함을 더해,
여성스러움을 세련되고 예술적인 느낌으로 표현했다.’
- 이상 2013년 5월 6일(일) 동아일보에서 -
하면서 네티즌들은 ‘한글 파괴의 신(神)’이라고 야단했다.
야단했으나 문제는 정작 (가)글처럼 선전해야 잘 팔리고, (나) 글처럼 광고하면 쪽박이라는데 더 문제가 있다. (가) 광고는 귀티가 나고, (나) 광고는 싼티가 난다는 것이다. 패션업계뿐 아니라 우리 말글살이 중에서 한글파괴는 해도 너무 한다.
이 이야기는 이런 논리와 엇비슷하다. 여자옷을 정가 100,000원이라 써 붙이면 잘 안 팔리고, 똑같은 옷을 0을 하나 더 붙여 1,000,000원이라 써 붙이면 날개가 돋늗다고 한다.
고급 남성화장품 1세트를 선물 받았다. 이름 알기는 애저녁에 글렀고, 이게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발라야 하는지 알쏭달쏭, 긴가민가, 아리까리…. 알아서 기는 수밖에 없다.
하기야 어느 지자체가 육교 위에다 붙이 경고문이다.
‘이곳에 불법 게첨하면 의법 조치함’
‘게첨’은 한글사전에도 없는 어휘이다. 일본식 어휘인 것 같다. 아마 ‘게첨(揭添)’일 것 같다. ‘시건장치(施鍵裝置)’나 도낀개낀일 것이다.
하기사 이런 말이 한둘이랴!
‘촉수금지, 비산먼지, 수사자위령제, …….’
지나다니다 보면 간판도 요지경 속이다. ‘젖소 부인 바람난 횟집’은 좀 애교나 있다. 그래도 눈여겨보면 애교있고, 맛깔스런 간판도 꽤 있다.
생맥주집 ‘잔비어’, 막걸리집 ‘몽마를때’, 어죽집 ‘어!죽이네’, 신발가게 ‘신발로’, 옷수선집 ‘꼼꼼 옷전문수선’, 횟집 ‘쨍하고 회 뜰 날’, 산채비빔밥집 ‘산내음’, 두부집 ‘맷돌로만’, …….
다음 문구는 인천 어느 지하철역 화장실 입구 위에 붙어있는 말씀이다.
‘깨끗한 화장실!! 고객님 덕분입니다’
여기다 ‘다’자 하나 더 붙여
‘깨끗한 화장실!! 다 고객님의 덕분입니다’ 라고 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하기야 정치인들도 알 수도 없는 고사성어 하나 내뱉어야 그럴듯하게 보이니까. 토사구팽(兎死拘烹)처럼.
이주민 여성들이 한글을 쉽게 배우기도 하지만, 우리말의 어려움 중에 하나가 대개의 우리말이 이중적(二重的)인 구조를 가졌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늙은이’와 ‘노인(老人)’이 같은 뜻이지만 그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늙은이’는 낮춤말이 되고, ‘노인’은 높임말이 되니 말이다. 그래서 과공비례(過恭非禮) 언어가 우리 말글살이를 우습게 빠뜨리고 있다. “사장님 차가 주차장에 계십니다.”
한자도 그렇다. 쓸데없이 어려운 말은 쓸 필요가 없지만, 한자어가 70%를 차지하는 우리 언어 현실에서는 병기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하는 교과서에는 한자로 된 단어·용어가 90%나 된다고 한다. 한자겸용이 안 되어 학생들의 문맹율(文盲率)은 아주 낮으나 문해맹(文解盲)은 세계적이다. 그러니 읽을 수는 있어도 뜻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중근 의사(義士)를 ‘의사(醫師)’로 알고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大韓民國)’을 한자로 못 쓰거나 ‘상하(上下)’가 뭔지 모르는 초등학교 아이들,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의 한자 훈음을 안다면 그 뜻을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말을 살펴보자.
‘천지가 얼었다, 열차가 전역을 출발했다’
지금의 우리 언어생활에서는 글에서 문맥의 앞뒤가 있어야 그 낱말의 뜻을 바르게 새길 수가 있다. ‘천지’는 ‘천지(天地)’냐, ‘천지(天池)’냐’. 또 전역(全驛)이냐, 전역(前驛)이냐.
구태어 어려운 한자를 쓸 필요가 없을 때가 많다 ‘촉수금지(觸手禁止)’는 ’손대지 마시오’ 라고 쓰면 될 것을……. ‘비산먼지(飛散-)’는 ‘날림먼지로.
이주민 아줌마가 “통장을 만들러 왔어요.”를 “통장을 만들어 왔어요.”로 읽었다. 글자 한 자 때문에(만들러 → 만들어) 그 뜻이 180도로 변한다.
갈수록 순우리말은 한자어 때문에 밀려나고 있다. 개정된 초등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홀소리, 닿소리는 찾아보기 힘들고, 자음자, 모음자, 자모 등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글 창제는 어느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성취이자 기념비적(紀念碑的) 사건이다.”
밖에서는 우리 한글에 대해서 그리도 높게 보는데, 정작 주인인 우리는 홀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리브대올리브’처럼…….
다 누워서 침 뱉기다.
위대한 한글에 대한 자존감(自尊感)이 턱없이 부족하다.